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씨는 중국성도래설에 따른 성씨이다. 그 시조는 중국 당나라 소주 사람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 첨의사(僉議事)를 지냈고, 신라에서 선덕왕 때 좌복사, 사공대신 등 벼슬을 지낸 백우경(白宇經)이다.
그런데 계첩(系諜)이 끊겨 신라 경영왕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1세조(中始祖)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백창직의 증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수원군에 봉해졌고, 백창직의 8세손 백천장(白天藏)이 고려 충선왕 때 수원백에 봉해져, 그들과 연고가 깊은 수원을 본관(本貫ㆍ本鄕)으로 삼게 됐다. 또 고려말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백장(白莊)이 분관(分貫)하여 정신공파(靜愼公派)를 열었다.
정신공파 33세손 송암 백남종(松岩 白南種ㆍ전 광주 중등교장ㆍ79세)씨의 친산(親山ㆍ부모 묘)이 있는 선산을 찾았다. 그는 길지를 구해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풍수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 들러 눈에 띈 풍수서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고 틈나는 대로 정독해 갔다. 나름대로 풍수 안목을 기른 다음에 구산에 들어갔다. 쓸 만하다는 자리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다녔다. 그러기를 10여 년이 된 즈음에 대지명혈(大地名穴)을 찾게 됐다.
금산(錦山) ! 그 이름처럼 비단같이 아름답고 산자수려한 산이다. 담양군 대덕면 금산리 무월마을 뒤에 단정하게 솟은 산이다. 이곳 사람들은 신선산(神仙山)이라고도 부른다. 금산의 신선이 그 앞의 초승달 모양의 산을 안고 있다고 해서 신선산이라 했고, 마을도 무월(撫月ㆍ달을 어루만짐)이라 했다고 한다. 아마 금산과 그 앞의 산봉우리가 아름다워 전래된 얘기인 듯싶다.
이 산의 산계(山系)를 보면 호남정맥인 노령산맥의 내장산에서 출맥한 용이 밀재에서 입암산으로 건너는 줄기에서 분맥하여 추월산을 맺고, 곡성 설산으로 가던 주룡의 한 지맥이 괘왈산(掛曰山)-무이산(無夷山)-연산(蓮山)을 맺은 다음 금산을 맺었다.
금산의 정기를 순화하고 정제해, 그 고운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는 산록(山麓). 유난히 밝게 비치고 아늑하고 포근한 땅이다. 그 자리에 봉황이 알을 품을 둥지를 틀었다.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인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의 명당이다. 옛 선사들은 명당은 천장지비(天藏地秘)한 것으로 보았다. 즉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기고 있다가 적덕유공인(積德有功人)에게만 유덕한 지사(地師)를 통해 전한 것이라 여겼다. 이 말이 사실인 듯싶고 또한 믿고 싶다.
사실은 이 명당의 주인이 그렇다. 그는 효심이 지극했다. 그의 각고의구산(求山)은 효의 실천이었다. 일구월심 그 일념으로 유덕한 풍수 스승을 찾아 입문했다. 이제 그의 풍수 연구는 심오하고 건전하다. 지금은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풍수지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의 스승은 운월 박봉주(雲月 朴奉柱ㆍ85세) 선생이다. 한국 풍수계의 거두이며, 특히 이기학(理氣學)에는 권위자이다. 이분은 지금껏 돈 받고 풍수일을 한 적이 없다. '돈 욕심이 생기면 풍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신념이다. 그도 이런 스승의 풍수사상을 이어 받아 실천하고 있다. 이보다 큰 공덕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행술(行術ㆍ직업적인 지관)을 거부한다. 순수한 풍수학인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능히 그럴 사람이다'라고 그를 믿는다.
풍수학인들이 부러워하는 이 명당을 살펴보자. 이 혈은 금산 봉우리에서 중출맥한 주룡이 기복굴곡을 하며 사기(邪氣ㆍ惡氣)를 털고 내려와 마지막 도두일절(到頭一節)에서 용맥을 가늘게 조아 맨다(結咽). 생기를 모아 혈로 내뿜기 위해서이다. 뇌두(腦頭)는 힘 있게 치솟아 덩실하게 크다. 양쪽 선익사(蟬翼砂)는 혈을 가까이 감싸고 있어 생기의 누설을 막기 충분하다. 혈의 아래쪽에는 순전(脣氈)이 암석으로 박혀있다. 생기가 아래로 흘러가지 않도록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뇌두, 선익사, 순전 등을 내사(內砂)라고 하며 혈토와 함께 혈의 사진(四眞)이라고 한다. 이것들이 잘 갖춰지면 진혈(眞穴)로 판단한다. 이 혈은 사진(四眞)을 잘 갖추고 있다. 이는 이 혈이 대명당임을 입증해 준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갖춰질 수 있고, 한 가지만 있을 수도 있다. 뇌두는 있는데 선익이 없는 경우도 있고, 선익이 한쪽만 있는 경우도 있다. 단 한 가지만 있더라도 그것이 확실하면 진혈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상태에서 이것들을 식별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형체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극히 희미하기 때문이다. 현장 실습을 통해 관찰의 눈을 길러야 그 식별이 가능해 진다.
하지만 자칭 지관이라며 행술하는 술사들, 물욕에 빠져 마음이 탁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혈(定穴)에 누(累)를 범하게 된다. 이는 풍수 고전들이 하나같이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 그런 사례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강조하고 싶다. 명당을 얻고자하면 '공덕을 쌓고 유덕한 지사를 만나라'라고….
첫댓글 봉황포란형..... ^^**
우리 경남 밀양 산내 괴곡리에도 수원백씨 씨족 마을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