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0장 10절 관계: 선한 목자를 믿고 따르라-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목자
나라마다 보면 그 나라의 중심되는 농사나 산업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벼농사가 주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하는 사람은 천하의 근본이다”라고 하면서 중요시 여겨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은 양을 치는 목축업이 중심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부르신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삭, 야곱, 그리고 열 두 아들, 후에 모세, 그리고 다윗 역시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만큼 목축업은 그들의 중심에 흐르는 직업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좋은 정치가나 목사가 되려면 양떼를 키워봐야한다는 말을 남길만큼의 배움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자신을 향해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오신 두 가지 이유에 대하여 오늘 10절 말씀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과 양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양의 문입니다. 둘째는 선한 목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 세가지로 자신을 표현했는지에 대하여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양들에게 있어 구원의 문이며 생명의 문입니다. 양들은 이 문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됩니다. 우리 함께 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양들만 그 문으로 통행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절도요 강도기 때문에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양을 훔쳐가고 죽이려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은밀하게 자기들의 내적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교회로 들어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단들입니다. 그런데 이단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통해 육체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역시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들에게서는 진리가 선포되지 않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할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의 모습을 감춥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 아버지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거늘 너희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하고 그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양의 문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양의 생명에 관심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삯꾼들입니다. 여기서 삯꾼들은 누구를 말하느냐 하면 자기 이익을 위해 절도와 강도와 함께 협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분을 이용하여 절도와 강도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돈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들은 절도와 강도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성전이 잘못 사용되는 것을 바로 잡으려는 예수님을 내쫓아버렸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침묵과 지지아래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하나님의 양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계속 당해야 했고 그로인해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예배를 드리러 왔지만 상한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기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양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문을 여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셨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접하시기 위해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그래서 양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서는 하나님의 양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게 되었고 들어가며 나오며 생명의 꼴인 하나님의 말씀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9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러분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좁은 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영생을 얻게 되고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의 양식을 날마다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이스라엘의 선한 목자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신 후 부터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야 생명을 얻고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10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다른 삯꾼이나 도적이나 절도나 강도와 다른 점은 바로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양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바로 위기 상황에서 달라집니다. 이리떼가 달려들 때 삯꾼은 양이 자기 양이 아니므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도망을 칩니다. 양의 목숨보다 자기 목숨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이 자신의 양이므로 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리고 1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양을 사랑해서 스스로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의 마음에는 양을 위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을 책임지십니다. 28-2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 누구도 예수님의 양인 여러분들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만물보다 크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양인 여러분들을 책임지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뒤로 가면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들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고 위대하며 영원하신 그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양인 여러분들 사이에는 매우 중요하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관계는 몇가지로 증거가 됩니다. 우선 3절을 보면 예수님은 양들인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예수님의 양인 여러분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양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알기에 목자의 음성이 들리면 신속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목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렸다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기뻐하며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 마자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예수님의 양이 맞다면 주님의 음성은 굉장히 반갑게 느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놀랍고 무한한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에 반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둘째로 4절을 보면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인 여러분들을 다 불러놓고 앞서 가시면 여러분들은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14절을 보면 예수님도 양을 알고 양도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질문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안다고 하실 까요? 마태복음 7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내쫓고 능력을 행하며 예수님의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시면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일을 한 사람들을 모른다고 하신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 마음 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능력은 행했지만 그래서 예수님을 드러냈지만 그들은 하나님보다도 예수님의 양들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행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을 오해합니다. 그냥 머리로 믿는다고 하면서 긍정하면 믿는 줄 압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 가진 사람들이 워낙 적기 때문에 환난이 오면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나며 유혹이 오면 육체의 이익을 찾아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양들은 승리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환난이 오든 핍박이 오든 굶어 죽든 말라죽든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승리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영혼이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여러분들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양의 우리인 교회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인도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수가성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으로 익어 희어진 곡식을 추수하기 위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구하라는 말씀을 통해 확인하셨습니다. 여러분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전도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도 잘하는 하나님의 일꾼을 보내셔서 함께 이 지역을 전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일꾼을 보내셨을 때 전도자의 자리에 서 계시겠습니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자리보다 다른 자리에 가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픔이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가며 예수님과 함께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5-38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사해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의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가 보이고 아버지 하나님을 보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구원의 문이요 생명의 문입니다. 예수님으로만 여러분들은 영생을 얻고 참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영원토록 살리시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버리신 선하 목자이십니다. 그로인해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여러분 이제는 혼자만 믿지 말고 교회 밖에 있는 예수님의 양들을 이끌어 오십시오. 여러분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여러분들도 계시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여러분들도 행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