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8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 / 심삼철 목사
위대한 자라고 하여 항상 용기 있고, 항상 담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낙담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추스르고 일어나서 남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의 엘리야와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명과 영적인 대결을 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아침부터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왕상19:26)라고 했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사람들을 모으고 ➀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30).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효대로 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돌 위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주위에 도랑을 팠습니다.
제단위에 나무를 쌓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위에 놓았습니다.
물통 넷에 물을 채워 세 번이나 물을 제물과 나무위에 부어 물이 도랑에 가득했습니다. 엘리야가 저녁 소제드릴 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19:36-37)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38)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수만 볼트 되는 고압 전기보다 더 강했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두 붙잡아 기손 시내로 끌고 가 거기서 죽여 종교적인 전쟁을 끝냈습니다. 3년6개월간의 가뭄의 원인을 아합과 이세벨은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우상을 섬기는 죄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사제들을 처단하여 그 원인을 제거했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놓았으니 가뭄문제의 해결도 시간 문제였습니다. 엘리야는 곧 가뭄과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 기도했습니다. 일곱 번 기도 후에 사환이 지중해 바다 쪽을 바라 볼 때 손바닥만한 구름이 일어나더니 바람을 동반하여 이스라엘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의 마차 앞에서 60km를 달려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길까지 안내를 했습니다.
1.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을 아합이 그의 부인 이세벨에게 낱낱이 고했습니다. 비보에 접한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가 내일 이 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왕상19:2)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세벨의 공갈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세벨은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습니다.
평소 이세벨을 잘 알고 있는 엘리야는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3-4)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다급한 나머지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유다로 망명하다시피 했습니다. 브엘세바로 도망하여 한 로뎀 나무(싸리나무) 아래에 쓰러졌습니다. 엘리야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갈멜산에서의 종교적인 전쟁은 생사를 거는 전쟁이었습니다. 갈멜산 꼭대기의 기도는 기름을 짜는 듯한 기도였습니다.
아합의 마차 앞에서 신들린 모습으로 60km를 달린 일은 마라톤 풀코스와 절반을 더 달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유다의 브엘세바로 가서 또 다시 광야로 하룻길을 혼자 걸어간 일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초인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곳으로 인도하셨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이세벨이란 여인의 칼날에 죽는 것보다는 유다의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손에 죽기를 바랐습니다.
“여호와여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
요나가 뺑소니치다가 니느웨로 억지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요나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요나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4:3)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4:4)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기도라도 엘리야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동정을 받지만, 요나와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려 노여움만 사게 됩니다.
2. 엘리야야 일어나서 먹으라 !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너무 지쳤습니다. 잠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깨어나기 힘든 잠이었습니다. 그냥 나벼두면 영원히 잠들 수도 있었습니다.
천사가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어루만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노게아”입니다. 이 말은 “나가아”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로서 “어루만지다. 주물러 주다. 접촉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마사지”를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천사가 마사지를 해주지 않으면 어쩌면 엘리야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천사는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5)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어루만지고 먹고 마시게 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생명을 바치고 수고한데 대한 위로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 부드러운 손길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실의에 잠긴 숱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어나서 먹으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상기하게 됩니다. 이토록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바로 지금도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 더 피곤하여 다시 누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그를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갈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7)라고 말입니다. 두 번째 은혜는 앞으로 남은 여생, 남은 갈길, 남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로다”(렘15:16)라고 말했습니다. 육신이 힘을 얻는 데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힘을 얻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남은 여생을 잘 살기 위하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남은 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망령을 부리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엘리야야 네 길을 돌이켜라 !
그는 다시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8). 40일간의 여행은 그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힘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이 은혜는 그를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하는 데 충분했습니다(이는 약 320㎞의 여행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라고 물으셨습니다. 곧 이어서 “너는 나가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11)고 명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음성이 두 번째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에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4)라고 대답했습니다.
엘리야의 대답은 첫 번째나 두 번째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유별난 것,이스라엘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인 것,자기 혼자만 남았는데 자기의 생명까지 노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재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라”(15)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사명을 다시 주셨습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벤하닷 대신에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할 것, 이스라엘로 가서 아합대신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할 것,아벨므홀라(요단동편)로 가서 자기(엘리야) 대신에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을 받았습니다(19:15-16).
어쩌면 지금까지 수행한 사명보다 더 어려운 사명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길을 돌이켜 다시 격전지로 뛰어 들어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루지 못한 일을 후계자 엘리야가 대신 다 수행했습니다.
끝맺는 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서 연약하게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질 수 있습니다. 도피하기 위해 비굴하게 굴속을 기어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나만이 유별나게 충성한다는 별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자는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길을 돌이켜라, 네 생각을 돌이켜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