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시내에서 미곡상을 하시는 백부님 댁에서 처음으로 전축과 음반을 구경했다. 그날 사촌 형이 틀어준 음반에서 처음 들은 노래가 바로 <네 잎 클로버>였다. 나는 바늘을 물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고 그 노래가 신기하여 몇 번을 들었던지 그 자리에서 가사를 외워 버렸던 것이다,
네 잎 클로버 찾으려고/꽃 수풀 잔디에서
해 가는 줄 몰랐네/당신에게 드리고픈
네 잎 클로버 사랑의 선물
희망의 푸른 꿈/ 당신의 행운을
당신의 충성을/바치려고 하는 맘
네 잎 클로버 찾으려고
헤매는 마음 네 잎 클로버
먼 훗날에 알고 보니, 당시 아나운서였던 이규항이라는 분이 1968년에 발표한 곡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장편소설은 《소년 삼국지》였다. 도원결의와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지략에 빠져들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철부지 소년으로 되돌아간 듯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역시 중 1학년 때 처음으로 《흑의괴인》이라는 무협소설을 읽었는데 이제 와 아무리 생각해도 줄거리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 무렵, 근동에 가끔 천막극장이 들어와 영화를 상영했다. 친구들과 함께 처음 본 영화 제목이 《용문의 여검》이었다. 어여쁜 낭자가 검객으로 등장하여 활약하는 영화였다는 희미한 기억만이 흘러간 세월 속에 초라하다. 청년 시절에는 무협지에 탐닉하여 경공술이며 장풍을 궁리하느라 날 새는 줄 몰랐다. ‘천길 절벽 아래로 떨어진 백의서생의 운명은 과연?’하며 한 권이 끝나는데 무슨 재주로 멈출 수 있었겠는가.
마당극 《심청전》은 내가 본 최초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동네 ‘가운뎃집’ 마당에 무대가 마련되고 화려한 한복차림의 여인들이 등장하여 한동안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더니 이윽고 《심청전》이 시작되었다. 어른이 되어 그날을 되짚어보니 한복차림의 여인들은 국악인이었고 노래는 민요였지 싶다. 당시,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물 쏟아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시골 마당의 허술한 무대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그럴싸하게 연출할 수는 없었을 터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방과 후 특별활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체능을 싫어했기에 문예반에 들어갔다. 문예반을 지도해주신 정국래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동시를 배웠다. 선생님은 문예반의 작품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문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다. 회색빛이 감도는 32절 갱지에 등사를 해서 제작한 얄팍한 것이었지만 내 이름이 새겨진 동시에 그림이 곁들여진 문집은 어린 내 마음속에 뿌듯한 긍지를 심어 주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에 만화광이 되었다. 박기당의 《요술붓》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근철의 《조국을 등진 소년》은 가장 인기 있는 만화였다. 아마 10권이 넘었던 것 같다. 케리라는 독일군 청년이 연합군의 스파이로 활약하는 이야기였는데 친구들이 하도 성화를 대는 바람에 책이 찢어질 지경이 되곤 했다. 김종래의 《유리시즈》는 흥미진진했지만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제목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계낭자》, 《모래알전우》, 신동우 화백의 《홍길동》은 아직도 뇌리에 뚜렷하다. 캔자스의 시골 마을 소녀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면서 전개되는 《오즈의 마법사》는 소년의 상상에 꿈을 선사해 주었다.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되던 《암굴왕》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암굴왕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백작》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이 선물해준 《괴도 루팡》은 내가 읽은 최초의 추리소설이 되었다. 요즘엔 《아르센 뤼팽》이라는 이름으로 읽히는 모양이다. 《그림동화 선집》을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이라고 굳게 믿었던 순진한 시절이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고교 시절은 세계문학에 매료되어 여러 작품을 닥치는 대로 ‘섭렵’한 시기였다. 톨스토이와 헤밍웨이, 헤세와 괴테, 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돌이켜보면 겉멋에 덜렁대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도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 고전문학 작품에 대한 지식은 젬병에 가깝다. 와룡생의 무협지들은 통속적이지만 연애소설을 겸하고 있어 잠을 빼앗기 일쑤였다. 나는 신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동네 무협지 대여점에 들렀다. 무협지는 마약과 같았다.
시골에 묻혀 살던 내 눈을 띄워준 매체는 <독서신문>이었다. 매주 찾아오는 두툼한 타블로이드판에는 도서, 교양, 세계문화와 문물 등 다양한 교양 정보가 원색화보와 함께 실려있었다. 독서신문은 10여 년 동안 나의 소중한 벗이었다. 그러다가 주간<시사저널>을 만났다. 시사저널은 진보적 저널리즘을 고수하여 예리한 현실비판의 붓을 휘둘러 내 속을 시원케 해주었다. 나는 창간 때부터 10년의 지조를 지킨 독자였으나 점점 도도해지는 듯한 잡지사의 분위기가 느껴져 연을 끊었다.
2007년 초입에 만난 <한국수필>이 나를 수필과의 인연으로 이끌었다. 그 무렵 나는 칼럼이라고 할 수 있는 짤막한 글을 가끔 직장의 홈페이지 등에 게재했지만 그것은 문학 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두툼한 수필지를 들춰가며 이끌리는 눈에 띄는 몇몇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동안 격월간으로 발행되던 <한국수필>은 2007년 3월호부터 월간으로 탈바꿈했는데 나는 월간 전환 최초의 신인상을 받았다. 그때 함께 등단한 박기준 작가, 전성희 작가, 황병성 작가는 일취월장하여 다양하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하여 나는 등단 15년 만에야 졸저 《수필도 아닌 것이》를 냈으니 마땅히 얼굴 둘 데가 없다.
칼바람을 뚫고 실한 놈으로 배추 한 포기 뽑아 왔다. 곰삭은 갈치속젓도 있으니 연두빛이 감도는 은백의 배춧잎에 갓 지은 쌀밥을 한 숟갈 놓고 갈치속젓을 얹어 풍성한 오찬을 만끽해야겠다. 이 겨울 양념 된장 푹 찍은 덕자 병어회도 생각나고 들깻가루에 무친 토란대 나물도 입맛을 돋우는 걸 보니 새해가 다시금 나이를 재촉한들 급할 까닭이 없겠다.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아, 해 가는 줄 모르고 헤매는 것도 꿈과 보람이 있겠지만 이제부턴 세 잎 클로버를 어루만지며 일상의 소탈한 행복을 가꿀 일이다. 그러나 이 밤, 나는 매서운 추위에 떨고 있을 들녘의 달맞이꽃이며 민들레, 지칭개 생각에 자꾸 몸을 뒤척이는 것이다.
(2022. 12. 24.)
첫댓글 한해도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군요.
소년기에는 만화에 푹뻐져 사셨군요.
가설극정에서 공연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도 가설극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소소한 일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맛을 돋구는 쌈장을 저도 한번 먹어보아야 겠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금년에 역작을 펴냈으니 이선생님은
보람된 한해를 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해도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군요.
소년기에는 만화에 푹뻐져 사셨군요.
가설극정에서 공연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도 가설극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소소한 일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맛을 돋구는 쌈장을 저도 한번 먹어보아야 겠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금년에 역작을 펴냈으니 이선생님은
보람된 한해를 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해도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군요.
소년기에는 만화에 푹뻐져 사셨군요.
가설극정에서 공연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도 가설극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소소한 일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맛을 돋구는 쌈장을 저도 한번 먹어보아야 겠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금년에 역작을 펴냈으니 이선생님은
보람된 한해를 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푸른솔문학 겨울호에서 선생님의 옥고를 다시 음미했습니다 임인년 한 해도 어느덧 대단원을 맞고 있네요 새해에도 건강하신 가운데 뜻하시는 일마다 이루어지고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선생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기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선생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기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훈훈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멋지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