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부분 공감이 가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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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본 칼럼인데, 무술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내용이 칼럼에 맞지 않게 조금 깁니다만,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일단 보셨으면
끝까지 읽으셨으면 합니다.
아마추어 무술사이트인 MAS를 몇 년간 운영하면서 가장 빈번하고 격렬한 토론거리를 꼽자
면, ‘어떤 무술이 강하고 약한가?’에 대한 논쟁일 것입니다. 논쟁의 시작은 대체로, 어떤
무술이 강해지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초보자의 질문에서 시작하여 어떤 무술이 강하고
어떤 무술은 약하다라는 식의 비평이 뒤를 이으면서 논쟁이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자신
이 수련하는 유파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들의 반박이 반복되며 결국에는 상호비방과
인신공격으로 토론자체가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똑같은 패턴으로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 논쟁은 결국 한가지 결론으로 흐지부지 끝나게 되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즉 한국무술계에 내려오는 절대적인 진리와도 같이 여겨지는 말인 ‘무
술자체에 우열은 없으며 그것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 이라는 결론이 그것입니다. 거
기다 어느 무술이 강하고 약하다라는 쓸데없고 건방진 논쟁보다 그 시간에 수련에 힘쓰는게
더 올바르다 라는 가르침까지 강요받게 마련이구요.
이러한 꾸짖음에는 다른 어느 분야 보다 ‘네가 뭔데 무술을 왈가불가해?’ 라는 무한한 자
격지심을 유발하는 한국무술 특유의 일방통행식의 사고방식이 작용합니다. 거기다 흑백이 갈
리는 명확한 주제도 아닌지라 막판에 가서는 논쟁자체가 흐릿해지며 누구나 순순히 혹은 따
로 반박할 말도 없기 때문에 기존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가르침에 반발심이 생깁니다. 왜 어떤 무술이
강하고 약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건방진 것일까? 그리고 진정으로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의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이와같은 화두에, 필자 역시 나름대로 오
랜 시간 생각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무술이 강하고 약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매우 당연한 것이며, 강하고 약한 무술의 차이점은 명백히 존재한다고 말입니
다.
-강하고 약한 무술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
강하고 약한 무술에 대한 의문은 매우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유치하거나 건방지다고 보는
이들은 무술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술이란 것을 고
차원적인 정신수련의 도구나 종교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무술을 무술자체로 본다면 강하고
약한 기술, 유파에 대한 의문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산업이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우수함과 열등함을 시장에 의해 판별된
다는 것은 무술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를 살펴보면, 어느 무술의 유파가 강하고 약하느냐
에 대한 의문과 비평은 무술의 유파가 존재했던 때부터 있어온 당연한 의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술이란 실전에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무술이 다른 무
술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수하며 강해지게 만들어 주느냐는 그것을 수련하는 사람의 신상에
관련된 중대사였기 때문입니다. 비단 수련생의 입장에서 목숨을 건 실전을 염두하고 수련하
는 것이 아니라도 무술의 본질은 상대와 싸워 이기는데 있기 때문에 타 유파에 비해 강하다
는 평을 듣는 무술을 수련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따라서 고금을 살펴보면 어떤 무술이라도 타 유파와 싸워서 강하다는 평을 듣는 무술이 발전
하고 부흥했으며 실전에서 강함을 증명했던 무술인들만이 존경받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타 유파보다 실전에서 강하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건 무술에 있어서 숙명과도 같습니다.
때문에 무술을 어떠한 목적에서 배우려 하건간에 수련생을 소비자로 본다면, 좀더 경쟁력있
고 우수한 무술을 선택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강하고 약한 무술에 대한 의문 역시 지극
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에 의해 무술자체도 무술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고 기술적으로도 발전하
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무술에 대한 당연한 의문조차 금기시 되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분위기라면
당연히 무술본래의 목적에도 충실할 수 없고, 수련생이라는 소비자나 잠재적인 소비자 역시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시대흐름조차 외면한다면 무형의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술이 사람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끌만한 요소를 상실하여 결과적으로 무술을 침체상태에 빠
져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약한 무술에 대한 물음은 무술자체의 발전이나 부흥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
고, 무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목적에서 무술을 익히건 간에 그것에 관해 늘 의문을 가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전에서 강한 무술, 혹은 약한 무술에 대한 의문
과 평가는 대부분의 무술 유파에게 있어서 생존과 존재이유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때문
에 ‘무술자체에 우열은 없으며 그것을 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란 생각은 무술유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타 유파와의 경쟁이나 실전에서의 강함을 배제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 무술에서 '실전'의 의미
무술사이트의 게시판을 둘러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 '실전'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하는 입문자나 선배들이나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무술에서의
실전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실전은 무엇일까요? 실전의 단어적인 의미는 실제로 싸운다라는 것이고 이것에 대
해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싸운다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생각
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떤 이는 무술에서 '실전'이 길거
리에서 우발적으로 깡패나 불량배와 싸우는 것을 의미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술의 고수가
목숨을 걸고 다른 무술인과 벌였던 대결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해석 모두 무술에서의 실전을 넓게 볼 때 포함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현대의
무술에 있어서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한 가지 더 포함된다고 봅니다.
바로 프로무술(격투)시합에 있어서 유파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공식적인 대결이 그것입니다.
과거의 옛 무술에 있어서는 실전이란 것이 위에서 언급한 길거리에서의 우발적인 싸움이나
타 무술 인과의 목숨 건 승부가 실전의 전부였으며 유파의 우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파를 대표하는 직업 무술인 들의 프로시합이 활성화 되
면서 프로시합 자체가 무술의 실전이란 것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유파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 무술에 있어서
'무술의 실전'은 자기네 유파 안에서 만의 시합이 아니라
오픈된 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시합규칙) 에서 유파를 대표하는 선수가 타 유파의 대표선
수와 기술을 겨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무술시합이 가능하려면
시합자체가 모든 무술의 기술범위를 포용할 수 있을만한 개방적인 룰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시합이야말로 모든 무술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실전’의 가장 적합한 환경이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전의 개념이 현실화된 것은 무규칙 격투 시합이 존재했던 고대의 그리스,로
마시대를 제외하면, 불과 십수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무술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
느 무술이 강하고 약하다 라는 것을 진실로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등장했다는걸 말입니다.
뜬금없이 무술유파의 강약을 설명하면서 '실전'의 의미부터 논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신
분도 계시겠지만, 실전의 의미부터 살펴본 것은 바로 이 진정한 '실전'의 의미가 무술 유파
의 강,약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자는 실전이란 것이 왜 무술유파의 강약을 선별할 수 있는 요소라고 보느냐고 따
질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 중에는 무술 본래의 목적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나 양생적인 면으로 무술에 접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즉 무술을 심신단련의 수단으
로써 절도와 예의를 배우고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다스리는 것이 무술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그것이겠지요.
물론 무술에서 위에서 언급한 '실전'의 의미를 배제한 체 심신의 건강을 목적으로 두는 것
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의 입장에서는 '실전'이란 것이 배우는 목적에 따
라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저 또한 무술의 양생적인 부분을 결코 무시하
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과 본질은 바로 '실전에
서의 강함'에 있다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무술의 본질 자체가 '실전에서의 승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의 검성이라
추앙받는 미야모도 무사시가 검술이란 상대를 베는것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듯이 맨손무
술이라면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 바로 그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무술의 본질과 실전의 중요성
무술이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에 존재이유가 있다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시리
라 봅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아름다운 말로 무술을 신비화하고 포장하려 해도, 무술본래의
의미가 상대와 싸우는 기술 이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즉, 무술에 정신적인 부분이나 예의범절, 양생적인 부분을 덧칠하여도 무술이란 것은 적과
싸우는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가장 무술의 참다운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
서 무술이란 것을 사람을 살상하는 흉악한 기술만으로 폄하하려는 의도로 말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설마 일본의 劍聖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가 검술을 폄하하려고 '검술이란 상대를 베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겠습니까?
축구라는 것이 상대의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별 의미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그 행위를
통해 협동심이나 심신단련 등의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무술이란 상대를 이기는
기술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수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어떤 운동에 못
지 않고 이런점이 바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현실에서 그다지 쓸모없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
는 무술을 수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겠지요.
그래도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건, 무술의 생명은 실전에서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며 그
외의 목적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무술을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의 목
적으로 수련한다고 해도 이러한 실전이라는 무술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무술의 길에
서 이탈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무술의 主(주)가 실전에서 이기는 것이라
면, 客(객)이 정신수양이나 심신단련등의 부차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술에서 유파의 숙명은 타 유파에 비해 얼마나 강하느냐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
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강한 유파나 기술은 그 강함이 증명
되었을 때 널리 확장하려는 성질을 가집니다. 즉 강한 유파는 가만히 있어도 다른 유파에서
그 유파의 좋은 기술이나 노하우를 얻으려고 하며 자연스럽게 강한 유파의 기술이 퍼지게 된
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약한 무술의 유파는 실전을 도외시하며 그 특유의 기술조차 타유파와 전혀 교
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 모든것이 바로 무술의 본질인 실전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때문에 유파가 흥하고 기술적으로도 진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무술의 본
질과 실전에 끊임없이 접근하고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의 차이점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의 차이점에 대한 감을
잡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무술에서의 실전의 의미는 바로 이 단
락에서 말하고자 하는 유파에서의 구체적인 강약의 차이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
입니다.
필자가 이제까지 설명한 무술의 본질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있는 무술이건 간에 오로지 실전
에서의 강함(타 유파와의 대결에서의 기술적인 우월함)에 있으며, 그것으로 유파의 강,약의
기준을 삼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원칙은 무술에서 실전의 의미를 전제로 한다면, 모든 무술에 있어서 공통적으
로 통용될 수 있다는 있는 원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강한 무술의 원칙
첫째, 무술의 본질인 실전에 대한 적극성.
둘째, 오픈된 룰의 지속적인 시합과 적응력. 부차적으로 두터운 선수층.
셋째, 타유파와의 적극적인 기술교류와 기술의 확장성.
넷째, 인체의 역학에 기초한 단순하고 합리적인 기술체계
이러한 원칙들은 필자가 생각나는 대로 열거한 것이지만, 강한 무술과 유파의 특징에 반드
시 포함되는 원칙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원칙들은 서로 연관성이 깊습니다. 이것을 반대
로 뒤집어서 본다면 약한 무술의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에 충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을 나누는 기
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강한 무술의 기준이란 앞에서부터 누차 강조해 왔
던 것처럼 오픈된 룰에서 타유파와 싸워 이길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유파를 말하는 것입니
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길 수 있는’ 이라는 대목에 의문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이길 수 있
다‘ 라는 건 어느 정도의 범위를 말하는 것인가?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건 강한 유파는 아마추어 수련생의 평균적인 실력조차 약한 무술보다 강하지만, 유파를
대표하는 최고수끼리의 시합은 뚜렷히 구분될 정도로 더욱 강하다는 것입니다.
즉 강한 무술이란 그 유파에 속한 직업적인 무술인이나 아마추어 수련생이나 다른 유파에 비
해 '실전‘에 강해지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더 짧고 더 합리적이며 평균적인 실력조차 약한
유파보다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길 수 있다‘라는 범위를 좀더 분명하게 정한다
면 당연히 유파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선수층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
석은 서로 다른 유파의 정상급 선수들의 시합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픈된 룰의 이종(異種)의 격투시합을 접하지 못한 사람이 서로 다른 기술체계를
가진 유파끼리의 기술대결을 쉽게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필자가 위
에서 언급한 강한 무술의 원칙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말로 들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종의 격투시합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무술끼리의 상상의 대결을 가정해
보면 어느 정도 실체가 보이기도 합니다.
송강호가 주연한 반칙왕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친구가 운영하는 도장에 찾아가 헤드락
이라는 기술에서 탈출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범인 그 친구는
자신이 직접 접해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기술체계를 갖춘 타무술의 기술에 대항할 만한 기술
과 상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즉 그것은 사범 개인의 기량문제가 아니라 유파자체의 문제로써 타 무술에 저항할만한 기술
자체를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영화속에서의 에피소드였을 뿐 아니라 현실에
서 동종의 어떤 도장에 찾아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한 주인공
은 결국 헤드락이라는 조르기 기술에 탈출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관련 기술을 훈련하는 체육
관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그대로 시합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십수년전에 이종격
투의 초창기에는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만, 결과는 영화속에서 주인공의 친구의 답변과 같습
니다. 동양무술의 붐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수련인구를 가지게 되었던 그러한 유파들은 쉽게
말해서, 실전에 무관심한데다 타유파에 무지했고 유파내의 시합조차 폐쇄적인 룰로 인해 기
술적인 고립을 자초한 것입니다.
결국 기술적으로 약한 유파들은 타 유파의 정상급 선수들이 겨루는 실전의 무대에 아직까지
도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간혹 등장한다고 해도 동종의 타 무술에게조차 전패에 가
까운 참담한 결과를 얻기 일쑤입니다.
반면에 강한 무술의 특성을 갖춘 무술은 어떨까요? 강한 무술의 원칙이 뚜렷하게 적용되는
무술중에 하나인 브라질 주짓수(柔術)는 강한 무술의 특징을 갖춘 무술이라고도 할 수 있습
니다. 타유파와의 실전에 유달리 집착했던 유도인이었던 마에다 미츠요에 의해 브라질에 전
해진 유술은, 화려한 기술이 옳다고 평가받던 시대에 조차 오로지 실전을 염두하며 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발리투도(vale tudo)라는 모든걸 허용하는 가장 오픈된 룰에서 타유파와 지속
적인 시합을 통해 실전에서의 강함을 증명해 왔습니다.
결국 타유파와의 대결이 현실화된 현대에 이르러 브라질 주짓수는 그 기술을 세계로 확장시
킬 수 있었고, 수련인구를 늘리며 실전에 가장 충실한 무술중에 하나라는 세인의 평가를 얻
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만약 영화 반칙왕의 주인공처럼 실전에 대한 해답을 원하는
수련생이 있다면 브라질 주짓수와 같이 강한 무술의 원칙이 통용되는 무술을 찾게 될 것은
뻔한 일이고 그 기술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퍼지게 될 것이며, 강하다는 평가를 이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의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면 많은 수련인구와 두터운 선
수층을 가진 무술이 왜 약한 무술에 속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술이 이종격투시합인 UFC나 PRIDE, K-1등의 흥행성 격투시합에 출전해서 강함을 증명해야
될 이유도 없으려니와 많은 수련인구 자체가 유파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 필자는 많은 수련인구를 보유한 무술이 반드시 강한 무술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고 잘라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수련인구와 두터운 선수층은 직업 선수들의 신체적인 혹은
기술적인 퀄리티(질)를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으로 타유파와의 시합에서 승리한다고
는 볼 수 없습니다.
개방적인 룰(rule)의 시합에서 타 유파보다의 강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두터운 선수층이
나 수련인구는 별개의 문제이고 오로지 강한 무술의 원칙에 적합하느냐와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에 적합한 유파라면 설사 고작 백명에 불과한 선수층이라도 천만명의 수
련인구를 보유한 무술의 선수층보다 실전에서 더 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가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기술체계의 무술이 맞붙는 이
종격투시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극단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즉 이종격투시합에서와 같은 오픈된 룰에서의 시합이라면 수많은 수련인구
를 보유한 ‘약한 무술의 원칙’에 해당하는 무술의 대표선수가 출전한다고 해도 ‘강한 무
술’의 대표선수들을 이기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언급한다면, 가라데, 태권도, 쿵푸(중국무술을 포함한)같이 많은 수련인구를
가진 무술의 선수들이 강한 무술의 원칙에 해당하는 무술 한두가지를 조합한 기술을 연습하
는 소규모 유파나 단체에게 ‘실전’에서의 승리를 얻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가라데,태권도,쿵푸의 진정한 최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고 시합의
룰 자체가 종합격투기 선수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
다. 이러한 반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세계 격투계의 흐름에 무관심내지는 무지한 내
용이 대부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고, 또 받아들이
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신생 격투시합들을 폄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무술은 수련인구와 대중적인 인지도 내지는 인기도와는 별도로 강한 무술의 원칙에 충
실하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강했던 유파가 약해지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최영의 관장(일본명:오야마 마쓰다츠)이 실전에서의 강함을 목적으로 창시한 유파
인 교쿠신 가라테(極眞空手)는 실전에 대한 적극성, 개방적인 룰에서의 시합과 타 무술과의
기술교류를 통해 일본에서 가장 강한 가라데 유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강한 무
술의 원칙에 충실한 결과 절대적으로 실전에 강한 무술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고 많은 수련인구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창시자와 선배들의 명성에 후배들이 안주하면서, 타무술과의 교류에 적극적이
지 않게 되었고 실전의 적응력이 떨어지는 룰을 시합에 채택한 결과, 이종의 격투시합이 현
실화된 지금에는 약한 무술에는 더없이 강하지만 강한 무술과의 시합에는 통용되지 않는 기
술을 수련하는 유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일관되게 강한 무술의 원칙을 지켜나가
지 못한 탓에 분파인 정도회관이 주최하는 동종의 입식타격시합인 K-1에서 무에타이류의 기
술에 비해 실전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세상에 드러냈고 이종격투의 시합에서는 전혀 통용되
지 않는 기술이라고 까지 낙인이 찍히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약한 무술의 원칙’에 따랐던 유파의 선수들은 오픈된 룰의 실전에서 타유파
의 선수와 싸우기 원한다면, 자신들이 오랜시간 연습한 기술을 버려두고 ‘강한 무술’의 기
술들을 새로 습득해야 했습니다. 앞에서 강한 무술의 원칙에 언급했듯이 강한 유파의 기술
은 오로지 실전에 강해지기 위한 기술이기에 다른 강한 유파의 기술을 조합하거나 흡수하는
등의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실전에 충실한 강한 무술들은 실전의 승리라는 본질적인 목적을 위해 기술을 발전
시켜 왔기에 서로의 기술체계에 유사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술체계에 유사점이 많다는 말
은 강한 무술의 원칙인 오픈된 룰에서의 지속적인 시합이나 타 유파와의 기술교류를 활발히
한다면, 결과적으로 인체의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움직임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
다.
그러므로 타 유파와의 교류에 무관심하고 유파 내에서조차 실전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인
룰의 시합을 고수한 무술이 있다면, 그런 유파는 신체적으로 우수한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전적인 룰의 시합에서 결코 ‘강한 무술의 원칙’에 충실한 무술의 유파
를 기술적으로 압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강한 무술만이 가장 실전에 충실한 시합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또 그런 유파의 기술
이 실전에서의 승리를 원하는 선수와 유파에게 확장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실전적이며 또
한 무술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룰의 시합들이 생겨난지 십여년이 지난 오늘날, 결국 현대
의 ‘실전’에는 강한 무술과 그 기술을 연습하는 선수들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무
술을 아는 사람 혹은 아무런 편견에 휩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무술을 가리켜 ‘실전’
에서 강한 무술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강한 무술과 약한무술을 논한 이유
우리나라 혹은 해외에서도 무술에 있어서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프로격투시합,
심지어는 유파내의 시합조차 진정한 무술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꽤 많습
니다. 그리고 타 유파등과 겨루어 강함을 증명하는 것 따위는 속물적인 것이며 무술에 있어
서 차원이 낮은 관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전을 중시하는 타 유파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분개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실전이란 것에 회의를 제기하면서도 오로지 실전에서 강함을 증명했던 옛 고
수들이나 선배들을 동경하고 옛 일(실전에서 강함을 증명하던 때)로 현재 자신들의 유파의
강함을 변호하려고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무술의 본질이 실전의 승리에 있다는 것을 스스
로 알고 있으면서도 과거로부터 그릇된 무술철학과 편견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인 탓입니
다. 즉 격투시합을 진짜 무술로 여기지 않는 것이나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을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 등은 모두 무술본래의 모습에 비추어 볼때 편견과 그릇된 생각을 오랜시간
에 걸쳐 학습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술은 무술다운 모습과 자세를 보일때 가장 강하고 그 존재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파
의 정체성이나 기술적인 개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혹은 여건이 안된다는 변명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강한 무술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약한 무술이라는 더 없이 자존심
상하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타유파와 실전에서 경쟁한다는 개념자체를 거
부하고 양생이나 호신에 몰두하면서 실전에서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유파에게도 해당하
는 말입니다.
위에서 몇차례 언급한 ‘검술이란 상대를 베는 것 뿐이며, 이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라는 미야모도 무사시의 말은, 무술에서 실전의 의미가 퇴색하게된 막부초기에 이르러 남에
게 보여주기 위한 기술, 혹은 실전에 쓸모없는 기술을 연습하는 유파들에 대한 일갈의 의미
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점은 현대의 여러 무술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
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검성이라 평가받는 미야모도 무사시의 말로써 강한 무술과 약한 무술을
감히 논했던 이유를 대신할까 합니다.
-오륜서중 이론에 그치거나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진실되지 못한 유파를 향해
“ 물론 이러한 사람들도 그 정도까지 되기에는 끊임없는 신체의 단련과 마음의 수련을 거듭
했겠지만, 그런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면, 그것은 그저 도(道)의 껍데기 같은 것이라서 뒷날
까지 그 나쁜 영향이 없어지지 않아 무술의 진정한 도(道)가 썩고 쇠태해 지는 원인이 된
다. 검술의 진정한 도(道)라고 하는 것은 오직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며, 이것을 제외한다
면 아무것도 없다...”
- 미야모도 무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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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번글이 뭔지 궁금해서 퍼날랐더니...
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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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0 03:18
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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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논외로 하고 극진가라데의 실전성은 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칼을 맨손으로 잡고 30인 조수 100인 조수...1대 다의 대련형태를 승급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그렇구요. 최배달선생의 실전경험이 그대로 녹아든 아주 실전적인 무도라고 생각합니다.
극진가라데는 실전무술 아닌가요??? 다른 허접한 체조들이랑 격이 틀리죠
저는 이글에 찬성 할 수 없네요. 현재 사용되는 이종격투룰이 실전이 될 수가 없죠. 실전은 판이하게 틀려질거라 생각됩니다. 낭심차는 무에타이 동영상이 있잖습니까? 그걸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자세와는 판이하게 다를겁니다
당연하지만 이종격투룰과 실전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나마도 비슷한 것은 1대 1맨손격투인데 그것과 이종격투룰과도 많은 차이가 있지요. 본시 다른 무술간의 겨루기를 하기 위해 생긴 이종격투룰이 언제부터 실전룰로 둔갑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자세한 비교는 저의 글 11591 용어정리: 실전, 맨손격투, MMA에 보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