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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 FC서울은 서울의 레전드 오스마르와의 계약 종료를 발표했다. 2024시즌 새로운 감독 아래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구단과 선수가 받아들인 가슴 아픈 이별이었다.
글쓴이는 오롯이 20대의 청춘을 그와 함께하며 보냈다. 그가 내가 지지하는 팀을 떠나는 지금, 나의 청춘의 일부분이 떼어나간 듯한 심정이다. 이에 하찮은 솜씨의 글로 서울의 레전드 오스마르가 걸어온 10년의 청춘을 다시 조명해보고자 한다.
기대 반, 의심 반이었던 레전드의 대체자
2013 시즌이 끝난 후, FC 서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뽑히던 아디가 은퇴를 선언한다. 현역 연장 의지가 있었으나, 차마 K리그 타 팀으로의 이적은 할 수 없었다던 그가 내린 참으로 어려운 (사실상 반강제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서울팬 모두가 눈물로 떠나보낸 그의 빈자리를 채운 이는 태국 리그 부리람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던 25살의 스페인 수비수 오스마르였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외질을 상대 중인 오스마르(우측))
오스마르는 라싱 유스 출신으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라리가 데뷔까지 했던, 스페인에서 나름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성인 무대에 올라온 이후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성인 무대에서 3시즌 간 단 16경기 출장에 그쳤고, 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선택지는 너무나도 의외로 태국, 그 중에서 막 리그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던 부리람이었다.
이 곳에서 오스마르는 1년 만에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수로 자리 잡으며 태국 무대를 평정한다.
그리고 이 즈음, 최용수 감독이 이끌던 서울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부리람을 상대하게 된다. 오스마르가 우리 팀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었다.
(당시 부리람 선발 라인업. 오스마르가 오스마 바바 이바네즈로 표기되어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지금도 많은 팀들이 어려워하는 부리람 원정에서 서울은 이 날 상당히 고전하며 0-0으로 무승부를 거두었고, 오스마르는 안정적인 수비를 선보이며 팀의 무승부에 기여했다.
그리고 외국인 보는 눈만은 확실했던 당시의 최용수는 오스마르의 이 경기에서의 퍼포먼스를 보고 저 선수를 다음 시즌에 무조건 서울로 데려오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말이 통하는 오스마르를 직접 꼬시는(?) 에스쿠데로.)
그리고 아디가 은퇴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울은 오스마르를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서울과의 경기 이후 서울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던 오스마르는 무려 잉글랜드 2부리그 레스터의 입단테스트를 거절하면서까지 서울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었고, 마침내 영입에 성공하게 된다. 오스마르와 서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스마르는 훗날 이 날을 회상하며, "서울 이적 제의를 받은 날은 축구 인생 최고의 날 중 하나였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오스마르가 영입되었다는 소식이 떴을 때, 서울팬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엇갈렸다. ‘레전드’ 아디의 뒤를 잇는 대체자라는 포지션 자체도 부담이지만, 그런 대체자를 우리보다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태국 리그에서 데려왔다고 하니 이 부분에서 많은 의심의 눈초리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스마르의 2014시즌은 완벽한 출발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김진규-김주영과 함께 스리백의 일원으로 섰지만 (지금도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이 당시에서도 단점으로 뽑히던) 스피드 문제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용수가 부진을 타파하기 위해 포지션을 조정해가면서 오스마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 칸 올라섰고, 여기서부터 오스마르는 특유의 장점인 볼 줄기와 커팅 능력을 맘껏 뽐내며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울의 첫 시즌을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스스로 바꿔가던 오스마르. 그랬던 그가 팬들에게 마침표를 찍어주게 만든 경기는 2014시즌의 마지막 경기였던 제주 원정에서였다.
당시 포항에 밀려 4위를 기록하고 있던 서울은 제주 원정에서 이기고, 수원이 포항을 잡아줘야 ACL 진출이 가능했던 상황. 1대 1로 균형을 맞추고 있던 후반 49분, 오스마르는 극적인 역전골을 기록한다.
그리고 동시간의 수원도 포항을 상대로 승리하며 서울은 2015시즌 ACL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팬들은 이 순간 이후로 오스마르를 팀의 핵심이자 차기 레전드로 꼽으며 전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한다.
2015시즌에는 2년차만에 팀의 부주장으로 선임되어 훨씬 완숙된 기량을 선보였고, 리그 전 경기 풀타임 출장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선보였다. 이에 팬들에게 '갓갓갓갓'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팀의 완전한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2015시즌 FC서울은 ACL 진출에 성공함과 동시에 FA컵까지 들어올리며 오스마르는 서울에서의 커리어에서의 첫 트로피를 추가하게 된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 그리고 우승
2016 시즌을 앞두고 오스마르는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주장에 선임된다.
중국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컴백한 레전드(였었던 것) 데얀과 대전 소속으로 2부리그를 폭격했던 브라질 특급 공격수 아드리아노, 그리고 팀의 영원한 기둥인 박주영과 함께 서울은 엄청난 전력을 구축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다.
이런 강력한 스쿼드에서 우리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팀의 주장이 되는 것은 다소 파격적인 결정이었으나, 그 대상이 친화력이 뛰어나고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오스마르였기에 서울팬들 그 누구도 주장 선임 결정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오스마르는 중간에 감독이 최용수에서 황선홍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주전을 지켰고, 비록 전북 현대의 승점 감점의 징계가 있었지만 끝까지 2위 페이스를 유지하던 서울은 38라운드에서 전북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며 대역전 우승을 일궈내는 데 성공한다.
오스마르는 팀의 여섯번째 리그 우승을 가져다주었고, 이 해 K리그 베스트 11에 들게 된다. (MVP 후보에도 올랐으나 수상은 광주FC의 정조국이 차지하게 된다.)
본인조차도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이별
그러나 이렇게 꽃길만 있을 줄 알았던 오스마르의 커리어에 서서히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바로 최용수를 대신해 임명된 황선홍 감독이 2017시즌부터 서서히 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2017시즌이 되자마자 오스마르는 주장 자리에서 내려온다.(그 자리를 대신한 선수는 곽태휘였다.) 사실 주장 자리에서 내려온 것만으로 오스마르의 팀에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서울팬들은 단 한명도 없었고, 실제로도 오스마르는 2017시즌에도 변함 없이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했다.
다만 외국인들이 잘 따랐던 최용수에 비해 외국인을 못 다루기로 유명한 황선홍의 성향에 대해서만 다소 불안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은 2018시즌에 현실이 된다.
5위에 그치며 ACL 진출에 실패한 직후, 황선홍이 지금의 외국인들의 플레이 스타일로는 본인의 축구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전격적인 리빌딩을 시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독과 불화를 겪고 있던 데얀은 제발로 라이벌팀 수원으로 기어들어갔고,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오스마르는 J리그로 임대를 떠나버린 것이었다.
오스마르는 진심으로 서울에서 커리어를 마치고 싶어했고, 이는 여러 선수들의 대화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황선홍은 '자신의 축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력과 리더십을 포함해 다른 모든 부분에서 모범이 되고 있던 오스마르까지 쳐내버리고 만 것이다.
사실 황선홍은 오스마르를 완전 이적으로 보내려 했으나, 서울 프런트는 "데얀은 나이가 찼으니 보내도 상관없지만 오스마르만큼은 안된다. 팬들에 엄청난 반발을 살 것이다"라고 말릴 정도였다.(이 와중에 황선홍에게 동화되어 “오스마르가 그렇게 중요한 선수인가요?”라는 희대의 망언을 한 상놈도 있었다.) 오스마르는 그렇게 세레소 오사카로 유배(...)를 떠난다.
오스마르가 본인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냈다면 적어도 오스마르만큼 팀에 도움이 될만한 대체자라도 제대로 영입했어야 했으나, 황선홍이 선택한 선수들은 오스마르의 빈자리를 발톱의 때의 먼지만큼도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그렇게 황선홍의 서울은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서울은 이때의 충격파로 한번 하위권에 쳐박힌 이후 아직까지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스마르는 하필 세레소에서도 한국인 지도자(윤정환)을 만났고, K리그와 달리 J리그에서는 다소 평범한 1시즌을 보냈다. 세레소 입장에서도 딱히 임대 연장이나 완전 영입을 하기 어려운 정도의 활약이었고, 그렇게 오스마르는 다시 서울로 복귀하게 된다.
"나는 K리그가 그립지 않았다. 나는 FC서울이 그리웠을 뿐이다."
오스마르가 서울로 돌아오며 한 인터뷰에서의 발언이다. 오스마르의 FC서울 후반기 커리어를 대표하는 명언이라 할 수 있다.
2018시즌 서울은 중국에서 경질된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던 최용수를 다시 감독으로 불러들였으며, 겨우겨우 잔류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최용수가 2019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팀에 요청한 것은 오스마르의 컴백이었다.
2019시즌 오스마르는 최용수의 갈고닦은 352 포메이션 아래에서 전술의 꼭짓점을 맡으며 다시 팀의 부활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이 시즌 슈퍼매치에서 넣은 환상적인 두 골은 백미 그 자체였다.
최용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심지어 그 다음 시즌 기성용이 서울로 컴백을 추진하던 시기에도 오스마르와 스타일이 겹친다는 이유로(또한 비슷한 유형의 주세종이 있기도 했고) 영입 의사를 거절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무너져갔던 팀의 마지막 자존심
그러나, FC서울은 이제 더 이상 이전의 그 강팀이 아니었다. 2019시즌에 반짝 부활하는 듯 했던 서울은 그 다음 시즌부터 기약 없는 부진의 터널로 빠지기 시작한다. 2020시즌 9위, 2021시즌 7위, 2022시즌 9위, 그리고 2023시즌 또다시 7위...
그 4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처럼 따르던 최용수가 "발악을 해도 되질 않는다"는 절망적인 말과 함께 팀을 떠났고, 이후에 감독이 대행 포함 무려 5번이나 바뀌었다. 매 시즌마다 마주하는 감독의 얼굴이 달라졌으며, 구단의 운영은 오스마르가 처음 서울에 발을 디뎠던 때와 다르게 완전히 방향성을 잃고 표류했다.
(Goodbye, amigo.)
구단 최악의 암흑기였던 지난 4년 동안 오스마르만큼은 예전과 변함없이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다. 다행히 황선홍과 같이 무리하게 그를 쫓아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신임 감독인 박진섭도, 안익수도 그의 프로페셔널한 자세에 감복하며 그를 여전히 스쿼드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서서히 변하지 않는 팀의 상황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동안 오스마르는 소중한 동료를 떠나보내고, 팬들에게 팀 버스가 두 번이나 막히는 등 심적으로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본인의 청춘을 오롯이 이곳에서 보내며 깊어진 주름과 덥수룩해진 수염만큼이나 팀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하염없이 쌓여만 갔다.
(오스마르의 두 아들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오스마르는 여전히 이 팀을 사랑했다. 이 도시에서 두 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그는 이 도시와 이 팀의 경기장, 이 팀의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다시 팀이 정상에 올라가는 그 날까지 나는 축구를 그만둘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서울에서의 커리어의 마지막 순간을 반드시 행복으로 마무리 짓기만을 기다리며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어버린 2023시즌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시즌 초반 서울은 정말 오래간만에 상위권에 위치하며 팬들이 드디어 기다렸던 '서울의 봄'을 맛보나 했으나, 중반기부터 계속된 부진 끝에 안익수 감독이 갑자기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만다.
구단은 이 상황에서 오스마르의 선수 시절 동료였던 김진규 코치의 대행 체제로 빠르게 수습하고자 했으나, 또다시 팀은 역량 부족으로 인해 마지막 순간에 미끄러지며 4년 째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지 못하는 구단 최악의 불명예를 기록하고야 만다.
"한때 함께 했던 영광의 시절을 다시 느끼고 싶었지만, 그것을 이뤄내지 못한 점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가장 먼저 팬들에게 사과한 이는 다름 아닌 오스마르였다.
37라운드,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오스마르는 역습 상황에서 수원의 김주찬에게 태클을 시도했고, 이 태클이 반칙으로 선언되며 퇴장을 당하고 만다.
전성기 기량이라면 20살 신인 윙어 즈음은 어렵지 않게 막아냈을 그지만, 올 시즌에도 거의 전 경기를 출장한 데 비해 서서히 나이가 들며 떨어지고 있던 그의 체력이 더는 버텨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의 FC서울 커리어 역사상 첫번째 퇴장이자, 마지막 퇴장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오스마르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만다.
서울은 2024 시즌을 앞두고 부진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환으로 K리그 최고의 명장인 김기동 감독을 데려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암흑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서울 입장에서는 그 암흑기를 그 누구보다 벗어나고 싶어했던 오스마르가 1순위 정리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오스마르는 10년 간 정들었던 팀을 떠나게 되었다.
오스마르는 FC 서울에 모든 청춘을 바쳤다
레전드를 대체하기 위해 팀에 합류했던 젊은 수비수가 또 다른 레전드가 되어 팀을 떠난다. 아직도 서울팬들 사이에서는 '오스마르 vs 아디, 누가 더 팀의 레전드인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몇몇 팬들은 팀의 힘든 시기를 같이 견뎌온 오스마르를 더욱 더 레전드로 여길 정도이니, 그만큼이나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서울팬들의 신뢰는 굳건하다.
"좋았던 선수보다는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모든 서울팬들에게 울림을 준다. 그래, 그의 말대로 오스마르는 기량적으로도 좋은 선수였지만 그 이전에 정말 좋았던 사람이다. 모든 팬들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며, 모든 선수들이 존경하고 믿고 따랐다. 안티가 많은 팀의 선수임에도 다른 팀 팬들이나 선수들마저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수로 남았다.
"FC서울은 향후 오스마르에게 FC서울 ‘레전드’로서의 한치의 소홀함 없는 모든 예우를 다하겠습니다."
오늘 그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많은 서울팬들이 공항 가는 길을 배웅할 것이다. 오스마르는 22일 0시 15분 인천공항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오스마르는 이제 말레이시아의 케다 FA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실상 레전드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포장된 반강제적인 은퇴를 선택한 아디보다는, 커리어를 마무리하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오스마르가 이 팀에서의 더 좋은 마무리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오스마르가 완전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 날, 우리는 언제든 아디만큼이나 성대한 은퇴식을 치뤄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대가 이 팀에 모든 청춘을 다 바친 만큼이나, 우리도 당신을 청춘을 다 바쳐 사랑했음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스마르 이바녜즈 바르바.
Osmar Ibáñez Barba
그대 덕분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출처. 에펨코리아 국내축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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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보관보다 황선홍이 더 싫다 진짜..
Gracias Osmar ㅠㅠ
벌써 허전하다....ㅠㅠ 하.. 오스마르 고마웠어 정말 ㅠㅠ
잘가.. 오스마르
가지마ㅜㅜㅜ
5스마르 감사했습니다. 캡틴이시어! 꼭 지도자로 돌아와 주세요!!!! 3~5년후 즈음에는 두리차 감독에 오스마르/김진규 코치... 이런 모습도 한번 보고 싶네요 ㅜㅜ
수원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했던 선수
ㅜㅜ
너무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서울은 참 외인 복이 많은 구단인듯한…결말은 제각각이지만
멋진글
아챔 결승, 오스마르 영입, 마지막경기에서 전북 이기고 리그 우승하던게 엊그제같은데 우울하네요. 아들낳아서 매경기 직관하는게 로망이었는데
삶도 바쁘고 경기도 노잼이라 멀어진지 오래
다시 영광의 날이 올수 있을지
사랑했다 오스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