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냉 아르토,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조동신옮김, 도서출판 숲, 2003년
작년 5월인가, 카페 사람으로부터 이 책에 대해서 들었었다. 잠깐 읽어보고 넘어갔는데, 이번달 앙토냉 아르토를 읽자고 해서, 다시 보게 된다. 보다가, 옮기고 싶은 아르토의 사유가 있어 옮긴다.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는 앙토냉 아르토가 사회를 향해 내뿜는 소리낮은 절규가 들리는 에세이다. 아르토 자신도 1937년부터 9년간 정신병원 생활을 했다. 이 책은 1947년 봄, 아르토가 파리의 오랑쥬리관에서 개최된 '반 고흐전'을 보고 난 후, 극도의 열광상태에서 쓰여진 에세이로, 생트 뵈브 비평상을 받았다. 아르토의 열광이 느껴진다. 아르토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순수한 線의 회화에 열광했는데,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온통 격동하듯 그린 반 고흐'(23쪽)를 발견했다고. 이 에세이를 통해 그가 표현하는 것은, 고흐의 자살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는 것, 역동적이면서도 순간은 고요한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보자는 것이다. 관계속에서의 자살에 대한 아르토의 견해다.
'더구나 자살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혼자서 태어나지 않았다. 물론 혼자서 죽는 것도 아니다.
하물려 자살의 경우라면 육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는,
이 자연에 反하는 행동을 결심하기 위해서라면
나쁜 인간의 대무리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극단적인 죽음의 순간에는 항상 누군가 배후에 있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박탈한다고 믿는다.'(110쪽)
앙토냉 아르토는 책에서, '반 고흐는 정신착란 특유의 증세로 죽지 않았다.'라는 것을 수차례 반복한다. 정신병원 의사들을 향해 지나칠 정도의 불신을 드러낸다. 이는 예술가의 광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투척하는 견해일 수도 있다. 그를 죽인 것은 정작은 세상(사회)이라는 것이다.
'나는 맙소사, 그가, 어떤 나쁜 정신에게 옥죄인
구슬프고 처참한 그의 삶에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37세의 나이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반 고흐는 자신의,
즉 그가 가진 고유한 광기의 해악으로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이 죽음에서 직접적이고 효과적이고 충분했던 원인은
이 나쁜 정신 - 죽기 이틀 전에 가셰 의사로 불렀던 즉흥적인
정신과 의사 - 으로부터 받은 압력이었다.
나는 반 고흐가 그의 동생에게 보낸 숱한 편지들을 읽으면서
' 정신과 의사인 가셰 의사가 사실상 화가로서의 반 고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천재로서의 반 고흐를 증오했다는 확고하고도
진정한 확신을 얻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더불어 분명한 광기의 특징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 광기란
비천한 무리의 케케묵은 격세유전의 반사작용을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리고 비천한 무리의 옷을 걸친 모든 과학자들이
모든 천재들의 타고난 천적이자 숙적이 되는 광기이다.'(40-41쪽)
예술가적 천재성이기에 타고난 천적이자 숙명인 광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연에는 그런 광기가 없는지, 언제나 고요한 자연인지를 묻는 것이다. 가셰의사의 말은 고흐를 심장을 향해 총을 쏘는 절규와 마주치게 했다는 것이다. 옮겨본다. 실제 고흐의 심정이 이랬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르토가 품어내는 예술가 고흐로 귀를 기울인다.
'가셰 의사는 반 고흐에게
'나는 당신의 그림 작업을 북돋아주기 위해 있는 사람이오'라고
말해준 적이 없다(내가 로데즈 정신병원의 수석 의사인
가스통 페르디에르에게서 '나는 당신의 詩를 붇돋아주기 위해
있는 사람이오' 하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가셰 의사는 오히려 그를 쫓아내면서 있는 그대로 대상을 그리라고,
생각하는 고통을 떨쳐내려면 풍경 속에 파묻히라고 했던 것이다.
이 말에 반 고흐가 고개를 끄덕이자마다
가셰 의사는 반 고흐의 사유의 스위치를 봉해버렸다.
마치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더욱이 이 세상 부르주아의 모든 무의식이 백 배로 억압된
사유의 케케묵은 마력으로 고스란히 아로새겨진
경멸 어린 콧주름 하나를 보여주면서.
이런행동으로 가셰 의사가 고흐에게 금지시켰던 것은
문제의 생각하는 악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종자의 발아,
한 가닥 목젖에 걸려 맴도는 못 같은 처절한 고통마저 금지시켰다.
이 때문에 반 고흐는
마비된 채로
가쁜 숨을 밑바닥까지 톺으며
그림을 그렸다.
왜냐하면 반 고흐는 지독한 감수성이었기 때문이다.'(43쪽)
화가 고흐(의 그림)에 대한 아르토는 견해다. 고흐는 단지 자연에 존재하는 해바라기를 자연의 해바라기로 그린 화가였다. 있는 그대로. 바람결에 움직이는 밀밭을, 무리지어 날아가는 까마귀, 신체의 고통을, 고요한 한순간을 그렸다. 바람없이 햇살만이 고요히 비치는 고요하기만한, 자연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광포한 자연, 불타는 자연, 할퀴는 자연이다. 이러한 자연을 그대로 그린 그라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세상에 뭔가를 내놓으려고 했던 고흐다.
'반 고흐의 그림의 격렬한 빛은
우리가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
빛의 어두운 낭송을 시작한다.
화가일 뿐인, 그리고 그 이상도 아닌 반 고흐는
철학도, 신비주의자도, 儀式도, 정신 외과의도 아니고,
종교 의례도 아니고, 역사도 , 문학도, 詩도 아닌 것들로
그의 구릿빛 해바라기들을 그렸다.
그저 해바라기처럼, 그 이상도 아니게 그렸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해바라기 한 송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
반 고흐로 되돌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의 폭풍우와 비바람 치는 어떤 하늘,
자연 상태의 넓은 들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분명
반 고흐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75쪽)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가 그린 마지막 그림, '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해서 아르토가 열광하여 얘기한 부분이다. 조금 길지만 옮겨본다. 이미지와 함께 보면, 저절로 감응이 올듯하여.
'자신의 까마귀들을 그리기 위해 트뤼프버섯의 이 검정색,
'호화판 연회'에나 나옴직한 이 검정색을 발견하고,
아울러 저녁 무렵 저무는 빛에 놀란 까마귀들의 날개를
시커먼 배설물처럼 그릴 줄 알 것이다.
그렇다면 휘황찬란한 까마귀들을 날갯짓
-분명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 고흐에게만 휘황찬란한,
한편으로는 다시는 그를 자극하지 못할 어떤 악의 휘황잔란한 자태-
아래 있는 대지는 저 밑에서 무엇을 푸념하고 있는가?
그 누구도 이제껏 반 고흐처럼 대지를 피와 포도주로 흥건한
비틀린 누더기로 만든 적은 없었기에 말이다.
그려진 하늘은 매우 낮고, 뭉그러져 있고, 보랏빛이 감돌아
벼락의 밑둥 같다. 번개친 뒤 솟아오로는 허공의 가장자리에는
시커멓고 이상한 빛이 감돈다.
반 고흐는 자살한 자기 비장의 새까만 세균 덩어리인 양
까마귀 떼를 풀어놓았다. 화폭의 몇 센티미터 위로
그리고 그 아래로도
검은 흉자국 같은 터치를 통해,
까마귀들의 수북한 깃털의 날갯짓으로
대지의 폭풍의 혼류하는 것을 저 높은 곳의 권위로 짓누르려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 전체는 풍요롭다.
풍요로우면서도 호화롭고, 고요한 그림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그토록 많은 취한 태양들을
그토록 많은 흐트러진 밀짚가리 위에 휘돌게 했던,
또한 좌절에 겨워 복부에 총구를 겨누었던,
피와 포도주로 풍경화를 넘치게밖에 할 줄 몰랐던,
마지막 젖 한 방울로 대지를 흥겹도고 암울하게
시디신 포도주와 썩은 식초 맛으로 적시는 것밖에 몰랐던 자의
죽음에 썩 어울리는 반주이다.
그래서 반 고흐가, 더구나 회화의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던
반 고흐가 그린 마지막 그림의 색조는 가장 비장하고
정욕적이고 야수적인 음색을 상기시킨다.
반 고흐에게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모든 화가 중에서
최고의 화가, 아니 우리가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 이상은 아니면서
그 자체가 회화인 그가
물감으로, 붓으로, 모티프로
그림의 피사체 배치로 뭔가를 굳이 끄집어내지 않고도
삽화, 이야기, 드라마,
풍부한 이미지의 율동, 주체 혹은 객체의 본질적인 美를 호소하면서
자연과 수많은 오브제들을 열광케 한다는 것이다.'(34-36쪽)
고흐가 고갱에게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에도 그가 그린 마지막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관한 얘기가 있다. '나는 밀밭을 그려 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제대로 스케치할 수가 없다네. 겨우 청록색 줄기, 리본처럼 가느다란 잎사귀, 먼지로 인해 꽃방울이 생기를 잃고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밀이삭을 그렸네. 밀밭 그림을 그린 다음에는 인물화 몇 점을 그려 보고 싶은데 배경은 무척이나 생생하면서도 침착한 느낌을 주어야 할 것일세. 산들바람 속에서 잔잔하게 흔들리는 이삭을 연상시켜 주며 전체를 같은 초록색조로 채색한다는 것인데, 그 작업은 결코 수월하지 않을 것일세.
-1890년 친애하는 친구 고갱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언젠가 봤던 시공사에서 나온 <반 고흐 - 태양의 화가>책 에서 인용했다. 고흐가 보낸 편지가 인용되어 있는 그 책에서 조르주 바타이유가 말하는 고흐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르토에게서, 고흐로 가서, 한 번 적어본다.
'어떻게 한 인간이 그토록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탁월한 설득력을 발휘할 수가 았을까. 어떻게 그토록 무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혼돈의 영역에서 한치의 의심할 여지도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빛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을까. ...(중략)...
오만하지않고 수수하게 군중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는 빈센트의 비극적인 그림들을 경외감에 가득 차 바라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빈센트라는 인간자체(빈센트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나 너절한 걱정거리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며 휘청거렸던 사람이었다)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벌거벗은 육신을 감싸고 있으며 힘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한 인간의 무한한 소망에서 위대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다가오는 위대함에 압도당하면서 그가 느꼈던 두려움은 빈센트의 귀, 사창가 그리고 그의 자살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빈센트는 울면서 웃으면서 사랑하면서 아니면 그 무엇보다도 몸부림치면서 인간의 비극을 평생의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었을까?'(150쪽, <반 고흐 - 태양의 화가>)
예술로부터 위안과 설득력, 그리고 이해(탐구) !
함께 가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