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사 철전(狂獅鐵戰)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오십여 년 전에나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었다. 근 삼사십 년 동안 그의 소식은 알아볼 길이 없었다. 들리는 말에 그는 부상(扶桑)으로 건너가 이국(異國) 생활을 하 고 있다고 했다. 부상 섬에는 모두 난장이들만 살기 때문에 그가 생활하기가 더 욱 편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적인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홀연히 다시 나타나자 사 람들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진봉초는 공경히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후배들은 벌써부터 선배님의 존성대명을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귀동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는 비록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괴물 이 왜 나타났는가 하고 생각하겠지?" 진봉초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제가 감히." "네가 묻지 않아도 내가 그 이유를 말해 주겠다." "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야. 첫째, 이분 철 아 가씨가 혼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악사를 초청했지. 그들이 모두 일류 악사라는 것을 보증하겠네. 그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식을 올린다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니 잠시만 좀 기다 려 달라는 것일세." 진봉초 등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취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보니 그는 우리 때문에 온 것은 아니군." "하지만 이 노괴물과 철심난이 무슨 관계가 있지? 왜 그녀의 일 에 참견을 할까?" 귀동자는 그들에게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사실 나는 이 철 아가씨와는 모르는 사이야. 하지만 난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지." 이대취는 그 말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악인곡(惡人谷)에 이십 년 동안이나 잠적해 있다가 다시 강호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심대악인은 여전히 십대악인이었다. 십대악인의 이름은 그리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침착할 수가 있었다. 귀동자가 다시 말했다. "또 한 가지의 일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이지." 진봉초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듣고 있습니다." "난 이번에 어쩌다 한 사람을 구하게 됐어. 듣기엔 나쁜 놈이라 하더군. 그러나 난 성질이 이상해서 나쁜 놈과 친구가 되기를 좋 아하지. 남들은 나쁜 놈과는 친구 삼기를 꺼려하지. 그렇다면 그 나쁜 놈이 불쌍하게 생각되지 않나? 한 사람이 너무 불쌍하면 어 찌 나쁜 놈이라 하겠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몰래 웃고 말았다. 백개심은 참지 못 해 입을 열고 말했다. "선배께서 나쁜 놈과 친구가 되고 싶다니 정말 잘됐습니다. 지 금 이곳에 있는 나쁜 놈들은 다른 악당들보다 열 배는 더 흉악한 놈들이니까요." 그는 꼭 이런 식으로 사람의 심사를 긁어놓는 말을 잘했다. 그는 사람의 심사를 긁는 말을 하지 못 하면 목구멍이 간질간질 해서 참지 못 하는 성미였다. 마치 한 마리 똥개가 똥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속이 아픈 것처럼 말이다. 귀동자는 그를 바라보면서 웃어보였다. "네가 바로 손인불이기 백개심이겠군. 과연 명불허전이야. 내가 이번에 배에 올라온 것은 너를 찾기 위해서야." 백개심이 놀라면서 말했다. "나...... 날 찾소? 왜...... 왜? 난 사람을 먹지도 않았고 도 박도 하지 않았으니 이중에서 내가 가장 얌전할 것이오." "사실 내가 너를 찾은 이유는 나의 그 나쁜 친구와 네가 계산되 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해서야." 여기까지 말하던 그는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빨리 와라! 너 이 이빨 없는 호랑이야." 이 말이 나오자 백개심은 놀라 달아나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백 부인도 시종 생긋생긋 웃고 있다가 이 말을 듣자 돌연 안색 이 변해버렸다. 그러나 백개심은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귀동자가 이미 그의 앞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때 갑판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미 한 사람이 큰 걸음으로 들어왔다. 바로 그 마누라를 잃은 백산군이었 다. 백개심이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계산은 언제까지 해야 다 끝낼 수가 있을까?" 이 말을 들은 이대취도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계산을 해야지. 시간도 많으니까." 백산군은 서서히 백개심의 앞으로 다가왔다. 백개심은 웃음띤 얼굴을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백(白) 씨이니 절대로 남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싸움을 해선 안 되오. 우리 백가의 화기(和氣)를 상하게 해서야 되겠소?" 이대취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한 번에 두 개의 백(白) 자를 쓰지 못 하듯, 하나의 신발에 어 찌 두 개의 발을 끼어 넣을 수 있겠나?" 백개심은 펄쩍 날뛰면서 이대취에게 달려들었다. 오히려 백산군이 그를 막아셨다. "이 분의 말도 사실이오. 이......." 백개심은 소리를 질렀다. "사실이라고? 이건 개소리야. 나와 당신 마누라는 아무일 도...... 아무 관계도 없었어. 나도 사실은 그녀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정 말 잘됐군!" 백산군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이년은 이미 형씨와 혼인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 지 니 자연히 형씨의 마누라요. 난 비록 못났지만 그러나 친구의 마누 라를 희롱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소." 그가 이런 말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버렸다. 백개심이 다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당신은 당신 마누라가 필요없단 말이오?" "이번에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다만 형씨와 이양하는 수속을 하 려하는 것뿐이오. 수속을 끝내면 다시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내가 당신의 부인을 빼앗았는데도 나와 싸울 뜻이 없소?" "난 싸울 뜻은 전혀 없고 오히려 형에게 감사를 드려야겠소." 백개심은 완전히 놀라버렸다. "당신...... 당신이 감사를 한다고?" 백산군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난 이미 그녀를 이십 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니 형께서도 그녀의 맛을 좀 봐야지. 그녀는 성질이 나쁘고 질투심도 강하오. 게다가 밥도 짓지를 못 하고 집도 관리를 못 하지. 다만 때때로 계란을 삶아서 형씨에게 드릴 것이오. 소금을 좀 많이 집어넣기는 하지 만." 백개심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이때 백 부인이 날뛰면서 소리쳤다. "너...... 너 이 죽일놈아, 나를 그렇게 말하다니......!" 백산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형수께서는 진정하시지요? 난 지금 형수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 을 잊지 마시오." 백 부인은 다시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백산군은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영원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시길 빌 겠소. 난 두 분의 덕택으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으니 금후에도 꼭 두 분을 잊지 않겠소." 그는 하늘을 향해서 크게 웃더니 걸어나갔다.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못 했다. 그 누구도 천하에 이런 일이 있고, 또 이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 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백 부인이 중얼거렸다. "그가 날 버렸어! 그가 나를 버렸어!" "이게 정말일까?" 백개심이 말했다. "정말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보기에 그는 정말인 것 같아!" "정말이 아닐 거야.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난 알아...... 난 알아. 그는 지금 미칠 것 같을 거야. 그러니 나는 절대로 그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삼사일을 굶은 여자가 힘도 좋았다. 마치 뒤에서 잡는 사람이라 도 있는 듯 급히 몸을 날렸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잡을 사람은 없었다. 더우기 백개심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백개심이 이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 여자가 남의 마누라였기 때문이다. 많은 남자들이 남의 마누라에게 호감을 느낀다. 더우기 손인불이기 백개심은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와 이 여인의 혼사가 추진될 때도 그는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있은 뒤 백산군이 와서 울고불고 그와 싸우려 하 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산군은 손쉽게 그녀를 자기에게 넘기지 않았는가. 마치 그녀를 쓰레기처럼 취급하면서 버리지 못 할까봐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백개심은 정말 실망했다. 그는 이제 이 여인이 정말 쓰레기보다 깨끗하지 못 하다고 느꼈 다.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성미였다. 암돼지 같은 여자라도 두 사람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 그 암 돼지는 즉각 천상의 공주가 된다. 그러나 그중 한 남자가 포기해 버리면 다른 한 남자는 깨닫게 된다. "알고보니 그녀는 다만 하나의 암돼지였구나. 하나의 암돼지였 어!" 백개심은 이 여인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성을 해서 물에 빠져버리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그러나 백 부인이 귀동자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귀동자는 재빠 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았다. 그의 몸은 비록 그녀보다 작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를 매우 손쉽게 다루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백개심의 옆으로 끌고 와서야 놓았다. 백 부인은 놀라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 자신도 어떻게 귀동자에게 잡혔는지조차 몰랐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내 남편을 찾아가도 안 된단 말이오?" "너의 남편은 여기에 있는데 어디 가서 찾는다는 거냐?" "그러나...... 난 이 사람에게 시집갈 생각이 없어요. 이것은 완전히 남이 강제로 꾸민 일이에요." "네가 그에게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았다면 왜 수줍은 신부의 모 습을 하고 있었지?" 백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며 힘차게 눈을 비볐다. 그러나 아쉽게 도 눈물이 흘러주지를 않자 곧 거짓울음 소리를 그쳤다. 귀동자가 말했다. "너에게 권하겠는데 얌전히 있어라. 네가 계속 그렇게 시끄럽게 한다면 어쩌면 나는 화가 나서 너를 개에게 시집 보낼지도 모른 다." 이 말을 들은 백 부인은 과연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한 번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 문이다. 그녀는 개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어떻든 간에 백개심은 개보다는 낫지 않는가! 귀동자는 웃으면서 화무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발끝을 세 우고서야 화무결의 어깨에 손이 닿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식, 네가 철 아가씨와 혼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너의 행운 이다." 화무결은 여전히 아무말도 없이 서있었다. 그는 사실 서있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힘이 없었다. 말은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때 그가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귀동자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떻든 간에 너는 그녀와 혼사를 하게 되었는데 왜 불쾌한 표 정을 짓는가?" 이때 철심난이 큰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저...... 전......." 귀동자가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네가 묻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모용가의 자매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괴인을 자리에 앉히고 좌중을 정리하자는 뜻인 것 같았다. 모용가의 사람들은 절대로 손님에게 실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귀동자가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나에게 술대접을 할 필요는 없다. 난 술을 마시지 못 하니까. 나는 키가 작아서 술을 마셔도 남보다 많이 마시지 못 하기 때문 에 마시지 않기로 했지!" 진봉초가 옷는 얼굴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선배님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고 싶은 게지? 말해주지, 난 여인이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지. 너희들이 나를 기쁘 게 하고 싶다면 춤을 춰라. 그럼 만족하겠으니까." 모용자매들은 얼굴이 금방 파랗게 변해갔다. 진검, 매중량, 좌춘생 등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도교교는 눈에서 빛을 내며 그들이 싸우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원한 밤바람을 타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율조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 속엔 기쁨이 가득차 있었 다.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하던 말과 행동을 멈추고 그 곡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모두들 그 음악소리에 도취된 듯 보였다. 혈수 두살까지도 눈초리가 부드러워졌다. 그 음악 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인생의 가장 유쾌하고 행 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모용가의 부부들은 자신도 모르 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무결의 눈동자는 자기도 모르게 철심난을 향했다. 철심난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들이 같이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들을 생 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에게는 오직 달콤한 추억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귀동자는 그들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내가 초청한 악사들이 천하 제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지? 당명황까지도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 했을 거야." 음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한 척의 배가 강물 위에서 마치 구름처럼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 다. 배 위에서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흘러나와 강물을 비추고 있었고 잔잔한 물결이 그 빛을 영롱하게 반사하며 흐르고 있었다. 배 위에는 일곱 여덟쯤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퉁소를 부는 사람, 금(琴)을 튕기는 사람, 비파(琵琶)를 연주하 는 사람...... 그 중에는 북을 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북소리는 단순하고 별로 변화가 없었지만 그러나 한 번 한 번의 울림이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사람들은 음악소리에 도취되어 갔다. 불빛에 비친 그 사람들은 노인들이었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 었다. 그 배는 서서히 모용가의 대관선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악기를 손에서 떼지 않은 채 계속 연주를 하며 모용가의 배 위로 올라왔다. 그들이 배 위로 올라온 후에야 그들이 멀리서 보았던 것보다 훨 씬 더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에 이토록 오래 산 사람 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직접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눈이 믿어 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더우기 그 청춘의 생명감이 가득찬 음악을 그 늙은이들이 연주 했다는 것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진실로 믿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그 노인들도 이미 모두 배 위로 올라온 뒤였다. 음악소리는 잠시도 중단되지 않았다. 북을 치는 사람은 머리가 백설 같았으나 피부는 흑마처럼 윤이 나는 검은 빛이었다. 그는 몸이 매우 야위었기 때문에 단추도 달려있지 않은 옷소매 가 바람에 날리자 앙상한 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두 다리 사이에 큰 북을 하나 끼고 있었다. 그 북은 그 보다도 이 세상에 더 오래 있었던 듯했고 매우 무거 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무거운 북을 들고도 가볍게 배에 올랐다. 그는 그 북을 마치 종이로 만든 장난감을 다루듯 해서 혹시 바 람에 날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진봉초가 앞으로 달려가서는 읍을 하며 말했다. "선배님들 세외고인(世外高人)들께서 어찌 오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을 치던 노인이 돌연 물었다. "너의 성은 무엇이냐?" "후배는 진봉초입니다." 그의 입에서 '진(陳)'자가 나오자 그 노인이 소리쳤다. "진씨도 좋은 놈은 아니야!" 그는 소리를 치면서 마른 몸을 날려 진봉초에게 달려들려고 했 다. 귀동자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그를 막으며 말했다. "네가 조씨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알지만 진씨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북을 치던 노인이 말했다. "왜 관계가 없어. 만약 진궁(陳宮)이 조조(曹操)를 놓아주지 않 았다면 나의 조상이 어찌 조조에게 죽었겠어?" 그가 이렇게 떠들자 음악소리가 멈추고 말았다. 모용산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삼국(三國)이래 우리까지 십팔대(十八代)가 흘렀는데 아직도 그 일을 얘기하십니까?" 진봉초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사람은 바로 미형(彌衡)의 자손이었다. 미형은 조조에게 북을 치며 욕을 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 그 옛날의 일로 시비를 하자 진봉초는 어찌할 바를 몰랐 다. 모용산산이 다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선배께서도 잊지 마세요. 진궁은 그 후에 간적 조 아만의 손에 죽었어요. 그러니 선배와 진씨는 같은 원수를 맺었는 데, 서로 싸우게 되면 조씨가 비웃지 않을까요?" 미심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가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내가 잊을 뻔 했어." 이때 돌연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에 종(鍾) 씨가 있느냐?" 그 사람은 키가 크며 금(琴)을 갖고 있었다. 백개심은 그와 종씨가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즉각 이대 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종(鍾) 씨요!" 모용가가 절대로 이대취를 위해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백개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필시 이대취가 봉변을 당하게 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대취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나 유자아요. 옛날 당신의 조상인 자기(子期) 선생만이 우리 가문의 곡조를 알아주는 유일한 지음(知音)이었소. 오늘, 우리가 만났으니 각하가 싫지만 않으시다면 음악을 들려 드리겠소." 이대취는 소년시절에 재자(才子)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재주가 많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철무쌍이 딸을 시집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아(伯牙) 선생과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를 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잘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배께서 그렇게 해주시겠다면 저는 귀를 크게 열고 듣겠소." 유자아는 앉아서 금(琴)을 튕겼다. 그 사람의 연주는 마치 선경에 올라선 느낌을 갖게 했다. 이대취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곡조를 듣다가 감탄을 했다. "태산(泰山)처럼 든든하니 정말 웅장한 기세가 비할 바가 없 소." 유자아의 곡조가 변했다. 이대취는 손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마치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니 세월의 도도한 흐름과도 같군 요." 유자아는 금(琴) 소리를 멈추고 탄식을 했다. "여전히 세상에 지음(知音)이 있으니, 나는 이 곡을 다시는 다 른 이들 앞에서는 연주하지 않겠소." 도교교는 이미 이 노인이 보통의 고수(高手)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쉽게 이대취의 그럴 듯한 말에 넘어가자. 참을 수가 없어 웃으면서 생각했다. (늙을수록 정신이 없어진다더니 틀림이 없군!) 유자아는 이대취의 손을 잡고 늙은이들에게 일일히 소개를 시켰 다. 퉁소를 부는 사람은 노파였고 소롱옥의 자손이었다. 그리고 고 (高) 씨도 있었고, 옥적(玉笛)을 부는 사람은 한상자의 후세였다. 그는 한유(韓愈)와도 관계가 있었다. 모용자매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그들은 점점 이 사람들이 혹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묘한 것은 남곽 선생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사람까지 있 었다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남곽홍이라고 했다. 모용산산은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입을 열었다. 제선왕(齊宣王)은 삼백 명에게 피리를 연주하게 하고는 나머지 이백 구십구 명이 남곽 선생보다는 잘 분다고 했소. 선배의 그런 훌륭한 솜씨가 어찌 남곽 선생의 뒤를 따른 것이겠소!" 남곽홍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인상이 호인이었다. 매우 온순해 보였기 때문에 모용산산이 농담을 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그 이유를 모르는가?" "후배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소." "선왕(宣王)이 죽은 뒤에 민왕이 즉위했지. 그 역시 그 삼백 명 에게 일일히 피리를 불게 했어. 나의 선조가 그 말을 듣고 밤 사 이에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후, 선조께 서는 밤낮으로 연마를 한 결과 죽기 전에는 제 일인자가 되었어. 그리고 는 옛날의 모욕을 씻기 위해 자손들 모두에게 피리를 배우 게 했지!"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보시오. 천하에 이 남곽홍보다 피리를 잘 부는 사람 이 있는지를!" 모용산산이 즉각 말했다. "후배가 무식해서 실례를 했으니 용서하세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남곽홍이 남곽 선생의 후손이 아닌 것과 미심팔이 미(彌) 씨가 아닌 것, 그리고 그 한 (韓)씨가 한상자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상자는 마누라가 없었는데 어찌 후손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노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 것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 노인들이 모두 오륙십 년, 심지어 육칠십 년 전에 강호에 이름을 날리던 무사들이었던 것은 짐작을 했지만 그들의 정확한 신분은 알 수가 없었다. 철심난은 왜 이 노인들이 자기를 위해 연주를 하러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모용가의 큰아가씨는 얌전한 현모양처였다. 그녀는 시종 웃음띤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때 돌연 그녀는 남편의 옷을 잡아 당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늦었고 모두들 피곤할 텐데......." 진봉초는 그녀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의 뜻을 알고 있소." 사실 그도 오늘의 국면이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 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음악도 준비되었으니 빨리 두쌍의 부부를 위해 식을 올립시다. 그리고 모두들 기분 좋게 한 잔을 해야 할 테니까요." 도교교가 손뼉을 치면서 기쁜 표정을 했다. "그 말이 맞아!" 합합아도 말했다. "하하, 신랑 신부들이 신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었 군." 그들도 이 노인들의 내력이 무서웠기 때문에 빨리 이 자리를 떠 나고 싶었다. 그러나 귀동자가 큰소리로 저지했다. "안 돼. 지금은 안 되니 잠시 더 기다렸다가 시작합시다." 도교교가 말했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거요?" "한 사람을 더 기다려야 하오." "선배께서도 이 혼인식에 손님을 초대했나요?" "손님이 아니고 주인이오." 도교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하면서 말했다. "주인? 주인들은 모두 여기에 있지 않소?" 귀동자는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미심팔에게 말했다. "막내는 너희들과 같이 오지를 않았느냐?" 미심팔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오지 않으면 누구와 오겠나." "어디 있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에게 물어 봐." "내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너에게 물어 보겠나?" 미심팔이 말했다.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난 그의 애비도 아닌데." 귀동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너의 조상과 같은 성미구나." 이때 남곽홍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의 괴팍한 성미를 알면서 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지? 왜 나 에게 물어보지 않지?" 이대취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몰래 웃음을 띠웠다. 사람은 늙을수록 애들처럼 되어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진봉초는 그들이 계속 입다툼을 할까봐 적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행히 남곽홍이 계속해서 말했다. "막내도 우리와 같이 배를 타고 왔었는데 배의 속력이 너무 느 리다고 내려버렸어. 육지로 해서 오겠다고 하더군." 유자아가 곁에서 거들었다. "이게 바로 급할수록 일이 안 된다는 거야." 귀동자는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그의 불 같이 급한 성미는 죽어도 변하지 않을 모양이군!" 퉁소를 불던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경공으로는 먼 길을 돌아왔다 해도 벌써 도착해 있어야 해. 필시 성질을 못 참아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싸우고 있을 거 야." 한상자가 그 말을 받았다. "만약 정말 싸움이 붙었다면 며칠이라도 기다려야 할 걸." 도교교가 눈알을 돌리면서 말했다. "선배들의 그 친구는 남들과 싸우게 되면 꼭 끝장을 보는 모양 이지요?" 귀동자는 탄식을 했다. "상대방이 절을 하면서 빌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를 않지." 도교교는 이대취를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아닐까?" 이대취는 고개를 돌려 노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들의 그 친구는 혹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육지에서 한 사람의 외치는 소리 가 들려왔다. "이대취, 악도귀 너희들 개새끼들아, 거기에 있으면 모두 나와 라!" 도교교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틀림 없군. 과연 그 늙은 미친 놈이군!" 헌원삼광이 손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 자식이 오게 되면 더욱 재미있지!" 돌연 그 사자 같은 목소리를 듣자 철심난은 안색이 변하면서 몸 을 떨기 시작했다. 모용자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노괴물들의 형제가 어찌 십대악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 가! 이대취는 헌원삼광과 함께 뱃머리로 나갔다. "너 이 미친 놈아! 아직도 죽지 않았느냐?" 육지에 있는 사람도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너희들 개새끼들이 죽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죽을 수가 있겠느 냐." 웃음소리가 나며 한 사람이 이미 뱃머리로 뛰어 올랐다. 그렇게 큰 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라서자 배가 중심을 잃고 흔 들거리는 바람이 잔 속의 술이 넘쳐흘렀다. 그의 경공은 놀라왔다. 육지에서 배까지의 거리는 적게 잡아도 사오장(丈)의 거리였다. 매화공자(梅花公子), 신안서생(神眼書生) 등의 경공도 모두 강호 의 일류에 속했지만 한 번에 넉장(丈) 이상을 날아다닐 수는 없었 다. 사람들은 그가 뛰어오를 때 배가 흔들리자 엄청난 거한(巨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를 보고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은 몸이 결코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곱 자(尺) 정도 였으며 가슴둘레도 다섯 자(尺)를 넘지 못 했다. 다부진 체격에 암석 같이 단단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는 머리가 유난히도 컸다. 머리를 잘라 무게를 단다면 최소한 사오십 근은 될 것 같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수염이고 어디까지가 머리카락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더우기 코와 입은 찾을 수도 없었다. 이 사람의 얼굴은 마치 무엇인가에 짓눌려버린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배에 뛰어오르자 헌원삼광, 이대취 등과 손을 잡고 어깨를 치며 떠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나이를 합하면 이백 살이나 됐지만 모두 순진하게 보 이기만 했다. 진봉초는 쓴웃음을 띠웠다. 그를 마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 시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은 이대취의 어깨를 치며 소리쳤다. "너희들 개자식들아, 딸에게 어떤 남편을 찾아 주었지? 만약 마 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희들을 죽여 버리겠다." 그가 큰소리를 치고 있을 때 도교교가 가만히 앞에 와서 웃음을 보였다. "우리가 찾아준 사위에게 만족할 거야!" 한편 철심난은 그 괴인을 보자 눈물을 참지 못 하여 달려왔다. "아버지!" 그녀는 다만 아버지라는 소리만 불렀을 뿐 더 이상 말을 이어가 지 못 했다. 화무결은 그제서야 광사 철전(狂獅鐵戰)이 온 것임을 알았다. 철전은 자기 딸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웃음을 보였다. "딸아 울지마라.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니 기뻐해야지, 울긴." 그는 말을 끝맺지도 않고 화무결의 앞으로 껑충 다가섰다. 그는 화무결의 위 아래를 자세히 몇 번씩이나 훑어 보았다. 화무결은 그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철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람 같이 생기긴 했는데 다만...... 어찌 이리 비실거리지? 너희들이 환자를 찾은 것은 아니냐?" 귀동자가 웃으면서 나섰다. "그건 병이 아닌 것 같은데, 다만 하나의 만두만 있으면 치료할 수가 있을 걸." 철전은 놀라면서 말했다. "그가 굶어서 이렇게 비실거린다는 말이오?" "그렇지." 철전은 펄펄 날뛰면서 소리쳤다. "누가 나의 사위를 이 꼴로 만들었지?" "너희 저 친구들 외에 또 누가 있겠나?" 철전은 돌연 양손을 벌려 합합아와 도교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 다. 그의 무술은 결코 십대악인 중의 최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싸울 때 목숨을 걸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아귀에 잡힌 도교교와 합합아는 반항을 할 수 없 었을 뿐 아니라 몸을 꼼짝할 수도 없었다. 이대취 등 사람들은 모두 놀라 버렸다. 그의 무술이 이토록 진보되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던 것이다. 눈길을 돌려보니 미심팔, 유자아 등 사람들이 모두 흐뭇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물어 보지 않아도 그가 그 괴물들에게 무술을 배 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합합아는 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호흡을 거칠게 내 쉬었다. "늙...... 늙은 친구, 할 말이 있으면 해봐. 왜 손을 쓰지?" 철전이 노하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너는 고기를 먹고 우리 사위를 이꼴로 만 들었단 말이야?" 도교교가 급히 말했다. "모르는 말이야. 그를 굶기지 않았으면 벌써 달아났을 거야." "달아났다고? 왜 그가 달아나야 하지?" "직접 그에게 물어보지 그래?" 철전은 손을 놓고 이번에는 화무결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묻겠는데, 왜 달아나려 했지? 우리 딸이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냐?" 철심난은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아버지 놓으세요. 그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철전은 더욱 노했다. "그는 너의 남편이야. 그와 상관이 없다면 누구와 상관이 있단 말이야?" 철심난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이것은...... 말을 하면 길어져요. 아버지......." 어찌 마음 속의 복잡한 일들을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서 말할 수 있으랴! 철전이 말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좋아, 어쨌든 한 가지만 말해라. 너는 이 자식에게 시집을 가겠느냐?" 철심난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 난......." "네가 어찌 이 모양이 되어버렸지? 이게 무슨 곤란한 문제라고 그러느냐.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야. 네가 고개를 끄덕이면 이 자식은 너의 것이 되고 네가 고개를 저으면 난 즉각 이 자식을 쫓아 버리겠다." 철심난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저을 수도 없었다. 화무결의 정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어찌 고개를 저을 수 있겠는 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면 영원히 화무결을 다시는 보지 못 하게 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밉쌀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소어아를 생각하자....... 그녀가 어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이때의 그녀의 심정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사랑을 느껴보지 못 한 광사 철전은 더 말할 나 위가 없었다. 철전은 답답한지 발을 구르며 말했다. "말은 하지 못 한다 해도 고개도 움직이지 못 하겠느냐?" 철심난은 여전히 가만히 서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궁금해 했다. 그중에 다만 화무결만이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는 가슴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철심난이 고개를 젓지 않은 것이 자기를 상심케 하지 않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철심난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서 자기가 상심하지 않게 되겠는가! 그는 암담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그러나 그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철전이 소리쳤다. "닥쳐, 누가 너더러 말하라고 했느냐? 다만 우리 딸이 좋다면 너는 그녀를 얻어야하고 그녀가 싫다면 넌 꺼져야 돼." 천하에 이런 사람은 보기가 드물었다. 그러나 만약 광사 철전이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십대악인 에 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때 퉁소를 부는 소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젓지도 않는 것은 좋아한다 는 뜻이지." 그녀는 백발인데다가 얼굴에 주름살 투성이었으며 이빨까지 다 빠지고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는 젊은 날을 상기하는 듯한 기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철전은 자기의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다. "그렇지, 과연 소 누님이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군요......."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아주 오랜전이 무협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