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걷회로 재출발이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이 아닐까.
모처럼 동기생들이 청계산으로 향한단다. 그 당시 이 노객(?)의 연세는 몇이던가.
아마도 40대 중반으로 생각코 있다.
서울 강동구에 태평양약국을 경영하고 있을 때일게다.
청계산이 어드메에 있는지 높이는 해발 몇m인가 생각지도 못한 산이다.
산에 대하여는 관심 밖이며 산행(山行)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청계산이라는 산이 어디에 높이는 어느 정도인가 뒤적여 본다.
서울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 성남시, 의왕시 경계에 있는 높이 618m의 청계산이다.
서쪽에 솟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남쪽을 이루고, 주위에 국사봉·응봉 등이 있으며, 망경대·옥녀봉·청계봉 등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청룡이 승천했다 하여 청룡산이라고도 불리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주산을 관악산으로 보았을 때 좌청룡에 해당하여 청룡산(靑龍山)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능선은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사방이 비교적 완경사이다.
경기도 양평 소재 청계산과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청계산 세곳이 있다.
그 밖에도 청계산이라는 이름이 곳곳에도 있으리다.
고교동기생이 일곱 여덟명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정상은 커녕 초입에서 주저 앉는다. 이런 저런 얘기가 계속될뿐으로 산행에는 무관심이다.
" 다음부터는 내가 등산대장을 할것이니 그리 알거라 "불쑥 일어나 한마디를 뱉는다.
이 때가 바로 동북고등학교 등산회가 창립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랴.
모두가 가정에 생활비를 손수 벌어야 하는 가장(家長)으로 토요일은 생략이다.
매월 세째 일요일이 산행 출발일이다.
등산대장으로 첫 산행지는 팔당역 바로 뒷편에 있는 예봉산이다.
예봉산(禮峯山,683.2m)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팔당리와 조안면 진중리, 조안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예봉산 북쪽 바로 옆에는 철문봉(630m)이고 적갑산(560m)과 갑산(546m)이, 동남쪽으로는 예빈산이다.
예빈산은 견우봉(580m)과 직녀봉(590m)으로 되어 있다.
이곳을 오르내리노라면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게 된다는 견우직녀설화 (牽牛織女說話)가 생각이 나곤한다.
칠월 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 현상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와 목동인 견우가 혼인을 했는데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그 벌로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1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가 없게 되자
수많은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오작교(烏作橋)라고 한다. 이날 오는 비는 곧 칠석우(七夕雨)로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한다.
예봉산은 조선시대때부터 수림이 울창하여 인근지역과 한양에 땔감을 대주던 연료 공급지이다.
동북쪽으로는 운길산(610.2m)이, 한강을 건너 남쪽에는 검단산(657m)을 마주보고 있다.
예로부터 예봉산을 큰사랑산으로 운길산을 사랑산, 예빈산을 작은사랑산으로 칭한다.
산을 위해 제사 지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로 영산(靈山)이라는 별칭도 존재한다.
동북고9회등산회의 창립시에 산행 회원은 15명 전후가 되리다.
예봉산을 출발점으로 30여년간 한국에 있는 산은 거의 섭렵하는 기쁨도 맛보지 않았는가.
예빈산 적갑산 갑산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불곡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 (3곳) 운길산 검단산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광덕산 소금산 유달산 속리산 아차산 북악산 계룡산 계방산 삼악산 감악산 공작산 마이산 유명산 월출산 월악산 덕유산 내장산 소백산 가리왕산 용마산 운악산 선운산 두륜산 태백산 인왕산 백운산 명지산 명성산 금수산 대둔산 울릉도성인봉 무등산 명학산 월릉산 수리산 지리망산(사량산) 연인산 용문산 마니산 소요산 칠갑산 팔공산 화악산 검봉산 오봉산 오대산 천마산 축령산 치악산 삼성산 굴봉산 원미산 안산(무악산) 칼봉산 민둥산 국망봉 금학산 박달산 각흘산 고대산 광교산 태조산 구룡산 대모산 ~ ~ ~ 등등 헤아리기도 이름도 가물가물이다. 아마도 100여개 산을 오르고 내렸을 게다.
이리도 수 많은 산을 오르내렸으나 아직도 오르지도 못하고 평생에 꼭 가보고 싶은 산이 있다.
나의 이북 고향인 황해도에 있는 장수산(높이,745m)이다. 경치가 뛰어나 예로부터 '황해의 금강'이라고 한다,
북한 명승지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고 오래 살았다 하여 장수산(長壽山)이라 부른다.
나의 오마니께서 16살에 시집을 오셔서 줄줄이 딸만 여섯을 낳는다.
시어머니이신 내 할머니께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엄청 엄하게 며느리를 다스릴뿐이다.
할머니께서 창고에 잔뜩 쌓아놓은 쌀을 며느리에게 꺼내주신다.
그것도 가족 인원수대로가 아닌 훨씬 적게 내 오마니에게 주시는 것이다.
내 오마니는 항상 거의 굶다시피 하신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딸만 낳았다는 이유이다.
배고픔을 참다 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내 오마니이다.
도끼로 창고문을 때려부수고 쌀을 듬쁙 거내신다.
내 할머니이자 내 오마니의 시어머니는 기가차서 할말도 잊으신다.
" 산신령님이시여 ~ 제발 아들을 낳게 해주십시요 " 라며 오마니는 장수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린다.
그 이후로 연달아 아들을 둘이나 출산 하신다. 바로 이 몸과 남동생이 고고의 성을 지르며 태여난 것이다.
오마니의 백일기도가 신령님에게 통하신 것이 아닐까.
나와 남동생을 낳게 해주신 장수산 신령님을 꼭 만나뵙고 싶다.
통일이 언제나 오려는지 그날이 오면 제일 먼저 장수산으로 달려가리라.
1951년 1월4일 1.4후퇴로 고향을 등지고 부모 형제 자매 여섯 식구만이 남으로 남쪽으로 피난길에 나선다.
내 할머니와 첫째 누님을 고향에 남겨둔채로이다.
석탄을 연료로 " 꽥 ~ 꽤~에 엑 ~ 꽥 "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화물열차칸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열차 지붕에도 피난민들이 하얗게 움츠리고 있다.
엄청 쏟아지는 눈보라에 얼어 죽을까 걱정으로 아버지 품속이다.
여섯살때 여리디 어린 코훌리개 유소년(幼少年)이 아닌가.
오늘이 2024년 4월15일이다. 73년 3개월 하고도 11일이 지난 세월로 80세 노인네이다.
기차는 떠나가도 다시 돌아온다 했거늘 ~ ~ ~,
그 때 그 당시 그 화물열차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것일까.
다시 그 열차의 화물칸에 타고 가고프고 보고프고 그리운 고향산천이다.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가슴이 미여지곤 한다.
동북고9회등산회는 해마다 봄이면 시산제가 아닌 산행감사제를 드리곤 한다.
시산제 (始山祭)라는 뜻은 무엇일까.
해마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에 산악인들이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에게 지내는 제사라고 한다.
하지만 산악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산을 지키고 보호를 하는가.
그저 산행을 할뿐으로 먹고 마시고 떠들고 산을 망가뜨리고 오염시키는 범인이 아닐까.
해서 동북고9회 등산회는 시산제라는 단어는 페기를 한다.
산이 있으매 산행을 할 수 있음에 산신령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행감사제(山行感謝祭)를 드린다.
예봉산에서 1년에 한번 봄이 찾아오면 시산제가 아닌 산행감사제를 지내기도 한 곳이다.
1963년도 고등학교 졸업 당시의 인원은 180여명이리라.
60여년이 흐른 2024년도 요즘의 현실은 어떨까. 세월은 흐르고 흘러 동기들의 연세는 80세가 아닌가.
10여년전에 20% 정도 되는 동기들이 먼저 세상을 등진 상황이었다.
지금은 정확한 인원은 알 수도 알려고 하지도 알고 싶지도 아니하디.
짐작컨데 동기들 오십여명(?)이 이미 저 멀고도 머어언 알 수도 없는곳으로 날아간 모습이다.
미약한 인간들의 피할수도 없는 자연현상이며 법칙이 아니련가.
언제부터인가 산행도 둘레길도 참석인원은 대여섯명 뿐이다.
산행은 절대 금물이며 둘레길도 1만보 이상이면 볼멘 소리가 귓등을 흔들곤 한다.
허리가 무릎이 팔다리 어깨등 노구(老軀)인 신체 곳곳의 모든 부위가 어찌 할 수가 없다.
한강물이 흘러 가듯이 그저 하늘 명령에 따를 밖에 없다.
숨을 쉬며 걸을 수만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노객들의 현주소이며 행복한 삶이 아닐까.
대모산역 8번 출구에서 오전 11시11분에 만난 동기들이다.
이름은 스나미 재빠기 뻐드타 단서조 막사리 까토나등 여섯명이다.
대모산역에서 남쪽에는 대모산과 구룡산이 나란히 있다.
오늘의 행선지는 양재천이다. 양재천이 흐르게 된 이유를 들여다 보자.
옛날에 어느 날인가 구룡산에서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때이다.
인근을 지나가던 임신한 여성이 보고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용 한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승천을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구룡산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하늘에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 죽은 용이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리라.
양재천을 따라서 천천히 걷다 쉬다를 반복이다. 한시간 정도 지나서 자리를 잡는다.
각자 준비해 가져온 간식을 흡입하는 시간이다.
메밀묵, 겉절이김치, 영양밥, 막걸리, 두유, 초코파이 오리알 みそ汁(미소시루,된장국) 또 뭐드라.
허전한 뱃속을 채우고 일어선다. 3월 말부터 4월말까지가 벚꽃축제 기간이란다.
벚꽃은 이미 떨어져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 개울가에는 백로 한 마리가 훨훨 날아와 앉는다.
기다란 목을 두리번 거리며 먹이인 물고기를 찾는 모양이다.
조각상을 여기 저기에 진열해 놓은 것이다.
20대 정도의 청소년 소녀들이 음악에 맟춰 온 몸을 흔들고 있다.
몇십명의 젊은 관객들만이 박수로 호응을 한다.
동기들 연세에는 별로 관심도 없이 그저 지나칠 뿐이다.
제대로 점심식사 회식을 양재역 근처 식당에서 갖는다.
지난 날 학창시절 추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루 세끼 먹고 살기도 버거은 시절이리라.
이런 얘기 저런 소리로 끝없이 주절이며 웃음꽃도 만발이다.
" 잘 가거라, 아프지 말고 아프더라도 기어서라도 일어나거라 " 오늘도 헤여지는 순간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지려는지 아무도 예측 불가가 아닐까.
세상에 밝은 빛을 받으며 어머니 품속에서 탄생하는 순서는 있다.
하지만 다시 원위치로 회귀하는 순간만은 차례도 시간도 예측 불가가 아닌가.
산행을 시작하며 만들어 놓은 " 백년지기 늘걷회 " 등산회 이름도 벌써 바꿨어야 할게다.
늘 걷고 산행을 한다는 " 늘걷회 "라는 표현은 허울일 뿐이다.
서산에 노을로 지고 있는 늙고 시들은 낙엽 같은 동기들이다.
가끔 만나서 산행은 금물(禁物)이며 걷다가 쉬다가 주저앉다가
다시 천천히 걷는 " 늙걷회 "가 좋지 않을까.
" 늙걷회 " 로 재출발 함이 타당하리라
2024년 4월 15일 무 무 최 정 남
여기에 동기들 모습이 ↓ ↓ ↓
★https://photos.app.goo.gl/HWLx9QTgWdWc7tuf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