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무릎을 깎는 노인(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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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전의 음모를 종식시키기 위한 피의 폭풍(暴風)!
그 바람은 아무도 모르게 또 한 곳에서부터 불어 나고 있었다. 이름하여 철기성(鐵器城)이란 곳이었다.
철기성!
육황(六皇) 중의 한 명인 암형기황(暗型器皇) 한적(韓積)이 지배하고 있다는 궁전이다.
암형기황 한적!
일명 움직이는 암기(暗器) 창고(槍庫)라고 불리는 자.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암기술(暗機術)의 달인이다. 그는 오직 암기술 하나만으로 육황십제 가운데 일좌(一座)를 차지한 자이다.
그의 일신에는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수천 수만의 온갖 암기가 숨겨져 있으며, 오죽했으면 세인들은 그를 가리켜 비정형(非情形) 살상병기(殺傷兵器)라고까지 불렀을까?
평소 그는 음흉하고 간교하기 이를 데 없어 아무도 그의 심중을 짐작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데 그가 기거하는 철기성으로 한 여인(女人)이 찾아든 것은 무려 삼경이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어느 실내이다.
사각- 사각-!
무엇인가를 갉아 내는 듯한 기괴한 음향이 이어지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다.
한 노인(老人)이 그 속에 결가부좌한 채 무엇인가를 열심히 깎아 가고 있었다.
가각- 빠각-!
깎이는 음향이 기이하도록 섬뜩하다. 흡사 뼈를 갉아 내는 듯한 소리랄까?
희미한 어둠 속이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비정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는 자이다.
칠흑의 밀실, 그 밀실 속에서 새벽이 다가오도록 무엇인가를 깎고 있는 자는 대체 누구일까?
한데 그때였다. 실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노인의 입에서 새어 나온 것은!
"암형기황 한적! 비정해야 한다. 오직 비정했기에 너는 현재의 권좌에 올라설 수 있었으며, 비정했기에 오십 년 이상 육황십제 중의 한 자리를 지켜 올 수가 있었다."
들려 오는 목소리!
그것은 실로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음색이다. 철저하게 감정마저 죽여 버린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었다.
한데 들었는가?
암형기황 한적이라 했다.
십육 인의 육황십제 가운데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며, 오직 암기술 하나만으로 권좌를 오십 년이나 지켜 오고 있다는 자!
그렇다. 어둠 속에서 비정한 음색을 발하는 자는 바로 암형기황 한적이었다.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밀실 속이다. 그곳은 그만의 세계이며, 오직 그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지(禁地)이다.
가장 가까운 수하마저 들어올 수 없는 밀실 속에서 그는 밤이 깊도록 홀로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는 지금 이 시각까지 잠을 자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 동안 너무 오래 일인좌(一人座)가 되기 위해 기회를 노려 왔다. 서로 죽고 죽이는… 혈풍이 드디어 이곳 고황전에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다시 무엇을 깎는 듯한 음향이 들려 왔다.
"흐흐… 서로 죽이고 죽고… 드디어 오늘 저녁에 한 놈이 죽었다. 파인도월제 음수군, 그자가……."
잔잔한 기쁨이 일렁이는 목소리였다.
한적은 이미 초저녁에 파인도월제 음수군이 죽어 나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해라, 비정해야 한다. 비정해야만 내 권좌를 지키고 더욱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음이다. 흐흐……!"
중얼거림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삵쾡이 같은 흉폭한 살기가 쏟아졌다.
"웬 놈이냐?"
그 목소리가 암기라면 상대는 벌써 전신이 난자되어 죽었으리라.
그때였다. 저 어둠 속에서 나직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조심스럽게 울려 왔다.
"황하(皇下)!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시각에 날 찾는 손님이?"
한적의 눈에 일순 강한 경계심이 어렸다.
그는 원래 의심이 많은 자다. 너무도 의심이 많기에 그는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하조차 믿지 못해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철벽(鐵壁)의 밀실 속에서 가공할 암기 장치를 해 놓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하기에 야심한 밤이면 그 누구도 그를 찾아오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관례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삼경이 훨씬 넘은 이 시각에 한적을 찾아온 인물이라니?
"어떤 자가 감히 이 시각에 본좌를 찾는다는 것이냐? 내일 날이 밝을 때 찾아오도록 하고, 그냥 돌려보내라."
그는 밖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는 연신 머뭇거리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다.
"저, 그것이… 찾아온 손님이란 것이……."
"손님이 어쨌다는 것이냐?"
"손님이란 다름이 아니라, 살예무후께서……."
"살예무후!"
문득 한적의 음성이 뚝 끊겼다.
그가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살예무후라면 육황십제 중의 일 인이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름이 아니던가?
번쩍-!
찰나 어둠 속에서 두 줄기의 섬광이 폭사된다.
그것은 내공을 실은 강렬한 안광(眼光)이었다.
한적은 강렬한 눈빛을 발하는 가운데 한 여인의 얼굴을 뇌리 속으로 떠올렸다.
'살예무후 염희! 그 계집이 날 찾아왔다는 건가?'
순간 소리 없는 미소가 한적의 입가에 번져 났다.
'흐흐… 그 앙큼한 계집이 마지막으로 날 찾아온 것은 지금부터 일 년 전이던가… 그때도 이토록 야심한 밤이었지.'
일 년 전이던가?
살예무후 염희는 이런 깊은 심야에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밤을 생각하자, 한적은 전신이 후끈 달아올랐다.
마치 거대한 대해 같기도 하고, 빠지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끈끈한 늪 같기도 하던 여인…….
염희가 찾아온 첫날밤의 쾌락을 어찌 한적이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특히 고독하고 의심 많은 한적이 여인을 품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한데 그 후로도 염희는 틈이 나는 대로 그를 찾아와 객고를 풀어 주곤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대가라는 것이 고황전의 일인좌로 올라서는 데 대한 동조를 얻는 것임을 모를 리 없는 한적이지만 말이다.
희미한 미소가 한적의 얼굴 위로 스쳐 갔다.
'흐흐… 염희, 계집으로서는 너무 욕심이 많지. 죽으면 썩을 몸뚱어리 하나를 최고의 무기로 여기는 년! 자신의 육체를 육황십제에게 가끔 제공하는 것으로 친선을 도모하는 동시에, 후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전 포석임을 내가 모를 리 없지!'
음산한 미소가 한적의 입가에 거듭 번졌다.
그것은 다분히 탐욕의 미소이기도 하다.
'하되 이 한적을 그토록 만만히 본다면 곤란하지. 일단 들어온 음식이니, 먹을 것은 확실히 먹어 두고… 나중에 해치울 수 있으면 확실히 해치우면 된단 말씀이야. 흐흐……!'
속이고 속고, 상대의 생각을 재고, 자신의 머리를 굴리고…….
의심 많은 한적이기에 그의 생각은 더욱 깊고도 간교했다. 그는 다시 수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찾아왔다더냐?"
"그것은 속하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무후께서 직접 황하를 뵙고 말씀드리겠노라는……."
"흐음, 그래?"
한적의 입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그런 염희의 속셈이야말로 실로 뻔한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 것이다. 기실 지금껏 염희가 그를 여러 번에 걸쳐 찾아온 것도 오직 한 가지 이유뿐이었다.
이윽고 한적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안으로 모시거라."
"존명!"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실내에 불이 켜졌다.
파앗-!
암흑을 방불케 하던 실내의 천장에 휘황한 야명주(夜明珠)가 나타나며 주위는 일시에 눈부시게 변했다.
제법 넓은 실내였다.
화려하지는 않되 검소한 곳이었다. 첫눈에도 안전하고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한쪽 구석에 침상이 놓여 있고, 정중앙에는 한 명의 인물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어둠 속에 앉아 비정한 음성을 중얼거리던 그자였다.
암형기황 한적!
그는 실로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의 소유자였다.
마치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 올빼미를 보는 듯한 모습이랄까?
넓고도 불룩 튀어나온 이마,
양쪽 귀 위로 비어져 나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
흉측하기 이를 데 없는 볼에다 쪼글쪼글하기 그지없는 입술,
새 주둥이같이 콕 붙어 있는 작은 코…….
더욱 기괴망측한 것은 눈이 극도로 나쁜 듯 신축성 있는 끈을 이용해 두 눈 앞에 동그란 유리관(琉璃管)을 고정시켜 귀에다 묶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목한 투명 기구 속에 든 올빼미 같은 눈을 꿈벅거리며 환해진 방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간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이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손에 한 자루 소도(小刀)를 든 채 자신의 무릎 부위에서 무엇인가를 깎고 있었는데…….
사각- 사각-!
한데 보라!
아아, 세상에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아까는 컴컴한 어둠 속인지라 그가 무엇을 깎고 있는지 전혀 식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모습은 실로 소름끼치는 광경이 아닌가?
그는 물건을 깎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깎고 있었다.
물건을 깎는 소리처럼 들리던 음향은 바로 자신의 양쪽 무릎뼈를 깎아 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의 무릎은 피투성이로 화해 있다.
스스로의 무릎을 깎아 가고 있음에도 한적의 모습은 실로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실로 전율스런 일이다. 아무리 비정하다 하되 스스로 무릎뼈를 깎으면서까지 독해지는 연습을 하는 자도 있었던가?
정녕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좀더 강해지고, 좀더 비정해지기 위해 자신의 무릎을 깎는 인물!
이때 한적은 뼈를 깎아 가던 소도를 무릎에서 떼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옥병(玉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안에 붉은색의 액체(液體)가 담겨 있는 옥병이었다.
한적은 그 액체를 자신의 무릎 위에 뿌렸다.
스르르……!
그것은 금창약(金瘡藥)인 듯했는데, 금방 그의 무릎에서 배어 나던 피가 멎었다.
동시에 너덜너덜하던 뼈와 살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가 아물어 가는 무릎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황하! 무후께서 오셨습니다."
들려 오는 조심스러운 음성이 다시 문 밖에서 들렸다.
한적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흐흐… 어서 안으로 드시라고 하여라."
동시에 그의 손에 방안의 어느 기관(機關)을 작동시켰다.
순간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던 실내의 우측 벽면이 소리도 없이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기기기깅-!
동시에 그곳을 통해 한 여인이 실내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눌씬하면서도 금방 터져 버릴 듯 물 오른 풍염한 몸매를 지닌 홍의여인(紅衣女人)!
바로 살예무후 염희였다.
출렁… 출렁……!
염희는 의식적으로 온몸을 흔들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두 손으로 다 감싸지 못할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고, 꽉 끼이는 둔부는 옷을 비집고 나올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찰나 한적의 두 눈에서 한 가닥 강렬한 욕화가 솟아났다.
'으음, 거의 일 년 간이나 보지 못했더니… 그 동안 더 많은 사내놈들의 양기를 끌어모아 훨씬 젊어진 것 같구나. 하긴 나도 그 동안 많은 사내들을 골라 저 계집에게 보내곤 했었지!'
그러나 아직도 일말의 경계심이 한적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일 년이나 찾아오지 않던 계집이 돌연 왜 나를 찾아왔단 말이가? 하필이면 음순군이 죽은 밤에 찾아온 것도 그렇고… 유난히 날 홀리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는 슬그머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때 다가오던 염희가 한적을 향해 요란한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오랫동안 뵙지 못했더니, 기황께서는 더욱 젊어지신 것 같군요. 그동안 좋은 일이 많이 있었나 봐요?"
"흐흐… 좋은 일은… 오히려 더 젊어지고 아름다워진 것은 무후외다. 한데, 이토록 야심한 밤에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순간 염희는 한적을 향해 몸을 교태롭게 비틀었다.
"아이, 정녕 그 이유를 기황께서는 모르신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천녀는 기황이 미워질지도 몰라요."
교태롭게 몸을 뒤트는 염희.
그 바람에 앞섶이 열려지며 삐죽 하얀 가슴이 슬며시 삐져 나왔다.
한적은 내심 냅다 욕설을 해 댔다.
'천하에 음탕한 년. 밤마다 사내를 바꾸면서 저런 교태를 부려 댔겠지.'
그러면서도 가슴 밑에서 강한 욕념이 솟구치는 것을 한적은 자제할 길이 없었다.
한적은 슬금슬금 염희의 전신을 살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본좌의 처소에는 앉을 의자조차도 없으니……."
"호호… 천녀는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더 좋아요. 저기 침상이 있잖아요?"
동시에 염희는 자신의 몸을 침상 위에 내던졌다.
출렁……!
풍염한 그녀의 몸이 실리자 침상이 마구 요동치며 움직였다.
염희는 교태스럽게 다리를 꼬고 누워 칙칙한 눈빛으로 한적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수거미를 잡아먹기 직전, 암거미의 눈빛이랄까?
"호호… 무엇을 망설이세요. 천하의 기황께서……."
"으음……!"
"자, 어서요. 과거 기황께서는 항상 소녀를 즐겁게 해 주셨잖아요. 어서요. 제 몸이 뜨거워져 오고 있단 말이에요."
염희는 한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으음, 무후…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어느 틈에 한적은 침상을 향해 다가들고 있었다.
호흡이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오랫동안 여자의 속살 맛을 보지 못한 그의 눈이 점차 충혈되어 갔다.
"자, 어서 날 마음대로……."
염희는 도발적으로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그 가슴을 한적의 손이 움켜쥐어 갔다.
염희의 눈은 잠시 후의 쾌락을 상상하듯 슬며시 감겨졌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염희를 향해 다가가던 한적의 손(手).
그 앙상한 손에서 갑자기 벼락치는 듯한 광채가 눈부시게 뿜어지는 것이 아닌가?
버언쩍- 바바바박-!
그 광채는 불쑥 내민 염희의 복부 근방에 무섭게 작렬했다.
섬뜩한 음향이 콩을 볶듯이 염희의 가슴 부위에서 울려 퍼졌다.
"아악!"
염희의 몸이 급살을 맞은 것처럼 튀어올랐다가 떨어졌다.
한적의 손에서 발출된 광채.
아아, 그것은 종류 미상의 수많은 암기(暗器)였다.
한적은 누워서 눈을 감고 자신을 기다리던 염희의 가슴에 돌연 기습을 가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 느닷없는 기습인지라, 염희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염희는 처절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한적을 올려다보았다.
"암형기황… 그… 그대가 감히 날……?"
입을 벌리는 염희의 입 속에서 미세한 혈흔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격중시킨 암기가 치명상을 입혔음이 틀림없다.
그때 한적은 슬쩍 뒤로 몇 발 물러선 상태였다. 그는 살기 어린 눈길로 염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흐흐… 고약한 년! 감히 염희도 아니면서 염희로 변장해 이곳으로 들어온 목적이 무엇이냐? 네년이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본좌는 네년이 가짜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흐흐……!"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괴소가 한적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랬던가?
이곳으로 들어온 염희는 가짜였던가?
"크으윽… 부… 분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니……."
염희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절망의 표정을 떠올렸다.
한적의 입에서 사악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크흐흐… 감히 본좌를 해하려 하다니… 이년! 널 시켜서 본좌를 암살하려한 놈이 누구냐? 분명 십제육황 중 한 놈이 틀림없으렷다?"
"크으… 나… 나는 모른다."
염희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아.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내는 방법이 있지. 흐흐… 네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정한 인간이 바로 본좌라는 것을……."
순간, 염희의 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그런 그녀의 눈 속으로 언뜻 공포의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천하에서 가장 잔혹하고 비정한 인간 한적!
그는 가장 비정한 자답게 또 한 가지의 독문절예(獨門絶藝)를 소장하고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입을 불지 않고서는 견뎌 낼 수 없는 뛰어난 고문술(拷問術)의 대가라는 것이었다.
"크으… 차라리 목숨을 팔지언정, 비밀은 팔지 않는다."
염희는 질끈 눈을 감으며 혀를 깨물고자 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한적을 쳐다보았다.
한적은 괴이하기 이를 데 없는 살소를 흘렸다.
"흐흐… 아무리 그래 봐도 소용없다. 네년의 몸에 격중된 것은 바로 섬린살시(閃鱗殺矢). 이미 네년은 혀를 깨물 힘조차 없을 것이다. 뿐이냐? 머지않아 전신이 모든 혈관까지 파괴되는 무서운 고통을 느끼면서 비밀을 불게 될 것이다. 흐흐……!"
"아아……!"
염희는 절망적인 신음을 흘렸다.
누가 이 이름을 모르겠는가?
섬린살시(閃鱗殺矢)!
암형기황 한적이 자랑하는 십대암기(十大暗器) 중의 하나이며, 흔히 세인들에 의해 저주의 비늘(鱗)이라고 불리는 암기이다.
이것은 섬린(閃鱗)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늘로 만들어져 어떤 단단한 물체라도 순식간에 관통시키며, 특히 피를 지닌 생명체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 전신의 혈관(血管)을 타고 흐른다 했다.
그 비늘은 혈관을 타고 흐르며 가장 미세한 핏줄까지 일시에 파괴시킨다고 했으며, 그때의 고통이란 가장 지독한 고문술 중의 하나인 분근착골(分筋錯骨)보다 열 배는 더한 것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아까 염희의 가슴 부위에 작렬한 광채가 바로 섬린살시란 말인가?
섬린살시에 격중되면 일시에 모든 맥(脈)이 단절되며, 즉시 모든 무공이 폐지된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아아악……!"
어느 순간, 염희가 몸을 뒤틀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미 그녀는 섬린살시로 인해 처절한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한적은 서서히 침상에 걸터앉으며 흥미 있는 눈길로 염희를 내려다보았다.
"흐흐… 네년은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잘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원래 염희는 본좌를 기황(器皇)이라고 부르지 않고 기랑(器郞)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
"더불어 네년은 또 실수한 것이 있다. 염희는 원래 어디를 다니든 속옷을 입지 않는다. 한데 아까 네년이 드러누울 때 나는 하체를 가린 속옷을 보았지. 뿐이냐? 아무리 교묘하게 변장했다 한들, 가슴 크기까지 똑같이 변장할 수 있겠느냐? 흐흐… 원래 관찰력이 세심한 본좌는 염희 그녀의 가슴이 얼마만큼 큰지 정확한 수치를 갖고 있단 말이다. 크크……!"
실로 간교하고 악독한 한적의 치밀함이었다.
가짜 염희는 치를 떨었다.
"능구렁이 같은 놈!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크으……!"
그녀가 진저리를 칠 때이다.
한적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거리며 서서히 염희 쪽으로 다가 앉았다.
"흐흐… 고통이 시작되기 전 과연 네년이 누구이며, 또 얼마나 훌륭한 몸매를 지니고 있는지 본좌가 직접 시식해 봐야겠다."
"더… 더러운 늙은이! 차라리 빨리 죽여라."
"흐흐… 자고로 계집이란 앙탈하면 할수록 더욱더 매력 있는 법이지. 특히 고통을 받는 계집을 범하는 건 더욱 별미야. 네년을 차근차근 짓밟으며 자백을 받아 내겠다."
아아, 실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비정한 인간 한적이 아니면 하기 힘든 말이다.
이어 앙상하기 이를 데 없는 손이 염희의 발끝에 닿았다.
그 손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위로 올라갔다.
스르……!
흡사 지렁이가 꿈틀대는 듯 징그럽고 집요한 손길.
그 손이 여인의 가장 중요한 부근에 막 이르렀을 때였다.
슈욱- 퍼퍽-!
갑자기 염희를 어루만져 가던 한적의 몸이 급살을 맞은 듯 튀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커억!"
급작스런 반전(反轉), 나자빠졌던 염희의 몸은 일어나고 한적의 몸은 나가떨어졌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적은 가슴을 움켜쥐고 구석에 나가떨어져 있다.
그런데 보라! 그의 가슴에는 뻥 하니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가? 그 구멍에서 피가 샘물처럼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틈인가? 염희는 일어서서 한적을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봤다.
한적은 불신과 경악으로 눈이 툭 튀어나왔다.
"커커컥… 어떻게 본좌의… 섬린살시에 격중되고도……?"
그때 염희의 얼굴에서 기이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미소는 염희 같은 탕녀는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심오막측한 미소였다.
"섬린살시라… 하핫… 분명 나는 늙은이의 설린살시에 격중되긴 했었지. 그러나 알고 있는가? 섬린살시는 내게 전혀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염희의 음성이 돌변했다.
그것은 긁직하고 낭랑한 힘있는 남자의 음성이었다.
투투투둑-!
더불어 염희의 가슴 부위에서 무언가 투명한 물체들이 빠져 나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물고기의 비늘(鱗) 같기도 하고, 유리 조각 같기도 한…….
그것은 바로 한적이 자랑하는 섬린살시라는 것이 아니던가?
죽어 가던 한적의 눈이 확 튀어나왔다.
"헉! 저… 저럴 수가? 어떻게 그런 일이……?"
염희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훗훗… 암형기황 한적! 너는 스스로의 간교함과 똑똑함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넌 나에 대해 두 가지를 모르고 있다."
"두 가지?"
"그 첫째는 내가 여인이 아닌 남자(男子)라는 것!"
"헉! 여인이 아닌 남자?"
순간이다.
우두두둑- 두둑-!
염희의 몸이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전신의 모든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염희의 몸이 실로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튀어나왔던 커다란 가슴이 안으로 스며 들어가고, 풍염하던 둔부도 줄어들었으며…….
여인의 늘씬한 체구가 육 척이 넘는 훤칠하기 그지없는 미남자로 쑥 늘어나는 것이었으니……!
미남자(美男子)!
어느 틈인가? 한적의 앞에는 그가 한 번도 본 바 없는 한 명의 미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한적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으으… 세상에 그런 기묘막측한 축골공(縮骨功)이 다 있었다니?"
한적은 아예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상대가 염희가 아니라는 것만 알았을 뿐 설마 남자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눈치였다. 고금 이래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축골공(縮骨功)은 무림의 역사에도 없는 일이었으니…….
염희의 모습이 사라지고 드러난 인물.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신사영이었다.
"끄… 끄윽! 너… 너는 누구냐? 무엇 때문에 본좌를……?"
신사영은 한적을 내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적! 너는 나에 대해 더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지의 마지막 후예이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지?"
"후훗… 제왕(帝王)!"
단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 마디가 한적에게 주는 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적의 몸이 펄쩍 튀었다.
"제… 제왕! 그… 그렇다면 너는 바로 제왕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전설의 파폐군성… 파폐군성의 후예란 말이냐?"
"……."
신사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되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신비한 미소는 분명 긍정을 의미한다.
한적의 얼굴에 절망의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사영은 한적을 바라보며 천천히 팔짱을 꼈다.
"너의 섬린살시는 예리하기 그지없어 철판이라도 순식간에 꿰뚫고 가른다. 그러나 세상에서 꿰뚫지 못하는 유일한 방패막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제왕의 보의, 능라제왕의라는 것이다."
능라제왕의(綾羅帝王衣)!
제황의 성지 파폐군성이 자랑하는 절세의 보의(寶衣)로 어떠한 예리함이나 충격에도 견딜 수 있다는 옷이다. 또한 임의로 색(色)을 조절하여 변장을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던가?
"능라제왕의… 그런 것이 있었다니……."
한적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였다.
"그런데… 내 가슴을 관통한 두 가지 암기(暗器)는… 암기지왕인 이 한적을 암기로써 꿰뚫은 이 암기의 정체는 무엇이냐?"
신사영은 슬몃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발에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한 켤레의 검은 장화(長靴)가 신겨져 있다.
어디로 보나 여타의 신발과 별로 다름없는 흑장화이다.
단지 앞부리에 검은 윤기가 도는 둥근 철판(鐵板) 하나가 박혀져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정도랄까?
"그… 그게 어쨌다는 거냐?"
"훗훗…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암기(暗器)가 숨겨진 장화라 할 수 있다. 일컬어 움직이는 암기 창고라고 불리는 살인흑장화. 이 신발의 앞부리에 부착된 살인탄환(殺人彈丸)이라면 널 죽이는 데 전혀 부족함도 없을 것이다."
살인흑장화(殺人黑長靴)!
역시 파폐군성이 자랑하는 신물 중의 하나로서, 흔히 움직이는 암기 창고라고 불리는 가공할 살상병기이다.
이것은 한 쌍의 신발인 바, 발가락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암기를 발출한다는 특이한 물건이었다. 그 신발에는 도합 일만이천(一萬二千) 종(種)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암기가 숨겨져 있다고도 전해지는데…….
아아, 누가 일개 신발이 움직이는 암기 창고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그… 그런 개 같은 경우가… 그 따위 신발에 박힌 암기 하나도 제대로 피하지 못하다니… 이 암기지왕 한적이……."
한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거듭 눈을 부릅떴다.
하되 그의 안색은 이미 백짓장보다 창백해져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쿨럭거리며 피가 게워져 나왔다.
신사영은 죽어 가는 한적을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네가 죽어 가는 이유는 하나! 정도와 합작하여 고황전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고황전의 안녕과… 무림의 평화를 위해 한 무사가 너에게 단죄를 내린다."
"커억! 네… 네놈의 이름은……?"
대답 대신 신사영은 두 손을 품속에 넣었다가 서서히 앞으로 내밀었다.
한데 보라! 그의 쌍수는 붉은 적광이 은은히 일렁이는 한 쌍의 수갑(手匣)이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찰나 한적의 눈이 툭 불거졌다.
"헉! 그… 그것은 악마의 삼대살병이라는… 적예인!"
그렇다. 신사영의 손에 의수처럼 끼워진 것은 바로 악마의 삼대살병이라 일컬어지는 적예인이었다.
신사영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파스스- 스슷-!
마치 어둠 속에서 귀화(鬼火)가 타오르는 것이랄까? 적예인에서 솟아나는 불길은 정녕 전율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크윽! 그… 그것은 또 적견생분화……."
적견생분화!
역시 삼대살병 중의 하나로 불리는 물건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을 태워 버린다는 저주의 폭약(爆藥)이 아니던가?
미세한 단 한 점의 가루만으로도 일단 불꽃이 닿은 그 물체를 완전히 태워 버린 다음에야 불꽃을 멈춘다는 저주의 화약!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한 장인(匠人)에 의해 적예인 속으로 투입된 바 있다.
한적의 얼굴에 가공할 공포와 전율이 솟아났다.
그는 적예인과 적견생분화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아악… 아… 안 돼! 그것은… 안 돼."
한적은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다.
하되 그의 목소리는 철벽 같은 그의 처소 안에서만 울릴 뿐, 밖에 있는 수하들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푸른 불꽃 한 점이 한적의 몸에 닿았다.
치이익- 치이익-!
순간 살이 타 들어가는 기괴한 내음과 함께, 한적의 몸이 순식간에 푸른 마화(魔火)에 휩싸였다.
"크아아악……!"
한적은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렸다.
암기의 제왕이라 불리던 육황십제 중의 일 인 암형기황 한적!
그는 죽어서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다.
신사영은 한동안 제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그는 죽어 간 한적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문득 그의 입가에 다시 묘한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생기는 특유의 미소였다.
"훗훗… 암형기황 한적의 죽음이라… 그렇다면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위한 연극을 해 볼까?"
대체 무슨 뜻일까? 돌연 연극이라니?
2
암형기황 한적!
그는 악마의 삼대살병 중 하나라는 적견생분화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약 일각 후였다.
돌연 그의 처소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크아아아악…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살예마후 염희, 그 계집이 본좌를 암습했다. 크아아악……!"
처절하게 흘러 나오는 비명 소리!
그것은 분명 암형기황 한적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실로 다급하게 그의 거처 주위에 울려 퍼졌다.
"어엇? 이것은 황하(皇下)의 음성이 아닌가?"
"황하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 빨리 가 보자."
궁 주위를 지키던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다급히 한적의 거처로 달려갔다.
꽈당-!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호위무사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얼마 전 들어왔던 염희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한적만이 방안에 남아 데굴데굴 뒹굴고 있었다.
그의 가슴은 온통 피투성이로 화해 있었다.
"크아악… 살예무후 염희, 그 계집이 본좌를 암산하고 도망갔다. 염희, 그 계집이 날 죽이려 했단 말이다. 이 육시랄놈들아! 아이고!"
움켜쥔 손 사이로 붉은 선혈이 뭉쿨뭉클 흘러 나왔다.
누가 봐도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다.
흑의인들은 급히 서로를 쳐다봤다.
수하 가운데 한 명이 급히 물었다.
"황하! 이곳에서는 도망갈 길이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밖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거늘……."
그렇다. 그것은 분명한 의문이었다.
원래 한적은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이곳에서 홀로 생활해 온 바 있다.
더욱이 궁 밖에는 몇 발자국마다 온갖 기문진과 호위망이 펼쳐져 있거늘, 어찌 염희가 사라진 것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찰나 한적의 얼굴에 무시무시한 분노가 피어났다.
그는 대뜸 손을 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흑의인을 냅다 후려쳤다.
퍽-!
"으악!"
흑의무사는 가슴에 일 장을 맞고 저만큼 나가떨어져 쭉 뻗고 말았다. 이어 한적은 가슴을 움켜쥐고 팔짝 팔짝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크아아… 이 쳐죽일 놈들! 그럼 본좌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이냐? 본좌는 현재 치명상을 입어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판국이거늘, 감히 네놈들까지 본좌를 놀려?"
한적의 신경질을 본 수하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황… 황하! 그것이 아니오라……."
수하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벌벌 떨었다.
평소 한적의 성격은 너무 까탈스럽고 자주 변해 수하들은 항상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머리통이 터져 죽어 나가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황하! 고정하시옵소서. 속하들은 그런 것이 아니옵고, 다만……."
"크으! 그래도 이 쳐죽일 놈들이 입을 놀려?"
"아… 아닙니다. 입을 다물겠습니다."
무사들은 급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한적의 분노가 약간 누그러진 듯했다.
그는 급히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어… 어서 더욱 철저한 경계망을 펼치고, 본좌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내 막역지우인 살인패왕(殺人覇王)에게 알려라. 그리고 어서 찾아와 달라고……."
누구의 명이라서 거역할 것인가?
"존명!"
"지금 즉시 황하의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흑의인들은 급급히 물러나갔다.
한적은 수하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며 힘겹게 정좌하고 앉았다.
이어 가슴에 가슴에 나 있는 상처를 지혈(止血)해 가기 시작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분명 한적은 얼마 전 신사영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살아 있는 한적은 누구이며, 어찌 수하들에게 호통을 내지르고 있단 말인가?
문득 수하들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한적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번졌다.
"후후……!"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는 미소이다.
무언가 음모(陰謀)를 간직한 듯한 미소랄까? 그렇다면 지금의 한적은 바로……?
3권에서 계속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