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의 마지막 종착역인 문산초등학교로 아침 출근을 한다.
7시 30분에 집을 나섰지만 17번 버스가 몇 분이 걸릴지 가늠이 어려웠다. 낭패를
방지하려면 버스가아니라 택시였다.
택시를 세워 탔다. 마음이 바쁜데 기사는 특목고..자사고...자공고...입학
사정관제에 대해 이것 저것 묻는다...새학교의 아침 풍경을 미리 상상해보려던
꿈이 깨졌다. 그러나 친절히 아는만큼 대답해 드렸다. 기사의 요점은 멀리서
고등학생들이 동명동, 혹은 봉선동까지 학원으로 뛰어다니더라...있는 집 자녀
들은 큰 어려움없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데 자기같은 서민들은 못따라가겠더라..
일종의 불만을 내비치면서 나의 동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그래요~
얼버무리고 문흥동 고가를 지나자 곧 내렸다. 걸으면서 새학교 선생님들, 아이들
과 만남을 상상하며 의미있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8시 2분 학교도착.
교감선생님, 유치원감, 교무부장님...반갑게 환대를 해주셨다. 얼마후 8시 20분이
넘어 속속 출근하신 선생님들도 대부분 꾸벅 인사를 건네주신다.
'날 아시는가?' 어색하고 머쓱했던 기분이 다소 가라앉았다.
교장, 교감선생님도 새로 부임하는 분들이다. 학교 분위기가 어제와 사뭇 달라질
지도 모르기에 다소 긴장하는 선생님들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8시 30분, 직원전체
모임자리에서 인사소개가 열렸다. 파워포인트로 전근오신 선생님 사진, 경력, 특기,
교직관 등이 자막에 띄워졌다. 내 사진을 보고 와! 잠깐 환호성이 터진다. 유렵테마
여행때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 오줌싸는 어린이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아마 오줌싸는 어린이가 재미있게 보였을 것이다. 부끄럼, 즐거움, 두근거림, 해벌쭉
함, 이런 표정이 동심을 대변하는 얼굴이다. 이 사진을 통해 나의 동심을 상징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니 어느정도 의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교사 대표로 "영혼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되길 기대하며 호흡을 맞춰 최
선을 다하는 수석이 되겠다' 간략한 인사말을 전했다.
내가 온다는 인사발표가 인터넷에 난 뒤 수석실 준비 말이 나왔다고 한다. 수석실,
마련이 되면 좋고, 안되어도 어차피 교담으로서 교담실에서 업무는 볼 수는 있을테
니 굳이 티를 내지말자고 속다짐한 터라 교담선생님들의 수석실 운운에 그런 말이
있었냐고만 슬쩍꿍만 반응했다.
오후에 교장, 교감, 교무부장 순회를 하던 중 교담실에 들러 드디어 "수석실을 마련
해드리겠습니다. 뭐가 필요한가요?" 옆에 있던 원로교사가"냉장고, 탁자. 책상, 새 컴퓨
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수석박사님께서 조용히 연구도 해야 하고 동료교
사 수업지도 , 멘토링 등 공간이 필요하니 수석실을 이곳에 마련하십시다. 필요한 물
품은 행정실장께 말해 준비토록 할게요."
김일남 교장선생님의 구두 결재가 떨어졌다.
"아, 감사드립니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작년 9분이 생활했다는 교담실이 수석실로 , 그리고 6학년 옆교실이 교담실로 바뀌었다.
2009년 처음 수석이 되어 수석실 문제로 송정초등학교를 방재철 교감선생님과 방문한 적
이 있다. 알아보니, 광주에서 처음으로 당시 백장인 수석이 교재연구실을 수석실로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근무지에서 수
석실은 가져보지 못했다. 예산때문이었다. 그리고 2010년엔 1학년을 맡는 관계로 수석
실은 관심밖이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수석실이 생기면 그만큼 의욕을 더
부르고 일할 맛도 생길 터. 느낌이지만. 교담실에서 수석 일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들락날락 여기저기서 소음이 끊이질 않을 테니, 우선 뇌가 제대로 작동
하기 힘들어할 게 분명하다. 어쨌든 첫 출발이 좋다. 부족한 능력은 배워가면서 채워
가면 될 것이다. 수석실까지 마련했는데 별 성과가 없네 이런 평가만은 결코 듣지 말아야
할 텐데. 불쑥 싯귀가 떠올랐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바람이 불지않는다 그래도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