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경력 34년이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를 비롯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초능력 마녀 유바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의 이모 페투니아 등 주로 개성 있는 조연을 맡아왔다. 이처럼 성격 강한 캐릭터만 도맡다 보니 예쁜 목소리보다는 설득력 강한 목소리를 개발하게 되었고, 이런 훈련은 생각지도 않은 결과들을 만들어주었다. 삶에 자신감이 넘치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까지 그녀를 따라 ‘자신감 충만’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녀를 따라 대학 입시를 준비하겠다는 친구들도 한둘이 아니다.
-
화법 바꿔서 큰 부자된 사람도 있다
마포 주차장 근처 주택가에는 ‘웰빙스피치센터’라는 3층짜리 아담한 건물이 있다. 범상치 않은 간판을 내건 이 건물은 그냥 봐서 뭐 하는 곳인지 금세 알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트레이닝을 받은 이후 전문 성우가 된 사람도 있고, 화법을 하나 바꿈으로써 건물을 살 만큼 돈 번 의사 이야기도 들려준다. 화법이 그렇게 중요할까? 이곳의 원장인 성우 성선녀 씨는 화법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당연하죠. 말하기는 매너의 범위를 넘어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행위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죠. 또 수다로 다져진 여성들에게 훨씬 유리하고, 더 필요한 기술이기도 합니다. 매력이 넘치면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주장이 너무 일방적이다 싶기도 했는데,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 고용주를 상대로 프레젠테이션 하거나 회사의 운명을 건 중요한 협상을 할 때, 심지어 국가간 외교적으로 중요한 회의를 할 때도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화술 없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게 불가능하니까. 실제로 외국에서는 협상용 화법을 따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화법이 이렇게 중요한데, 아쉽게도 요즘 대학생들은 발음도 부정확할 뿐 아니라, 대중 앞에 서면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합니다. 대학에서 스피치를 가르치다 보면 정말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말하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대부분 기본이 부족합니다.”
성선녀 원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말을 제대로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우리나라 말은 일본어와 달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복식호흡으로 발성해야 정확하게 발음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말할 때야 발음이 부정확해도 괜찮지만,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상사들과 미팅을 할 때는 결정적인 감점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정확한 발음은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자신에게는 자신감을 만들어주고, 결국 기대하지도 않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말하기가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다니까요.”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화법은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효율성이나 전달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좋은 화법이라는 뜻이다.
“제가 처음 성우로 활약하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1분 동안 내뱉는 단어의 글자 수는 270여 개였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370여 개에 달합니다. 그만큼 말이 빨라졌고, 전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전달력이나 호소력이 그만큼 나아진 것은 아니에요. 호소력과 내뱉는 말의 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요. 오히려 말이 느렸던 예전 화법이 신뢰도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비단, 화법 하나로 박사학위까지 이르러서가 아니라, 성선녀는 성우 중에서도 말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건 단순히 발음이 정확하거나, 목소리에 믿음이 간다는 차원과 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전국웅변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20대였던 1980년대에는 각종 ‘결의대회’(1980년대는 정부에서 주최하는 집회가 많았다)에 대표 웅변자로 초빙되었으며, 크고 작은 각종 모임 사회자는 다른 사람들을 제쳐두고 성선녀의 몫이었다. 워낙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알려져 있어서, 그녀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회의시간에 발표 하나 제대로 못할 만큼 숙맥이었다는 고백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낯가림이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어요. 누가 뭘 시키면 얼굴이 빨개지고 눈물부터 그렁거렸죠.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에서도 늘 자신감이 없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소극적으로 살기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웅변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말을 잘하기 위해서 웅변을 배운 게 아니라,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웅변을 배운 셈이죠.”
-
- ▲ 우피 골드버그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성선녀가 말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냈다. 화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녀에게 특히 믿음이 간다. 그녀 스스로가 화법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48세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 박사과정까지 마치는 불같은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저는 너무나 열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답니다. 나이요?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아주 열심히 살고 아주 열심히 꿈을 꾸는 겁니다. 꿈을 꾸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꿈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열정이 많다 보니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녀는 성우 활동뿐만 아니라 간혹 연극 무대에도 서는데, 연기에도 욕심이 많아 앞으로 ‘모노드라마’를 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배우 김혜자, 신애라 씨의 작품들처럼 멋지고 강렬한 작품이 끌린다.
“사실 무대에 선 지도 꽤 됐어요. ‘레미제라블’과 ‘열 개의 인디안 인형’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근삼 선생의 ‘게사니’를 통해선 전국연극제 연기상을 받은 적도 있죠. 방송국에서 성우로 일하는 것,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다 좋지만, 사실 희열을 느끼는 것은 연극 무대에서입니다. 혹시 압니까? 대한민국 명연기자 계보에 제 이름이 들어갈지? 열망하면 이뤄진다 하잖아요.”
그녀가 믿고 있고, 그녀가 가슴에 품고 있는 좌우명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생각한 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좌우명을 진리로 삼고, 실제 그렇게 살아왔다. 어쩌면 머지않아 멋들어진 모노드라마에 출연하는 성선녀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화술 리더십을 지닌 사람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따라옵니다”
사람을 얻는 품위 화법 10가지
성선녀가 발표한 ‘말 잘하는 여자들의 1% 튀는 전략’(폴라북스)안에는 특히 여성들이 염두에 두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다. ‘일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화법의 원칙 10 가지’는 기억해도 좋을 만하다.
1 상대의 관심 분야에서 대화의 소재를 찾아라
2 상대의 이름을 넣어 질문하라
3 사람을 얻으려면 적당히 바보가 돼라
4 최고의 경청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라
5 대화를 할 때는 눈빛도 함께 전하라
6 상대와 대화의 수준을 맞춰라
7 여자들만의 수다 터에서도 품위를 지켜라
8 화법을 연습할 때는 대화 상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라
9 칭찬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10 마음이 없다면 사과의 말을 꺼내지 마라
/ 여성조선
취재 최국태 기자 | 사진 신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