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8일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사고는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뉴스” 로 오를 만큼 국민들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세 남매를 두고 일을 나가다 변을 당한 어머니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 제 아이들을 잘 부탁드린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 세상에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삶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제 한 해가 다 가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 20대의 젊은 아버지가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한강에 던진 사건을 접했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죽였다는 뉴스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들었지만,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난 살인이 아닌, 몇 주 전부터 계획된 범죄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범죄의 희생자가 수면제를 먹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영하의 차가운 한강물에 떨어져 죽은 어린아이라는 점이 이 사건을 더욱 충격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의 시작과 마무리에서 터진 이 두 사건에서, 범인들에게 가해자 이상으로 특별하게 강조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들의 정신장애이다.
'대구지하철 사고 범행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지하철 사고 정신질환자 관리 또 구멍'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방화로 인해...'
당시 대구 지하철 방화범에 대해 언급한 기사의 제목들이다. 한결 같이 지하철에 불을 낸 당사자가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글의 첫머리에 언급하고 있다. 다른 기사로는 지체장애 2급 장애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장애를 얻게 되었는지 나오지만, 최악의 지하철 참사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신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이 지하철에 불을 질러 많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었다는 것 이외에 범인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대구지하철 방화범이 정신질환자” 라는 보도가 나간 직후, 장애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저주의 대상“ 이 되었다. 각종 장애인 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장애인을 비난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고, 장애인이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가도 피한다는 소식이 신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급기야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범인의 정신지체를 너무 강조하지 말라“는 권고문과 성명서를 내 놓았으나 이미 얼어붙을 대로 얼어버린 장애인에 대한 편견들을 이겨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 장애인들의 항변이다.
정신장애를 사건의 전면에 내세운 보도의 최대 피해자는 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한강에 던진 아버지에 대해서도 사건이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20대 아버지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에는 '20대 두 어린자녀 한강에 던져' '20대 아버지 두 자녀 한강에 던지고 도주' 등 대략적인 사건만을 보도하던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신질환자 한강에 자녀 던지고 달아나' '정신지체 3급인 범인은...' 등으로 범행 동기를 정신장애로만 몰아가고 있다.
어린 남매를 죽인 아버지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뉴스의 초점으로 삼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연관지어 얼마든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런 이후에 “비장한 아버지” 의 정신장애를 소개해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뉴스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셈이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나, 아이들을 한강에 던져 죽게 한 아버지 모두 장애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뉴스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정인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중학생 소년이 어머니의 시신과 6개월 동안 동거한 사건을 보도할 때,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누구도 알지 못한 것에 대해 소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돌린다면 활발하지 못한 성격이 부른 비극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이 맡은 학생이 6개월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소식을 알지 못한 선생님께 원인을 돌린다면 “선생님의 무관심” 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아버지의 장애로 돌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정신질환을 가진 20대 가장 한 명이지만 이는 자칫 사회에서 멀어져 있는 장애인들 모두가 이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은 100인 100색인데도 말이다.
언론은 사실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를 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이것에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