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절대십자천검결(絶代十字天劍訣)
1
언제 죽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릎 위에 녹슬은 검(劍) 한 자루를 놓고 좌정한 자세로 벽에 기댄 채 굳어 있는 앙상한 흑골은 손가락 뼈마디 하나를 벽에 박은 형태였다.
희미한 광휘는 녹슨 검에 발해지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군가?"
사마강은 벽에 박힌 해골에 손가락을 주시했다. 이끼 낀 벽면에는 금강지로 새겨진 글자가 보였다.
<절대검존(絶代劍尊)이 남기도다.
지금 본좌는 죽음을 알고 있다.
본좌의 숙적(宿敵) 묘음살존(妙音煞尊)! 그놈의 음공에 오장육부(五腸六腑)가 으스러진 것이다.
물론 그놈 역시 본좌의 절대십자천검(絶代十字天劍)에 두 다리가 잘렸다. 결국 양패구상(兩敗具傷)을 한 것이다.
본좌는 최후의 희망을 안고 천우신조(天佑神助)를 찾아 이곳 마귀혈뇌(魔鬼血牢)로 왔다.
만년마면혈갑룡(萬年魔面血甲龍)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내력(內力)은 탕진되고 나의 생명을 독촉하는 길밖에 되지 않아 죽음을 보게 되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본좌의 심득(心得)이 아깝구나.
여기 인연(因緣) 있는 자에게 노부의 필생검학(必生劍學)인 절대십자천검결(絶代十字天劍決)을 남기노라.
그대가 만약 영물(靈物)을 취한다면 냉한보혈(冷寒寶血)과 극양내단(極陽內丹)을 함께 복용하라. 둘 중 어느 것을 얻는다 해도 살아날 수가 없으리라.>
죽음에 임해 남긴 유서였지만 광오함과 패도적인 기운이 역력했다.
"절대검존이라… 별호만으로도 대단한 무공을 지닌 사람인 것 같군."
무림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마강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검존(絶代劍尊)!
그는 지금부터 삼백 년 전의 인물이다.
당시 절대검존의 명성은 하늘을 향해 도전하겠다고 외친 세 사람의 기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묘음살존(妙音煞尊), 묘강독존(妙疆毒尊)과 함께 천외삼존(天外三尊)으로 일컬어졌던 천외천(天外天)의 신인(神人)이었다.
사마강은 검결(劍訣)을 익혀 괴물을 죽이겠다는 집념으로 절대검존이 남긴 검결에 몰두했다.
내공의 기초도 모르는 그였지만 검결을 통해 검을 휘두르는 방법은 간단히 터득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독히도 복잡한 변초(變招)였지만 그것은 잊었다.
"변화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하지만 어떻게든 검만 휘두르면 되니까."
사마강은 불과 일각 만에 녹슬은 절대검존의 검을 집어들고 일어섰다.
그의 눈빛이 파랗게 타올랐다. 어쩐 일인지 그의 단전에 무한한 힘이 용솟음쳤다.
그는 떨려 오는 한기(寒氣)를 모두 손끝에 모아 으스러지도록 녹슬은 검을 움켜쥐었다.
"괴물아, 내가 간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호수로 이어진 동혈로 뛰어들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한편 혈갑룡은 성이 났는지 무서운 기세로 호수를 휘저었다.
그때마다 묘지기 노인는 바윗덩이를 옮겨 제방이 무너지지 않도록 고심해야 했다.
동혈을 나온 사마강은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날뛰는 혈갑룡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검 끝으로 괴물을 겨냥했다.
혈갑룡은 영물답게 살기를 감지하고는 머리를 돌렸다.
'이노옴!'
사마강은 무섭게 괴물을 노려보았다. 전신에 폭사되는 살기(殺氣)는 혈갑룡의 만년마기마저 압도했다.
혈갑룡은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며 기운차게 헤엄쳐 왔다.
한입 거리도 안 될 당돌한 도전자한테 목이 뜯기고 피를 흘린 것을 원통해 하는 공격이었다.
사마강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솟구치며 혈갑룡의 공세를 피했다. 발 아래로 혈갑룡의 커다란 머리통이 보였다.
'죽어라!'
사마강은 혼신의 힘을 손끝에 모으고 괴물의 머리통을 향해 놀라운 속도로 일 검을 뻗어 냈다.
절대십자천검법(絶代十字天劍法)!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검술을 시전한 것이다.
번쩍-!
악마(惡魔)의 저주가 서린 혈갑룡의 머리통에 그의 검이 내리꽂혔다. 둔탁한 음향과 함께 혈갑룡의 머리를 관통한 검이 길게 그어졌다.
크아아아-!
혈갑룡은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며 허연 뇌수와 핏물이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목구멍을 통해 연붉은 구슬이 퉁기듯이 토해져 나왔다.
사마강은 이것이 바로 만년괴물의 내단(內丹)임을 파악했다.
'내단을 취해라 했지?'
그는 무조건 그것을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기를 모으며 승천을 꾀하던 만년마면혈갑룡이 죽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림의 일류고수, 아니 수 갑자의 내공(內功)을 가진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 혈갑룡의 철갑 비늘을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더러 기적이 생긴다.
사마강이 녹슬은 검으로 혈갑룡을 가른 것은, 이백여 마리의 소를 잡아먹은 이 괴물에 대한 한(恨)과 절대십자천검법의 놀라운 쾌속함 때문이었다.
호수에 붉은 피가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혈갑룡은 꿈틀거리더니 차차 잠잠해졌다.
'이겼어! 괴물을 죽였다!'
사마강은 비로소 한의 응어리를 해소할 수 있었다. 전신의 맥이 탁 풀렸다.
순간,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심하게 몸부림쳤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내단의 기운에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것이다.
'으으윽……!'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었다. 혈맥 속에 잠재돼 있던 혈갑룡의 피에 의한 한기와 내단의 열기가 뒤엉키며 사지가 뒤틀렸다.
기경팔맥마다 각기 다른 기류가 폭발할 듯이 솟아오르고, 수억만 개의 땀구멍들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우욱!'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마강은 혼절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전신은 제멋대로 뒤틀렸다. 의식과 신체가 분리된 것이다.
그토록 들끓던 호면이 잔잔해졌다.
제방 위에서 호수를 지켜보던 묘지기 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눈빛을 빛냈다.
"이럴 수가? 혈갑룡(血甲龍)이 죽은 것 같구나. 누가… 감히 천고의 마물을 죽였단 말인가?"
그는 호면을 한동안 주시하다가 품속을 더듬어 실꾸러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거미줄처럼 은빛을 발하는 한 줄기 실선이 호심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 끝엔 금빛으로 반짝이는 낚싯바늘이 묶여져 있었다. 낚싯바늘을 매단 실은 호수 깊숙이 잠겼다.
묘지기 노인의 내공은 워낙 심후하기에 십 수 장에 달하는 실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다. 손끝에 잡혀진 줄이 팽팽해졌다.
'잡혔다. 으음,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군.'
실을 잡아당기자 호면 위로 어린 소년의 몸이 떠올랐다.
낚싯바늘에 꿰어진 채 와들와들 떨고 있는 소년은 다름 아닌 사마강이었다.
노인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 아이가… 이 어린아이가 혈갑룡(血甲龍)을 죽였단 말인가?"
그는 급히 사마강을 끌어올렸다.
"노부가 십 년 간이나 지켜 왔는데, 이 아이가 그 재앙을 막아 내다니!"
사마강의 몸은 변해 있었다. 전신에 콩알만한 반점들이 흑색과 백색으로 수없이 나 있었다.
묘지기 노인은 한눈에 사마강의 체질 변화를 간파했다.
"쯧쯧… 아무런 준비도 없이 두 가지 기보(奇寶)를 모두 취했구나. 노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천고의 기연을 얻고도 이 아이는 필사(必死)했을 것이다. 천하의 그 누구를 만난다 해도 살아날 수가 없었겠지."
그의 말은 광오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게 천하제일의 의술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시체처럼 차가운 한기와 화염 같은 열기를 발하는 사마강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노부의 본신 공력을 절반은 소모해야겠구나."
무림인(武林人)에게 내가공력(內家功力)은 생명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무림인들은 좀체로 자신의 진기를 타인에게 옮겨 주지 않는다.
사부가 제자에게조차 함부로 전해 주지 않는 것이 내가진력이었다.
"이것도 운명(運命)이리라. 어쩌면 만 년을 살아온 동정의 저주(詛呪) 혈갑룡(血甲龍)도 이 아이를 인중지룡(人中之龍)으로 만들기 위해 만(萬) 년(年)을 기다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풀어 들었다.
허름한 그의 의삼과는 달리 품속에서 꺼낸 가죽 주머니는 참으로 진귀한 것이었다. 남만지방에서 나는 교룡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그는 수북한 금침(金針)을 꺼내 들더니 사마강의 의삼을 뜯어냈다. 그는 신속하게 금침을 사마강의 전신에 꼽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무척이나 길어서 무려 일곱 치에 이른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짧았다. 그래도 묘지기 노인이 금침을 꼽아 가는 속도는 똑같았다.
그는 이 같은 일을 무척 많이 해 온 듯 몹시 숙련된 솜씨를 보여 주었다. 자칫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전신의 중혈을 찌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금침술을 마친 그의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있었다.
"이 녀석은 이제 금강천골(金鋼天骨)로 탈태환골 되리라. 노부가 칠 일 밤낮 동안만 보살펴 준다면 말이다."
무려 백팔 개의 금침들이 꽂힌 사마강의 모습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시신처럼 누워 있던 사마강이 심한 전율을 일으켰다.
이때 그의 백회혈(百會穴)에서 가벼운 음향이 일며 하나의 길다란 금침이 퉁겨져 나왔다. 그것을 신호로 그의 전신에 박혀 있던 금침들이 계속해서 퉁겨져 나왔다.
실로 신묘한 금침술이 아닐 수 없었다. 금침이 꽂혔던 곳마다 검붉은 핏방울들이 이슬처럼 솟아났다.
"휴우!"
묘지기 노인은 그제서야 이마에 송글히 맺혀진 식은땀을 닦아 냈다.
백팔금침대법(百八金針大法)!
무림인들이 흔히들 말하고 있으나 이 같은 수법을 능수능란하게 시전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치료를 받는 자의 증상과 체질에 따르고, 시술하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독특한 침술법을 시전해야 하는 이 수법은 상승의학(上乘醫學) 중에서도 최고에 속한다.
근 백여 년 동안 무림도상에 백팔금침대법을 시전했던 인물도 없었고, 시술을 받았다는 인물도 없었다.
한데 이 하잘것없어 보이는 묘지기 노인이 백팔금침대법을 이토록 빼어난 솜씨로 구사해 낸 것이다.
노인은 품속에서 깨끗한 천과 한 병의 하얀 약병을 꺼내 들었다. 그는 약액을 천에 바른 뒤 사마강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 갔다.
그러자 사마강의 전신에 솟아난 반점들이 점차 빛을 잃으며 제 피부색을 드러냈다.
"음, 이제 됐군."
노인은 안도의 숨결을 토한 뒤 금침을 갈무리했다.
그는 제방을 딛고 선 채 또다시 낚시를 꺼내어 호면 위로 던졌다.
낚싯줄이 시원스럽게 호면을 파고들었다. 노인은 물 속을 환히 꿰뚫어보는 듯 이리저리 낚싯줄을 움직였다.
목적한 물건을 낚은 듯 낚싯줄이 팽팽해졌다.
"호오, 엄청난 무게군."
노인은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낚싯바늘에는 혈갑룡이 꿰어져 있었다. 너무나도 커다란 괴물이기에 쉽사리 천잠사 낚싯줄은 노인의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대단한 힘을 가진 듯 오래지 않아 실로 엄청난 크기의 혈갑룡의 사체가 호숫가로 끌려왔다.
"이놈의 가죽을 벗긴다면 긴히 쓸모가 있지. 목구멍에도 십여 개의 보주(寶珠)가 나올 것이다."
노인은 혈갑룡을 살피더니 사마강이 물었던 목 부분의 급소에서부터 작은 소도(小刀)로 껍질을 갈라 갔다.
그토록 두껍고 도검(刀劍)도 꿰뚫을 수 없는 혈갑룡피가 의외로 쉽게 벗겨져 나갔다.
아마도 철갑 비늘에도 일정한 결이 있는 듯했다.
사마강이 일 초의 검법으로 혈갑룡의 머리 중심부를 가를 수 있는 것도 그 결을 정확히 내리쳤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향 한 자루가 타 들어가는 시간이 지날 즈음, 노인은 모든 작업을 마쳤다.
"이런, 달이 구름 뒤로 숨는군."
노인은 혈갑룡의 목구멍에서 무엇인가를 꺼낸 뒤 흉물스런 살덩이만 남은 교룡의 사체를 호수에 집어던졌다.
풍덩-!
동정의 저주(詛呪)라 일컬어졌던 혈갑룡은 귀중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수심 속에 버려졌다.
"다시는 이 세상에 이 같은 괴물(怪物)이 나타나선 안 될 것이다."
노인은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사마강과 둘둘 만 혈룡갑피를 집어들고 지극히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2
악양성(岳陽城).
동정호변의 대도(大都)이다. 수륙양로(水陸兩路)로 교통의 요지임은 물론이고, 문물이 발달했다. 또한 천하의 유람객들이 사시사철 찾아드니, 항상 흥청거리는 불야성(不夜城)이기도 했다.
지난날 시선(詩仙)으로 불리어졌던 이백(李白)이 이곳의 절경을 보고 주옥 같은 이십여 수의 명시를 남겼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름 있는 문장가 치고 악양을 칭송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 악양성에서 가장 유명한 상점(商店)을 말하라면 세 살 먹은 코흘리개라도 황학루(黃鶴樓)와 천지대약점(天地大藥店)을 꼽을 것이다.
황학루의 그 역사와 전통을 모르는 자 천하에 없을 것이며, 천지대약점 역시 호남성(湖南城) 일대의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천지대약점(天地大藥店)!
이 거대한 약상회(藥商會)는 남칠북육성(南七北六省)에 수백 개의 분사(分舍)를 갖고 있으며, 호남상권(湖南商圈)에서 가장 거대한 재력(財力)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천지대약점은 악양성에 본포를 두고 있는데, 일백오십 년 동안 신용(信用)을 지켜 왔다.
여기에는 생약(生藥), 조제약 중 없는 약이 없다. 또한 항시 의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약방문(藥方文)도 지어 주므로 항상 사람의 발길이 끊어질 날이 없었다.
약을 팔기만 할 뿐 아니라 약제를 사 모으기도 하기에 약을 사고 파는 상인들마저 들끓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천지대약점이었다.
석양 무렵, 죽립(竹笠)을 깊이 눌러 쓴 한 명의 노인(老人)이 다가왔다.
한 손에 웬만한 마차(馬車)에 싣기도 거북할 듯한 큰 궤짝을 들고 나타난 노인은 길다란 그림자를 이끌며 천지대약점으로 오고 가는 사람 틈에 끼여 다가왔다.
천지대약점의 문 앞에는 삼십여 명의 문사들이 앉아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중 한 젊은이가 나서서 죽립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무슨 용무로 본점을 찾아오셨소이까?"
상대의 허름한 복장에도 정중했다.
'흠, 역시 천하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천지대약점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군! 일개 하인들마저 예의가 바르고 숨은 무엇인가가 있어 보인다.'
노인은 죽립 아래로 힐끗 젊은 약제사를 바라보았다.
"나는 가는 문사건(文士巾)을 쓰고 있는 영감을 만나러 왔다네."
노인의 대답에 젊은 약제사는 더욱 공손해졌다. 노인의 말 속엔 어떤 비밀이 담겨져 있는 듯했다.
"어서 안으로 듭시지요."
젊은 문사가 일어나 노인을 안내해 갔다.
약 내음이 가득 풍겨지는 장원의 소로를 따라 문루를 돌아서자, 마당가에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잘 가꾸어져 있는 화원이 나타났다.
꽃 한 송이마다 금방 소나기라도 맞고 난 듯 생기가 넘친다.
'역시 그의 이름 또한 허명이 아니야.'
노인은 힐끗 화원을 바라보았으나 묵묵히 젊은 약제사의 뒤를 따랐다.
하얀 백옥석들이 자잘히 깔려 있는 길을 십여 장 지나서 아담한 모옥 앞에 약제사는 멈추어 섰다.
"제이점주(第二店主)에게 이뢰옵니다. 손님이 찾아오셨기에 모시고 왔사옵니다."
"안으로 듭시라 일러라."
안에서 나직한 창노한 음성이 들려 왔다.
제이점주는 갈생노인(葛生老人)이란 특이한 외호로 불리운다.
그 같은 별호가 붙은 것은 대단히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의 생명 역시 칡덩굴처럼 오래 살도록 하는 어떤 신묘한 신술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를 갈생노인이라 부른다.
천지대약점의 이점주(二店主)를 맡고 있기에 세인들은 신수노옹(神手老翁)이라 높여 부르기도 한다.
죽립노인은 천천히 모옥 문을 열었다.
모옥 안에는 붉은 얼굴에 흰 반점이 상당히 많이 나 있는 늙은이가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하얀 그릇 위에 그는 시들은 죽화(竹花)를 꽂고 있었는데, 별로 돋보이는 용모는 아니었다.
그는 죽립노인이 방안으로 들어선 것조차 개의치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본래가 그런 사람이다. 화원(花園)의 꽃을 가꿀 때에 누가 그를 찾을지라도, 그는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 줄기 작은 대나무 끝이 예리한 소도(小刀)에 잘려져 나갔다.
"……?"
죽립 속에서 노인의 눈빛이 순간 빛나고 있었다.
'생결(生訣)을 찾을 줄 아는 인물이군. 흐음, 다시 한 번 이곳이 달리 보아지는도다.'
남들이 보기에 범상한 소도질에 왜 죽립노인이 놀라고 있는지는 몰랐다.
죽립인은 묵묵히 기다리다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노형(老兄), 왜 부용(芙蓉)이나 단장화(丹粧花) 같은 꽃을 꽂지 않고 향기도 없는 죽화(竹花)를 꽂고 있소?"
갈생노인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했다.
"허허…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다운 법이고, 술은 약간 취기가 돌았을 때가 적당한 법이오. 제아무리 좋은 꽃이라 한들 내 분수에 맞지 않으면 무상하지 않겠소?"
시(詩)를 읊듯이 한 마디를 했다.
죽립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화거분내(花居盆內) 종지생기(終之生氣)라…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화분에 옮겨 심으면 향기가 좋고, 하늘을 나는 새도 새장에 갇히면 자연의 맛을 잃기 마련이지."
꽃꽂이를 하고 있던 갈생노인이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이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들 대로 시들어 버렸던 죽화(竹花)가 생기(生氣)를 띠며 활짝 피어났다.
갈생노인이야말로 진정한 기인(奇人)일 것이다.
죽어 가는 꽃을 잘라 내어 화병에 심었는데, 오히려 생기(生氣)를 얻지 않았는가?
갈생노인은 선문선답(禪問禪答) 같은 말을 건진 죽립노인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음인지 갑작스럽게 포권을 했다.
"노인장은 어떻게 오신 분이오?"
죽립노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에 만년삼왕(萬年蔘王)과 생사회혼침(生死廻魂針)이 있다기에 그것을 사러 왔소."
"뭐… 뭐요?"
갈생노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만년삼왕과 생사회혼침!
이 두 가지 물건은 천지대약점의 대점주(大店主)인 신의제(新醫帝)가 너무나도 아끼는 물건이다.
무림에 이 같은 물건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가 없었고, 이곳 천지대약점에서도 비밀에 붙여진 이 두 가지 물건이기도 했다. 한데 죽립인은 그 귀한 물건을 스스럼없이 요구했다.
"노형은 누구시오?"
"물건을 살 사람이오."
갈생노인의 미심쩍어하는 모습에 죽립인은 한 마디 덧붙였다.
"대금은 일만(一萬) 냥(兩)도 더 받을 수 있는 갑옷(甲衣) 백 벌을 만들 수 있는 가죽으로 치르겠소."
"일만 냥도 더 받을 수 있는 갑옷이란 어떤 것이오?"
"천지성의(天地聖醫)가 이 자리에 있다면 노부에게 고맙다고 절을 할 그런 물건이오."
갈생노인은 다시 한 번 안색을 변화시켰다. 천지성의란 대점주인 신의제(新醫帝)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의계(醫界)에는 천하의제(天下醫帝)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다. 사흘 전에 죽었던 나무를 심어 꽃을 피우게 했다는 인물이 천하의제(天下醫帝)였다.
한데 수십 년 전 그가 실종된 후 무림에 또 한 명의 기인이 나타나 천하의제의 명성을 눌렀다. 신의제(新醫帝)란 그렇게 해서 생긴 명호였다.
"자, 물건을 볼 줄 안다면 한 번 보도록 하시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죽립노인은 검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지극히 얇은 가죽이 들어 있었다.
"오, 혈갑룡피(血甲龍皮)!"
갈생노인은 한동안 할 말을 잊고 죽립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혈갑룡피는 웬만한 도검은 뚫을 수도 없다. 보의를 해 입는다면 정녕 무서운 사람이 없는 호신갑이 될 것이다.
더구나 만(萬) 년(年)이 지나야만 지금 이 같은 진홍빛을 띤다지 않던가?
'으음, 사람의 힘으로는 잡을 수 없다던 혈갑룡의 가죽! 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갈생노인의 얼굴에 일말의 두려움마저 어려 있었다.
3
"쿨룩… 쿨룩……!"
약간 고통에 찬 창노한 기침 소리와 함께 한 노인(老人)이 나타났다.
그는 허술한 관제묘를 지키는 묘지기 노인이다. 새벽 안개 속에 흐릿하게 등장한 그는 빗자루로 낙엽을 쓸기 시작했다.
"쿨룩… 쿨룩… 빌어먹을! 낙엽은 이리 귀찮게 떨어지느냐? 이놈들아, 다 죽어 가는 늙은이 고생할 줄 빤히 알면서도 이렇게 뒹굴어야겠느냐?"
그는 두런거리면서 계속해서 빗자루질을 했다. 그의 뒤쪽이 점차 깨끗해지며 낙엽이 한 곳에 모여졌다.
노인은 허리를 폈다. 멀리 동천(東天)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는 등 뒤쪽에서 곰방대를 뽑아 내더니 품에서 마른 잎사귀들을 한 움큼 쥐어 곰방대에 채웠다.
냄새가 기묘하게 풍겼다. 아마도 아부고(阿芙膏)일 것이다. 이 아부고는 마약(痲藥)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은 얼굴에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아부고를 곰방대에 채우더니 화습자를 당겼다.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인 그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어렸다.
아부고(阿芙膏) 연기 속에 그의 근심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해서 아부고를 빨아 갔다. 점점 노인의 눈빛이 흐려졌다. 노인이 입을 벌리자 하얀 연기가 노학(老鶴)처럼 기이한 형태로 피어올랐다.
노인이 입을 벌려 낼 때마다 학의 숫자가 늘어갔다.
"후후후……!"
노인이 갑자기 괴상한 웃음을 터뜨린 후 곰방대를 기묘한 자세로 흔들었다.
순간, 연기로 만들어진 노학들이 용케도 흩어지지 않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노인도 갑작스럽게 춤을 추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아부고를 빨아 대고 있었다. 일다경(一茶頃)이나 그 같은 행동은 계속되었다.
누가 노인의 이 같은 모습을 보았다면 참으로 신기하게 여겼을 것이다.
얼마 후, 곰방대에 연기가 모두 빨려진 뒤에도 노인은 한동안이나 춤을 추었다.
이내 노인의 동작이 점점 느려진 뒤 노인은 입가에 침을 흘리며 축 늘어졌다.
그런 그의 얼굴에 점차 침울하고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아아, 나의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냐? 이놈의 아부고를 피우지 않으면 도저히 괴로움을 이길 수가 없으니……."
노인은 길게 탄식하고는 곰방대를 털었다.
묘지기 노인의 진정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수천 근의 바위를 날려 제방을 막는 능력이라면, 수 갑자의 내공 수위를 지닌 절대기인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그를 흐릿한 눈빛이 되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든 아부고란 정녕 무서운 마약이었다.
그는 어떤 괴로운 일을 이기기 위해 이 마약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고 한동안 여명이 밝아 오는 동천(東天)을 주시한 뒤 곰방대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이제 그 아이가 깨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그는 곰방대를 다시 허리춤에 꽂은 다음 느릿한 걸음걸이로 빗자루를 끌면서 관제묘 안쪽으로 들어섰다.
짙은 흙 내음이 풍기는 사당(祠堂)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개의 썩은 짚단과 쓰레기들이 널려져 있을 뿐이다.
노인은 짚단을 치우고 고리 하나를 찾아 내더니 잡아당겼다.
그르릉-!
기묘한 기관음(機關音)과 함께 바닥이 두 쪽으로 나뉘어졌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기관 속으로 들어섰다. 기관이 닫혀졌을 때 노인의 모습도 감추어졌다.
<천밀석부(天密石府)>
소년의 눈은 언제부터인가 그 글씨에 못박혀져 있었다.
백옥(白玉)을 깎아 다듬어 놓은 듯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소년이었다. 아니, 소년 자체가 옥으로 깎은 조각품 같았다.
십오륙 세쯤 되어 보일까?
붉은 입술이 타는 노을보다 진하다. 반듯한 오관은 사내라도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그는 삼백육십오혈(三百六十五穴)에 고슴도치 마냥 오(五) 촌(寸) 금침(金針)을 꽂았다.
바로 무림도상에 귀보(貴寶)로 알려진 생사회혼신침(生死廻魂神針)이었다.
백팔금침대법이 훌륭한 의학이라 해도, 삼백육십혈에 꽂은 생사회혼금침법에는 한수 아래였다.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가 어이해 이런 곳에 누워 있지?"
소년은 주먹을 쥐려 했다.
하지만 조금도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 자신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기분은 마치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고, 약간은 어지러웠다.
"……?"
그가 눈을 깜빡일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년은 눈동자를 굴려 나타난 인물을 주시하다가 반색을 띄웠다.
"하… 할아버지!"
소년은 바로 사마강이었다. 그의 신체가 기이하게 변해 있었지만 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허허… 강아, 이 멍청한 녀석아! 어이해 천하괴수(天下怪獸)를 맨손으로 잡으려 했느냐?"
노인의 손에는 둥근 쟁반이 들려져 있었다.
사마강은 코끝을 취하게 하는 향기(香氣)를 의식하며 쟁반 위를 살폈다.
쟁반 위에는 밀랍으로 싼 용안(龍眼)만한 단약과 쓴 약향(藥香)을 풍기는 탕약이 절반쯤 깨어진 사기 그릇에 담겨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저를 구하셨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네놈을 죽게 하면 그 아름다운 피리 소리(草笛聲)을 듣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노인은 쟁반을 한쪽에 놓더니 다짜고짜 사마강의 전신에 꼽혀진 금침들을 능숙한 솜씨로 뽑아 내기 시작했다.
그런 후 두 가지 약을 내미는 게 아닌가?
"먼저 탕약(湯藥)을 마시도록 해라."
사마강이 탕재를 받아 한 모금을 들이키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허허… 맛이 어떠하느냐?"
"크으음… 정말 고약하군요?"
노인은 밀랍에 싸여진 단약을 내밀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 이것을 먹도록 하라."
"이 약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만년삼왕단(萬年蔘王丹)이라 부른다."
사마강은 약의 향기가 의외로 좋아 물었는데, 노인의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만년삼왕이란 말입니까?"
만년삼왕(萬年蔘王)은 정녕 인세에서 수만 년에 하나도 찾아 보기 힘든 무가지보(無價之寶)의 보물이다.
삼왕의 실뿌리 하나만 하더라도 악양 거부가 될 만큼의 돈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약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마강이었지만 만년삼왕이란 엄청난 성약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었다.
"이… 이것을 제가 먹어야 하나요? 할아버지는… 늙고 병드셨으니, 차라리 할아버지가 복용하십시오."
묘지기 노인의 얼굴에 한순간 희색이 스쳐 갔다.
"허허… 사실 그러고 싶다. 너의 정성이 가상하여 냉큼 집어먹고 싶구나. 그러나 네놈이 혈갑룡의 냉혈과 내단(內丹)을 모두 집어먹어서 그것의 음양 조화를 시키려면 이것마저 먹어야 한다."
노인은 행여 사마강이 거부할세라 반 강제로 사마강에게 환약을 복용시켰다.
사마강은 목구멍에 달군 불더미가 들어가는 듯한 열기를 느꼈다. 동시에 금침을 뽑아 낸 삼백육십혈에서 살을 에이는 듯한 찬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우악!"
그는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아랫배가 갈기갈기 찢겨져 버리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그래도 그는 뒹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아랫배를 움켜잡은 채 신음성을 발하며 떨고 있을 뿐이다.
"……."
노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감탄이 어렸다.
'허어, 이 녀석의 인내력은 지난날 화타가 치료했던 관운장을 능가하는구나. 어린 나이에 이토록 대단한 참을성이 있다니!'
노인은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사마강이 미처 보지 못했지만 허공에 가득 찬 손 그림자는 연꽃을 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헌원무영십칠해(軒轅無影十七解)!
전설로 전해지는 의도제일지(醫道第一指)였다.
이 갑자 이상의 공력이 없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으며, 무림쌍제(武林雙帝)라 일컬어졌던 천하의제(天下醫帝)의 비전절기였다.
아, 그렇다면 이 묘지기 노인이 이백여 년 전에 천하를 주유했던 전전대의 대기인이란 말인가?
무림쌍제란 검제(劍帝)와 의제(醫帝)를 동시에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은 당시 의술(醫術)과 검술(劍術)에 미쳤던 사람들이다.
- 나는 고금제일검도(古今第一劍道)를 이루겠네. 아니, 영세제일검도(永世第一劍道)를 이룰 것이야. 그것을 익히기 전에는 영원히 나는 이 땅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네.
- 노부는 천하의 괴질로 알려진 두 가지 특이한 절맥(絶脈)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네. 태어나면서부터 독인(毒人)이 된다는 천독절맥(千毒絶脈)과 태어남과 동시에 색마(色魔)가 된다는 천염화정골(天艶花精骨)을 치료해 보겠다는 말일세.
무림쌍제는 이 말과 함께 강호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공언은 곧 하늘에 도전(挑戰)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하늘이 천형(天刑)으로 내린 두 가지 절맥과 하늘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검술을 익히고자 은거한 두 사람은 이미 인간 한계를 초월했기에 그토록 광오할 수 있었다.
세인들은 그들이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리라 믿었는데, 여기에 의제가 살아 있었을 줄이야!
노인은 사마강을 반듯하게 눕혔다. 그런 후 그의 전신 요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노인의 얼굴이 점차 붉게 상기되었다. 송글히 진한 땀방울이 맺혀 갔지만 노인은 쉬지 않았다.
무려 한 시진 동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노인은 한순간 축 늘어뜨린 손길을 멈추었다.
"아아, 노부의 진기가 탕진되어 버리는구나. 이 녀석은 노부가 채우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그릇이다."
노인은 천천히 사마강의 가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앞가슴에 꿈틀꿈틀한 글씨이지만 분명 은은한 금빛 광망을 빛내는 하나의 글자가 아로새겨졌다.
<천(天)>
이 신비로운 현상을 응시하며 노인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 이 아이만 가르칠 수 있다면 노부가 못다 이룬 한(恨)을 풀 수 있으련만… 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탄스러울 뿐이다."
고요히 잠들어 있는 사마강(司馬 )의 표정은 티 한 점 없이 밝기만 하다.
노인의 장탄식이 다시 그의 얼굴 위로 흘렀다.
첫댓글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