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원자잿값 급등 영향
건설사들 입찰 태도 '변화 바람'
일부선 '들러리 입찰'도 나타나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공사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제공> 올해 전국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건설사와 조합 간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서울 비강남권 재건축 시공권을 놓고도 수주 경쟁을 벌였지만, 올해는 서울 용산과 강남권에서도 경쟁을 피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하강·건설 원자재값 급등이 이어지면서 건설사의 정비사업 입찰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시공사를 모집한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120곳 가운데 90% 가량(105곳)이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했다. 상반기 흥행이 예측됐던 서울 용산 한강맨션 재건축, 이촌강촌 리모델링, 서초구 방배6구역 재건축 사업은 모두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사를 모집했다.
특히 최근에는 강남권 최대어로 평가받은 서초구 방배 신동아 재건축 사업이 복수의 시공사 입찰을 받지 못해 유찰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은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시 한 곳의 건설사만 입찰하면 유찰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 시공사 간 경쟁이 이뤄진 재개발·재건축은 15곳에 불과했는데, 이곳들도 대부분 들러리 입찰을 의심받는 구역이다. 겉으로는 2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해 경쟁 입찰이 성사됐지만, 실제 현장에선 홍보 경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올해 2월 시공사를 모집한 은평구 불광5구역에서는 GS건설의 경쟁사인 롯데건설은 현장 캠프도 마련하지 않은 채 수주전에 임했다. 또 성북구 '길음시장 정비사업' 조합은 지난해 11월 호반건설을 시공사로 선쟁했는데, 일부 조합원들은 경쟁사였던 제일건설이 들러리로 입찰했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이처럼 건설업계가 재개발·재건축 경쟁 입찰을 피하게 된 이유는 국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수주 실적이 착공 실적으로 이어졌지만, 현재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처럼 이미 착공한 건설현장이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공사 중단되는 현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었던 2015년 이후 대부분의 수주 실적은 착공 실적으로 이어졌지만 현재 시장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착공이 지연되거나, 둔촌주공처럼 이미 착공했지만 공사를 중단하게 되는 현장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건설 원자재인 철근과 콘크리트, 시멘트 등의 가격이 전년 동기대비 30%이상 급등하면서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 행보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건설사의 주택 사업 마진률은 10% 이상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올해는 자잿값 상승에 한 자릿수로 줄어든 상태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전체 공사비의 2~4% 수준에 육박하는 홍보비 지출에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은 제로섬 게임과 같다"며 "수주전에서 패할 경우 타격이 크고, 사업을 따낸 경우에도 간접비 지출이 커 본전을 못 찾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에 정비사업 조합원들은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건설사 간 경쟁이 이어지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은 시공사로부터 좋은 조건을 제시받을 수 없게 된다. 수도권 한 정비조합 관계자는 "건설사 간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합은 좋은 조건을 제안받을 수 없다"며 "빠른 사업 진행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건설사의 경쟁 입찰이 적어져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박순원 기자(ss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