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편함도 달다
드디어 우편함을 달았다. 화룡점정이다. 시골집 쪽문 근처에 우편함이 없다는 건 주례없는 결혼식이요 호두없는 호두과자다. 시멘트를 주름관에 부어 기둥을 만들고, 얻어온 방부목으로 울타리와 쪽문을 만들어 세우고 붙인 뒤 오일스테인까지 칠하고 난 뒤다.
이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 도색 분야에도 미숙하나마 눈을 떴다. 시멘트 기둥엔 아파트 외벽에 바르는 도료, 수성페인트를 사서 처음 칠해봤다. 물에 녹는 도료인데 마른 뒤 물에 안녹는 게 신기하다. 걸쭉한 그대로 칠하는게 좋은지 약간 물을 타서 칠하는게 좋은지 몰라서 이짓저짓 다해봤다. 칠 횟수와 표면 질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백문이불여일견, 백견이불여일행! 경험이 지식이다.
울타리와 쪽문엔 오일스테인을 칠했다. 방부목 원래 질감을 살려 투명 오일스테인을 칠하고 싶었지만 재활용 전에 부분적으로 라이트월넛 오일스테인이 칠해져 있어서 라이트월넛에 투명을 섞어 완화시켜 보았다. 전체적인 컬러의 통일과 함께 나무의 질감을 다소간 살려낼 수 있었다. 오일스테인 작업만큼은 여러번 경험이 있어 익숙하다.
창고에 굴러다니던, 햇빛에 도색이 벗겨지고 부분적으로 녹까지 슬어있는 금속 재질의 우편함 도색이 난관이었다. 땅속에서 천년불변의 플라스틱이고 뭐고 간에 햇빛에는 당해낼 수 없다. 도막을 형성하는 라카칠은 1년 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꼴이 된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금속에는 에나멜 칠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에나멜 칠도 아주 오래 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한편에서는 아크릴 칠이 오래 간다고 한다. 그쪽 정보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크릴은 돌맹이 표면에 칠해서 곤충을 표현해볼 수도 있다고 해서다. 일거양득!
우편함의 상징색은 빨강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우체국에서 파는 우편함도 흰 색이 대세다. 그래서 흰 색과 빨강색 투 톤으로 가보자 했다. 공부해보니 아크릴 도색에는 에피타이저와 디저트 단계가 있다고 한다. '젯소'라는 걸로 밑칠을 해야 표면이 매끄럽고 본칠이 쉽다고 한다. 아크릴 도색 뒤에는 '바니쉬'라는 걸로 마감 덧칠을 해야 질감도 살고 더 오래 보존시킬 수 있다고 한다. 생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단계를 경험해보자 했다.
아~ 도색도 고행이구나. 두세 번이면 끝날 일을 전칠, 후칠 빼고도 너댓 번 더 해야 했다. 그래도 흰색과 빨강색의 조화가 산뜻하다. 내게도 드러나지 않은 감각이 있었나보다^^ 울타리와 쪽문, 모든 과정이 끝났다.
비용은 시멘트, 주름관과 경첩 등 부자재를 합해 2만원 내외가 들었다. 도색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엄지손가락만한 아크릴 튜브 두가지 색에 껌통만한 젯소, 바니쉬만 해도 2만원이 훌쩍 넘었고, 오일스테인 3리터 두가지 색에 수성페인트까지 해서 10만원 가까이 들었다. 물론 도료는 조금씩 밖에 안썼기 때문에 다른 곳에 두고두고 쓸 수 있다. 그래도 방부목을 공짜로 얻어서 비용절감이 가능했다.
돈이 아닌 손으로 꾸밀려고 노력한다. 화단 경계석도 좋은 재료를 사지않고 강에 나가 예쁜 돌을 골라 주워오는 이유다. 돈을 좀 더 쓰면 품질도 높아지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30만원짜리 나무를 사다심으면 이내 보기좋지만 1만원 자리 나무를 사다심으면 5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땀이 배어있을수록 더 애착이 갈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한 내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돈으로 얻기 어려운 지점이다. 시간과 땀을 더 들이려는 이유다.
첫댓글 우편함이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