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고흥 73코스 제1부
대전해수욕장-송정마을-예회마을-두원운석길-용산천-와룡마을 앞
20220525
1.고흥만 예회리 해안의 아침빛
남파랑길 73코스를 탐방하기 위해 대전해수욕장 버스정류소에 도착하니 아침 6시 33분, 날씨는 구름이 끼여 있고 미세먼지는 자욱하다. 어제처럼 맑은 날이었면 주변 풍경이 햇빛의 세례를 받아 명료할텐데, 오늘은 구름과 미세먼지 속에서 태양의 빛은 풍경의 명료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허위적거린다. 그럼에도 태양은 온몸으로 자신을 태우며 두터운 구름과 미세먼지 겹겹을 뚫어내고 있다.
대전해안의 해송림길을 걸었다. 고흥만 바다는 안개에 가려 희끄무레하다. 해수욕장은 아직 개장하지 않아서 텅 비어있고 언제 모아둔 것인지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다.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해안에 펼쳐진 모래밭과 방풍해송림, 모래밭으로 나아가 잠시 걸어보았다. 날씨가 더워지고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혼잡하겠지. 사람들이 없는 모래밭이 고적하여 마음에 든다. 해송길에는 아침 산책을 하는 마을 분들이 몇 오고갈 뿐 마을 주민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해변을 벗어나 대전방조제 가는 길로 나왔다. 간척농토 마늘밭의 마늘은 수학을 마쳤고, 논에는 모내기를 거의 마쳐서 푸르른 모들이 뿌리를 내리고 발돋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대전방조제로 나갔다. 고흥만이 서쪽으로 벋어 동그랗게 남동쪽으로 돌아나가는 해안선이 희부연하게 들어온다. 맞은편 해안선에 남파랑길 73코스 종점과 74코스 종점을 어림해 보지만 건너편 해안이 명료하지 않아 그 위치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지표가 되는 우도와 서목섬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 위치를 가리켜준다.
남파랑길 73코스는 고흥만 해안을 따라가는 길이다. 대전방조제, 예회리 해안, 성두리 해안, 용산천 하구 해안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해안이 이어지지 않는 곳은 산길과 도로를 따라 우회하다가 해안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대전방조제 서쪽 끝에서 해안을 왼쪽으로 돌지 않고 곧바로 언덕을 올라 송정마을을 거쳐 고개를 넘어 예회리 해안으로 나아가는 것이 첫 고흥만 우회의 길이다. 이 우회의 길 언덕과 송정마을에서, 대전해안과 대전방조제, 대전마을 등을 조망하는 기쁨이 크다. 특히 방풍림 해송이 펼쳐진 대전해변과 간척농토의 아침풍경은 신선하면서 마음을 정화하여 주어서 우두커니 서서 자꾸 바라보게 되었다.
송정마을 뒤 고개를 넘어 두원면 예회리 해안으로 내려갔다. 여기서부터 두원면 성두리 두원운석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예회리 해안은 약 5km가 된다고 한다. 고흥만 북쪽 예회리 해안길을 걸으며 고흥만 남쪽 과역면과 남양면 해안을 바라보는 풍경은 안개와 아침빛 속에 아스라하다. 바다의 각도섬과 우도, 서목섬은 흐릿함 속에서도 길잃은 사람들의 지표가 되어 손짓해 준다. 예회리 해안길은 사색과 명상의 길, 태양빛이 안개와 미세먼지를 살며시 밀치며 해안을 비쳐주고, 드넓은 진흙빛 바다 너머로 산줄기들이 에워싸고 있다. 예외리 해안길은 군데군데서 해안과 떨어져 나있는데, 걷다 보면 어느새 해안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예외리 해안길은 어촌인 듯 농촌인 듯 각각의 특색이 있는 길이 이어지는데, 예외마을을 서쪽으로 등지고 동쪽을 향한 해안은 두 특색을 모두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덕에는 농지와 푸른 숲이 펼쳐져 있고, 언덕 아래 해안을 가까이한 곳에서는 고흥만 동쪽 전체를 품에 안은 듯했다. 언덕 아래에 주택이 있는데, 집주인은 한국축구의 전설 차범근 감독이라고 한다. 길동무가 마을 주민들로부터 정보를 알아내 그 집 대문 앞까지만 가보았다. 남파랑길은 예외리 그 언덕 해안을 돌아가지 않고 예외마을을 거쳐 다시 예외마을 앞 방조제 해안으로 이어진다.
예외리 해안길은 예외마을 밖 방조제로부터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걸었던 지역의 산봉들을 마주보기도 하고, 이제 걸어가야 할 고흥만 둘레길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리움과 호기심을 함께 즐기며 걸어가게 된다.
고흥만 예외리 해안길은 여산 송씨 가족묘가 있는 마지막 언덕을 넘어서 내려가면 끝난다. 이곳에서부터는 두원면 예회리에서 두원면 성두리로 넘어가게 된다. 두원면 성두리 지역의 남파랑길은 고흥만 해안과 뚝 떨어져 숲길을 걸어 지방도 830번 두원운석길로 나아간다. 두원운석길을 따라가는 남파랑길은 고흥만 성두리 방조제 해안을 서쪽으로 따라며 잠시 바라만 볼 뿐 근접하지 않는다.
고흥만 해안으로 다시 나아가기 위해 남파랑길은 두원면 영오리로 들어가 두원운석길과 이별하고 고개를 넘어 두원면 용산리 해안으로 나아간다. 이곳에서 다시 만난 고흥만 해안은 활짝 열려 있다. 고흥만 용산리 방조제는 드넓은 간척농토를 펼쳐놓았는데, 용산천 하구에서 간척농토로 바로 건너갈 수가 없다. 남파랑길 73코스 종점은 고흥만 동쪽 과역면 노일리 해안에 어렴풋이 들어오는데, 간척농토로 바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없어서 남파랑길은 둑방길을 따라 용산천을 거슬러 길게 이어진다. 둑방길에는 먼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고, 용산천 하구 습지에는 무성한 갈대들이 바람에 서걱인다. 뒤돌아보면 고흥만 바다는 멀리 물러서 있고, 해안선인 듯 하천길인 듯 둑방은 끝없이 이어진다.
제2부로 이어짐
2.걸은 과정
소개된 세 곳 중 대전해수욕장은 거쳐가지만 두 곳은 남파랑길 73코스에서 탐방하기 어려운 곳이다.
남파랑길 72코스는 왼쪽 대원횟집 뒤 두원로에서 전봇대 왼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오다가 이곳으로 이어진다.
용동포방파제 건너편은 고흥군 대서면 안남리 일대인 듯.
그 옆 전봇대에 남파랑길 73코스 시작점 표지물이 붙어 있다.
오른쪽 뒤로 보이는 대전방조제로 진행한다.
대전해수욕장 버스정류소 뒤쪽으로부터 모래밭이 길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대전방조제 방향으로 진행한다.
남파랑길은 왼쪽 송정마을 뒤 산을 넘어 고흥만 예회리 해안으로 내려간다. 중앙 뒤에 보이는 마을은 대전마을이다.
왼쪽 대전해수욕장 버스정류소에서 해변의 해송림길을 걸어 오른쪽 길로 나와 방조제로 올라왔다.
남파랑길은 왼쪽 해안선을 따르지 않고 방조제 뒤 언덕을 올라 송정마을을 거쳐 고개를 넘어서 예회리 해안으로 나간다.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우도섬이 미세먼지 탓에 흐릿하게 보인다. 우도 섬은 하루에 두 번 오른쪽 남양리 육지와 이어진다.
섬은 지도상으로 보면 서목섬과 서도인 듯.
남파랑길 73코스의 목적지는 서목섬 오른쪽 뒤 과역면 노일리 고흥만 해안 뒤 내로마을회관이 있는 곳이라 어림한다.
바다의 우도는 하루에 두 번 신비의 바닷길이 열려 남양면 남양리 육지와 이어진다고 한다. 남파랑길 74코스 종점이 남양면사무소 앞이고, 남파랑길 75코스에서 우도 앞을 걷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남파랑길은 언덕길로 이어진다.
양파와 마늘이 널려 있다. 창고 뒤 멀구슬나무 꽃향이 날리고 있다.
왼쪽에 용동포선착장이 보인다.
농가 마당의 항아리들이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뒤쪽에는 고흥만 대전해변의 방풍해송림이 들어온다.
왼쪽 뒤에 대전마을, 오른쪽 바다에 용동포선착장이 보인다.
두원면 대전리 송정마을에서 두원송정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두원면 예회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두원면 예회리로 넘어왔다. 바다의 서목섬 오른쪽의 고흥만 해안이 73코스 종점인 내로마을회관이 있는 곳이라 추정.
두원송정길을 따라 왼쪽 위의 송정마을 고개를 넘어 두원면 예회리 고흥만 해안으로 내려왔다.
우도는 하루에 2번 바닷길이 열려 오른쪽 남양면 남양리 육지와 이어진다고 한다.
앞 중앙에 보이는 산이 조계산일까?
왼쪽부터 각도섬, 우도, 서목섬과 서도인 듯.
왼쪽 뒤에 돌출한 곶(串) 끝의 흰 건물은 대전방조제에서 돌아가는 용등산 해안 끝이다. 그 왼쪽 대전방조제 끝에서 빙 돌아 현재 있는 고흥만 예회리 해안길로 걸어왔다. 용등산 끝자락의 흰 건물은 73코스의 표지물이 되어 준다.
남파랑길은 해안길을 따라가서 정면 해안 언덕 뒤 예회마을로 이어진다. 정면 언덕 아래에 있는 주택이 한국 축구의 레전드 차범근 감독의 집이라는 것을 길동무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남파랑길은 이 길을 따라가서 언덕에서 왼쪽으로 꺾어 예회마을로 진행한다.
오른쪽 언덕 숲 사이에 있는 주택이 차범근 감독의 집이라고 한다. 건너편은 고흥만 과역면 노일리 해안일 것이다.
이 집을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 예회2길을 따라 예회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으로 꺾어 예회2길을 따라 예회마을회관 방향으로 진행한다.
해안길을 따라오다가 전봇대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 지점으로 왔다.
오른쪽 수풀 아래 언덕길을 올라와 왼쪽으로 꺾어 왼쪽 흰 건물 앞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 밭에서는 참깨를 가꾸고 있다.
중앙 뒤쪽에 보이는 산은 마복산이라고 가늠한다.
아담한 주택이 예쁘다. 이 집이 차범근 감독의 집인 줄 착각하고 가 보았다.
현관 입구에 예쁜 사슴 조각상과 화분을 배치하여 두었다. 주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파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하는데, 잠깐 차범근 감독의 집을 들렀다 오기로 하여 직진한다.
고흥만 언덕에 동향으로 자리하여 예회마을을 등지고 있다. 집에서는 동쪽의 고흥만 전체를 품을 것 같다.
차범근 감독 집 위 언덕에서, 걸어온 고흥만 예회리 해안을 바라보았다. 대전방조제 동쪽 끝 용등산 아래 흰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이 있는 왼쪽 대전방조제를 걸어 송정마을을 거쳐 고개를 넘어와 예회리 해안을 걸어 이곳으로 왔다.
남파랑길과 다시 만나서 왼쪽으로 꺾어 예회2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 언덕에 임진왜란의 공신 김붕만 신위단비 비각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남파랑길 72코스의 연강마을에 이른다. 남파랑길은 뒤돌아서서 진행한다.
그 아래에는 효열부 성산 이씨와 신씨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김붕만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과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된 유공자라고 한다. 1914년에 김붕만의 후손들이 이 신위단비를 세웠다고 한다.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김해 김씨 효자비이다.
농수축산물이 고루 생산되는 농어촌마을, 고려말 사회 혼란과 연산군 때의 사화를 피하여 이곳에 선조들이 정착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고려 말엽 배씨와 이씨가 살았다 하여 “배이동(裵李洞)”이란 소지명이 있으며 지형이 싯돌과 같으므로 “여호”라 칭하였으나 조선 1880년(고종 17)에 지방행정구역 개폐합 당시 옛날 예조판서(禮曹判書)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사람들의 예의범절에 감탄하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예회(禮會)라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왼쪽 맨 뒤 언덕의 팽나무가 표지가 된다. 그곳에서 오른쪽 중앙 언덕의 나무 아래 차범근 감독의 집을 들렀다가 왼쪽 팽나무 앞으로 되돌아와 이곳으로 왔다.
방조제를 걸어올 수 없어 방조제 뒤쪽 길로 걸어왔다. 고흥만 예회리 해안은 대전방조제 서쪽 끝지점에서 해안을 돌아나가는 곳에서부터 두원면 성두리 경계 지점까지 5km에 이른다고 한다.
왼쪽에 예회마을 앞 방조제가 있고, 중앙 뒤에 우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왼쪽 뒤에 보이는 산이 마복산이 맞는지, 아니면 무슨 산일까? 마복산이라 가늠한다.
남파랑길은 예회리 해안길을 따라가다가 언덕을 넘어 두원운석길로 나가 앞 왼쪽에 길게 나온 고흥만의 곶(串) 앞쪽의 용산천을 거슬러 오른다. 건너편 왼쪽마을은 두원면 용산리 신월마을로 남파랑길은 신월마을을 바라보며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이어진다.
앞에 보이는 해안은 고흥만 성두리 해안이다. 앞의 기와집 아래부터는 두원면 예회리에서 성두리로 넘어간다.
앞쪽에 보이는 언덕을 넘어 지방도 830번 두원운석길길로 나간다. 왼쪽 앞에 보이는 집 아래부터는 두원면 성두리로, 성두리 해안이 이어진다. 왼쪽 뒤 흐릿하게 뾰족한 산 오른쪽 뒤에 천등산과 딸각산이 그 머리를 흐릿하게 보여준다.
키위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태양광발전소 옆을 거쳐 이곳 언덕으로 왔다. 두원면 예회리에서 성두리로 넘어왔다.
다리 건너 왼쪽 성두앞길은 성두마을로 이어지고, 오른쪽 직진하면 예회마을과 연강마을로 이어진다. 남파랑길은 오른쪽 숲 두원운석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서 지방도 830번 두원운석길로 나왔다.
오른쪽 숲 언덕을 넘어서 지방도 830번 두원운석길로 나와 두원운석길을 걸어왔다.
두원운석길에서 오른쪽은 오수마을로 가는 오수안길이다. 이 앞에서부터 두원면 성두리에서 영오리로 넘어간다.
삼면이 야산으로 둘러 있어 산수가 수려하고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있어 호연지기가 용솟음치는 고장이다. 원래 마을 지형이 까마귀 집 모양으로 형성됐다 하여 “오소(烏巢)”라고 불러 왔으나 마을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아 한때 “오동나무골”이라고 불렀으며, 그 무렵에 오동나무골을 한자로 음차하여 마을 이름을 오수(梧樹)라고 고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두원운석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언덕을 넘어 고흥만 용산리 해안으로 나간다.
지금까지 10.1km를 걸었다. 앞으로 7.8km가 남았다.
중앙 뒤에 팔영산이 흐릿하게 들어온다.
두원운석길에서 숲길을 걸어 고개를 넘어 내려왔다.
중앙의 둑방은 고흥만 용산리 방조제이다.
남파랑길은 용산천 하구의 용산리 방조제를 올라서 와룡교를 건너 용산리 방조제 왼쪽 둑방을 따라 내려온다.
오룬쪽 앞 낮은 산은 용두산인 듯. 맨 뒤 오른쪽 산은 조계산인 듯.
용산리 방조제와 용산천 둑방길을 따라 오르면 두원원석길에 이른다. 잠시 길을 가로질러 맞은편 와룡마을을 살핀다.
원래 마을 앞까지 바다여서 배가 드나드는 선창이 있어 ‘선창개’라 칭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당시 주산(主山)이 용(龍)의 형국이라 하여 와룡(臥龍)이라 고쳐 불렀으며 두곡(杜谷)으로부터 박씨가 입주하기 전 한씨, 오씨, 김씨가 살았다고 한다. 당시 불효였던 김씨가 3대 독자 아들이 익사하자 영주지가 못 된다 하여 대지주(大地主)였던 김씨가 떠나므로 타성씨도 점차 떠나 버렸다. 이곳이 빈터였기에 약210년 전인 1785년 박씨가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흥군청)
중앙에 조계산이 솟아 있고, 그 오른쪽 뒤에 천등산과 딸각산이 가늠된다.
제2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