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옵신 주님께 감사 하오며,
상상을 불허하는 목사님의 철야에 가까운 사역에
가히 감탄과 경이를 금치 못하옵고
그 전도가 늘 하나님과 같이 하심을 믿습니다.
목사님께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셨으나 드리는 이 메일은 이번 210회를 마치고
리포터를 제출하는 심경으로 강좌동안 느낀 내용을 진솔하고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것이오니
다망하시겠아오나 보잘것는 글 일지라도 이 초신자의 진정을 읽는데 시간을 잠시 할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삶과 주변은 솔직히 교회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신자들과 얼굴 한 번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나
60 이 넘은 나이에 성서한번 못 읽어본대서야 하는 심정으로 무모하다 싶어 성경읽기를 시작하였으나
신앙없이 성서를 일독한다는 것은 저로선 30 년 흡연을 금연하는 인내에 비길만 하였었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 포기하기를 몇 번했습니다.
노우호 목사님 어법으로
또 봐도 모르겠고 다시 봐도 모르겠으며 자세히 보면 더욱 모를 일이니 ......!
특히 로마서를 읽는 도중 포기할 뻔했습니다.
여하튼 무슨 소린지는 도통 알 수 없는 가운데 일단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인
“모-든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까지 읽고 나니
다만 저의 참아 냄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뿐이였습니다.
그 즈음 mp3에 음악을 받고자 ‘소리바다’에 들어갔다가
노우호 목사님께서 여자아나운서와 대담으로 엮어가시는 ‘진화론’에 대하여 강론하시는 말씀을 듣고
즉시 목사님의 존함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07년 여름 모든 일을 제처놓고 에스라하우스를 찾았고
2년이 지난 이번 제 210 회 에스라강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에스라 성경 강좌에 참석 후 제가 사는 동네인 충남 보령과
벌이 때문에 옮기잖을 수가 없어 수도권 등에서 모두 세네군데의 교회를 나갔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신자이며 성경과 교회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하더라도
입에 입맛이 있고 귀에도 귀의 높이가 있듯이 그런 교회의 설교 수준이 좀 그랬습니다.
말씀하자면 당초 먹은 혀가 너무 기름져 ‘건방’이란 표현이 품위없읍니다만
달리 나타낼 방법이 없이 열정이 식었음을 변명으로 앞세우고, ....!
여하튼 먹고사는 문제등으로 교회를 두어해 거르게 되니
성경의 전체 지식이라곤 단 한번 에스라를 다녀온 1회 뿐이였으니
너무도 초라하고 부끄러운 지경입니다.
본론의 앞에 위아래와 같이 사족이나 다름없는 말씀을 길게 말씀드리는 소이는
제가 정말 의문스러운 일이니 즉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믿음의 구체적인 의문,
즉, 왜 그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반대하는 사탄을 제거하지 못하고
또 자기가 만들어 낸 백성을 그냥 천당으로 안내할 일이지
이토록 힘든 고통을 주게 하는가? 하는 것이 믿음 없는 자들의 공통적이랄
유치한 의문이며 고통이라 할 만치 답답한 일이니 도무지 이 난제에 대한 해답이 ....!?
도대체 어떤 책자에 해답이 소개되어 있으며 어떤 목사가 설교해 줄 지를 모르므로
참으로 난감한 상태에서 목사님 말씀대로 기대 이상의 기대를 갖고
이번 제210회 에스라강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글을 쓰는 까닭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느끼는 깨닭음이란 것에 오류가 없는 가에 대한 조심스러움이요
둘째가 이 단순하고 치졸한 ‘관심’에 대한 명철한 해석과 극명한 설득만이
어쩌면 세간의 교회가 전도라는 사명을 여는 열쇠가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번 강좌를 통하여 느꼈음을 감히 사뢰는 바입니다.
이번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자주 ‘인격’이라는 말씀에 유독 귀가 귀울여 졌습니다.
다른이 에겐 이미 일반적으로 깨달았음일 이 인격이라는 두 음절이 제겐 충격으로 받아드린 까닭이
이 어찌보면 인격이라는 평범한 단어속에서
감히 인간 창조 본래의 뜻을 찿을 수가 있잖을가 하는 가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사님이 신구약에 축이라 규명하신 출애굽기 19장 5절에 있는 말씀 중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계가 다 내게 속해있으니 내 말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를 내 소유로 하고
열국중에 제사장이 되어 네가 너를 “거룩”하게 하리라-. 하시는 말씀 속에 바로
이 ’거룩‘이 귀와 눈에 들어오자 모든 의문이 좀 보이는 듯한 것입니다.
인간이란 창조주 앞에 관용, 관형적 표현인 “Almighty God”에서
Almighty 를 감히 잠시 거두어 놓고 보면
인간은 하나님과 그 거룩함 만은 동격이라는 생각을 해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허락하시고
목사님께서 밝히 깨닭으셨던 출애굽기 19장에 허용해 놓은
“네가 거룩하리라 ”한 말씀을 인용하였을 뿐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거룩이란 의미는 그 본질과 개념을 쪼개어 논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 이기에
인간의 그 거룩 또한 하나님의 거룩에 버금하며 그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절대 요소가 인격이고
이 인격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절대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인간의 절대가치인 ‘인격’을 조물주이신 하나님 스스로도 어떠한 경우든
이를 자의적으로 변질, 변화 내지는 스스로 조정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세 이후로 700백년간 하나님께서 자기민족 이스라엘 ,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강원도만도 못한 이스라엘민족이 썩힌 속을 생각할 때에
무슨 징벌이라도 내실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다만 외적인 환경의 상태를 변화시켜
때론 징벌 때론 회유,경고,호소 심지어는 진멸하시려고 까지는 하셨을 망정
인간의 결대가치인 인간의 ‘인격’에 손질을 가하시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였읍니다.
제가 성경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읍니까만
두 서 너번 접해 본 만치만 생각해 보면 다만 애굽의 바로왕의 대하여 하신 것에 대하여는
자기백성 출애굽 준비와 하나님 스스로를 세상이 알게 하시려고
애굽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 하신 말씀은 바로만의 인격은
조종내지는 조정하신 것으로 감히 이해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의 도구로 삼기위하여
바로를 한번 쓰고 버릴 의도로 그의 마음을 손질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선 보호할 가치가 없는 소모적 인격에 대하여의 인격훼손 내지 변질은
한낱 도구로서의 목적일 뿐 자기의 구원의 대상인 소중한 인적자원에 대하여는
죽이거나 멸망의 의도까지는 있을지언정
인간 지고의 가치인 인격을 고치거나 훼손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고 보면 창세부터 노아까지의 창조사는 일단 홍수로 일단락이 지어지고
다만 인간은 원죄라는 숙명을 가지고 홍수 후로 넘어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까지의
구약 기간과 다시 그로부터 이제 까지의 약 이천 년간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자존심 game의 역사라고 감히 보아집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거룩하게 할 능력을 주셨고
인간은 그 받은 능력으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허락하시는 바
비로서 형성된 인격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
그 거룩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라는 애타는 마음이 하나님의 참 마음이 아닌가 엿봐지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성경 전체를 깔고 있는 분위기를 감히 느껴 볼 때
하나님은 이 뜻을 이루고자 자기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삼으셨으나
그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셨고 레위 자손에게 까지도 자기의 뜻을 구현치 못했으며
사사시대는 인간 자발의 통치,통제능력을 상실했던 인간사회의 수렴청정 같은
하나님이 뒷배를 봐 주셨던 인간의 인격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께
자주와 주권이 빼앗겼던 치명적 암울의 시대였으니
이 460년간의 하나님의 신탁통치 이후 이제 인간이 철이 좀 들었었는지
자기를 다스릴 왕을 보내 달라는 보챔으로 희대의 걸물이였던
다윗과 솔로몬이 보내졌으나 결국 이들의 망녕되고 부정적인 삶이 빌미가 되어
자손들이 남북왕국이 갈라져서는 느브네갓셀에 잡혀가게 되고
이후 지질히 못난 세월을 허송하다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오시는
인류역사의 대 사건중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으나 그래도 인간은 회개를 못했으니
결국 하나님의 애타는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고 목사님 말씀대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메시아 때 까지 인간은 패역하나
그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선 인간의 인격을 손질하는 일은 없으실 것이고
결국 천국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천국인의 인격다운 인격이 형성될 때 까지
아니 그때 까지도 절대가치인 이 인격의 본질은 변치 않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것이 당초 인간으로서는 깨닫지 못게 하셔서
예수재림까지 이루어 지도록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시나리오인지
초신자로는 도무지 알 일도 아니고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여기서 놓치고 갈 수가 없는 묵시가 있으니
감히 목사님께 여쭙기는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절대가치인 인격을 “절대존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버리고 허상을 만들고 하나님께 너무도 민망한 극악의 도를 넘는 죄악을 범하더라도
죄에 대한 벌은 따를 망정 인간의 마음을 변질하여 신위적으로(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릅니다만 인위에 반하여--)
자기를 쫓게 하지 않겠다는 눈물겨운 하나님의 인간 인격의 존중을 봤다면 저의 착각일까 싶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하나님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바 하나님의 인간적인 자존심입니다.
즉 속된 말씀으로 빈 골대에 골을 넣거나 옆구리에 충격을 주어 절을 받는 혼이 없는 숭배는 받지 않겠다라는 것
즉 존경을 받을 만한 대상에게 존경받아야 존경스럽고
거룩한 자에게 거룩함을 받아야 거룩하다는 극히 인간다운
하나님의 극단의 자존심을 엿봤다면 저의 외람된 착각이겠습까?
이러고 보니 사탄이란 존재의 문제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님은 지독히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잡아다가
바벨론으로 보낸 것은 징벌이지 멸절이 아니었음에 징벌은 회개를
회개는 가르침에 바탕을 깔진대 이 바벨론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치셨듯이
사탄이란 존재도 구원의 인적자원을 연단하여 옥석을 가리기 위한
필요 불가결의 단련수단이라는 의문 또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로써의 하나님의 인간인격 만들기 역사에는 분노와 참으심과 진노와 용서하심이,
격노하심과 기다리심이 비정과 궁휼 이 멸절과 자비가 근절과 여지가 인격존중에 바탕하심이며
이같이 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이 같은 감정으로 교감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이번 강좌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낱 촌부의 못 배운 실력으로 목사님 말씀대로 이 여쭘에
어찌 기승전결을 구비하여 구성 할 수 있겠으며,
기초 문법과 목사님께서 특별히 주의 주시는 띄어씀 마져 부족한 줄 아오나
이보다 더 훨씬 염려스러움은 소위 제가 이해 했다는 이 내용이
목사님 보시기에 과연 옳은 깨달음이였는지가 살얼음을 딛듯이 가슴이 조려집니다.
이나마 목사님의 강의 중에 나중에 느낌을 잊을 까봐 목사님과 주위 눈치보며
한 순간에 노트북에 입력해왔기에 이나마 빠르게 목사님께 이말씀을 드리므로 부족한 것이 당연히 많습니다.
고로 많은 말씀도 드리고 싶으나 목사님께 이 부분만에 대한 저의 오해를 지적바라는 바입니다.
사족을 달기는 2007년 강좌 후에도 글을 드린 바 있었습니다.
가을 기운이 드는 지리산자락은 잘 간 칼에서 느끼는 별의 서기와
올바른 지식이 내는 차고 날카로운 기운을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목사님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9월 19일
충남 보령시 동대동 백마아파트 윤 문 종 드림
첫댓글 존경 받을 사람에게 존경 받는 것이 진짜 존경 받는 것이다! 거룩한 자에게 거룩하다 여김을 받아야 진짜 거룩한 것이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한층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인간도 기본적인 거룩함이 갖추어져야 하기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윤문종님의 간증문 읽으며 노목사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하나님과 인간과 사탄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너~무 잘 정리하신것 같아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귀한 간증문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