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6(토) 07:30
1호차 : 구의동출발(45명)
2호차: 아차산역 후문주차장 집결
서울-> 강화휴계소를 지나
오전 9시 45분 전등사주차장에 도착
함께걸어 행복해요~~^^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서, 정화궁주가
절에 대장경과 함께 옥으로 만든
법등을 기증하면서 진종사라는
절 이름을 전등사로 바꾸었다.
정화궁주는 충렬왕의 왕비였으나,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에게 밀려
둘째 비로 강등 제국대장공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살았던 비운여인
중식(가나안오리집)오리고기와 된장찌게
달빛이 아름다운 강화 8경 연미정,
강화해협으로 흘러가는 물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제비 ‘연(燕)’, 꼬리 ‘미(尾)’자를 써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한다.
연미정은 인조 5년(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장소가 된다.
안타까운 굴욕의 역사를 지닌 연미정 ~~
강화 고려궁지 ( 고려의 궁궐터)
갑곶돈대는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은,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윤재상고문님의 고려의 무신시대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11세기에는 거란족의 침입을 받았으나 명장 강감찬(948~1031)의 귀주대첩(1019년)으로 이를 물리쳤고, 대각국사 의천의 노력으로 불교를 숭상하는 국가가 되었으며, 불교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2세기에 권력투쟁과 내분의 격화로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었고, 왕권이 약화되면서 군사권을 가진 무신들에 의해 정치가 행해졌다.
13세기에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피폐화되었고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31대 공민왕이 즉위하여 왕권을 다시 세우고 국력을 강화시키고자 했지만
그의 정책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왕권이 무너지고 민심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갔다.
무신 이성계와 그의 책사였던 정도전 등이 주도하는 신흥 사대5부 세력에 의해 1392년에 멸망하게 되었다.
잊고 있었던 고려의 역사에대해
설명해주신 윤고문님 감사합니다
2023년 구자탐방 For ever ~~~
마지막으로강화 풍물시장♡
강화 지역은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예부터 예성강, 한강,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고려와 조선의 수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 요충지로 성장했다.
몽골의 침입 때는 수도를 강화로 천도 했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에는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풍물시장은 꽤 잘꾸며져 있었으며
싱싱한 해산물 및 과일 야채
등 다양했다
2층에는 먹거리가 다양~~
인삼막걸리 만두 찐빵
상호회원님 회1접시~~
주어진시간은 40분~~ㅋ
어서먹고 차량 탑승해야한다
만두 찐빵 너도나도 막걸리 한잔~~^^
맛나게 먹었어요 ~~^♡^
강화풍물시장의 어원
강화 지역의 고구려 때 이름은 혈구였는데, 757년에 해구(海口)로 고쳤다가 고려 때 강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혈구, 해구, 강화(江華)라는 이름까지 모두 강이나 물과 관련된 이름이다.
이 이름들은 강화가 섬이라는 특성과 뭍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상황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강화풍물시장은 지역 이름에 노점을 양성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을 가진 시장이라는 의미로 풍물이 붙어 생긴 이름이라고합니다
* 강화에 가시면 꼭 들러보세요~~^♡^
첫댓글 삼량성 등 잘봐습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고 좋은 추억 남겨주세 요. 감사합니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