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했던 5월 모임의 이야기를 보충하여
(그렇습니다. 우물쭈물했죠!^^ 5월 13일에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대신합니다.)
1. 숲밭이란 무엇인가?
집과 논밭이 한 곳에 있는 것이 좋다. 한 마을이 아니다. 논밭 안에 집이 있는 게 좋다. 두 가지가 하나로 붙어 있는 게 좋다. 집에서 논과 밭이 보이는 게 좋다. 집을 나서면 바로 밭과 논에 갈 수 있는 게 좋다.
논밭은 하나의 캔버스다. 우리는 그 캔버스에 자연과 함께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집이 캔버스 속에 있는 게 좋다. 자연은 위대한 화가다. 그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도 캔버스 안에 집이 있는 게 좋다.
한편 밭에는 나무가 있는 게 좋다. 숲밭이란 나무가 있는 밭이다. 혹은 숲이 있는 밭이다. 그 두 가지를 조화시킨 밭이다.
세상의 밭에는 나무가 없다. 채소, 혹은 잡곡만 있다. 그렇다. 풀도 있다. 그것이 다다.
나무의 은혜는 깊고, 넓다.
1) 나무가 있으면 밭이 훨씬 더 아름다워진다. 풀도 아름답지만 나도 또한 아름답다. 그 둘이 함께 있으면 더욱 아르답다. 나무는 새싹과 꽃과 열매를 보여준다. 단풍도 보여준다. 잎이 지는 모습도, 잎이 진 모습도 곱다.
2) 나무는 오래 산다. 한 번 심어 놓으면, 베어내지 않는 한, 사람보다 오래 산다. 수고는 적고 혜택은 많다.
3) 여름에 그늘을 주어 쉴 수 있게 해 준다. 6월부터 10월까지의 5개월은 덥다. 그늘이 필요하다. 나무가 없는 밭에서의 일은 가혹하다. 너무 덥다. 새와 벌레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를 한다. 노랫말이 재미있다. ‘도무지 저 동물은 이해할 수가 없구나!♪♬’.
4) 맑은 공기를 준다. 정말이다. 나무는 더운 공기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선풍기 역할도 하지만 공기를 맑게 만드는 공기 정화기 노릇도 한다. 나무가 있는 곳의 공기는 없는 곳의 공기보다 건강하다.
5) 나무는 크다. 그만큼 열매를 많이 연다. 자두나무, 앵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 복숭아나무 등등이 모두 무수히 많은 열매를 맺는다. 과일나무는 다 그렇다. 한 그루만 있어도 한 가족이 실컷 먹는다. 나무 열매는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든다.
6) 벌레의 종류가 많아진다. 세상 사람들은 벌레가 없는 게 좋은 줄 알지만 아니다. 벌레가 많은 게 좋다. 자연이 건강하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벌레의 종류가 많으면 병충해가 적거나 없어진다. 이 이야기는 2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7) 나무는 창고 노릇도 한다.
나무는 방이 많다
새 방 벌레 방에
내 농기구 창고까지
-나의 한 줄 시
이와 같다. 나무는 품이 넓어 새도 살고, 벌레도 산다. 농기구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물건도 놓아두거나 걸 수 있다. 스마트폰, 참 거리를 담은 보자기, 카메라 따위를 맡기면 나무가 맡아 보관해 준다. 땅이나 풀보다 물품 보관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2. 숲밭 만들기
A. 두 가지 나무
나무에는 두 가지가 있다.
1)저절로 난 나무.
2)사람이 심은 나무.
절로 많은 나무가 난다. 우리 논밭에는 주로 뽕나무, 밤나무, 버드나무 따위가 난다.
・ 뽕나무가 가장 많이 난다. 우리 논밭만이 아니다. 다른 집 논밭에도 뽕나무가 난다. 한 해만에 한 길씩 자란다. 그 뽕나무가 우리 논밭에는 여러 그루 있다. 논둑에만 다섯 그루가 있고, 밭에도 여러 그루가 있다. 작은 것까지 헤아리면 열 그루가 넘는다. 해마다 숫자가 늘어난다.
뽕나무는 우리에게 열매인 오디와 잎을 준다. 오디는 하나둘 익기 시작하여 한 달에 걸쳐 익는다. 양이 많다. 어린잎은 따서 날 것으로 무쳐먹거나 삶아 널어 말려 뒀다가 겨울철에 나물로 먹는다. 어른 잎은 덖어서 차로 쓴다.
・ 밤나무는 두 그루가 절로 났다. 한 그루는 작년부터 열매를 열기 시작했고, 한 그루는 벌써부터 꽤 많은 양의 알밤을 주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생밤으로도 맛있고, 말려도 맛있는 밤이다. 종류에 따라서는 말리면 맛이 없는 밤이 있다.
그 밤나무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베지 않았을 뿐이다. 저 혼자 자랐다. 베어버리라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자라게 뒀을 뿐이다. 그것이 자라 커다란 그늘을 주고, 밤을 주고 있다. 게다가 아름다운 경치까지 선물로 주고 있다.
・ 매실나무, 사과나무, 앵두나무, 호두나무, 옻나무, 두릅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회화나무, 참나무, 배나무 등은 내가 심었다.
B. 어떻게 만드나?
1)나무는 여러 해 산다. 덩치도 크다. 심을 때 자랐을 때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해서 심어야 한다. 밤나무는 어릴 때는 갓난아이처럼 작지만 다 자라면 집채만큼 커진다. 2층 지붕을 넘겨다 볼 만큼 크게 자란다.
그러므로 어른 나무가 됐을 때의 크기를 고려해서 나무를 심어야 한다.
2)나무 사이를 띄운다. 숲밭이다. 나무만이 아니라 풀도 키워야 한다. 풀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
3)섞어 심는다. 여러 종류의 나무를 뒤섞어 심는다. 같은 종류의 나무를 붙여 심지 않는다는 뜻이다.
4)절로 나는 나무를 귀히 여긴다. 그냥 둬도 될 나무라면 그곳에서 자라게 둔다. 절로 나 자라는 나무는 하늘이 심은 나무라서 잘 자란다.
그냥 둘 수 없는 자리지만 뽑아버리기에 아까운 나무라면 캐서 옮겨 심는다.
5)나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삼 년쯤 지나면 벌써 틀이 잡힌다. 숲 꼴이 잡힌다. 사오 년 지나면 벌써 우거진다. 칠팔 년 지나면 폼이 난다. 10년쯤 지나면 아름답다.
C. 산채
산채, 곧 먹을 수 있는 풀의 종류는 의외로 많다. 산채 도감은 산채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나무 사이에 심는다. 되도록 여러 종류의 산채를 구해 심는다. 산채는 한 번 얻어다 심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마다 절로 그 자리에서 다시 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종류가 여러 해 살이다.
산채를 심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씨앗을 뿌린다.
씨앗은 아는 사람에게 얻거나 종묘상에서 구한다. 들이나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씨앗도 알고 보면 많다.
・ 민들레, 왕고들빼기, 고들빼기, 냉이, 잔대, 도라지, 더덕, 취와 같은 산채의 씨앗은 들이나 산에서 얻을 수 있다.
・ 곤드레, 부추, 파드득나물, 고수 등의 씨앗은 재배하는 사람에게 얻는다.
2) 모종을 구해 심는다.
・ 봄이 되면 모종 파는 가게에서 여러 종류의 산채 모를 길러 판다.
・ 곤드레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취, 방풍나물, 눈개승마, 마, 삽주 등은 모종 가게에서 구할 수 있다.
3) 뿌리 나누기를 해온다.
・ 산과 들, 혹은 아는 이에게서 뿌리를 조금 나눠온다.
・ 미나리, 달래, 돌나물, 머위,, 비비추, 원추리, 질경이, 둥굴레, 아스파라거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D.숲밭 시중들기
산채는 들과 산에서 자라는 풀이다. 작물과 달리 야생성이 강하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풀을 베어줘야 한다.
1) 수확할 때 그 때마다 산채를 돕는다. 산채 옆에 풀이 있으면 베어서 산채 옆에 놓고, 그 뒤에 산채를 뜯는다.
2) 그렇게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숲밭에 풀이 많을 때는 따로 시간을 내어 돕는다.
어떻게 하나?
밭과 같다. 톱낫으로 뿌리 윗부분을 잘라 그 자리에 펴놓는다. 산채가 자라 청년기에 이르면 풀이 있어도 그냥 둔다. 산채가 어릴 때만, 풀에 눌릴 것 같은 곳만 풀을 잘라 풀의 세력을 눌러놓는다.
산채에 따라 다르지만 채취는 두세 차례에 그치는 게 좋다. 그 정도에서 멈추고 꽃 피고, 열매 맺게 둔다. 그걸 보고 즐 긴다. 숲밭은 산채의 밭인 동시에 꽃밭이다. 나무에서도 꽃이 피고, 산채에서도 꽃이 피어 에덴의 동산과 같다.
F. 천 년의 숲
밭은 물론이고, 숲밭의 풀도 뜯어먹다 보면 그곳에 벌거숭이 땅이 생긴다. 사람은 큰 벌레다. 많이 먹는다.
그렇게 생긴 벌거숭이 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천 년의 숲’이 답이다.
무슨 말인가?
대개 큰 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다. 우리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가 그렇다. 느티나무는 사과처럼 단 열매도 없고, 뽕나무나 두릅나무처럼 맛있는 잎도 없다.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못해 목재로도 좋지 않다.
그렇게 용처를 찾기 어려운 나무 하나쯤은 논밭 가에, 혹은 집 가에, 혹은 제가 사는 곳 어딘가에 자라게 두는 것도 좋다. 그런 생각으로 심은 나무가 있다. 회화나무다.
회화나무 또한 느티나무와 같다. 그 아래 산딸기나무는 작아도 우리에게 단 열매를 주는데, 회화나무는 무엇 하나 사람에게 줄 걸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나는 회화나무가 거기서 천 년을 살기를 바라며 그 나무를 그 곳에 심었다.
회화나무는 오래 산다. 어쩌면 1천 년을 살지 모른다. 옆에 나는 풀이 해마다, 혹은 몇 년에 걸치면서 바뀌는 것을 보며 회화나무는 300년, 500년을 살지 모른다. 혹은 내가 죽는 것을 보며 600년, 700년을 살지 모른다. 혹은 그 옆의 밤나무가 200년을 살고 죽는 것을 보며 800년, 900년을 살지 모른다.
인간의 셈을 떠난 공간, 그런 공간이 자신의 소유한 땅의 10분의 1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는 아직 어리지만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자라 언젠가는 큰 나무가 되리라. 한 평, 두 평 크기를 늘려 나중에는 다섯 평, 여섯 평으로 면적을 늘려 가리라. 그렇게 가지가 커 가리라. 그 아래서는 풀이 자란다. 그 풀을 베어 우리의 밭에, 혹은 숲밭에 넣는다.
기계화학농의 밭보다 유기농의 밭이 지구에 좋다. 유기농의 밭보다 자연농의 밭이 지구에 좋다. 자연농의 밭보다 숲밭이 지구에 좋다. 숲밭은 사람의 밭이라기보다 신의 밭이다. 하늘의 밭이다.
그곳에는 싸움이 없다. 사람과 벌레가 사이좋게 살아간다. 풀과도 평화롭다. 공기가 맑고, 그 곳에 내린 비는 강을 더럽히지 않는다. 맑은 물이 되어 강으로 흘러든다. 조용하고 아름답다.
우체통.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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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숲밭 꼭 만들려고요~
정리 잘 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와~ 이 많은 내용을 어떻게 정리하셨어요 덕분에 숲밭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어요 감솨함다!!^^
하루살이 님~ 이번 모임에서 못 봐서 아쉬웠어요~ ㅋㅋ
글로 읽으며
행복한 시골살이가 눈 앞에 펼쳐지네요
와~~! 숲밭..! 꼭 만들어야지요~~~^^♡
글에서 나무향기가 솔솔 나는것 같아요~~ 소중한 글 고맙습니다~^-^
읽으니 머리가 명료해지고 상쾌해집니다.
숲밭에 가면 몸도 그렇겠죠!
아름다운 글 정말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
숲밭..아름다운 광경이 그려지네요
귀산촌 아카데미에서 참고해야 할 귀한 내용입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