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겨울여행을 떠났다.

[프라하]

 

기차를 타고 겨울여행을 떠났다.

 신탄리행 기차를 타러 의정부역에 내렸다.

그러니까 어제, 12월 15일 동두천까지 지하철이 개통되어

이제는 동두천역에서 신탄리행 기차를 타야한단다.

                        그녀는 신탄리행 기차표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더불어 서울에 오는 기차표까지..

겨울 햇빛 마실 수 있게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았다.

    - 창문을 통해서 이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연극 다우트 대사가 생각이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렇게

언

제

나

아

름

답

다. 

아름다운 풍경이어도

기차는 빨리 달렸다, 조금 천천히 가줬으면 했지만,

그래도 기차는 쏜살같이 달리고 달렸다.

조금씩 흐르는 강물에 비치는 산허리 중간쯤까지 바라보려는 순간,

저만치 저만치 기차는 가고 또 가고...

신탄리역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변한 것이 있었다면,

바람이랄까

살갗에 달라붙는 바람이랄까

하늘이랄까

눈 시리게 들어앉는  하늘이랄까

햇빛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보이는 풍경을 좋아한다.

빛을 몰고 있는

빛을 업고 오는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대로 다 드러내지 않는, 은은한 풍경이다.

내 그림자 철로에 걸쳐놓고 웃고 있다.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은 겨울빛이 참 따스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날 수 없는, 아득한 길, 기찻길

그러나 두 길 위를 걸어가야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리운 사람들은 기차를 타야 만날 수 있는 법이다.

기차는 그리움의 힘으로 달린다.

때로는 정지라는 푯말을 못본척 할 적도 있어야 한다.

사실은, 정지 이지만 우선멈춤 후에 차단기가 내려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그림자.

늙어, 늙어

아름답게 늙어,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친구, 친구, 내 친구

우리 그림자는 늘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나무의 무늬가 아름답다.

굴뚝을 빠져나오는 연기가 아름답다.

지난 여름. 채송화 꽃 피어 어지러웠던 길을 지나갔다.

빈 화단에 마른 꽃이 쓰러져있었다.

채송화 피었던 자리, 근처 쯤에  금잔화 마른꽃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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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고대산 가는 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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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화단에 노을빛 채송화꽃 피었다.

가는 길에 보았던 채송화, 내려오는 길에는  꽃잎 접어 한 잠 들어있었다.

나리꽃 피었다.

사향제비나비 세 마리 꽃술에 입 맞추고 있었다.

나비는 날갯짓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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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늘 12월 16일 풍경이다.

푸른 산이었을 때 제속을 보여주지 않던 고대산.

제 속을 환히 보여주고 있었다.

뼈마디까지 다 보여주고 있었다.

빛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해야할까,

겨울 오후 4시쯤

하루 해가 하룻동안의 시간을 정리하여 고요하게 옷매무새를 고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햇빛 또한 은은하다.

황금빛 쏟아지는 겨울 산 얼마나 고요한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저 고요 속에 들어있는 치열한 삶의 투쟁을, 나는 아주 조금 안다.

저렇게 큰 새집은 어떤 새의 집일까.

너무나 크고 화려한 새집, 너무 크게 지어서인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새집이 위태롭다.

왜 그랬어, 조금 작게 짓지, 왜 그랬니....

아

아

아

우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논바닥을 바라보며 너무 벅차 웃었을 뿐이다.

한겨울 오후, 황금빛 햇살이 논바닥에 쏟아져

그 빛가루 치마폭에 가득히 쓸어담고 또 담아도

자꾸만

자꾸만 더 많이 쌓여만 갔다.

조금 일찍 벼 베기가 끝난 논,

웃자란 새순들이 찬바람에 말라가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우리는 논바닥에 앉아 그것들을, 그것들을 손으로 만졌다.

얼마나 보드라운지

얼마나 보드라운지

들판에 산 위에

그리고 우리들의 몸을 비추는 햇빛의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은은한 빛깔로 보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바라보며

아름답다, 아름답다, 했다.

그 순간, 빛을 받은 모든 것들이 진정으로 아름다웠으므로

논바닥을 걷는 일은 참으로 황홀한 일이었다.

벼포기와 논바닥의 흙들이

우리를 고요하게 들어올려주었다.

마치 융단 위를 걷는 것처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가만히 앉아 논바닥의 무늬를 살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논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끊어지고, 깊어지고, 솟아오른 무늬가 또 어디에 있을까

응시하다.

그러한 것이었음을,

이렇게 고요하게 홀로 서서 아득하게 꿈꾸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음을..

이들의 시선 끝에는, 하늘이 있고 전깃줄이 있고 바람이 있고 햇빛이 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모두다

이렇게 작은 시선 속에 들어오고 싶어,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몰라..

찬바람 속에서도

언땅을 밀고 올라오는 푸른 것들이 있었으니,

도대체

푸름의 힘은 얼마나 강한 것인가

다랭이 논 둑에 올라가고 또 한 두럭 올라가서

바라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논 가운데까지 들어가 서성거렸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

우리는 정말 너무 많이 편안해져서 세상을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천천히 걷고, 머물고, 다시 걷고, 다시 머무는 동안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우리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몸 낮게 낮게 엎드려, 엎드려..

그렇지만

소리가 너무 작아..작아..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이 다는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농부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벼가 익어가고

들판이 풍요로워진다는 것,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어쩌면 이러한 시간들이

내게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아니,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짜르르 소리가 나는 깻단에도 노을이 진다.

모퉁이가 아름다운 것이 어디 산성뿐이랴.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갈 때, 잠시 보이던 풍경

모퉁이 돌아서니,

금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저녁노을

잠시, 아주 잠시 몇 분동안이었지만

우리는 저 산아래로 뚝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마음으로 받았다.

붉게

붉게

아니, 은은하게 말이다.

기차를 타고 떠난, 겨울 여행.

하루, 였지만

우리 앞에 찾아와준 시간은 이틀 하고 반나절쯤 된 것 같다.

[나재희]

가끔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머물어봅니다...

[snow]

불행한 우리나라의 철도역이군요 경원선 저 원산까지 이어지던 철도지요? 황량한것 같은 겨울풍경이지만 프라하님이 함께하는 풀경은 포근합니다

[쑨다라]

이런 풍경을 보면 언어라고 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저 모습 속에 모든 삶이 다 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