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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강 수필집 <봄의 벽에 서다>를 읽고
- 사회의식에 빛나는 눈맛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 적을 두고 있는 황인강 선생이 『봄의 벽에 서다』란 수필집을 도서출판 에세이문예사에서 내겠다고 원고를 보내왔다. 글로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나선 황인강 선생의 작가로서의 참여성을 높게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신비화되어버린 문학의 자리를 현실로 끌어내려 물화된 세태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비판적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출간된 이 수필집은 현실인식의 힘 있는 통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글 중에는 정확히 말하면 칼럼적인 수필도 많다. 칼럼에는 "재야에서 마음에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적어 신문고처럼 만천하에 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사회상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그의 수필이 가슴을 향한 정서적 감화보다는 본질적으로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이 수필집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아무래도 위기의 한국사회를 진단하며, 그가 던지는 공동체의식의 확산에 있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나’가 아닌 ‘우리’의 지향점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II.
수필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다.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될 때, 한 편의 멋진 수필이 탄생된다. 아름다움은 현란한 빛깔과 진한 향기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 현실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위정자의 이념에 따라 달리 정의되고 평가되지만,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이 배제된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일반적 통론이다. 한 작가의 가치는 한 시대를 대변함으로써 그 폭을 확장할 수 있다. 현실이나 대상을 보는 예리한 눈맛이 황인강 수필의 쾌미다. 황인강 수필집이 주는 가장 강렬한 맛은 ‘눈맛’이다. ‘눈맛’은 주제 차원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이다. 수필의 눈맛을 문학 본질적 요소로 보면 <인식>에 해당한다. 수필의 <눈맛>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겠다. 수필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사고 유형은 창의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다. 두 사고 유형은 맛있는 글을 쓰는 데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황인강 수필은 사회의식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만큼 그것들이 수필문학의 맛을 낸다. 황인강 수필집의 상당수 글들은 현실비판이 중심축을 이루고, 설득을 글의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 책에 담긴 수필은 비평적이고 이론적인 칼럼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에세이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정서적 감동을 주는 것이 특색이다. 산문가적 감수성의 섬세한 공명에도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견고한 문학적 수사 장치와 비유를 동반하면서 비판의 ‘거침’을 ‘함축’으로 버무려 ‘순화’시키는 솜씨야말로 황인강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머리도 즐겁게 하고, 가슴도 즐겁게 해준다. 특히 <지하철의 어느 여인>은 지하철 안에서 한 여인의 정숙한 자세를 보고 그 여인이 어떤 여인일까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이상적 여인상을 그려가는 모습이 순수함을 안겨준다. 마지막에 가서 시인 키이츠의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 고 한 어록을 불러와 한 여인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주제의식을 의미화한 전략이 돋보인다.
얼굴을 볼수록 정숙미가 넘쳐흘러 보고 또 보고 싶어진다. 그녀에게 실례가 되는 것 같아 보기가 쑥스러워진다. 아니 내가 더 무안해진다.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직업이 무엇일까. 학생일까. 처녀일까, 조그마한 가방을 다소곳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앉아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눈을 고정하고 앉아있는 자세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에서 풍기는 안정감과 눈동자를 한곳에 응시하는 고정시선을 보며 참 신비감을 전해주는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청순함이 묻어나는 얼굴을 보며 순백의 생수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 황인강, <지하철의 어느 여인> 중에서
서평을 쓰기 위해 『봄의 벽에 서다』란 수필집 원고를 건네받아 읽고, 제일 먼저 받은 인상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허심탄회하게 풀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기에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야기는 해야겠는데 수필로 풀어내기는 어려운 것들, 이를테면 지적인 통찰이 필요한 재료들을 수필이라는 포괄적이고 부드러운 틀 안에서 잘 녹여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황인강 선생의 『봄의 벽에 서다』란 수필집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으로의 감동과 감성으로의 감동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글쓰기 때문이다.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찬란한 지적 배경과 대기업 임원으로서 경영에 헌신했던 경험, 작가로서 풍성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가슴을 움직이게 하고 머리를 유들유들하게 하는 유익하고 재미있는 수필집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지적 갈증에 메마른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그에게 있어 ‘글’은 단순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준다. 날선 인식이 주는 감동이 독자를 강력한 카타르시스로 이끈다.
지난 12, 1,2월의 추위는 그다지 제 모습을 펼치지 못하고 지나갔다. 지구온난화의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 겨울 관련 업종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아우성이다. 계절의 반란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봄의 전령도 기쁨과 희망의 골목에서 호응해주는 환호가 있을 때 만개의 꽃이 피는 것이리라. 풍족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훈훈한 찬미가 나오지 않는가. 이제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것을 생각하면 지레 겁부터 난다. 지금은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비상사태다.
- 황인강, <봄의 벽에 서다> 중에서
계절의 반란이 주는 당혹감을 '봄의 벽;으로 의미화한 이 수필은 예민한 감각과 신경에 호소하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독자를 이성과 정서를 끌어들여서 독자를 흐뭇한 감동으로 이끈다. 수필을 쓰면서 닦은 탁월한 서술적 기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문학정신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시사성과 문학성을 적적히 배합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글쓰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수필의 창작은 개인의 신변잡기일지라도 일반화되어야 하고, 체험은 보편성을 유지해야 하며, 공동체 의식이 문학적, 윤리적 형이상학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라톤과 일기쓰기 등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신성한 구도자처럼 느껴진다. 그가 문학 창작의 영역을 수필만을 고집하는 것은 세계와 맞서 싸우려는 결연한 자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경외감마저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황인강 선생의 해박한 지식과 다방면으로 높고 깊은 식견을 쌓고 있어, 특유의 예리한 감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생활 주변에 스며있는 민감한 소재를 멋스런 해학으로 승화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풍자 속에 은근히 담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이 그리 녹녹하지가 않다. 행여나 남미 브라질 그리스 베네슈엘라 와 같은 나라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 나라들의 과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 우리 후손들에게 가난한 나라를 물려주어서야 되겠는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모르지만, 낭비와 흥청망청이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되리라. 50년 전, 후진국이었던 이 나라에 우리의 의식을 깨우친 4H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발전하여 새마을운동으로 확산되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부강의 발판이 되었다. 성취와 목표를 향한 집념이 절실한 이때, 오늘을 즐기자는 생각은 자포자기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하여 두렵기만 하다.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이다. 오늘 능히 하지 못하면, 내일 무엇을 할 수 있으리요 ” 라고 부르짖는 캐빈스의 경구(警句)가 메아리처럼 오늘도 귓전을 울리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전사(戰士)이고 싶다.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내일을 바라보며, 근면과 절검(節儉)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황인강, <역사의 거울 앞에 서다> 증에서
제목만 봐도 얼마나 문학적인가. ' 역사의 거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전사(戰士)이고 싶다.'는 그의 애국 충정은 끓는 용광로의 쇠물처럼 뜨겁다. 황인강 선생의 예리한 현실감각에는 하나하나에 따사로운 눈빛과 높은 교양이 깔려 있어,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빨려들어 가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글은 ’칼날처럼 매섭고, 죽음을 각오하고 올리는 상소문처럼 펄펄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이러한 문학관을 소홀히 다루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면면을 시원스럽게 터치하고 있는 것이다. 황인강 선생이 수집하는 수필 소재는 경영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주변 등 전방위적으로 폭넓게 산재해 있다. 특히 작품마다 강한 비판의 메시지와 철학이 담겨 있어 눈맛이 독특하다. 철학은 고상한 철학자들의 사상에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미물의 몸짓에도, 이름 없는 잡초에도 짓궂게 던지는 농담 한 마디에도 예리한 철학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쌈박한 칼날 글이 바른 세상을 만든다는 지론으로 독자들의 뇌리에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쉽게 전달하는 방법이 뭘까 연구하다가 이런 수필집을 구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미소를 짓게 했던 일은 부인이 그런 남편을 보면서 “대감은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하니 대체 어떤 말이 맞는냐는 말씀이오.” 하니까, 정승 왈 “당신 말도 옳소.“ 했다는 일화가 있다. 유머와 해학의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황 정승은 자식교육에 관해서도 명재상다운 처신으로 일침을 가한 교육이었다. 아들이 집을 크게 짓고 고관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였다. 그 자리에 갔던 황 정승은 아들을 야단 치고 “이런 자리는 내가 앉아 있을 곳이 아니다” 라며 그냥 돌아갔다. 아들이 큰 깨달음을 얻고 아버지께 사죄하였다.
- 황인강, <방촌 황희 정승> 중에서
황인강 선생의 글은 위에서 말한 대로 지성 수필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준다. 이런 분이 황씨 집안의 선조이심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작가는 20대 후손인 자신에게도 그 어른의 DNA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손들 세대에서 ‘제2의 방촌’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는 그의 수필에 나타나 있는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직시와 적발의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다양한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받아 내리라 본다. 이 책의 출간 효과는 설득이나 감동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수필가나 고급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짧은 지식에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황인강 선생은 글을 통해서 부조리한 시정을 파헤치되 자신의 철학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려하지 않는다. 글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은 역시 수필을 꾸준하게 배워온 학구열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III.
황인강 선생의 「봄의 벽에 서다」는 천태만상의 소재를 저자의 인품이 감싸 안으면서 고차원의 품위를 지니고 있다. 러. 콕 스테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의 날카로운 인식은 인생에 돋아나 있는 부조리를 웃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글들이 단순한 생활의 반성이나 느낌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생의 본질, 시대정신 등을 관통하고 있기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세상의 모순을 깊은 통찰을 통해 바로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지성인의 눈으로 보고 적은 글이라서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정서적 감화까지 맛보게 한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그가 낸 이번 수필집 <봄의 벽에 서다>는 오늘날 코비드19로 엄중한 우리 사회의 진로를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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