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6장 16절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에 가서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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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50만부 이상 팔린 <모자에 제라늄 꽃을 꽂고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바바라 존슨은 남편과 네 명의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가정에 문제가 불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귀가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첫째 아들은 트럭 음주운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동성애에 빠져 집을 나갔습니다. 셋째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어 18세의 어린 나이에 전사했습니다.
연속되는 불행으로 인해 그녀는 “하나님, 어째서 내게는 불행만 다가옵니까?” 라고 반문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야속한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심정으로 지내던 어느 날 마음을 추스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지. 더 이상 비관적으로 살아서는 안되겠다. 이제부터 긍정적인 삶을 살자” 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남은 생을 다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드렸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교회에 가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식물인간이었던 남편이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셨으니 나도 뭔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 고 결심하고,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숫자가 5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는 이런 슬픔에 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죽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입니다.” 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도 편지를 쓰고 전화로 위로했습니다. 이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그들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이들을 도와주는 그룹을 만들고 선교회도 조직했습니다. 드디어 그녀는 유명한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동성애로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오게 되었으며, 남은 생을 보람되게 사는 큰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절망하고 낙심하며 밤낮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았다면 더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을 때 그의 인생이 이와 같이 새로워졌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행복해졌습니다.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존경받는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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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평균 수명이 여성이 84세이고 남성은 77.3세라고 합니다.
몇 년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남자가 76.2세, 여자가 82.8세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수령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변함없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이 7년을 더 산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연구했는 데 일반적으로 여성이 장수하는 요인 중 하나는 풍부한 감정표출에 있답니다. 여자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감탄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감격하고 환호하며 호들갑을 떱니다. 반면에 남자들은 별로 감탄하지 않습니다. 점잖 떨다가 속병이 듭니다. 그래서 갑자기 요절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수다에 빠져서 지내는 지 남자들은 만나도 밥먹자 하면 끝나는 데 여성분들은 조그만한 일에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수다에 푹 빠져서 바로 옆에 있는 가방에 누가 손을 대도 여성분들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감탄의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포유류 중에서 사람만이 감탄할 줄 안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이를 낳기까지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분만의 고통을 겪다가 자기 아이를 보는 순간 “감탄사를 쏱아내며” 고통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볼 때마다 ‘어루릉 까꿍, 어루릉 까꿍하며 호들갑을 떱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감탄의 요소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면서 스스로 순간순간 감탄하셨습니다. 하루하루 창조를 진행하시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스스로 감탄하십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굉장히 풍성한 감성적 언어입니다.
wonderful, beautiful, fine, joyful, cheerful, amazing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은 단어로 번역되고 있는데 발음이 안 되어 그만합니다.
우리말로도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놀랍다, 좋다, 적절하다, 훌륭하다, 탁월하다, 복되다, 찬란하다, 귀하다, 아름답다, 보배롭다, 탐스럽다, 준수하다.’ 등등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감탄을 총동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는 더욱 흥분된 마음으로 감탄하십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것은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기분이 극에 달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보고 전라도 사투리로 허벌나게 감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창세기 1장의 결론을 하나님의 축제라고 해석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감탄스런 존재입니다.
시편 8편은 시편에서 첫 번째 찬송시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첫번째 탄성의 시입니다. 괭장한 의미가 있죠!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경탄합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 인간을 섬세하게 돌보아주시는 은혜에 경탄합니다. 이처럼 그는 감탄으로 시작하여(1절), 감탄으로 맺습니다.(9절) 따라서 우리도 날마다 감탄하고 감격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에 감사 감격하며 살아야 합니까? 두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입니다.
시편 8편 1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마음껏 찬양합니다.
다윗의 시편은 온통 감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시 31:19) 『여호와 우리 주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시 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섬세하심,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의 응답하심, 하나님의 도와주심, 하나님의 은혜 주심에 감격하며 삽시다. 감탄할수록 행복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현장에서 굉장히 고생하며 살았지만 항상 행복했던 것은 하나님을 감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주 표현하는 탄성구호가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 경건의 비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성령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셨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믿었고, 그분은 영광에 싸여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다시말해
『크도다, 하나님의 은혜여!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크도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여! 크도다, 하나님의 사랑이여!』 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삶의 모습을 보면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지만 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삶을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탄할수록 영혼과 육체가 건강해집니다.
찬송가 391장의 가사 원문을 보면 wonderful이라는 단어를 거듭 반복합니다. 온통 감탄입니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A wonderful Saviour is Jesus my Lord,
A wonderful Saviour to me,
He hideth my soul in the cleft of the rock,
Where rivers of pleasure I see.
He hideth my soul in the cleft of the rock
That shadows a dry, thirsty land;
He hideth my life in the depths of his love,
And covers me there with his hand~~♡
우리는 예배 때마다 감격의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황홀한 감격이 있어야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희열이 날마다 가슴에서 솟아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오 놀라운 사랑의 날 오 놀라운 사랑의 주일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어져 나오는 사랑을 만방에 전하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 가운데 물이 바다에 넘침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감격의 물결을 만들어 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메말라 버린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때 감격해 하셨던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둘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감탄의 유전인자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운 감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인류 최초의 최상급 노래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자기 아내를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최고의 감탄이요, 극에 달한 절정의 탄성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오! 하와, 너무 예뻐, 오! 원더풀, 오! 뷰티풀, Amazing’ 이라는 표현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아가서의 내용은 그 감탄의 노래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바라보면서 황홀감으로 행복을 속삭입니다.
어떤 사람이 감탄과 감격을 잘 하는가 분석해 보면 간단합니다. 심성이 단순한 사람이 감탄을 잘합니다. 감성이 건강한 사람, 영성이 풍부한 사람, 은혜가 충만한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인생이 행복한 사람이 감탄을 잘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감탄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감탄을 받고 싶은데 채워주지 않아서 남자들이 엉뚱한 곳으로 찾아갑니다. ‘오, 사장님, 멋지셔요. 오빠, 환상적이에요!’
요즘 이단이 극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단에 넘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감탄 전략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복한 교회일수록 감탄이 넘칩니다. 서로 반가워하고, 환영하고, 칭찬해주고, 고마워합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만나면 서로 반갑게 감격하고 감탄을 주고 받아야합니다. 서로 인사해봅시다.
놀랍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매력이 넘칩니다, 멋지십니다, 잘 어울리십니다. 잘 안되시는 분은 이렇게라도 해보세요. ‘감탄!’
식사 당번들에게도 감탄이 넘치는 인사를 해봅시다. 찬양대원들에게도 매우 좋았다고 감동의 인사를 해봅시다. 교회에서 묵묵히 섬기는 분들에게 감사와 감탄의 위로를 해봅시다. 설교자한테도 나가면서 오늘 감동 받았다고 말해보세요. 큰 격려가 됩니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감탄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으며 참 맛있다고 감탄해보십시오. 아내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을 보며 감탄해보십시오. 남편의 핸섬한 모습에 감탄해보십시오. 아니 오늘이라는 시간속에서 “오 놀랍다! 오늘 그 놀라운 날이야!”
충청도 사람은 기껏 감탄해 하는 말이 ‘됐슈’ 입니다. 그야말로 무감탄이에요.
밥을 먹을 때 음식 맛이 좋은데 표현력이 부족하면 이렇게라도 해봅시다. ‘오, 감탄’
우리 예수님은 감탄 인생을 사셨습니다. 작은 것에도 큰 감탄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주 반복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
우리가 주님을 감탄하며 살수록 주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감탄해 하십니다. 더 크게 감동하십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감탄하며 삽시다!
오 놀라운 날! 오 놀라운 주일! 오 그 날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