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각정에서 공수마을과 송정 해변을 일람(一覽)한 다음 송정해수욕장을 빙하니 둘러 간다. 아스팔트로 이어진 구덕포까지는 바다가 지척인 데다 굽이치는 길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약 1.7km를 바다가 속삭이는 길을 걷다 신선장횟집 뒤편 은하횟집 앞 구덕포의 역사를 말해 주는 수령 300년의 소나무를 만난다. 대견한 일이다. 잘 생긴 나무였더라면 진작에 베어졌을 것이나 못생기고 뒤틀리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남아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300년 와송은 오늘 구덕포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구덕포는 조선 말 동래군 원남면의 아홉 포구 중의 하나로서 함안조씨 일가가 정착해 형성한 마을이다. 매년 음력 정월 14일과 유월 14일 자정,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뒤 용왕제에 이어 거릿대 장군제를 지낸다. 거릿대 장군제는 길 가에 서 있는 장승이나 나무 등에 지내는 제사로 구덕포에서는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와송을 장군나무라 부르고 있다.
길은 은성횟집 뒤편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철길 아래 담장길로 연결된다. 불과 60m에 불과하지만 왼쪽은 돌담이요 오른쪽은 대밭이 철길을 가리고 있어 운치 있다. 담장 너머에 눈길을 주면 고향집 같은 툇마루가 보이고, 장독대 옆 철철이 꽃을 피워 올리는 화단이 보인다.
- ▲ 갈맷길 그린워킹 참가자들이 사포지향 갈맷길 2백리 1구간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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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끝나는 곳에 동해남부선이 지나는 굴다리가 있다. 굴다리를 빠져 나와 다리 길이만큼 철길 옆으로 이동한 다음 20m 정도 언덕을 오르면 두 개의 길을 만나게 되는데 능선길 대신에 초병들이 이용하던 참호길을 따라 이동한다. 호젓한 길을 따라 430m 정도 이동하면 청사포와 송정해수욕장을 굽어보는 조망점을 만난다.
구덕포 가는 길에 보았던 수평적 바다 바라보기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바다를 조망한다. 사실 부산의 해안 곳곳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이제 바다를 관조하기란 이렇듯 개발이 보류된 곳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바라볼 공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관조라는 것은 일상적 추구와 거리를 두고 자아를 찾는 일인데, 그런 목 좋은 곳은 이제 자릿세를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씁쓸하고 고약한 일이다.
청사포로 향한다. 해송 숲이 끝나는 곳에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해월정사 앞을 스친다. ‘해월정사’는 넓고 푸른 해운대의 바다와 아름다운 달빛의 불지를 의미한다고 해서 성철스님이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적광전 뒤편 수묵벽화가 인상적이다.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심지어 단청조차 없고, 절 입구 현판도 한글로 달았다. 그럼에도 성철스님이 머문 곳이라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 용궁사 뒤편 기장의 제1경인 시랑대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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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정사를 지나 한국교회 교육관 앞을 따라 내려간다. 해운대구가 조성한 삼포길로 곧장 가면 청사포를 만날 수 없기에 기존의 길을 이용해 청사포로 향한다. 청사포 역시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지였다. 지금처럼 해안가에 모텔이나 횟집은 없었다. 토지의 이용이 자연순응형으로 소박했다. 마치 남해 가천마을처럼 한적하게 묻혀 있었다. 그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탄식이 인다. 그 시간을 신기마을 300년 수령의 소나무들이 바람소리로 수런대고 있다.
등대 벽면에 매직으로 쓰인 이해인 수녀의 ‘바다새’
철길을 건너 청사포에 다다르자 백등대가 손짓한다. 누군가 등대 벽면에 매직으로 이해인 수녀의 ‘바다새’를 옮겨 놨다.
“이 땅의 어느 곳 /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 ▲ 철지난 송정바다 겨울철새인 붉은부리갈매기들이 일찍감치 도래했다.
- 누군가 그 시를 읽고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또 그가 누구든 등대 같은 사람을 만나기 바란다. 그리하여 백등대 홍등대 짝을 이루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는 사랑이기를 희망한다. 청사포의 사랑은 그런 곳이다. 홍등대 너머로 공수 시랑산 자락이 보이고 300년 수령의 망부송이 푸른빛으로 우뚝하다. 청사포의 전설을 간직한 채 묵묵히 이 포구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다시 300년이 흐른 뒤 청사포는 어떤 모습일까.
발길을 돌려 미포로 향한다. 금오횟집 뒤편 피라칸사 울타리길을 돌아 솔숲으로 내려선다. 솔숲에서 동해남부선 철길까지 150m 정도 내려서면 문텐로드와 이어진다. 달빛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안정을 찾게 하자는 취지에서 문텐로드라 했지만 그 이름에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시비를 건다. 아무튼 일몰 때부터 밤 11시까지 그리고 새벽 5시에서 일출 때까지 불을 밝혀주는데 구비마다 빛의 각도를 달리하여 맛을 내고 있다. 여기에 꽃잠길, 가온길, 바투길, 함께길, 만남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사포에서 이어지는 길은 가온길(0.6km)과 꽃잠길(0.6km)로서 달맞이 입구와 만난다. 거기서 벚나무 데크길을 따라 내려가면 해운대의 바다가 활처럼 휘어져 있다. 멀리 오륙도와 이기대 해안까지 조망한다. 동백섬 옆 한 덩어리의 마천루가 해운대의 번영처럼 보이나, 정작 부산사람에게는 낯설다. 1000년 전 최치원 선생이 보았다면 급변한 주변 환경에 놀라 동백섬에 각자(刻字)해 놓은 해운대를 걷어 갈 판이다.
- ▲ 황학대와 두모포 사이 드라마 세트장 방문자들은 등대와 교회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현혹되어 정작 역사적 공간인 죽성교회는 외면하는 수가 많다.
- 미포육거리에서 미포 쪽으로 향하는 길, 철길 너머 다가서는 풍경 한 점이 명품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륙도가 수평선에 서 있다. 그리고 도로는 마치 바다 속으로 빠져들 듯 미끄러져 내리고 가로등과 신호등이 안내자처럼 도열해 있다. 영화 ‘해운대’에서 해일이 몰려오는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100만 달러의 야경도시로 알려진 일본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시(函館)의 하치만자카 언덕길보다 뛰어나다. 미포는 그런 곳으로 재해석되고 알려져야 한다. 그래서 와우산이 바닷가로 흘러내린 미포(尾浦)가 아니라 진짜 미포(美浦)로서 자리매김 되기를 희망한다.
드디어 해운대 들머리다.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편의 시설이며 다양한 볼거리와 숫한 이벤트는 해운대해수욕장의 지위를 가늠케 한다. 특히 여름 해운대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곳이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사람 구경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뉴스의 첫 머리는 매일 갱신되는 피서인파의 숫자다. 달착지근한 선크림 냄새가 진동하고 낮과 밤이 끈적끈적하다. 어쩌면 그 끈적거리는 욕망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해운대라는 이름은 신라 말의 석학 고운 최치원의 자(子)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러 달맞이 언덕 일대의 절경에 심취되어 머무르며 동백섬에다 ‘해운대’라는 글자를 음각한 이후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한다. 전국적 명소로 알려진 것은 온천 때문인데, 1937년 동해남부선의 개통이 큰 기여를 했다.
- 미포 표지석으로부터 부산웨스틴 조선호텔까지 약 1.5km, 백사장 끝에 동백섬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기장 대변에서는 송정이었고, 송정에서는 달맞이언덕이 가서 만나야 할 풍경이었듯 동백섬은 미포에서 걷는 사람들의 목표로 설정된다. 동백섬 해안은 최근 데크를 조성해 걷기에는 그만이다. 전망대에서 누리마루APEC하우스 건물 너머로 광안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갈한 솔숲길을 벗어나면 마린시티가 우뚝 섰다.
예전에 이 바다는 거대한 멸치떼를 불러들였다. 여기에 멸치만큼이나 많은 멸치잡이 배가 밝힌 불이 밤바다를 금빛으로 출렁이게 했다. 그 풍요가 좌수영어방놀이(左水營漁坊,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를 낳았고,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을 있게 했다. 이제 그 앞바다의 흔적은 없다. 대신 수영만 하구에서 출발한 날렵한 요트들이 돛을 펴고 점점이 바다를 수놓고 있다. 시방 그 바다가 손짓한다.
첫댓글 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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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인다 해안길을따라서...기장 동백섬,,,,![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전에 부산결혼식이있어 잠시들린누리마루 전망이 멋지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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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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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갈맷길 둘레길따라 친구들과 한번 가볼만 하겟네,,,,,,,헌데 민자야...호야 호기랑언제 자물통 채우고온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