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검무정 제3권 차례
지은이: 이광주
- 차 례 -
第一章 거인(巨人) 대(對) 거인(巨人)
第二章 야망(野望)은 사랑에 우선하는가?
第三章 거인(巨人)에게 최후를
第四章 폭풍의 핵(核)
第五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에서
第六章 황금무공(黃金武功)
第七章 영웅(英雄) 대(對) 영웅(英雄)의 만남
第八章 죽음의 백골산(白骨山)
第九章 지옥의 향기(香氣), 죽음의 향기(香氣)
第十章 또 한 번의 파멸(破滅)을 위하여
大終章 무사(武士)는 검(劍)으로 말한다
第一章 거인(巨人) 대(對) 거인(巨人)
1
한 사나이!
몸집이 흡사 철탑(鐵塔)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체격의 사내!
그 사내가 지금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숨가쁘게 치달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얼마나 육중하고 거대한 몸인가?
사내가 치달려갈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헉헉… 내 가장 절친한 막역지우가 지금 위급에 빠져 있다고… 빨리 가서 도와 주어야 한다."
대략 오십 정도나 되었을까? 사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히 십(十) 척(尺)에 이를 듯한 엄청난 체구에다, 태산만큼 펑퍼짐한 우람한 몸매의 소유자이다.
사내는 상체를 벗어제치고 있는 바, 드러난 상반신은 온통 크고 작은 상흔(傷痕)으로 무수히 뒤덮여 있다.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귀에다 하마 입, 솥뚜껑의 세 배 이상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크기의 손(手)…….
도대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별종 인간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철탑 같은 전신에 빽빽이 박혀 있는 수많은 종류의 병장기(兵仗器)들이었다.
가히 수백 종류는 될까? 어떤 것은 거인의 피부를 꿰뚫고 박혀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일신에 매달려 있는 것도 있다.
검(劍), 극(戟), 창(槍), 도(刀), 륜(輪), 환(環)…….
마치 움직이는 병기 창고를 보는 것이랄까?
아아, 천하에서 이런 해괴한 모습의 소유자는 오직 한 명뿐이다.
살인패왕(殺人覇王) 을목산(乙木山)!
흔히 세인들에게 움직이는 병기(兵器) 창고(倉庫)라 일컬어지는 사나이!
그는 고황전(高皇殿)의 육황십제 가운데 일(一) 인(人)이다.
그는 수백 종류가 넘는 온갖 병장기를 몸에 박거나 달고 다니며 싸움을 할 때마다 마음 내키는 병기를 선택해 상대를 죽인다던가?
하여간 그는 천하에서 가장 살인(殺人)을 잘하는 사나이로 불리우고 있다.
육황십제 중에서 누구든 그 강(强)함만을 꼽으라면 의당 살인패왕 을목산을 지목할 것이다. 하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短點)이 하나 있다 하였으니… 그것은 사상 최강의 철두(鐵頭)라는 것이다.
너무도 무식한 그는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아직 고황전 내에서 가장 최하급의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무식한 자답게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다반사로 알고 살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누군가 조금만 추켜주기만 한다면 그는 간이라도 빼줄 위인이었다.
하기에 그는 난세의 고황전에서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 요주의 경계 대상으로 손꼽혀 온 인물이기도 하다.
살인패왕 을목산!
그런 그가 지금 어둠 속을 치달리고 있다.
그가 달려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조금 전에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암형기황(暗型器皇) 한적(韓積)에게서 전갈이 왔기 때문이다.
- 패왕이시여! 큰일났습니다. 지금 기황께서 살예마후에 의해 치명적인 암산(暗算)을 당하여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입니다.
을목산이 어찌 그 소리를 듣고 가만 있으랴?
미련하기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위인이되, 그래도 그는 의리가 있는 자였다.
한적은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수십 년 전이던가? 그가 십제 중의 일좌에 오르기 직전, 그는 한적으로부터 우연하게 목숨을 구원받은 적이 있다.
수많은 살수들이 의문의 기습을 가해 그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 홀연 나타난 한적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한적이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계산된 행동에 불과했을 뿐이다. 한적은 을목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몰래 살수들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을목산은 그만 한적에게 감동하고 말았다.
그 후로 그는 한적을 평생 친구로 삼기로 맹세했다. 그런 막역지우가 죽어 가고 있다니…….
을목산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노형(老兄)!"
콰다당-!
거대한 철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한 사내가 실내로 달려들었다.
막 한적의 거처로 들어서던 을목산의 눈이 석 자쯤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헉! 저… 저럴 수가……?"
눈길이 머무는 실내.
한 인물이 피투성이 속에 비참한 모습으로 엎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다름 아닌 한적이었다.
을목산의 눈깔이 홱 뒤집어졌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가공한 살기가 선풍치듯 뿜어지기 시작했다.
"크으으… 기황!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감히 누가 내 가장 막역한 기황을 죽였단 말이오?"
그렇다. 피를 흘리며 나자빠진 한적은 이미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을목산의 눈에서 뇌전 같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크으으… 살예무후(殺藝武后) 염희(艶嬉)! 감히 그 계집이 기황을 암살하다니… 네 이년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말리라."
을목산은 쓰러진 한적을 끌어안고 뒤흔들었다.
"크으… 노형! 눈 좀 떠 보시오. 우제가 왔소. 어찌 천하의 노형이 반항도 못해 보고 그 음탕한 개잡년한테 죽었단 말이오?"
한적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리저리 만져 보고 살펴봐도 영락없는 시신(屍身)이었다.
"크으으… 노형, 노형이 이리 맥없이 죽다니… 그럼 이 아우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간단 말이오? 크어어엉……!"
을목산은 한적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주먹만한 눈물이 그의 빰 위로 굴러떨어졌다.
순간이었다. 한적의 눈이 소리없이 뜨여지며 그곳에서 번개 같은 한 줄기 기광(奇光)이 솟아오르지 않는가?
그러나 분노에 떨고 있는 을목산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슈욱-!
갑자기 을목산의 품에 안긴 한적의 손이 눈부신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지 않은가?
꽈앙-!
이어 철벽이 깨지는 듯한 엄청난 폭음이 을목산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케켁……!"
찰나 을목산의 몸이 일 장 이상 허공을 날아가 떨어졌다.
동시에 엎어졌던 한적이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나가떨어진 을목산의 모습을 차가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스르……!
우드드득-!
이어 한적의 전신에서 기이한 음향이 들려 나오며 그의 전신이 헌칠하기 그지없는 미청년으로 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 모습은 바로 신사영(神死影)이었다.
그의 손에는 죽음의 손 적예인(赤藝印)이 끼워져 있었다.
또한 입가에는 한 줌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특유의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그는 한적으로 변장하고 있다 방심한 을목산을 기습한 것이다. 실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완벽하고 절묘한 기습이었다.
"훗훗… 고황전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내 손에 차례차례 제거될 것이다."
그의 말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였다.
"끄으응… 어느 육시랄놈이냐? 어느 놈이 감히 본좌를……?"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쓰러졌던 을목산의 몸이 육중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그가 철탑처럼 일어서고 있지 않은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을목산을 기습한 것은 천하의 그 무엇이라도 파괴한다는 악마의 손 적예인이 아니던가?
한데 그 적예인에 정통으로 격중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어나다니?
신사영(神死影)의 눈에 경악이 스쳐 갔다.
'저럴 수가? 전력을 다한 내 일 장을 가슴에 맞고도 멀쩡히 일어나다니… 저… 저자는 가히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 일어나는 을목산의 신체는 가히 인간의 몸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하제일의 거력과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살인패왕!
그의 전신은 천하의 적예인마저 부수지 못할 무적의 신체였던 것이다.
'더욱이 방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늘…….'
신사영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껏 그는 이토록 고강한 자를 만나 본 바가 없다.
'살인패왕이 육황십제 중 가장 강한 자라고 말들 하더니… 그 말이 정녕 허언이 아니었구나.'
그때 을목산이 신사영을 향해 서서히 돌아섰다.
찰나 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무시무시한 살인강기(殺人 氣).
그 압력만으로 신사영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굉장하다!'
이때 을목산이 신사영을 향해 엄청난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이 쥐방울만한 아해 놈아! 네놈이 감히 이 본좌를 암산했느냐?"
목소리! 그것은 단숨에 쇠라도 갈라 버릴 듯한 엄청난 살음(殺音)이었다.
신사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크흐흐… 그러고 보니 네놈이 노형을 암살했구나. 맞느냐?"
"맞소."
신사영은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다분히 감탄을 띠고 있다.
'세상의 모두가 살인패왕을 바보이자 멍청이라고 말들 하되, 내가 본 저자는 결코 멍청한 자가 아니다. 단 한 번으로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꿰뚫어 버리지 않는가?'
쿵- 쿵- 쿵-!
을목산이 지축을 울리며 신사영에게 다가섰다.
순간 다가올 때마다 가공할 정도로 가중되는 압력과 살기.
"크흐흐… 애송이, 네놈의 이름이 무엇인가? 본좌는 결코 무명소졸은 죽이지 않는다."
신사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신사영!"
순간 을목산의 얼굴에 격한 떨림이 스쳐 갔다. 그러나 그 떨림은 나타날 때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이어 그의 전신에서 더욱 가공할 살기와 분노가 선풍치듯 휘몰아쳤다.
"크흐흐… 신사영! 이제 보니 위대한 인간신화라고 불리는 그 신사영께서 바로 고황전에 들어왔단 말인가?"
을목산은 신사영의 이름을 듣고도 거의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말할 수 없이 냉정한 인물이라는 증거였다.
"크흐… 좋아, 오래 전부터 그대의 이름을 익히 들었다. 언젠가는 한 번 필히 만나 보고 싶은 상대였지."
"영광이오."
"뽑아라. 이 살인패왕 을목산이 그대에게 노형의 목숨을 빼앗은 대가를 받겠다."
살인패왕 을목산!
그는 바보 같았으되 능히 남아의 기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산사영은 그런 을목산에게 거듭 감탄했다.
"살인패왕! 당신은 지조 없이 이익만을 쫓아 정도에 붙었다 마도에 붙었다 하는 자들 중 가장 지조가 있는 인물이오. 그런 당신이 어떻게 정도의 힘을 빌어 고황전을 어지럽히는지… 정녕 의심스럽구려."
"크흐흐… 애송이! 네놈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무릇 남아에게는 각기 꿈이 있는 법."
신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되 그 꿈이 올바르지 못할 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개소리! 그럼 네가 그 대가를 지불할 놈이란 말이냐? 설마 네놈이 세상을 단죄할 신이라도 된다는 뜻은 아닐 테고……."
"무사는 검으로 말하는 법!"
순간이다.
번쩍-!
신사영의 신형은 광선(光線)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적예인을 낀 두 손은 을목산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찰나간 을목산의 가슴에 섬광 같은 공격을 수차례 작렬시켰다.
꽝- 바바바박-!
눈부신 불꽃이 을목산의 가슴에서 화려하게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을목산은 푸르스름한 마화(魔火)에 휩싸였다.
바로 그 불꽃은 세상의 무엇이라도 불태운다는 악마의 불꽃, 적견생분화였다.
파스스스-!
뿐만이 아니었다.
보라! 불타고 있는 가운데 을목산은 흡사 시커먼 즙(汁) 같은 독수(毒水)로 화해 흘러내렸다.
그것은 순순광휴(純純光休)라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毒)의 결정체가 만들어 낸 걸작이었다.
을목산은 미처 무공을 펼쳐 보기도 전에 신사영에게 당해 버린 것이다.
을목산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신사영! 지… 진정 빠르다. 하되, 나는 너를 나보다 더 강한 강자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크으으… 기습이 아니었다면, 진정 실력을 걸고 싸웠다면… 후회 없이 싸워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마지막 한 마디였다.
파스스스-!
을목산의 몸은 곧이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그러 들었다.
신사영은 그제서야 겨우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으음, 악마의 삼대살병을 동시에 사용해서야 겨우 그를 제압했다.'
찰나 어두운 그늘이 신사영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는 다분히 죄책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으음, 시간이 없었기에 기습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정녕 무공만이라면… 좋은 대결을 할 호적수였거늘……."
신사영은 죽어 간 을목산을 향해 잠깐 묵념을 했다.
비록 죽어 가긴 했지만 어쩐지 살인패왕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하룻밤에 사(四) 인(人)이라… 육황십제 중 네 명이 오늘 밤내 손에 죽어 갔다. 아마도… 내일쯤이면 고황전이 발칵 뒤집히겠지. 후후훗……!'
그러하다. 오늘 밤 신사영에 의해 육황십제 중 네 명이 죽어 갔다. 내일 아침이면 고황전 전체가 발칵 뒤집혀지리라.
신사영은 서서히 몸을 돌렸다.
'후훗… 거의 세 시진이 다 됐구나. 이령분체회공으로 분리시켜 놓은 나의 또 다른 신체는 잘 있는지……?'
스슷-!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3
꽝-!
엄청난 충격이 사도의 성전 고황전을 후려갈겼다.
하룻밤 사이 사(四) 인(人)이 죽었다.
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강호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충격의 강도는 찻잔 속의 태풍일 수도 있고, 아예 폭풍노도일 수도 있다.
고황전에서 피살당한 사 인의 인물들.
아아, 그자들의 이름은 실로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육황십제 중의 네 명이 아니던가?
파인도월제(破刃刀月帝) 음수군(陰秀君),
살예무후(殺藝武后) 염희(艶嬉),
암형기황(暗型器皇) 한적(韓積),
살인패왕(殺人覇王) 을목산(乙木山).
사도 역사상 이런 엄청난 변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천 년 역사의 성지 고황전!
그 고황전에서 불어나는 피의 폭풍!
이제 나머지 육황십제들이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체 누가 이들 사 인을 하룻밤에 추살했는가?
이들 사 인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과연 강호상에 존재했던가? 그리고 그 피바람이 자신들에게는 몰아닥치지 않을 것인가?
더불어 고황전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난 풍운 속으로 휘말려 들고 있었으니…….
4
신사영!
그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 무렵이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신사영은 머리맡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여인을 보았다.
연능미였다.
백양추호(白陽秋胡) 연능미(燕能美)! 곱게 단장한 그녀는 다른 때보다도 더욱 요염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
그녀의 눈빛은 가을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신사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눈빛을 지닌 여인이 대검태제(大劍太帝)의 첩실이며, 또한 보이지 않는 자의 첩자라니…….'
"이제 일어나셨군요. 옷을 입혀 드리겠습니다, 상공!"
연능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신사영은 잠자코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
그녀가 옷을 입힐 때 문득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감미로운 체향(體香)이 후각을 스쳤다. 찰나, 불끈 성욕이 일어난다.
순간 신사영의 손이 빠르게 연능미의 치마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의 손은 연금술사의 손처럼 능숙하게 여체의 가장 깊숙한 곳을 침범했다. 축축하고 매끄러운 샘물이 손가락 끝에 느껴진다. 그곳에 가장 은밀한 늪이 숨어 있다.
"어맛!"
느닷없는 기습을 당한 연능미가 얼굴이 새빨개지며 몸을 빼고자 했다. 그러나 신사영은 그녀의 둔부를 끌어당기며 더욱 집요하게 손을 놀렸다.
"흐흐… 능미! 오늘따라 너는 더욱 요염해 보이는구나."
"놓… 놓아 주세요."
연능미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어딘지 모르게 다른 때와는 약간 다른 행동이다. 다른 때라면 모르는 체 품속으로 안겨 들었을 여인이다.
"젠장! 벌써 내가 싫어진 것은 아닐 테고……."
"그… 그게 아니라… 손님께서……."
연능미가 숨이 할딱거리는 소리를 냈을 때, 문득 신사영은 뒤를 돌아보다 흠칫했다. 그의 눈에서 이채가 솟아났다.
눈길이 머무는 저쪽, 실내의 문 옆이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 한 인물이 목석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신사영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한 명의 방문객(訪問客)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사영은 그제서야 손을 빼며 아는 체했다.
"어? 밥맛 없고 재수없는 당신이 무엇 때문에 왔소?"
"저… 저분께서는 동이 트기도 전부터 상공께서 깨어나시기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옷차림을 추스리며 옆에서 연능미가 한 마디 거들었다.
이때 문 옆에 서 있던 자가 신사영에게 한 통의 서찰을 내밀었다.
"태야의 서찰이오."
무심하고도 짧은 한 마디를 던지는 자!
마치 한 마리 독 오른 독사를 방불케 하는 냉혹한 인물.
다름 아닌 야수낭도(野獸狼刀) 순우곤(淳于坤)이었다.
신사영은 다분히 경박하게 웃었다.
"하하… 다시는 재수없는 당신을 보지 않을 줄 알았더니… 그런데 그 서찰은 무슨 내용이오?"
"나는 오직 그분의 명을 따를 뿐이오."
순우곤은 여전히 무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침묵을 사랑하는 위인이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극소수의 말 이외에는 일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강하고 냉혹하게 보이는 인물!
신사영은 천천히 서찰을 펼쳐 갔다.
서찰 위에는 짧았으나 강렬한 획(劃)의 글씨가 휘갈겨져 있다.
<깨어나는 대로 은하검궁의 태대전(太大殿)으로 오시도록!
대검태제 사무기 서(書).>
명령처럼, 혹은 권유처럼 느껴지는 짤막한 서찰!
그러나 서찰에는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담기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찰나 신사영의 눈 속에 한 가닥 기광이 스쳐 갔다.
'훗훗… 대검태제가 드디어 나를 부른다는 건가? 이제 그 늙은 구렁이와의 싸움이 시작된단 말이지?'
신사영의 입가에 메마른 미소가 피어난다.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왜 당금 육황십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 불리는지… 직접 확인하리라.'
신사영의 눈빛은 차갑게 굳어졌다. 이어 그는 순우곤을 향해 느릿하게 말했다.
"순우곤, 잠시 기다리게. 목욕을 하고 나올 테니."
실로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손님이라지만 순우곤은 대검태제가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의 고수가 아니던가?
신사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실(浴室)로 걸어 들어갔다.
"능미, 몸을 좀 씻겨 주겠느냐?"
"예!"
연능미는 조심스럽게 순우곤의 눈치를 살피며 욕실로 들어갔다.
"……."
하되 순우곤은 일체 반응이 없다. 그는 그저 망부석처럼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생명을 잃은 하나의 목석이랄까?
그러나 순간, 순우곤의 눈 속으로 한 가닥 섬뜩한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신사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과연 순우곤의 눈가를 스쳐 가는 그 섬뜩한 미소의 의미는?
그리고 신사영과 대검태제와의 관계는 어찌 될 것인가?
5
한편 그 시각이다.
풍운의 폭풍이 고황전에서 불고 있었듯이, 지금까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거대한 운명의 비밀(秘密)이 고황전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중원의 어느 곳에서 밝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실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명의 서곡(序曲)이었다.
휘이이잉- 싸아아-!
그곳은 중원 북방에 위치한 어느 설산(雪山)이었다.
살을 에일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 가는 어느 산정(山頂), 그 아래의 계곡(溪谷)이다.
험난한 절곡들을 헤치면서 치달리는 한 인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치달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마구 앞으로 돌진하는 하나의 자세에 불과했다.
그 인물은 가히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처절한 상처를 입고 있었기에!
흡사 금방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처럼 온통 핏물에 뒤덮인 괴인(怪人)이다.
그의 입에서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절규가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다.
"오오, 하늘이시여! 어찌 이런 잔인한 운명(運命)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분이… 과거 산중의 주막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그분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 하던 잠송예원(潛松藝院)의 후예(後裔)였다니요?"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노인이 절규할 때마다 한 주먹씩 피가 뿜어져 나와 하얀 설원 위에 뿌려진다.
눈밭 위에 피어난 혈화(血花)…….
너무도 붉고, 선명하며, 아름답다.
풀썩-!
노인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려간다.
일견 누가 보아도 더 이상 걷지 못할 지독한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온통 헤집어지고 꿰뚫어진 상흔(傷痕)들…….
그것은 거대한 물고기의 아가미와 같았다.
이때 쓰러진 괴인은 허공을 올려다보며 가래가 끓는 절규를 토해 냈다.
"오오, 하늘이시여! 제발… 제발 이 유풍도향(流風盜香) 도자기(都慈氣)의 목숨을… 아니, 도기의 목숨을 하루만 더 연장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소주인(少主人)을 뵙고… 그 엄청난 음모(陰謀)를 소주인에게 알리고 죽을 수 있도록… 마지막 힘을 주시오."
한데, 들었는가?
유풍도향 도자기!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대도(大盜)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대도명(大盜名) 속에 감추어진 또 하나의 신분은 세상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으니…….
그것은 과거 멸문한 강호제일의 성가(聖家) 잠송예원, 그 잠송예원의 이대귀속가(二大歸屬家) 중의 하나인 백장림(白薔林)의 수뇌 살수가 바로 그인 것이다.
언제인가? 그는 자신의 손녀딸과 함께 신사영을 대하령의 산중 주막에서 만난 주방장 노인이기도 하다.
한데 그런 그가 어찌하여 저토록 처절한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설원 사이를 미친 듯 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 순간, 유풍도향 도자기의 입에서 나온 절규는 실로 엄청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으니…….
"오오,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 신사영! 그분이… 바로 그분이 멸망한 우리의 하늘 잠송예원의 마지막 후예였다니… 그분을 만나고도 우리의 소주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다니… 크으으……!"
실로 엄청난 비밀이다.
- 신사영은 잠송예원의 마지막 남은 후예(後裔)였다!
그랬는가?
지금 부르짖고 있는 유풍도향 도자기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신사영이 지금까지 찾으려 하던 자신의 뿌리(脈)가 이십 년 전에 멸망해 버린 대륙의 성가 잠송예원이었단 말인가?
실로 그것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명이었다.
"크으… 일어서야… 한다. 고황전에 가서… 이 사실을 소주인에게 알려야 한다. 음모… 그분이 고황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모두 음모(陰謀)라는 것을 알려… 화를 피하게 해야 한다. 음모… 엄청난 음모……."
음모!
그것이 무엇이길래 천하제일의 대도를 저리 격동케 하는 것일까?
"그분이 위험하다. 고황전으로 가서… 이 무서운 음모를 그분에게 알려야 한다. 헉!"
하되 아무리 재촉해도 그는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그의 몸은 눈밭에 쓰러졌고, 급기야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두 다리로 버틸 힘이 없었던 까닭이다.
바로 그때였다. 흐릿해져 가는 도자기의 피에 젖은 눈길 속으로.
스으으……!
저만큼 앞에 하나의 인물이 스며 나듯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얀 설원 위에서 검은 점(點)이 박혀 있는 듯하다.
도자기의 이 장여 전면, 한 명의 흑의청년이 나타나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탄력적인 체구에다, 가슴에 안은 한 자루 흑검(黑劍)이 단숨에 그를 상징지어 준다.
낭제왕(狼帝王) 무영(無影)!
그렇다. 설원 위에 나타나 도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자는 낭인의 하늘이라 일컬어지는 낭제왕 무영이 아닌가?
도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는 무영의 눈길이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유풍도향 도자기! 아니, 백장림의 수석 살수이며 잠송예원의 피 어린 원한을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자(者)! 주공이 그의 행적을 놓치지 말라고 명했던 바로 그자!'
무영의 얼굴에는 다분히 자책의 기색이 떠올랐다.
'주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 으음, 내가 나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저자가 저 지경에 이르다니…….'
그것도 잠시, 무영은 급히 도자기의 앞으로 다가섰다.
"유풍도향!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강렬했다.
의식을 잃어 가는 도자기의 귓전으로 내공 실린 무영의 음성이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도자기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무영을 바라보았다.
"으으, 다… 당신은……?"
"내 이름은 낭제왕 무영!"
"나… 낭제왕? 그… 그렇다면 당신이 낭인의 하늘이라는……."
순간, 놀란 기색이 유풍도향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급속도로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짜내듯 혼신의 힘으로 무영에게 말을 이어 갔다.
"으으, 한 가지 부탁을… 이 늙은이의 한 가지 부탁을 들어 주시오."
"부탁이라……."
"그것은… 잠송예원의 후예가 바로 신사영, 그분이라는 것……."
"신사영이 잠송예원의 후예?"
무영의 몸이 펄쩍 튀어오를 뻔했다.
신사영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그의 뿌리, 그것이 지금 유풍도향의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 유풍도향! 좀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천하가 무너져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던 무영이다.
설혹 자신의 목이 베어진다 해도 코웃음을 휘날릴 냉혹한 승부사가 무섭게 격동하고 있다.
지금 그가 듣고 있는 이야기는 그의 목숨보다 소중한 비밀이다.
유풍도향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울컥 게워졌다. 그 피 속에는 토막토막 갈라진 내장 덩어리들이 섞이어 있다.
"그분은 잠송의 후예… 과거 사액지에서 파폐군성(破幣群城)의 성주에게 선택되어 그곳으로 들어간 후 소식이 끊긴 나의 소주인……."
"……."
"큭… 그… 그러나 지금 그분은 무서운 음모… 속에 빠져 있소. 그것은 고황전 그 자체가 그분을 말살시키기 위한 무서운 죽음의 덫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은 동방검왕가(東方劍王家)가… 동방가의 사전에 계획된 철저한 음모……."
"그분이 고황전에 들어간 것이 음모라고?"
"그… 그렇소.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뿌리를 없애기 위해… 우리를 추적하던 동방검왕가의 무리들에게 이렇게 당했소."
무영의 눈 속으로 경악이 스쳐 가기 시작했다.
기실 무영은 신사영이 고황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극구 만류하고자 한 바 있다. 그러나 신사영의 성격을 너무 잘 알기에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
설혹 죽음의 음모가 펼쳐져 있다 해도 신사영은 기꺼이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유풍도향 도자기! 그는 죽어 가면서 마지막 엄청난 비밀을 세상에 토해 내고 있었다.
"나… 낭제왕! 나의 부탁을… 마지막 부탁을 들어 주시오."
도자기는 무영이 신사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하기에 마지막 구원의 끈으로 여기고 죽음으로 사정하는 것이다.
"어서 말해 보시오. 모든 것을 들어 줄 테니까!"
전후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는 무영은 급히 도자기를 재촉했다.
도자기는 피 묻은 서찰(書札) 하나를 꺼내 무영에게 내밀었다.
무영은 급히 그것을 받아 쥐었다.
"음모… 빨리 그분은 고황전에서 빠져 나와야 하오. 전승육군(全勝六君)도, 사도(死刀) 구음수(具陰修)도, 휘정칠성공(輝正七聖公)도… 모두 음모외다, 음모! 그분을 고황전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죽음의 음모! 시각이 급하오. 빨리 그분에게 이런 사실을… 헉!"
유풍도향의 고개가 꺾어졌다.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더 이상 음성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찰나, 그는 마지막 생명의 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유풍도향, 좀더 자세히……."
무영은 급히 도자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눈을 부릅뜬 도자기에게서는 어떤 대답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이다. 홀연 무영의 귓전에 나직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줄기 음성이 들려 온 것은…….
"아미타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 없군. 낭제왕, 그대도 죽어 주는 수밖에……."
들려 오는 불호성(佛號聲)!
무영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언제 나타났음인가?
보라! 그의 주위를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완벽한 인(人)의 장막 속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문득 무영의 눈이 커졌다.
불호성이 들려 오는 곳, 그곳에는 십일(十一) 인(人)이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헛! 그… 그대들은 바로 무림 최고의 기승이라는 독수성불(毒手聖佛)과 구파일방(九波一 )의 장문인들……."
아아,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독수성불,
구파일방의 장문인.
한 마디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 최고의 기인들이자 강자들이 아니던가?
곧 정도무림의 주축이며 수천 년 무림사의 맥을 이어 온 무인의 뿌리가 그들이었다.
"훗훗… 우리도 있네, 낭제왕 무영."
또다시 무영의 반대편에서 들려 오는 음성.
좌측의 눈발을 헤치며 다가오고 있는 일곱 명의 인물들이 있다.
일신에서 하나같이 달관의 경륜을 풍겨 내는 자들, 감히 나이조차 추측할 수 없게 하는 노인들이었다.
무영의 눈이 또 커졌다.
"휘정칠성공……."
그렇다. 무영의 좌측에서 다가들고 있는 노인들은 바로 대륙 최고의 성자들이라 일컬어지는 휘정칠성공이었다.
"낭제왕! 여기 또 있네."
다시 들려 오는 음성.
무영의 고개가 돌려진 곳에 다시 여덟 명의 인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크음… 동방검왕가의 팔대검왕(八大劍王)……."
동방검왕가의 팔대검왕!
정도의 하늘 동방검왕가를 떠받치고 있는 여덟 개의 기둥.
그들의 강함이야말로 재삼 거론의 여지조차 없다.
팔대검왕!
그들에게는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가공할 예기(銳氣)가 폭풍처럼 뿜어 나고 있었다.
맨 선두, 오래 전부터 백장림의 살수들을 뒤쫓던 척근홍미(刺筋紅美) 신도협추(神屠俠錐)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무영은 모든 전후 사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음모… 철저한 음모… 결국 그런 말이었을 줄이야? 크하핫……!"
순간 무영의 입에서 커다란 광소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광소성은 주위의 눈발을 선풍치듯 흩날리게 했다.
그는 처절한 분노의 눈빛으로 어두워져 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오오, 신사영! 당신이 그토록 찾고 싶어하던 당신의 뿌리를 찾았소. 하지만 당신의 적(敵)은 강호대륙이오. 비운의 천재 신사영이여! 당신의 적은 바로 거대한 강호 전체란 말이외다. 푸하하핫……!"
미친 듯한 앙천광소가 한동안 이어졌다.
내공 실린 그의 웃음에 계곡 전체가 들썩거렸다.
한동안 광소성을 터뜨리던 무영, 갑자기 그의 눈에서 엄청난 살기가 무섭게 폭사된다.
동시에 천하라도 짓누를 산악 같은 위세가 무시무시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으니…….
아아, 그것이야말로 바로 낭인(浪人)의 하늘이라 일컬어지는 낭제왕 무영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오너라, 위선자들! 스스로 무림의 모든 것이라고 자처하는 정도의 위선자들! 너희들을 이 무영이 상대해 주마. 크하하하……!"
운명(運命)!
비참한 운명은 또 이렇게 하여 시작이 되고…….
한 무인을 파멸시키기 위한 죽음의 음모는 마지막을 향해 치달려가게 되는 것이니…….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