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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하나님의 사람 다윗
노우호: 다윗이 전쟁에서는 잘 이겼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망하게 하는 원수가 있다면
그는 골리앗도 아니고 블레셋도 아니고 모암이나 암몬 같은 이웃나라도 아니고
김성윤: 한 여인이었어요?
노우호: 예, 그것보다 더 가까운 자기 자신이었어요
자기를 망하게 하는 원수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우리게 이런 것이 큰 교훈인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남을 원망하기 쉽지요.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핑계하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데
사실 우리 자신들을 망하게 하는 원수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하서는 어쩌면 나단이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사무엘이 기록했다는 분들도 있지만
나단이 기록했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하서는 책이름은 사무엘하서지만
사무엘이 죽은 후의 일이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나단이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아주 위대한 점은
다윗과 같이 위대한 사람의 약점이나 과오나 결점이나 죄를
가리거나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실대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끔찍한 일을 범했는데
그런 것을 쉬- 하고 덮어 놓은 것이 아니고 역사가가 날카로운 붓으로 기록하여
후세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윗이 다른 때는 전쟁에 함께 나갔었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이길 만큼 이겨 놓았으니까
웬만한 전투는 나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요압과 함께 군인들은 전쟁에 나가서 랍바를 에워싸고 있었는데요
다윗은 그 때 전쟁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점심을 먹고 나면 약 2시간정도 잠을 잡니다
중동지방의 대부분 사람들이 습관적입니다
그런 때에 잠을 깨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다가 보니까
이웃집 여인이 마침 목욕을 하는데 아름다워 보이니까
다윗이 그 여인을 불러 오게 해서 결국은 그로 말미암아 애기를 갖게 한 것입니다
그 여인의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아주 훌륭한 장군이죠
우리아라고 하는 장군은 유대인도 아니고 헷사람 우리아인데
어떻게 해서 다윗의 군대 장군이 되었는지 몰라도
다윗의 장군 중에서 가장 충직한 장군이 아니었나 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후에 사실이 탄로 날 것 같으니까
우리아를 휴가를 오게 해서 아내와 밤을 같이 지내도록 조치를 하였는데
이 장군이 너무 충직하여 여호와의 법괴가 영채 가운데 있고
내 주 요압이 전장에 있는데 나 혼자 어떻게 편히 밤을 지낼 수가 있겠나 하면서
인간된 도리로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기어이 집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이 다음날에는 술을 많이 먹이면 아내가 생각이 나서 집에 가겠지 생각하고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 장군을 아무리 술에 취해도 충성된 마음이 변치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고 생각이 되니까
다윗이 편지를 쓰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서 요압장군에게 보냅니다
편지의 내용은 우리아장군이 전쟁에 나가서 혼자 죽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비밀편지를 요압장군이 읽고는 그대로 우리아 장군이 전쟁에서 죽게 되었는데요
그러니까 완전범죄인 것처럼 깨끗하게 처리를 했다고 생각 하였겠지요
그러나 감추인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모두 드러나게 되죠
며칠이 지나고 우리아 장군이 죽었다고 소식이 오니까
다윗이 말하기를 전쟁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넘어갑니다
그러면 완전히 끝난 것 같죠?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그냥 덮어두지 아니하시고
나단 선지자를 보냅니다
선지자가 와서 유명한 비유를 이아기 합니다
어떤 부자 집에 양이 수백 마리가 있고
그 옆집에는 가난한 사람이 암양새끼 한 마리를 사서 이불 밑에서 같이 품고 자는
그런 양이 있는데 부자 집에 손님이 오니까
부자집의 그 많은 양은 놔두고
그 가난한집의 사서 기른 암양 한 마리를 잡아서 손님대접을 했다고 하니까
다윗은 그 비유가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감히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그런 놈은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는데 반드시 죽을 자라고 합니다
다윗이 그날 화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왕을 향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
처음에는 다윗도 당황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낱낱이 설명을 합니다
김성윤: 나단 선지자가 대단하군요
노우호: 예, 목숨울 걸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런데 목숨을 걸고 들어가서 왕을 향해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했던 거죠
왕을 향해 죄를 지적하기 전에 작은 암양 새끼의 비유는 정말 놀라운 지혜죠
그리고 이런 비유를 통해 왕 자신이 자신을 먼저 죄에 대한 판결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왕을 판결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제일 높으니까 아무도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왕을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왕인 자신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비유를 통해서 왕이 스스로 자신을 재판하게 합니다
왕이 어떻게 판결을 했습니까?
김성윤: 사형이라고
노우호: 예, 사형이라고 언도를 하고나니까
비유에 적용을 하면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
[사무엘하]
12: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12: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12: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
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12: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12: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12:6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양 몇 마리 기르는 보잘 것 없는 너를 어여삐 여겨서
너를 내백성의 주권자로 삼았는데
만약에 그것 외에 네가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나에게 구했다면
이런저런 것을 더 줄 수도 있었는데
어찌하여 네가 충성된 장군의 아내를 취하여 네 아내를 삼고는 장군도 죽였느냐?
나단의 이런 책망을 듣고는 다윗 왕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나단 선지자께 무릎을 굴면서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다고 자백을 하게 되죠
놀랍게도 자백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나단선지자의 입에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왕 자신은 사형이라고 언도 했지요?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 것을 어여삐 보신 거죠
기왕에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이고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무릎을 굴고 용서는 받았지만
원수들에게 큰 회방거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귀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이 참소를 하겠는가!
이런 문제를 나단 선지자가 말합니다
[사무엘하]
12: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구원하고
12: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2:11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2: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 지라
더 놀라운 점은
왕이 이렇게 못된 짓을 한 사실을 훤히 알고 있는 나단선지자가
끝까지 왕을 보필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김성윤: 예, 그렇군요
노우호: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김성윤: 그럼요
노우호: 왕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왕을 섬기는 나단이나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알고 있는 나단을 그대로 곁에 두는 다윗이나
참 놀라운 일이죠
나단과 같은 지혜로운 선지자가 있었기에
이후 다윗가문이 한번 크게 흔들려 넘어질 뻔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다윗의 깊은 회개를 통하여 그냥 넘어가는데
용서는 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죽지는 않았지만 다윗 자신이 뿌린 것은 자신이 거두어야 합니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가 사무엘하서 13장 나오기 시작하죠
13장 1절을 읽어주시죠
[사무엘하]
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13:2 저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이 되니라
노우호: 예, 1절을 보니까 그 후에?
김성윤: 이 일이 있으리라
예, 도대체 그 후는 무엇이며 이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후의 그는 다윗왕의 범한 죄이고
이 일은 그 일에 대한 열매가 말 하는 것이죠
역사가가 그 후에 이 일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선하면 그 일의 결과도 선한 열매가 열리겠는데
그 일이 악하므로 그 일에 대한 열매도 괴악한 것이 열리게 되는 거죠
그 암논이라는 사람은 다윗의 장자입니다
장자가 배다른 공주를 연애하여 병이 낳다고 하죠?
김성윤: 예, 상사병이 났군요
노우호: 참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이 사랑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으니까 암논이 공주다말을 강간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죽이지도 못하고
자신도 죄로 인하여 개운치가 않는 판국에
이 일을 드러내놓고 문제를 삼지도 못하고 조용히 넘어 갔습니다
그런데 다말공주의 친 오라버니가 되는 압살롬이
자기 형님 되는 암논에게 보복을 하는데
자기 집에 양털 깍는다고 암논을 초대한 뒤 죽이게 됩니다
죽여 놓고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
그술 까지 도망을 가서 망명해버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나중에 요압의중재로 이 아들이 돌아오지만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압살롬이 요압에게 부탁하여 겨우 아들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이 만나서
껴안고 볼에 뽀뽀까지 하지만
그래도 부자(父子)지간에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그 이후에 압살롬이 난을 일으키면서
다윗에게 죄의 결과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이
사무엘하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사무엘서 13장부터 끝까지 이런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애환과 어려운 날들이 절절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잘못된 것을 심어서 괴악한 열매를 거두는 모습을
역사가가 ‘그 이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하면서 기록하고 있는 거죠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51. 사울왕가의 몰락
김성윤: 다윗의 범죄 이후에 가정에서 삼상치 않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군요
노우호: 예, 아무리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도 범죄하게 되면
그 죄에 대한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다는 깊은 교훈을 남기로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생애에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요난단이죠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복된 것인데
김성윤 아나운서도 좋은 친구가 있습니까?
김성윤: 예, 많이는 없지만 친구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노우호: 예, 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말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내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사람들마다 그런 친구가 있는지 솔직히 물어보면
글세, 그런 친구들을 쉽게 떠올리지 못해요
현 사회는 자꾸 친구가 없는 시대가 되어 갑니다
동양에서는 관포지교가 큰 우정으로 남아 있고
성경의 세계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을 이야기를
가장 아름다운 우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좋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제법 나옵니다
함께 손잡고 일하는 예를 들면
에스라 느헤미야가 있고요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주 좋은 친구죠
김성윤: 환상적인 콤비였죠
다윗과 요나단도 아주 아름다운 친구입니다
신약시대에 보면 누가와 바울의 경우도 꼭 한 몸 같이
한번 만난 이후로는 일생동안 그림자 같이 다니는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베드로와는 요한이 잘 맞았나 봐요
나이가 조금 차이가 날 것인데
베드로는 결단력에 있어서는 아주 과감합니다
사람이 결단력만 있어서는 안 되고 신중한 데도 있어야 되는데
요한은 신중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면이 있는데
이 두 분은 이런 면에서 조화를 잘 이루는 보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 여러분들도
신앙과 믿음 안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만난 것은
골리앗을 때려잡는 그날에
요나단이 다윗의 용기와 믿음과 담력을 보고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왜 그런가 하고 성경을 살펴보니까
요나단의 믿음의 질과 다윗의 믿음의 질이 아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요나단도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해 왔을 때
자기 아버지와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있는데
요나단이 혼자서 자신의 병기든 소녀를 데리고 블레셋 군대를 향해 가면서
요나단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님이라’
그러니까 병기든 자가
‘왕자님께서 마음에 작정한 데로 모두 이행 하소서 저는 말씀에 따를 뿐입니다’
이들 두 사람이 마음이 합해진 거죠
‘좋다, 그렇다면 우리가 숨어 있던 이 굴에서’
‘우리의 모습을 적군에게 드러냈을 때’
‘블레셋 군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 것을 기호로 삼아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기로 하자’ 하고
‘우리가 나갔을 때’
‘저 블레셋 놈들이“이놈들아!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면’
‘하나님이 저들을 우리에게 붙인 것이고’
‘저들이 “네 이놈들 게 섯거라 우리가 내려간다”하면’
‘하나님이 저들을 우리 손에 붙인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병기든 소년에게
‘어때! 한번 해볼래?’ 하니까
병기든 자가
‘왕자님!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서 굴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네 이놈들 이리로 올라오라!’한다 말이죠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소년을 향하여 싱긋이 웃으면서
‘봤지! 너도 들었지?’하면서
둘이서 올라갑니다
적진 속으로 단 두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적진에 들어서자마자
큰 진동이 적진에 임하면서 삽시간에 요나단 앞에서 20명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군사들은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가지고
블레셋 군대가 거의 다 죽었습니다
[사무엘상]
14: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14:2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14: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 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14:5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14: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14:7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14:8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14:9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4: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4: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4: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를 대하여 가로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4: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14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 인 가량이라
14:15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4: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더라
14: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 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14: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14: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4: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요나단이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 볼 때 승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상황이지만
전쟁의 이기고 지는 것은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런 승리를 가져 온 것이죠
다윗도 마찬가지로 블레셋장군 골리앗을 향해 나갈 때
말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비슷하죠?
[사무엘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김성윤: 예, 그렇군요
노우호: 믿음도 질이 비슷한 사람끼리 잘 사귀게 되지요
마음이 맞고 성격도 비슷한 믿음에 있어서 신앙의 질이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많이 비슷하고
다윗과 요나단이 아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죠
저도 같이 신학을 하면서 또 목회를 하면서
여러 친구가 있지만
몇 분은 신앙에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과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해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능률적으로 하고
모든 일에 다툼이 없고 일치가 되는
이러하니까 정말 친구가 되는 거죠
요나단과 다윗이 이런 아름다운 친구가 되는데
요나단이 많으면 5살, 적어도 한 두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내 친구라고 말 하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친구라 하지 않고 내 형 요나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정서에는 꼭 동갑내기가 되어야만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고 나이가 차이가 나더라도 친구가 됩니다
친구라는 말을 즐겨 쓰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죠
사랑하는 제자들은 종 혹은 제자이지만
‘너희 내 종이다, 너희는 내 제자야’ 이렇게 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은 이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는 사무엘상서를 가득히 채우고 있는데
다윗은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요나단을 향한 우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다윗보다도 요나단이 더 아름다운 우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당연히 사울왕 뒤에는 장자인 요나단이 왕의 자리를 차지 할 것인데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이 욕망을 가지고 우정이 깨지는 그런 일이 없는 거죠
사울왕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점이죠
다윗이 인기가 많으면 네 왕 자리가 완전하지 못하다
바보 같은 패역한 왜 이 계집의 소생아! 하면서
사울이 아들 요나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멍청하게 백성들이 다윗을 좋아하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윗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사울이 보통사람이고 요나단의 우정이 특별한 것이죠
정치적인 욕망을 훨씬 넘어서는 우정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후세에 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죠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계획은 1급 비밀 이잖아요?
하지만 1급 밀이든지 특급비밀이든지 모든 것을 다윗에게 알립니다
왜냐하면 친구니까요
‘죽이려거든 요나단 형! 당신이 직접 죽일 것이지’
‘왜! 아버지 사울왕 손에 붙혀서 죽이려고 하느냐’ 하면서 불편한 말까지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안다면 너에게 숨겼겠느냐’ 하면서
‘곧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 정확히 알아서 너에게 알려 주겠다’ 하면서
그리고 정직하게 사울왕의 마음을 파악하여 다윗에게 알려 주므로
다윗이 성을 빠져나와 망명가도록 도와주는
그런 장면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죠
결국은 사울과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과 싸우다가 함께 전사 하는데
전사한 후에 그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는지
사무엘하서 첫 부분에 다윗의 시가 한 편 나오는데
야살의 책에 기록된 ‘활 노래’라는 노래죠
요나단이 활을 잘 쏘는 신궁으로 유명하였는데
요나단이 쏜 화살은 백발백중으로 물러서는 법이 없는 용맹한 사람으로
그 활이 요나단 손에서 힘없이 떨어진 것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것이
‘활노래’ 라는 것입니다
한번 읽어 주시죠. ‘다윗의 활 노래’
다윗은 자기 목숨을 끊임없이 노리던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는데
그때 다윗이 특별히 자기가 속해있는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오히려 사울을 미워하던 지파인데도 불구하고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활 노래를 가르쳐서
일종의 조가와도 같은 활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한번 읽어주시죠
[사무엘하]
1:19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1:20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1: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같이 됨이로다
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1: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1: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1: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52. 사울왕의 죽음과 다윗의 등극
노우호: 그렇게 사랑하던 친구 같고 형이나 애인 같은 요나단이 죽은 후에
다윗은 상당히 마음이 슬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집 사이에 잠시 다툼이 있었어요
그것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후에 남은 왕자 중에 이스보셋이 있었는데
그 이스보셋을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왕으로 옹립한 것입니다
다윗왕 편에서는 유다지파만으로 요압 장군을 군대장관으로 나라를 세웠고
저 쪽은 11지파가 이스보셋왕자를 왕(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백전노장 아브넬이 군대장관으로 건재해 있습니다
이 두 세력이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전쟁이 소강상태에 가면서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르니까 (두 집안의 긴장관계 기간이 약 7년 정도 됩니다.)
어느 쪽으로나 결론이 나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분위기가 고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윗의 군대는 점점 강성해 지고
사울의 가문은 기우는 달처럼 점점 약해지는 거죠
그래서 한번은 결판을 내기로 하고
기브온 못가에서 장군 몇 명을 서로 내보내서 싸워서 결정하기로 정하고
12명의 대표들만 싸움을 시작했는데
다윗의 군인들은 너무 오래토록 어려운 날들을 보냈기 때문에
대충 짐작키로는16년 동안 야인생활을 했지요
다윗이 망명생활과 쫒기는 가운데 굶기를 밥 먹듯 하고
다윗의 군대가 600명 정도 되니까 그들의 생활이 보장 될 수 없지요
정상적이 생활보장이 안 되니까 사는 것이 절박하죠
요즘 정치도 야당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생활이 궁핍한 것처럼
그 당시도 힘든 생활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빚진 자, 원통한자, 부도가 난 자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독이 올라있는 상태에서
양쪽 진영에서 12명씩 차출하여 싸움을 시작 했는데
막상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까 삽시간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날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싸움은 사람숫자도 중요하지만 우선되는 것이 정신상태죠
다윗의 군인들은 오래토로 도망 다니고 험한 고생을 했으므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니까
작은 하나의 지파인 유다지파만의 군인들에게
11지파의 군인들이 밀리는 것입니다
결국 패배하여 도망을 가는데
사울왕가의 아브넬장군은 나이가 많습니다
군대장관 아브넬은 사울왕 밑에서 나라를 위해 생애를 바친 국가의 일등공신입니다
옛날에는 군대장관이 왕의 다음으로 2인자 서열의 사람이죠
군대장관으로 있던 아브넬이 하루아침에 경질되었는데
언제냐 하면 골리앗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홍안의 소년 다윗이 골리앗 장군을 때려잡으니까
사울왕이 하루아침에 군대장관 아브넬을 파면 시켜버리고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인사행정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사울의 결정적인 실수죠
그 국가위기를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이유로
아브넬장군의 경우에 입이 열개라도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죠
사울과 요나단이 죽고 나니까
곧 바로 이스보셋을 내세워서 11지파의 실세로 등장하게 됩니다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상황이 되고
결국 12명의 대표격인 군인들만 싸움이 전면전이 되면서
아브넬 군대가 패하게 되니까 아브넬이 도망을 치게 됩니다
도망 할 때 그대로 놔두면 되겠는데
또 욕심이 지나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의 누나였던 스루야 아들 3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다윗의 군대에서 매우 큰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자가 군대장관 요압이고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새가 있죠
아비세, 아사헬, 요압 이 3사람이 자기 누나의 아들들이니까
다윗의 생질이 되죠
이들이 용맹도 있고 지도력도 있고 특별히 아사헬은 발이 얼마나 빠른지 이름의 뜻(아사=만들다, 엘=신)과 같이
얼마나 빠른지 정말 신의 걸작품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사헬이 도망가는 아브넬을 쫒아가는데
아브넬장군이 뒤 돌아 보니까 다름 아닌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따라오거든요
아사헬이 발이 빠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아브넬이 도망가면서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뒤에 따라오는 아이를 죽이는 것은 백전노장 아브넬로서는 간단하지만
다윗군대의 실세인 요압장군의 친동생이므로 죽이게 되면 협상이 어렵게 되니까
도망을 가면서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도망하면서 뒤를 향하여 아사헬아 네냐?
그랬지만 아브넬은 조금만 더 가면 사정권 거리로 가까워 질 수 있다는 판단에
대답도 하지 않고 힘껏 질주해 옵니다
아브넬이 아사헬을 향하여
‘따라 올 것 없이 졸병하나 잡아서 군복이나 하나 벗겨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계속 따라 오는 것입니다
아브넬이 한번더 이야기 합니다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지만 내가 너의 형 요압을 생각해서 그러니까’
‘제발, 그만 따라오고 돌아가라’했지만 계속 따라 옵니다
급기야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아브넬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너무 가까우면 창을 던져서 공격을 할 수 있으므로
아브넬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서면서 창끝을 뒤로 내 밀었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아사헬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어서
스스로 창끝에 찔려 죽게 됩니다
김성윤: 정말 어처구니없게 죽음을 맞이했군요
노우호: 예, 자신의 빠른 발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 것이죠
이렇게 아사헬을 해치우는 것은 백전노장 아브넬에게는 아주 쉽습니다
아사헬은 자신이 발이 빠른 것을 의지하고 너무 큰 공로를 세우려다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죠
이 일로 인하여 두 진영의 협상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다윗은 언제든지 협상에 응할 마음이 있지만 요압이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도 아브넬이 마음이 넓게 열어서 다윗은 자기보다 한참 어리고 아브넬은 적어도 나이가 60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나이는 30살 남짓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아브넬에게는 다윗은 아들나이 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아브넬이 다윗에게 찾아 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름 부은 것을 알고 있고
이 모든 나라가 다윗왕 당신에게 돌아가야 된다는 것도
믿음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러므로 나머지 11지파의 마음을 당신에게고 돌려서 하나 되게 할 테니까
정치보복 같은 것은 하지 말도록 좋은 협상을 하기 위해 찾아 온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이 아무런 조건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만 다윗의 첫 사랑 미갈만 데려오라고 했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아브넬도 협상이 잘 이루어졌으므로 며칠 뒤에
미갈을 다윗에게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데
그 소식을 누군가 요압장군에게 전한 것입니다
요압이 소식을 듣고는
뭔! 소리야, 무슨 소리! 하면서
사람을 시켜서 아브넬 장군을 요압이 만나자고 한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아브넬을 순진하게 자기 마음 같은 줄 알고
자신을 요압장군의 동생을 죽여 놓고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요압이 마음을 넓혀서 손을 내밀기를 기다렸는데
요압이 만나자고 하니까 기쁜 마음으로 만나려 왔거든요
그런데 요압이 다리 사이에 칼을 숨기고 있다가
아브넬장군을 그 자리에서 죽입니다
이러고 나니까 온 백성들 사이에 여론이 뒤숭숭 한 것입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백성들이 다윗에게로 마음이 기울어지듯 하다가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서는
분위기가 들끓어 오르는데 감당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브넬장군의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다윗이 아브넬장군의 상여를 따라가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네 발을 착고에 채워지지 않았고 네 손을 누가 결박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불의한 자식의 앞에서 힘없이 맥없이 엎드려 졌느냐 하면서 통곡을 하니까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된 거야?, 그렇다면 다윗이 죽인 게 아닌 거야?’
백성들의 생각이 다신 반전되면서
아브넬의 죽음은
요압이 동생 아사헬의 일로 인하여
개인적인 감정으로 아브넬을 죽이게 된 것이라고 정확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식이 모두 마치기까지 음식을 전혀 먹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그런 다윗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 역시 다윗은 다윗이다’하면서 다시 백성의 마음이
다윗에게고 돌리게 되고
그 뒤로는 온 백성의 마음이 하나로 묶어져서
12지파가 다윗 품에 들어오게 되어 통일 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53. 다윗왕의 아들들
김성윤: 다윗은 유명한 시인이며 음악가 이였는데
그 아들들 역시 그렇습니까?
노우호: 예, 다윗에게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아들이 19명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첩들이 낳은 아들이 많이 있다고 하니까
모두 헤아릴 수는 없고요
그런데 그 아들 중에 외모가 출중하고 중수한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아도니아, 압살롬, 암논 이런 아들은 겉으로는 잘 생겼는데
심성들이 바르지 않았어요.
다윗이 아들 중에서 후계자를 세울만한 아들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은 불의한 관계를 맺어서 낳게 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밧세바는 다윗의 부인들 중에 뒤에 관계를 가진 여자이므로
전처의 아들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아들들 중에서 그나마 밧세바의 소생인 솔로몬이 다윗의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다윗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므로 솔로몬을 잘 선택한 거죠
아버지가 그렇게 훌륭한 다윗이지만
그 많은 아들 중에 아들 같은 아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참으로 역사 가운데 아이러니죠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좋은 아들이 많이 태어 날 것 같은데
그렇지가 못해요
김성윤: 예, 그렇군요!
노우호: 우리속담에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지요?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런데 그 말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보면 이삭 같은 좋은 아버지에게서 야곱이나 에서 같은 사람이 나오고요
또 히스기야 같이 훌륭한 사람에게서 므낫세와 같은 괴악한 아들이 나오고요
반대로 아버지는 형편없는 사람인데 좋은 아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들어보면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인데
그런 아버지에게서 히스기야와 같은 좋은 아들이 태어난다 말이죠!
김성윤: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우호: 예, 예외도 있지만 하나님의 세계에는 또 다른 특별한 은총이 있습니다.
부전자전이 세상법칙에는 맞는 것 같지만
성경 안에서는 그런 것들을 초월하게 됩니다.
다윗에게서 솔로몬이 태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죠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사건 중에 집고 넘어가기가 아쉬운 것이 있는데
다윗이 압살롬 아들의 칼을 피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슬픈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보면
다윗의 정권이 안정 되었을 때는 아무런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윗이 정작 어려움을 당하니까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가 다윗의 피난 가는 불쌍한 모습을 보고
티끌을 날리고 돌멩이를 던지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다윗이여 가서 너희 집이나 돌봐라 하면서
아주 고약한 말로 저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다윗의 장군들이 저 썩은 개 같은 놈을 단칼에 죽여 버린다고 설치니까
다윗은 자기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거든요
자신이 우리아의 아내사건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이 임한다고 생각하며
시므이에게 보복을 못하도록 합니다.
그 때 다윗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옵니다.
내 몸에서 나온 나의 아들도 나에게 칼을 덤비는데
하물며 베냐민지파일까 보냐!
이 말은
베냐민지파가 왕권을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빼앗긴 꼴이 되었는데
내가 어려운 일이 당했을 때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에게 칼을 들고 덤비는데
하물며 왕권을 빼앗긴 베냐민지파에서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면서
‘시므이를 가만두라! 여호와가 저 사람을 시켜서 나를 저주하라고 한 것이니까’
‘너희는 제발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하면서 시므이가 퍼붓는 저주와 욕을 다윗이 자기 얼굴의 수욕으로 채우고
그대로 모든 저주와 욕을 묵묵히 받습니다.
그러한 억울함이 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혹시 불쌍히 여겨 주실 수 있지 않겠나!
다윗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성윤: 그렇군요!
노우호: 이렇게 다윗이 도망하여 들판에서 피난하는데
요압에 의해서 또는 후세의 지략에 의해서 결국 압살롬의 난이 평정이 되지요.
그리고 압살롬은 그 아름다운 머리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서
타고 있던 말은 그대로 가버리고 자신은 머리가 가지에 걸려 있는데
이 소식을 요압이 듣고 가서 압살롬왕자를 찔러 죽입니다.
압살롬을 죽인 것은 요압의 입장에서는 역적을 죽인 것이지만
다윗에게는 아들이거든요
아들을 위해서 단장의 눈물을 흘리게 되고 대성통곡을 하게 되는데
성경에 보면 내 아들 압살롬, 압살롬 내 아들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오후 내도록 통곡을 합니다.
대 역적 죄인을 죽였지만
압살롬은 아들이므로
왕이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위로 받기를 거절하니까
요압이 다윗에게 협박 같은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좋겠군요?’
‘만약 지금 나가서 군사들을 위로하지 아니하면’
‘오늘 이 군사들은 왕의 곁을 모두 떠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모든 환란보다
‘더 심한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 같은 말을 합니다.
다윗은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하고
나가서 백성을 위로하기에 급급한 장면을 봅니다.
이렇게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될 때
시므이가 마중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가 나와서
나의 죄를 기억치 마옵소서!
아니, 그것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그 시므이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보통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용서하게 되니까 역시 다윗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므이를 10번을 죽여도 왜 그 사람을 죽였냐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살려놓는 것이 그게 기념비의 역할을 하거든요
백성들 사이에서 여론이 과연 다윗 왕이다!
어떻게 저런 사람도 용서하는 것은 보니까
웬만한 사람은 보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시므이가 살아서 걸어 다니는 기념비가 되죠.
그야말로 그런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다윗의 영광이지요.
중국고사에 보면
한문 글자에 ‘역린’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역린(逆鱗)은 ‘거스럴 역’자와 ‘비늘 린’자를 씁니다.
정치고사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
용을 올라타면 용의 귀 뒤에 비늘이 있는데
모든 비늘이 순리로 나 있는데
비늘 하나가 역린으로 난 비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거꾸로 돋아 있는 비늘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역린에 속한 사람이죠.
그 역린만 건드리지 않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중국의 고사가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시므이 같은 사람이 역린에 속하죠.
이 사람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살려 놓는 것이
참 지혜고 다윗의 기념비고 영광이 됩니다.
역사 가운데 그런 역린을 건드려 가지고 자기 정치생명이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장기 집권한 마르코스라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 마르코스가 자기에게 큰 정적이 되고 위협적인
아키노 상원의원을 비행기에서 죽이게 되죠.
그 아키노 상원의원을 죽이고 나서 자신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런 것은 정치를 못 배운 것이죠.
다윗은 어디서 이런 놀라운 것을 배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사이죠.
정말 절 천지 원수 같은 시므이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윗은 듣지 못한 시대에 살았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다윗에게 있어서 정말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 할 때
정말 다윗이 된 것이죠
그러한 다윗이 나이 많이 들었는데
열왕기하서에 보면 나이에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영왕기하서 1장을 펴서 보면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지라
아주 한국적이 표현이죠?
김성윤: 예,
노우호: 연세가 들면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무릎에서 찬바람이 나온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거기 까지 되지 않았지만
노인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있으면 안 되고 빨리 권자를 물러주는 것이 좋아요
적당할 때 물러나야 되는데 너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윗 자신이 격은 정치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솔로몬이 어리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빨리 왕의 자리를 이왕하지 못한 것이 또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죠.
아도니아라는 아들이 착각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버지는 늙어서 숨쉬는 것뿐이지 시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아도나이의 반란에 요압이 가감하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변함없이 다윗의 곁에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나단입니다
나단과 브나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브나야는 다윗의 경호실장과 같은 사람이죠.
다윗이 일생동안 충절을 변치 않고 솔로몬시대에도 변함없이 충절을 지킨 사람인데
이 브나야와 나단, 사독, 이렇게 몇 사람 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큰 정부를 움직여 갈 때는 수많은 사람이 다윗 곁에 있는 것 같았는데
다윗이 정작 어려움을 겪으니까
다윗 곁에 고작 5손가락 곱을 정도의 사람만 변치 않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라는 것은 무상한 것이라는 말이 있죠
권력이 있을 때 그 권력 주변에 사람이 모여드는 것뿐이지
정말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이 어려울 때 까지도 함께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는 요나단과의 우정을 늙어서 뿐만 아니라 죽을 때 까지도 변치 않고
항상 요나단의 자손들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 중에서는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은 많지 않고
친구도 정말 아름다운 우정의 가지고 있는 친구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54. 노래하는 다윗왕
김성윤: 성경의 시편(詩篇)은 유대인의 찬송이죠?
노우호: 예, 유대교라는 형식을 갖춘 것은 바벨론에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후
제 2성전인 스룹바벨성전을 지으면서부터 유대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유대교라고 이름을 붙이기가 어색하고요
시(詩)가 저작(著作) 된 것은 바벨론포로 이전인 다윗시대에 지어졌는데
다윗의 시(詩)는 시편(詩篇) 중에 70여편 혹은 73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찍 편집된 경우고
다윗의 시(詩) 외에도 아삽자손의 시, 고라자손의 시, 솔로몬, 헤만, 애단, 모세
이런 분들의 시(詩)가 한곳에 집대성 되는데
현제 우리 성경책의 모양으로 완성된 것은
바벨론포로 이후에 완성됐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시편(詩篇)중에 가장 많은 시(詩)가 다윗의 시(詩)라는 것이죠
우리는 저번시간에 다윗의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다윗시대에서 솔로몬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인데
다윗의 시에 담긴 다윗의 신앙고백과 다윗의 노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시(詩)는 언어의 유희 같은 한국의 시(詩)와는 좀 다르죠
한국 사람의 시(詩)는 말을 잘 다듬어서(물론 의미 있는 말이긴 하지만)
생각 보다는 언어를 잘 다듬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인데
히브리 시(유대인들이 가진 시)는 신앙(하나님) 안에서 경험되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축약된 시(詩) 속에 그런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는 산문처럼 내용이 늘어지는 양식이 아니고
김성윤: 절재 된 언어를 사용하죠.
노우호: 예, 언어가 소박하면서 짧은 언어 속에 깊은 것을 담는 형식인데
시편의 시(詩)는 서정시나 낭만 시(浪漫 詩) 혹은 저항 시(詩)
이런 것과는 다르고
대체적으로 시편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신앙 고백 시(詩)가 있고
상당 부분이 기도와 간구의 시(詩),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시(詩),
역사를 압축해서 표현한 역사 시(詩)
그런가 하면 시(詩) 속에서 예언이 나와요
장래에 있을 일들이 시편 속에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22편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다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 시(詩)가 있습니다
이 교훈 시(詩)는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일반적인 시(詩)를 미스모르라는 표제가 작은 글씨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옆에 보면 작은 글씨로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믹담’이라는 시(詩)도 나옵니다
‘믹담’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는데
풍자 혹은 풍류 시(詩)시로 구분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잠언과는 다른 짤막한 내용이지만 시(詩) 형식을 취한 금언 시(詩)가 있습니다
그리고 간증 시(詩)시가 있고요
개인의 신앙체험을 시(詩)속에 담아 놓은 시(詩)가 있습니다
그리고 애가(슬픈 노래)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징계에 대한 슬픈 노래도 있고
지혜 시(詩)도 있습니다
성경의 놀라운 지혜를 서술형으로 기록하지 않고 시(詩)로 읊어내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악을 향하여 저주하는 저주 시(詩)도 몇 편이 끼워 있습니다
김성윤: 시편에 나오는 시의 형식과 내용이 무척 다양하군요.
노우호: 예, 굉장히 다양하죠
우리 찬송가도 보면 앞에는 예배찬송이 있고 성도의 삶, 기도 시(詩)
성부에 관한 노래, 성자에 관한 노래, 성자에 관한 노래로 분류가 되는 것처럼
구약성경에 있는 시편도 유대인들의 곡조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노래의 가사만 보지만
시편을 보면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소산림’에 맞춘 노래라는
작은 글씨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산림’이라는 것은 백합화를 의미하는데
영어로 ‘수잔나’ 혹은 ‘수잔’이 백합화의 의미인데
‘수산나’ 혹은 ‘소산림’ 곡조에 맞춘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곡의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히브리인들은 알지만 우리는 잘 모르지요
약 절반가량(73편)정도가 다윗의 저작(著作)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분명한 경우에 저작자(著作者)가 누구인지 모를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70여편이 다윗의 저작이고
고라자손의 시가 11편이 들어 있고
아삽자손의 시가 12편
솔로몬의 시가 2편
에단, 모세, 스가랴, 히스기야, 에스라의 시가 각각 한편씩 들어 있습니다
자세히 성경을 보면 시편이 5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1권은 1편부터 41편까지로 대부분 다윗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2권은 42편부터 72편까지인데 여기는 고라자손의 시와 다윗의 시가 섞여 있고
3권은 73편부터 89편까지
4권은 90편부터 106편까지
5권은 107편부터 150편까지
히브리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율법서(토라)를 5권 주셨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5권 드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한 율법서(창출레민신)5권을 주셔서 복 받게 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5권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윤: 그러니까 시편은 매우 중요한 책이군요
노우호: 아주 중요한 책이고
성경에 있는 시편 아니라도 시의 형식으로 된 경전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힌두교(브라만교)에 있는 베다라는 것이 있는데
리그베다 야그르베다가 있는데 이것도 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예언자가 예언을 하는 경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의지에 의식적 의지가 개입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성령이 깊이 감동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이 시로서 흘러나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시편은 상당히 영적인 글이죠
인간의 의식적인 의지로 서술해 나가는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또 우리의 영혼이 승화되고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을 때
성령님이 임재 하면서 한사람의 심령을 하나님의 성령께서 연주 하듯이
메시지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물론 다윗이 경험한 내용도 있지만
다윗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인데도 다윗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내용이 다윗이후 10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일어날 일들인데
1000년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 시로 기록이 된 경우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장래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베드로가 해석한 것을 인용해 보면
선지자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셔서 장차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을 영광에 대하여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시인(詩人)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께서 고난과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편이 얼마나 영적이겠습니까!
다른 성경도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지만
시편은 특별히 깊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절제되고 농축된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묵상 할만한 글들이 시편 속에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과의 교재의 이상들이 투영되어 있는데
그 속에는 죄로 인한 슬픔이라든지
정말 불완전한 우리들이 완전성을 추구한다든지
믿음의 빛을 따라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걸어가는 담대함을 노래한다든지
계명에 대한 순종을 노래한다든지
예배에 참여하는 기쁨을 노래한다든지
하나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징계 받을 때에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고요
현재 악은 득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멸망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고백도 있고요
삶의 폭풍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느끼는 평강을 시를 통해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편은 노래의 가사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은 의심할 여지없이 제2성전의 찬송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시대보다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제2성전인 스룹바벨성전 시대에 체계화 되어지고 시편이 많이 불려지면서
유대교를 형성했다고 봅니다
유대교 시대에 남긴 큰 업적이 시편들을 모두 모아서 5권으로 편집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죠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55. 솔로몬의 지혜 잠언
김성윤: 지난 시간에 시(詩)의 형식 속에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시편을
시편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오늘은 잠언입니다
노우호: 예, 잠언은 읽으면 재미가 있고
깨소금 같이 진리의 말씀이 고소하고 달게 느껴지는 글들입니다
저는 잠언이 성경에 있는 것을 뒤 늦게 알았는데
저는 잠언을 읽다가 한 사람에게서 이렇게 폭포수 같은 지혜가 계속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탐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나 잠언에 있는 지혜를 읽으면 인생과 세상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체로 시편이 상당부분이 다윗이 쓴 것처럼
잠언은 상당부분이 솔로몬의 것입니다
잠언의 80~90%가 솔로몬의 잠언이고 나머지는 아굴의 잠언이 있고
르무엘의 잠언이 있고 또 다른 지혜자의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전성에 보면 솔로몬이 젊었을 때
아내가 60명쯤 되고 첩이 80명 정도 되었을 때 아가서를 기록했고
중년에는 잠언을 기록했고
심하게 타락을 했다가 은혜를 깨닫고 회개한 후 전도서를 기록 했다고 합니다
잠언은 현재 잠언의 모습으로 완성 시킨 것은
히스기야 시대에 히스기야 신하들이 편집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잠언 25장 1절에 보면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인데
히스기야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잠언]
25: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 것이니라
히스기야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고 했더니만
어떤 사람은 편집이라니!
성령이 문자적으로 감동해서 기록된 것이지!
편집이라는 말에 깜작 놀라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자체가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라는 것은 1장부터 24장까지는 이미 솔로몬 것이고
그 뒤 히스기야 시대에 편집하여 조금 첨가하면서
이것도 하는 것은 그동안 누락되어 있던 것을 추가하는 형태로
오늘날 증보판의 형태가 되겠죠
잠언1장을 자세히 보면 잠언을 기록한 목적이 있는데
크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솔로몬의 자녀들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교육을 위해서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을 일러서 말 할 때 보면
내 아들아! 하면서 그 아들에게 훈계하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잠언을 누가 많이 읽어야 되겠습니까?
김성윤: 부모님,
노우호: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가 많이 읽어야 되요
김성윤: 아버지도 많이 읽어야 되요
노우호: 아버지도 물론 많이 읽어야 되지만 어머니는 이것을 외워야 합니다
자녀들은 세상적인 도덕 윤리나 감정적인 잔소리에는 반발하는데
어머니는 열심히 읽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성경에 기록된 아름다운 교훈으로 잘 심어주면
자녀들의 마음속에 잘 박힌 못 같이 박혀 있어야 합니다
혹시 세상길로 나가거나 유혹을 받게 될 경우에도
마음에 잘 박힌 잠언의 말씀을 통해 각성하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잠언의 목적은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 쓰여 졌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잠언을 세부적으로 나눠 본다면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지식과는 다릅니다
지식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혜라고 할 수 있겠죠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지혜가 없으면 지식을 활용하지 못해요
지식이나 기술 등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 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하고요
훈계를 받기 위함이고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죠
우리 동양에서도 글자를 익히는 천자문을 배운 다음에는
명신보감의 잠언을 배웁니다
명신보감은 유교적 경전으로서 경전 중에서도
값진 보석 같은 말씀들을 모아 놓은 것이 명신보감인데
이것을 동양의 잠언이라 할 수 있겠죠
이런 것을 옛 서당에서 배우는데
이것을 모두 쓰기도 하고 모두 외워서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에서 아동부 혹은 중고등부 시기에
이 잠언을 다 외울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잠언 외우기 경연대회를 하면 은혜가 넘치게 되고
우리 학생들이 지혜를 얻게 되고 훈계를 배우고 명철의 말씀이 더해지고
학식이 더하게 되겠죠
김성윤: 그렇죠.
노우호: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들이 슬기롭게 되고
젊은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근신하게 하는 것이고
마침내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하게 될 것이고
명철한 자는 듣고 모략을 얻게 될 것이다
잠언서에 잠언은 성공적인 삶을 이끄는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잠언서는 예언적인 대 주제를 공개적으로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구별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대체로 잠언서는 8부분으로 나눠 편집 되었는데요
1장~9장은 첫 단락으로 지혜의 중요성을 다룹니다
10장~22장은 솔로몬의 잠언으로 잠언서 중 가장 오래된 잠언인데
학자들은 이 부분이 솔로몬 잠언의 진수라고 합니다
잠언서의 대부분이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보는 것은
열왕기상 4장 30절 이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4:31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4:32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4:33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4:34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이 부분에서는 375개정도의 잠언이 순서 없이
지혜의 유익함을 강조하며 열거되어 있습니다
22장~24장까지는 가난한자를 보살필 것을 말씀하고 있고
공직자(관원들)를 세우면 그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과
자녀가 잘못하면 징계하라는 것과 순결을 강조하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24장은 추가된 말씀이라고 하고
25장에는 또다시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면서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잠언서를 편집해 놓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0장 이것은 아굴의 잠언이라고 하는데
아굴에 대하여는 별로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아굴의 잠언이 있다는 것으로
아주 겸손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1장 1절~9절 루무엘의 잠언으로 절제에 대한 권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이 유명한
31장 10절에서 31절에 보면 현숙한 여인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장 현숙한 여성상을 그리고 있지요
여성들은 특히 이 부분을 많이 읽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히스기야왕의 시대는 BC715-686년 정도 되는데
이때 잠언 같은 문학장르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고 수집하여 집대성 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죠
오늘날 훌륭한 어른들이 남긴 말을 어록집으로 남기듯이
히스기야 시대에 이런 일이 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잠언이 인용되기도 하고
예수님께 사람들이 와서 시험하기 위해 말을 걸어올 때
예수님께서는 지혜로 대답하였다고 하지요?
우리도 잠언을 많이 읽으면 사람들이 질문 한 경우나
전도할 때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극동방송의 사장님이신 김장환 목사님께서는 평생을 두고
메일 아침 한 장씩 잠언을 읽으신다고 합니다
그 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지혜의 말씀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곹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인생길을 바르게 인도하는 이정표가 잠언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잠언을 읽으면 젊었을 때 읽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잠언은 어릴 때 혹은 젊어서 많이 읽기를 바라고
특히 어머니들이 많이 읽어서 자녀교육에 활용하게 되면
우리 자녀들이 탈선하지 않고 지혜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겸손하게 부지런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성윤: 지혜를 얻는 것은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으니까요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56. 솔로몬의 인생론 전도서
김성윤: 솔로몬이 중년에 쓴 것이 잠언이고 노년에 기록한 것이 전도서라고 하셨죠?
노우호: 예, 전도서를 의역으로 한다면 솔로몬의 인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고난 후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글로 남긴 것은 가치가 있는데
천하의 솔로몬이 인생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살고난 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것이라면 값진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솔로몬의 일생은 어떤 면에서는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을 기록할 만큼 지혜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어요
성경의 66권 중에서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한 분이지요
그러한 그가 어떻게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리고
그 여인들을 위해서 산당을 짓고 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는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열왕기상서에 보면
솔로몬 왕이 애굽 바로왕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 여인, 암몬, 에돔, 시돈과 헷 여인 이런 여인들을 맞아들여서
아내가 700여명이 되었는데 아내가 700명이라는 것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여서 맞은 아내가 700명이라는 것이고
첩이 300명이라면 결국 1000명의 여인을 거느린 샘이죠
이 많은 여인들이 어찌나 솔로몬에게 요구사항이 많든지
천하에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타락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에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이런 점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신령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어리석게도 여자들에게 이끌려서 그런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는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성윤: 그러고 보면 솔로몬은 짧은 인생동안에 온갖 것을 다 경험하는 군요
노우호: 예, 인생론을 기록할 자격이 있습니다
인생론을 쓴다는 것은 너무 단조롭게 살아서는 인생론을 쓸 수 없으니까요
솔로몬은 그런 면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왕이 되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즐기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많이 풍성하게 누려보고
결론이 그 모든 부귀영화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저것을 가져보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성취하고 나면 허무감에 떨어지는 거죠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한 일 중에
시돈사람의 여신인 아스다롯이라는 여신을 섬기고
암몬사람의 가증한 밀곰이라는 신을 섬기게 되었고
솔로몬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쫒음 같이 여호와를 온전히 쫒지 않았고
모압의 신 케모스(그모스)라는 신을 위해
예루살렘 앞산에 그모스 신당을 짓습니다
암몬 자손이 섬기던 몰록이라는 신을 위해 신당을 짓고
그리고 여러 다른 민족의 후비들을 위하여
그 여자들이 가져온 신들을 위한 산당을 지어주었습니다
김성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지혜의 영을 받은 솔로몬이
그렇게 많은 신들을 위해 산당을 지어주고 섬길 수 있게 하였는지
정말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노우호: 예, 저도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많지만
솔로몬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어떤 면에서 이해 할 수 있느냐 하면(아주 중요합니다)
솔로몬처럼 지혜가 있고 지혜의 영이 충만해도 성경을 읽어야 되는구나!
이것이 결론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니까 율법이 금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솔로몬이나 다윗이 성경을 읽었다고 하면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상을 위해 산당을 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율법에서 반드시 시키라고 했던 명절을 지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유월절 지키는 것이 요시야 왕 때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여호수아 이후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처음이라고
기록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윗도 유월절을 안 지켰고 솔로몬도 안 지켰다는 말인데
그것은 성경을 안 읽었기 때문입니다
김성윤: 이런 것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갖추기는 참 힘들지만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은 쉽고 끝없이 타락 할 수 있군요
노우호: 맞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똑똑하다고 할지라도
성경을 모를 때는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렇고 솔로몬도 그렇고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의 능력이 적습니까! 굉장히 능력을 받았지만
나실인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타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인품이 훌륭해도 역시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사사시대의 기드온은 인품으로 본다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는 신중하고 겸손하고 용감하고 담력이 있고 믿음이 충만하지만
성경을 모르니까 우상숭배를 하게 되죠
그래서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한 반석에서 모두 죽임을 당하는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일생이나 구약시대의 여러 사람을
성경을 통해서 만나본 후 결론은
아무리 지혜가 많고 언사가 많아도 인품이 훌륭하고 큰 능력을 받았어도
여전히 성경말씀의 여호와의 율법을 읽어야 합니다
잠언 28장 9절에 보면
사람이 귀를 돌이켜서 여호와의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한 기도가 된다고 합니다
방송을 듣는 여러분이나 성도님들 잘 들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 들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잘 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죠?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잘 듣지 않는다면
너도 나의 말을 잘 듣지도 않으면서
내가 읽으라고 한 성경을 읽어 보지도 않으면서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죠
사람이 귀를 돌이켜서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번죄 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고 합니다
악한 사람의 제사하는 것 보다 의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데
그 의인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또 그 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들
하나님 말씀을 달게 듣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거죠솔로몬은 그렇게 은혜를 받았지만 성경을 읽지 않아서 심한 타락을 경험하게 되죠
그는 사람이 누릴수 있는 부귀영화와 은총을 모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락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너무 타락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회개를 하고 돌아오긴 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것을 보면 노년에 정신을 차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전도서를 1장부터 3장까지만 읽었다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전도서를 이해하는 열쇠는 맨 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끝까지 읽지 않고는 전도서를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젊은 날에 마음대로 즐길 수 있고
타락 할 수도 있고 욕심을 따라 제멋대로 살수 있으나
한 가지 기억 할 것은 하나님은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라고
전도서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에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덧붙혀 놓았습니다
솔로몬이 수많은 여인들과 사치와 향락에 빠져보지만
그 모든 부귀영화가 자신에게 어떤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고 난 뒤의 결론은
자신이 허무의 나락에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솔로몬의 일생을 간단히 요약하면
처음에는 완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출발합니다
이것을 신본주의라고 하지요!
출발은 이렇게 신본주의로 잘 출발 했는데
다음에는 여자를 추구하게 되면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하지요!
다음에는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게 되니까
이것을 물질주의라고 하고요
물질이 풍족해지면
그 다음은 향락주의에 빠지게 되고
여자들과 온갖 향락에 누리게 되면
결국은 마지막으로 허무주의로 가게 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죠
인류의 역사도 르네상스이전에는 신본주의로 흘러오다가
르네상스이후로는 인본주의 이데올로기 시대가 되다가
최근에 와서는 물질주의로 타락하다가
물질주의가 팽배하게 되면 향락주의로 떨어지는데
향락을 추구해본 결과는 언제나 허무주의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사실을 일찍이 경험하여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겼는데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별로 들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물질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생각하고
오늘날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물질이 사람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물질은 필요하지만 물질이 풍부하게 되면
그 물질을 가지고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보다
물질이 풍부해지면 사람은 향락에 빠지게 됩니다
온갖 레저문화가 발달되면서
우리 사회가 급속히 타락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허무주의 빠지게 되는데
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마약을 찾게 되고
결국은 페인이 되는 것이죠
솔로몬은 다행스럽게 허무주의 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온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를 기록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은 헛되지만
사람이 참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과 함께 낙을 누리는 것
그리고 선을 행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것
그것 외에는 남는 것이 없고
지식이 많으니까 번뇌도 더하여져서
지식을 많이 쌓는 것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과
하나님께서 허락한 범위 안에서 단란한 행복을 누리는 것
그리고 선을 행하면서 기뻐하는 것
땀을 흘리면서 즐겁게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이것이 참된 기쁨이었다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것이 참 기쁨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고
가족들과 단란한 삶이 있고
땀 흘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 인줄 알고
거기서 자족할 수 있으면 큰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57. 솔로몬의 오페라 아가서
김성윤: 솔로몬이 지은 아가서를 왜 노래중의 노래라고 합니까?
노우호: 예, 아가서의 히브리 언어로 된 제목에 보면
‘쉬르하시림’이라고 되어 있는데
‘쉬르’는 노래란 뜻이고 ‘하’는 정관사이고 ‘시림’은 복수형이거든요
그래서 직역을 하면 노래들 중에 노래가 됩니다
아가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가 없으니까
아가서 보다는 노래들 중에 노래로 했으면 좋겠는데
문학의 형식으로 본다면 오늘날 오페라 형식에 속합니다
아가서의 내용은 한 남자와 여자의 순수무구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 노래는 이루어진 사랑인지 이상적인 사랑을 그린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남녀간의 아름다운 애정과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름다운 것 중에 가장아름다운 것이 이성간의 순수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책을 남녀간의 애정표현만 기록된 것이라고 하여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후 90년에 유대 랍비들의 모임인 얍니아회의에서
비로소 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아가서와 에스겔서를 30세 이하의 사람들은 읽지 못하게 했어요
왜냐하면 애정문제를 너무 원색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젊은 아이들은 읽지 못하게 합니다
후에 기독교인들은 이 아가서는
예수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비유로 의미를 해석하는데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생각 할 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시되 사랑으로 연합되게
그 아름다운 사랑을 우리 속에 품부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아가서는 천진난만하고 순수무구한 원색적으로 언어가 표현되었는데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랑이 완전하면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꾸밈도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사랑만 생각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할 때
에로스와 같은 이성의 사랑으로 정말로 질투하면서 사랑 하십니다
에로스 사랑의 특징이 질투하는 사랑이거든요
아가페의 사랑은 질투가 없습니다
김성윤: 맞아요! 하나님께서 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죠?
노우호: 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할 때
처음부터 솔직하게 나는 질투 많은 하나님이라고 하셨어요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구약성경 절반정도가 하나님의 질투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이 진한만큼 질투도 진하게 되겠죠?
지금까지 서양신학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만 있는 것으로 배운 것은
잘못된 것이고요
하나님의 사랑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혈통적인 사랑도 있어서 우리를 자식처럼 사랑하십니다
부성애로 모성애로 사랑하시고
그리고 친구처럼 사랑하시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였노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은 모두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알려준 극비에 속한 비밀도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모두 밝혀서 계시를 하시고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준 것은
너희가 종이 아니고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제자이고 종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친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는 우정과 같은 필리아도 있고
혈통적인 사랑인 부성애 모성애 같은 스톨개도 있고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아가페 같은 사랑도 있고
그리고 연인처럼 솔로몬이 술람미여인을 사랑하는 애로스 같은 사랑도 있어서
강렬한 애로스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우리가 그동안 구약성경을 너무 무시했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질투부분을 소홀히 했어요
대부분 교회에서 설교하거나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슬프고 아파하는 이야기는 빼버리고
하나님의 복 준다는 그곳만 찾아서 읽고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투의 불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옥의 불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질투의 불입니다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여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킨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투의 불인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영원히 지옥에 보낸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죽일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질투도 마찬가지로 지옥에 영원히 고통 받게 하실 만큼
하나님의 질투가 무섭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아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공의도 역시 함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만 많이 듣고
그 달콤한 초코렛 같은 말씀만 먹고 자란나머지
하나님의 쓰디쓴 질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를 못해요
그것은 구약성경을 너무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역사서와 함께 예언자들의 예언을 잘 읽어 보면
하나님의 질투가 무지무지하게 무서운 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아가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으로
사랑이 순수 할 때
이처럼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성품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죠
즉, 우리 어머니의 마음에 모성애를 심어 놓은 분도 하나님이 심어신 것이고
아버지에 심은 부성애도 하나님이시고
남녀간의 아름다운 애로스 사랑을 심으신 분도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것이고
우정이나 어려운 사람을 향한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는 사랑이 하나님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가서를 공부하면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이가서가 대화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솔로몬이 어디까지 이야기 하고
또 술람미 여자가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그리고 배경에 서있는 예루살렘 처녀들이 쭉 서 있습니다
오페라를 보면 남녀 주인공 뒤에 노래를 함께 하는 합창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김성윤: 예,
노우호: 오페라에서 합창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가서에도 이런 여인들이 예루살렘 처녀로 나옵니다
그래서 합창을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그런 오페라형식의 대화체가 아니고
서술문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 성경을 편집할 때는 문학의 형식에 맞도록 대화체로 하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 노래하기를 이렇게 노래하고
술람미 여인은 이렇게 화답했다
합창단인 예루살렘처녀들은 이렇게 응답했다고
이런 식으로 구분이 되도록 편집 되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그냥 서술형으로 이어져서
문단의 구분도 없는 형식 때문에 아가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노래 외에도 1005개의 노래를 작사했다고 합니다
솔로몬의 1005개 중에서 딱 1개 뽑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래들 중에 노래죠
잠언은 300개를 지었는데 그 잠언들 중에
성경의 잠언의 내용정도만 편집이 되었고요
이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가 많았던지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부터 담장 밑에 있는 우슬초까지
그리고 해양생물하과 공중의 새를 논하고
그렇게 인생을 깊이 있고 폭이 넓게 풍성하게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이 노래에 대하여 어려운 점은
문단구분이 애매한 곳이 많습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솔로몬의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술람미여인의 이야기인지 학자들 마다 견해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래 해석이 어렵게 됩니다
노래의 번역도 아름답게 되었지만
사실 번역도 어렵고 해석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묻어두고 대체로 설교도 잘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책인데
그러나 이 아가서는 모든 성도들의 삶 가운데
애정과 부부생활에서 아가서에 비춰진 순진무구한 사랑을 누려보지 못한다면
행복이 많이 감소되겠지요
소로몬의 애정생활은 지나칠 정도였는데
이 노래를 기록할 때만 해도 아내가 60명이고 첩이 80명 되었습니다
아가서 본문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술람미여자와 솔로몬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문제가 좀 다르겠지요
이루어졌다면 그 이후에 다시 900여명이나 더 편력할 이유가 없었을 것인데
아미 이것은 솔로몬의 이상 속에 있는 여자이고
워낙 머리가 좋다보니까 아내를 60명이고 첩이 80명을 두었지만
사랑도 애정도 만족되지 않아서 이상 속에 그리던 여인일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루어지지 않고 찾지 못하니까 많은 다른 여성편력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가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들을
몇 번이고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입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58. 솔로몬의 자녀들
김성윤: 목사님 안녕하세요?
노우호: 솔로몬 왕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을 잇는 뒤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도 자녀의 교육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겠죠!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기계가 아니고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의지의 자유가 있고 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아무리 훌륭한 아버지라도 자녀를 교육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1000명의 여자를 두었으니까
한 여자가 1명만 자녀를 낳아도 몇 명이 되겠습니까?
그 수많은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서 잠언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아들 중에 탁월한 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죠!
우리 역사 가운데서 살펴보면 옛날 왕들이 후궁을 많이 두지 않습니까?
김성윤: 예
노우호: 그렇게 중전마마 외에 후궁을 많이 두는 까닭은
여성 편력을 하는 못된 왕들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으로 본다면 한 여자에게서 아들 한 두명 나온 것 중에
별 좋은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곤란하지요
능력도 되지 않는 세자가 왕이 되어 나라가 어려워지는 것 보다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가운데 거기서 태어난 많은 아들 중에
비록 후궁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탁월한 왕자를 왕으로 삼을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왕들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게 되는데
그러나 솔로몬은 지나친 것 같아요
솔로몬은 1000명의 여인을 통해 수많은 자녀들이 있을 것인데
그 중에 탁월한 아이가 보이지 않고 그나마 르호보암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세자로 책봉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어머니가 암몬여자 ‘나아마’라는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집안의 아들을 판단할 때 그 집의 아버지도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아이의 기본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2~3살에 대부분 형성되는데
그 인격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가정교육에서 참 중요합니다
르호보암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두 번씩이나 그 어머니의 이름은
암몬여자 ‘나아마’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악하므로 나라가 분열되는 비극을 맞게 되죠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나이 많은 원로들의 의견은
이제 앞으로는 솔로몬처럼 너무 화려하고 방대한 정치를 하지 말고
(백성들이 혹사당하고 세금이 너무 무거우니까)
마음을 비우고 백성들의 종이 되어 이 백성들을 섬기게 되면
백성들도 왕의 종이 되어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이상적인 왕국이 될 것이라고
솔로몬 시대의 원로들이 르호보암에게 조언을 했는데
르호보암이 그 조언을 곧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 사람들의 의견도 한번 들어 본다고 하면서
자기와 함께 자란 비류들을 불러서 의견을 물어 봅니다
노장파 원로들은 이러이러하게 정치를 하라고 하는데
당신네 들은 어떻게 정치를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만
그들의 대답은 당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강압정치를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못된 르호보암이 비류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손가락이 우리 아버지 허리보다 굵다’고 하면서
더 무서운 정치를 하겠다고 원로들의 교도를 묵살하고
젊은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어른들을 아주 섭섭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온 백성의 지도층들이 모두 르호보암을 떠나서
에브라임지파의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며 나라가 나뉘어 지는데
여로보암을 따라간 지파는 10지파가 갔고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2지파만 남게 됩니다
이렇게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두 왕국으로 나누어지면서
결국 북왕국은 이스라엘이라고 하고
남왕국은 유다라고 불러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진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도 남왕국 북왕국으로 분열이 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가 조금 어려운 점은
왕국이 분열된 상태에서 성경이 기록되니까
어떤 때는 남쪽이야기를 하고 어떤 때는 북 왕국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두 나라 이야기를 한 줄로 기록하면 어렵고 혼란스럽겠죠?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러니까 남 왕국과 북 왕국을 나누어서 정리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역사가 잘못 되어 갈 때
예언자들이 나타는데
예언자가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경우이고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예언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남 왕국에 등장하는 예언자가 있고 북 왕국에 등장하는 예언자가 구분이 되고
두 나라에 등장하는 왕들과 선지자들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구분하여 역사서와 예언서를 공부 해야만
구약성경이 제대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여기서 졸리게 되죠?
김성윤: 예, 어렵고 모르니까요
노우호: 읽어가면서 깨달아 지고 재미가 있으면 계속 읽을 수 있는데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우면 졸음이 오고
졸음이 오면 성경책은 덮어버리고
성경책만 펴면 잠이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으려면 성경 사전이나 성서핸드북 같은 참고서를 찾아가면서
남왕국과 북왕국의 어느 시대의 왕이 통치 할 때
어떤 선지자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였는지를 잘 정리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성경공부 하는 요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역사와 시대별로 재구성한다는 계획을 세워서 왕들의 이름을 일렬로 기록하고
선지자들도 이사야 예레미야 스바냐 하박국 이런 분들은
남 왕국에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이고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오뎃 이런 분들은
북 왕국에 말씀을 외친 선지자들입니다
왕들 이름이 익숙하지 않지만
왕들 이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남 왕국은 르호보암부터 시드기야 까지
북 왕국은 여로보암부터 호세아 까지 나열하면서 정리를 합니다
남쪽 왕은 ‘아달랴’라는 여왕을 포함하여 20명이 등장하고
북왕국은 19왕이 등장합니다
19왕이 이어지는데 북 왕국은 왕조가 9번 바뀌는데
9번 중에 7번이 무력(쿠테타)에 의해서 정권이 바뀌는 비운을 많이 격습니다
그러나 남왕국 솔로몬의 후손들은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아무리 왕들이 잘못을 하더라도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때리기는 하여도
왕조를 빼앗기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 왕국은
여로보암 아비람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여호야김 여호긴 시드기야 까지 20왕이 이어지고
북왕국은
르호보암 다음에 나답 바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까지가
오므리 왕조이고 이 오므리 왕조를 완전히 넘어뜨린 사람이 예후인데
예후 왕조가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여로보암2세 스가랴 까지 4대
북왕국은 예후 한 사람이 그런대로 하나님 뜻대로 하였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후손 4대 까지 왕위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살룸이 배반하고 므나헴 브가이야 베가 호세아시대로 가면서
나라가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데
이러한 때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애를 태우면서 나타난 자가 예언자들인데
물론 예언자가 나타나서 처음에는 책망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니까 책망을 하는데 책망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죠!
기분 나쁘다고 예언자를 죽이게 되니까
나라가 회복될 기회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낸 것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회개를 촉구하여 복 주시고자 보낸 것인데
회개하라는 말을 기분 나쁘게 여겨서 보낸 예언자마다 때려 죽였습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맞아죽지 않고 회오리 바람타고 하늘로 올리어 갔지만
많은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내기를 부지런히 보내시는데
보내면 죽이고 또 보내면 죽이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나중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언자를 보내고 보내도 안 되니까 결국은 독생자를 보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읽으실 때
역사서와 예언서를 재구성하여 읽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성경의 파노라마도
일반 성경순서대로 하지 않고 역사서를 읽어 가면서
예언자가 나타난 시기를 맞추고 왜 나타나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입체적으로 성경을 재구성하여 이야기 하려고 하니까
청취자들께서는 연필을 가지고 성경책에 메모를 하면서 듣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낼 때
남 왕국에 보낸 선지자가 스마야 하난 아사랴 야아시엘 이런 예언자들은
책을 기록하지 않고 말로 전한 예언자들인데 모두 무시당했죠
글을 남긴 선지자가 요엘 이사야 미가 오바댜 예레미야 스바냐 하박국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남겼습니다
북 왕국에는 글을 남긴 예언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을 읽을 때 역사서와 예언서를 재구성하여 읽으면
성경을 더욱더 이해하기 쉽고 밝게 보일 것입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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