심연천리향 - 200705 제주여행기

[회전여행]

심연천리향(心戀千里香)

- 2007 봄 제주여행기

 

 

 

여행 떠나기 전날 밤의 生이, 가장 지독한 삶이다. 이상한 일이지, 나는 제주에 다녀온 날부터

제주를 그리워하기 시작해서, 다시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할 때 쯤이면 일상은 거의 '지옥'이 된다.

그 '지옥'의 날들을  한장한장 뜯어 뒤로 던지고 나면 마침내 그날, 김포발(發)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 온다. 나는 알지 못한다. 삶이 괴로워서 제주를 찾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제주에 가야할 근거를

구하려고 삶을 괴롭게 만드는 것인지. 그 둘은 몇 년 전부터 내 삶에서 한 쌍으로 달라붙어 있다.

 

꽃피는 시절에 제주를 찾는 일은 내게 있어서도 드문 경우다. 5월은 제주의 성수기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당연히 비행기 티켓은 구하기 어렵고, 숙소와 렌트카 값은 그에 맞춰 폭등한다.

최소한 한 달 보름 전에 예약을 해놓지 않는다면 5월의 제주여행은 기약하기 어렵다. 나도 그랬다.

3월  말부터 표를 찾았지만 주말의 모든 티켓은 매진된 후였다. 심지어 김포발이 아닌,

청주발 제주행 한성항공편조차도 적절한 시간대에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목포행 KTX를 탔다가

목포에서 제주행 여객선으로 갈아타는 방법과 인천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제주로 가는 또다른 방법이

있긴 했지만 모두 편도에 12시간 이상이 걸리는 일들이라 주말을 이용해 제주를 다녀오려는

나같은 직장인으로서는 선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쯤되면 포기가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다. 나는 제주를 품고 있었고, 3월부터 끊임없이 제주를 떠올렸다. 가고 싶은 곳에는

가야만 한다. 홈페이지를 제주항공 티켓 예약 페이지로 고정시켜 놓고, 시간 날 때마다 F5 버튼

(새로고침)을 눌렀다. 10일 넘은 잠복 끝에 어느 일요일 오전, 5월 6일 일요일 12시대 제주발 김포행

비행기 좌석 2개가 취소되어 '예약 버튼'을 달고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나는 '예약' 아이콘을

클릭했고 1분여만에 예약을 마쳤다. 일요일 귀향 티켓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금요일 제주행 티켓은

끝내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금요일 하루 월차를 쓰고 목요일에 제주를 가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일은 밀려 있었고, 주머니 사정은 한심했지만 나는 기필코, 제주를 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꽃불 타오르는 제주 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이번 여행에는 아무런 목적지도 없었고,

나는 단지 제주의 바람과 파도소리를 되풀이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가는 여행편은 모두 제주항공을 이용(1인 왕복 13만원 가량)했고, 첫날 숙박만 인터파크를 통해 예약

(서귀포 N호텔, 트윈룸 조식포함 1박 4만8천원)했다. 렌트카는 제주몰을 이용해 뉴아반떼를 빌렸다

(48시간 3만9천2백원). 나머지 모든 일정은 그저 그때그때 내 마음을 따랐다.

 

제주는 온통 꽃천지였고, 손택수의 시 '목련전차'의 싯구처럼 차창 밖으로 꽃들이 줄을 서 손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봄의 제주는 길과 해변, 바다와 오름 곳곳에 헤어날 수 없는 정든 가락들이 실려 있었다.

나는 삶에 지쳐 그곳으로 떠나왔다는 기억을 잃고, 그저 제주의 음계를 짚어읽느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예정에 없이 빡빡한 여정이었지만 지금 나는 안개와 꽃들에 둘러쌓여있던 제주의 한 시절을

함께 나눴다는 것만으로 지극히 만족한다.

 

지난주 전주영화제에 연이은 이번 제주여행으로 건강에 다소 무리가 갔다. 그래서 사진으로 여행기를 대신한다.

그리운 마음은 향기가 되어 천리를 건넌다. 나는 또 언제 제주로 돌아갈까. 서울은 그저 베이스캠프일 뿐이다.

나는 언제쯤 제주에 뿌리박을까. 왜 매번 제주를 가는 일은 여행으로 그치고 마는가. 사랑하면서, 미치도록

사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망설임은 길을 지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 첫날, 호텔 옆 포장마차 횟집에서(제주엔 그런곳이 많다). 해산물 모듬 小, 3만원.

- 호텔로 돌아와서 조금 더 술추렴을. 편의점 와인과 안주, 제주귤 '천혜향' 몇 개.

-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서귀포 풍경. 문섬과 범섬이 안개에 싸여 있다.

- 아침에 조식을 먹고, 호텔 앞 산책로를 잠시 걸었다. 꽃들을 배경으로 문섬을 찍었다.

- 제주다원에서 한 컷. 제주다원은 오설록과 비교할 수 없는 풍요를 준다. 그곳은 적요로 가득차 있다.

- 무료로 제공되는 중작을 몇 잔이고 마셨다. 차는 가라앉고 향은 피어오른다.

- 안개에 쌓인 다원은 아침이었기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진정의 가장 차분한 끝은 초록이다. 

- 화순해수욕장에 들러, 안개에 가려진 봉우리가 산방산이다.

- 모슬포에 들러 제철생선인 자리로 만든 물회를 먹었다. 6천원. 돈지식당.

- 모슬포 포구. 오염되지 않은 제주의 포구는 비린내를 품지 않는다.

- 애월 해안도로에서 한 컷. 소용돌이치는 울돌목을 만났다. 샴페인 블루의 바다빛.

- 고산 부근에서 만난 청보리밭. 보리밭은 바람의 팔렛트.

- 수월봉에 올라. 차귀도 역시 안개에 덮여 있다.

- 협재해수욕장. 멀리 보이는 섬이 비양도다. 산이 날아와 앉은 섬. 飛揚島.

- 그날 협재는 승마를 하는 아저씨와 몇 가족이 어울려 이국의 향취를 풍겼다.

- 썰물때라 모래밭은 바다가 떠나간 발자국들로 가득했다.

 

- 협재에서 돌아오는 길은 1100도로를 이용했다. 한라산을 먼발치로나마 훔쳐보기 위하여.

- 1100고지 표지돌 너머는 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구경하기 쉽게끔 공사를 잘 해놨더라.

- 습지는 꽃과 나무와 이끼와 미생물과 동물이 한데 섞이는 곳이다. 그것은 그대로 지구의 축소판이다.

- 서귀포 시내에서, 민노당 현애자 의원 사무실 펼침막을 보았다. 결!사!지!지!

- 늦은 밤 표선에 도착했다. 현대그룹 해비치 리조트가 있어 표선은 물가가 아주 비싸더라.

거기서 흑돼지고기를 먹었다. 흑돼지삼겹 200g 1만2천원(헉!).

-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녹색 아이콘. 한라산물 순한소주. 물에 타서 두 잔만 마셨다.

- 바다가 보이는 2층 카페에서 병맥주 한잔을 마셨다. 기분좋은 마무리.

- 민박집 하나를 어렵게 구했다. 마트에서 사온 안주와 와인을 비웠다. 칠레산 썬라이즈 멜롯,

서귀포 홈플러스에서 2천8백7십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와인이다.

- 다음날 아침, 뚝배기를 주문했더니 에피타이저로 광어회를 준다. 역시 제주도.

- 오분작 뚝배기 9천원. 맛은 훌륭했지만 값은 과했다. 표선의 물가는 과연!

- 표선의 아침은 밀물로 시작되어 있었다.

- 그후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하더니 백사장을 온통 점령했다.

- 백사장에 서서도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 안개는 무엇을 감추려 들었던가.

- 당신의 시력이 괜찮다면, 오른쪽 아래 부분에 아이 둘이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몽환같은 풍경1.

- 표선에서 신양 해수욕장 가는 길에 만난 환해장성. 바다를 둥그렇게 감아든 돌담의 흔적.

- 신양해수욕장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곳도 뿌옇었지만 나는 그 고요가 맘에 들었다.

- 물은 밀려왔다가,

- 어느덧 사라진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반복은 분명한 음률로 들린다.

- 안개가 자욱한 바다 너머에 고깃배가 한척 돌아오고 있었다. 몽환같은 풍경2.

- 성산 가는 길에 만난 유채꽃밭. 선연의 어떤 극한, 노랑.

- 안개는 제주의 많은 곳들을 가리웠다. 성산일출봉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 종달리 바닷가에서. 뻘이 끝없이 바다로 뻗고 있었다.

 

- 갯벌은 지금 소라의 시간.

- 물떼새들은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 어느 순간 제 머문 곳을 박차고 다른 시간으로 떠났다.

- 나는 바짓단이 젖는 줄도 모르고 한참동안 갯벌을 걸었다.

- 세화 오일장에서. 저 푸른 스펙트럼의 바다가 시장바닥 바로 옆의 바다다. 믿어지는가?

- 오일장의 기운찬 풍경. 나는 여기서 한라봉 몇 알과 제주마른오징어 두 축을 샀다.

- 오일장에서 바라보이는 세화바다.

- 세화를 지나 서쪽으로 더 내달리면 행원리. 풍력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 도로를 달리다 차를 세우지도 않고 차창 밖의 풍경을 찍었다.

- 동복 해녀촌에서 회 비빔국수. 히라스 회와 중면, 야채를 매콤하게 섞는다. 1인분 6천원.

- 절물 오름 가는 길에 오름과 밭의 조화가 근사해서 한 컷.

- 민오름 가는 길. 드물게 정식입구를 만든 오름이다. 제주의 오름들은 거의가 다 사유지다.

- 민오름 오르는 길에서. 

- 땅은 지금 꽃의 끝없는 시간.

- 민오름에서 수없이 많은 새를 만났다. 막 날아오르는 것을 간신히 포착했다.

- 절물오름에 간다, 삼나무길을 따라.

- 삼나무 숲은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초록의 다채로운 변주곡.

- 연못을 조성해 연꽃을 피워놓았더라. 가을쯤 오면 아주 장관일 듯.

- 산책로 중간중간에 만든 데크길. 휠체어를 타도 이용이 편리하겠다.

- 명도암 관광목장에서. 어린 양들이 풀들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춘곤증에 빠진 사육사 아저씨.

- 제주의 특이음식인 밀감국수를 맛보러 갔다. 감귤즙을 넣어 국수를 삶았다. 한그릇 5천원. 좋다!

- 일몰을 보러 삼양해수욕장에 들었으나 그곳도 안개에 점령당한 후였다.

- 결국 돌아온 고향같은 바다. 나의 함덕 바다.

- 윗사진과 이 사진은 모두 늘 가는 펜션 '바다사랑' 방안에서 찍은 것이다. 1박 4만원.

- 늘 가는 함덕 단골횟집. '성지 회 센터'. 쯔기다시는 소라회, 멍게, 게불, 자리돔.

- 모듬회 小 4만원. 그날은 놀랍게도 광어와 '벵어돔'을 주셨다. '황돔'도 아니고 말이다.

- 펜션으로 돌아와서. 제주오징어와 카카오 초콜릿, 한라봉과 치즈를 안주로 와인을 마저 비웠다.

- 일요일 아침, 비에 젖은 함덕 바다.

- 동문시장에서. 순대 섞어를 시켰다. 찹쌀순대와 당면순대, 부드러운 간과 염통을 소복하게. 4천원.

- 올해부터 맛들인 고기국수 한그릇. 너무 양이 많아 결국 1/3 가량을 남기고야 말았다. 3천원.

- 김포공항에서 집에 가는 리무진버스를 타고. 나는 서울에 오고서부터 피로에 푹 빠져들었다.

 

 

 

 

 모든 사진은 언제나 그러하듯 코니카미놀타 다이낙스 5D, Tamron AF 18~200 F3.5~6.3, 무보정 리사이즈.

 

 

* 더 많은 글은 제 블로그http://blog.empas.com/nosid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골드존]

우와... 영상시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후기 잘봤습니다.

[핑크♪]

글 진짜 잘 쓰셨네요 무슨 작가이신듯 후기 잘 읽었습니다

[싸뽀로]

우와

[상큼허브]

밀감국수 드셨던집 ....상호와 위치좀 알려주세요~

[장떡팔]

마치 제가 겪었던 일을 본듯 잘~~봤습니다

[회전여행]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밀감국수는...백록담가든입니다. www.backrokdam.com 064-722-4048

[탐방]

협재에서 어울려 노는 가족이 울 가족이군요.....ㅎㅎㅎ....^^

[핑크♪]

어머 정말요 신기하네

[도로시]

우와~ㅎㅎ 풍경이 되주신 탐방님 가족이랑 찍으신 회전여행님이랑 같은날 한곳에.. 너무 신기한데요!

[-애정뉨-]

삽화책한권 본듯한 기분~~~잘봤어요^^

[별천사]

..절로 빠져드는 후기...굿입니다..너무너무 멋지셔욤... 탐방님..정말 이런 인연 흔치 않을텐데..놀랍네요...^^

[회전여행]

아, 탐방님 가족분들이셨군요. 참 그림같은 풍경이었어요. 모델이 되어주신 예기치 않은 인연, 감사합니다. ^^

[사이클]

기분좋게 읽고 갑니다

[제주_여행]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혹, 가보신 식당중에서 맛난 식당 있으면 추천바랍니다.

[수연마미★]

오 이렇게 멋진 후기는 처음 보는거 같아요...제주를 다 본것같은..다녀온지 얼마안된 저에게 그리움을 더욱 전해주는 후기였습니다..

[회전여행]

동복 해녀촌의 '회국수'가 참 좋더군요. 자세한 위치나 내용은 포털에서 검색해 보시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