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終章 무사(武士)는 검(劍)으로 말한다
1
- 휘정칠성공의 죽음!
- 전승육군의 몰락!
-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 그리고…….
난세(亂世)에는 소문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다.
하룻밤이 새고 나면 누가 죽었고, 강호의 어떤 집단이 멸망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뿐이다. 하나같이 충격과 경악을 동반한 소문들이 우후죽순처럼 불어날 뿐이다.
그러나 이 소문처럼 강호천하를 진동하는 소문은 아직까지 없었으니…….
- 영원한 강호인의 친구, 신사영이 되살아나다!
그렇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을 세인들에게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인간신화라 불리어지던 그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만인에게 기쁨과 놀라움을 준 것이다.
그러나 음(陰)이 있으면 양(陽)도 존재하는 법! 세상에는 그의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강호를 피로 정복하겠다는 야망의 화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신사영은 최대의 적이었고,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하되 신사영의 부활은 다만 강호의 섭리이며 진리일 뿐이다. 그리고 진리는 거역할 수 없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그리고 이제 난세를 종식시킬 마지막 대결(對決)이 어느 한 곳으로부터 벌어지기 직전이었으니……!
바로 그곳은……?
2
양자대목교(陽子大木橋).
양자강을 가로지르는 삼백여 장에 이르는 장대한 나무 다리!
삼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이 다리는 바로 당금 천하제일가로 불리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
다리의 입구에서 보면 저 멀리 강 너머 아스라한 곳에 한 채의 성(城)이 보인다.
하늘을 향해 우뚝 치솟은 거대한 성!
흔히 세인들에 의해 동방검왕가(東方劍王家)라 불리어지는 정도무림의 지주이며 수뇌가이다.
이 다리를 건너야만 바로 천하제일가라는 동방검왕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뚜벅- 뚜벅-!
그리고 지금, 한 인물이 양자대목교를 향해 걷고 있었다.
신사영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항상 그러했듯이 그는 오직 혼자 싸웠고, 앞으로도 혼자 걸어갈 것이다.
불어 오는 시원한 강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린다.
"이젠… 동방검왕가의 일만 남았는가? 이 일이 끝나면 강호에는 한동안 평화가 찾아오겠지."
나직한 중얼거림!
신사영의 음성에는 증오와 회한이 가득하다.
"다시는 검을 잡지 않으리라. 피와 죽음이 증오스럽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그 후예가 다시 복수(復讐)를 거듭하고… 결국 하나의 복수는 복수의 윤회(輪廻)로 점철될 것이 아니던가?"
신사영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홀홀단신 동방검왕가로 찾아가는 것도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복수라는 짐을 지워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매듭은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 하여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한다던가?
"하여간 이제 결말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강호는 평온해질 수 있을 것이기에……!"
하여간 그가 막 양자대목교의 입구 쪽에 들어설 때였다.
'응?'
문득 신사영의 눈에서 가벼운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양자대목교의 입구에 턱 버티고 앉아 있는 한 명의 인물을 본 것이다.
백의소년(白衣少年)!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은 모자란 듯한 나이일까?
하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청년보다는 더욱 어른스러운 한 소년이었다. 소년이 막 양자대목교가 시작되는 그 지점에 단정히 정좌하고 있었다.
대략 십칠팔 세 정도 되었을까?
단아하고 준수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미루어 벌써 오래 전부터 그곳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백의소년은 시선을 들어 신사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한없이 서늘하고 깊은 눈이다. 그 눈은 한 점 사심을 찾아볼 수 없이 해맑고 깨끗했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간직한 소년!
신사영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언제인가 자신이 그 소년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며, 소년이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무릎 위에는 한 자루의 섭선(攝扇)이 올리어져 있다.
또한 양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섭선을 쥐고, 소년은 신사영을 묵묵히 응시하는 중이었다.
그런 소년의 전신에서 가히 태산 같은 중후하고도 위엄스런 기도가 풍겨 나고 있었다.
누가 이 소년의 이름을 모르랴?
마인왕야 자릉천!
최근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마천성의 후계자!
마천성의 힘과 소년 자릉천의 위명(威名)은 이미 무림천하를 진동하고 있다.
신사영은 자릉천의 이 장여 앞에서 천천히 걸음을 멈추어 세웠다.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떠올렸다.
서로에 대한 깊은 우애와 신뢰가 가득한 미소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사영이었다.
"본인의 이름은 신사영이라 하네. 언젠가 친구의 질문에 신사영이라 대답하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러나 신사영이라는 이름은 강호인들이 내게 붙여 준 이름일 뿐, 진정한 이름은 아니라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게 한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잘못?"
"그것은 미안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진정한 친구란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법이라 했습니다."
신사영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말은 언제인가 자신이 낭제왕 무영에게 했던 말이 아니던가? 그 말을 지금 자신이 자릉천에게 듣게 될 줄이야?
자릉천은 신사영을 바라보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놀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키는 한 뼘쯤 커진 듯하고, 체구 역시 준마처럼 탄력적이다.
불과 일 년여의 시간이 그를 이토록 성장하게 한 것인가?
자릉천은 신사영을 향해 청아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사영! 당신을 만나 기쁩니다. 당신이 다시 살아나 더할 수 없이 기쁩니다. 당신은 나의 우상이었고, 나의 삶이었습니다. 강한 당신을 꺾는 것이 나의 최대 목표였습니다."
"나도 친구를 만나 기쁘네."
신사영의 말은 사실이다.
그는 언제인가 설원 위에서 자릉천을 볼 때부터 깊은 호감이 느꼈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써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신사영의 철칙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자릉천은 신사영을 너무 닮은 또 하나의 신사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릉천의 기질은 신사영을 닮았다.
이때 자릉천은 신사영을 향해 당돌하게 말했다.
"신사영! 당신과 대결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꺾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신사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친구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겠네. 그러나 친구와 나의 대결은 동방검왕가의 일이 해결된 후에 하는 게 어떻겠나?"
"……."
순간, 자릉천은 침울한 눈길로 흘낏 뒤쪽을 바라봤다.
뒤쪽은 양자대목교가 까마득히 바라보이는 곳이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 말했다.
"당신은 저곳을 건너가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죽을지도 모릅니다. 설혹 당신이 죽는다면, 이 자릉천은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습니까?"
"함정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네. 그래도 나는 갈 것이네. 그것이 내 길이기 때문이네. 친구와의 대결은 그 다음의 일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나는 친구에게 결코 실망을 안겨 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네."
그 말은 신사영의 굳은 의지였다. 어떠한 함정이나 죽음의 위기도 능히 넘기고야 말겠다는!
순간, 자릉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습니다. 당신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도 당신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친구에게 내 짐을 지워 주는 것을 원치 않네."
"제가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은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라……."
신사영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곧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도록 하게.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내 일에는 간섭하지 않아야 된다는 약속을 해 주어야 하네."
"물론, 약속드립니다."
두 사람은 미소를 띤 채 손을 마주 잡았다.
저벅- 저벅-!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양자대목교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3
누구인가?
양자대목교의 한가운데쯤이다.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묵묵히 팔짱을 낀 채 다가오는 신사영을 바라보는 사나이!
학창의(鶴 衣)를 걸친 은삼청년이었다.
대략 이십대 후반쯤이나 되었을까? 일견 놀랄 정도로 탄력적인 체구를 지닌 인물이었다.
사나이의 전신에서 피어 오르는 기운은 칼날 같은 예리함과 제왕의 위엄! 흡사 거기 태산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
아아, 묵묵히 팔짱을 낀 모습 어디에서 저런 엄청난 기도가 뿜어 나는 것일까?
그런 은삼청년의 몇 장 뒤쪽.
두 인물이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전신에서 온통 살기를 가득 풍기는 흑색 장포의 괴인과, 고고한 선비풍의 노문사가 그들이었다.
그중 노문사의 품에는 한 명의 소동(小童)이 안기어 있었다.
대략 사오 세쯤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또렷한 눈길로 주위의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창의를 걸친 청년, 그의 품에 조용히 안은 한 자루 검이 단숨에 그를 상징해 준다.
성군(聖君) 동방우인(東方友仁)!
동방검왕가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최고의 기재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당금 천하제일인!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는 두 사람은 동방검왕가의 수호신(守護神)이라 불리는 이대장로(二大長老)였다.
"하하… 어서 오시오, 신사영!"
맑고 선명한 동방우인의 웃음이 양자강의 물결에 세찬 파문을 일으켰다. 가히 살인적인 진기가 실려 있는 웃음이다.
신사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하… 그때와 달리 이번 만남엔 술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오. 술이란 신사영, 당신처럼 멋진 친구거늘……!"
신사영은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때 동방우인이 흘낏 뒤쪽을 바라보았다.
"신사영, 보이시오? 내 아들이?"
신사영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저만큼 뒤에서 이대장로가 안고 있는 어린아이!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성군 동방우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동방우인은 생사를 결할 장소에 아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동방우인은 다시 크게 웃어제쳤다.
"하하핫… 내가 이곳에 아들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절대로 패할 수 없는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기 위함!"
"……."
신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방우인은 실로 비장한 각오로 이곳에 나왔음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무서운 투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만일 이 아비가 죽는다면 내 아들에게 복수를 시키기 위함! 아버지의 죽음을 본 아들은 불타는 투혼(鬪魂)으로 무공을 익혀 필히 아버지의 복수를 해 줄 것이기에!"
아아, 실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아닌가?
아들을 데리고 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한 후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겠다니?
노인 문사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
아이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아버지의 모습을 초롱초롱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동방우인의 음성은 더욱 엄숙해졌다.
"그러나… 나는 내 아들이 피로 복수하는 것을 바라지 않소. 아버지의 죽음을 봄으로써 이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천하패권의 야망을 더욱 불태워 달라는 것!"
- 천하패권!
이 한 마디가 모든 사람들의 뜨거운 야망(野望)이며, 그토록 가슴을 설레게 하는 욕망(慾望)이었던가?
"모든 사람에게는 각기 가는 길이 다르듯이, 내 인생의 목표 또한 신사영 그대와는 틀리는 것이오. 나는 단지 천하를 원했을 뿐이지, 피를 원하지는 않았소."
"하지만 인간의 패권욕에는 필히 피가 따르는 법이오."
그것은 신사영의 첫 마디였다.
동방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가문이 이룩해 놓은 피의 굴레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나의 목숨으로써 그 피의 굴레에 대한 속죄를 할까 하는 것이오."
"……."
"이 동방우인이 바라는 것은, 강함에 의한 천하패권이오. 힘에 의한 장악이 아닌, 강함의 지배! 타인이 스스로 우러러보는 그런 천하패권을 원하는 거요. 그것을 이루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의 아들에게… 아들이 못하면 또 그 아들에게… 이렇게 하여 위대한 가문과 위대한 인간의 전통은 세워지는 것이 아니겠소?"
아아, 그랬던가?
동방우인이 바라는 것은 힘에 의한 강제 정복이 아닌, 타인 스스로의 굴복을 말함이 아닌가?
신사영의 눈빛이 기이하게 물들어 갔다.
'패권욕에 불타는 야망아인 줄로만 알았더니… 훌륭한 무사였는가?'
그러나 동방검왕가의 전대인들이 벌여 놓은 수많은 피의 행적은 누가 보상해야 할 것인가?
동방우인은 천천히 품에 안은 검을 손에 쥐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백검(白劍)!
"자, 신사영! 이제 우리 멋진 최후의 대결을 펼쳐 봅시다. 위대한 인간 신사영을 위하여!"
"위대한 무사 동방우인을 위하여!"
신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흑타성혈을 힘껏 움켜쥐었다.
두 사람은 이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휘이이-!
쏴아아아……!
문득 차가운 강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야아아-!"
"야아압-!"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도 모를 두 줄기 거대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음성은 뇌전처럼 양자강의 수면을 뒤흔들었다.
두 사람, 세인들이 일컬어 천하의 쌍벽이라고 하는 자들!
쐐애애액- 쐐액-!
그들의 신형이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에게 번개처럼 쏘아 갔다.
천하 최강의 무인!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
그들이 벌이는 사나이들의 뜨거운 열기가 양자강의 푸른 물결 위로 흘러 퍼졌다.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사의 투혼(鬪魂)!
그것은 순리이며 진리이다.
무사는 오로지 검(劍)으로 말하며, 진정한 무사의 혼(魂)은 장강(長江)의 푸른 강물처럼 도도히 흐를 뿐이다.
<大 尾>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