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15. 7. 19.(일) – 7. 21.(화)
- 장소 : 제주도
- 누구 : 아내와 딸 그리고 나
1. 동행과 동반
동행(同行)이란 말 그대로 같이 움직이면서 행동을 함께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생각이나 의견이 하나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생각이나
의도가 어긋나는 경우가 있을 때 속을 끓이지 않고 동선(動線)만 유지하면 됩니다.
동반(同伴)은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여행에 관한
모든 일들에 대해 전혀 간섭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왜? 아내와 딸이 나를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수 있겠느냐? 하여,
좋다고 했기 때문에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셋이서 이렇게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 여행하기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하여, 비행기 티켓팅, 렌터카,
여행장소 및 코스, 숙박지와 시설 등 일체 내가 챙겨야 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렇다
저렇다 뒷말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굳이 들춰낼만한 흠결이 없어 다행스러웠습니다.
다만, 식당과 메뉴에서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너무
멀리 튀어 바닷속으로 떨어져 죽는 것은 아닐까 싶어 속을 박박 끓이면서도 마음을
잡아 세우느라 머리털이 세고 희어졌더라는 것입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짝 놔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이생진(1929~ ), 그리운 바다 성산포 IV 중에서 -
2. 터무니 없는 맛집
의견이 어긋나 속을 끓인 것이 이것이었지만, 의견의 일치를 이룬 것도 바로 이것
입니다. 제주도산 흑돼지를 메뉴로는 정하는 데 일치하였습니다. 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치고 흑돼지를 빼놓은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흔해빠진 것이 그거였습니다.
한적한 시골이거나 도시의 근사한 식당이거나를 막론하고 고기값은 큰 차이가 없는듯
일치하였습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맛집으로 소문났다고 하여 우리가 찾아 간 곳, 서귀포의 돈사돈
중문점이었습니다. 빈자리가 없으니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실상을 한 눈에 파악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맞선 볼 때처럼,
첫 만남에서 한 눈에 간파하듯, 흔히 그렇게 알아차리지 않습니까?
바로 그랬습니다. 기다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말까 갈등하고 있는 중인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가건물 주방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둥근
연탄화덕을 끼고 앉는 자리가 내키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보면서... 아! 비싸다!
우물쭈물~ 주저주저~ 미적미적~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명쾌하게 주문하지
못하는 양이, 그래 맞아! 바로 그렇구나! 쉽게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길 건너 앞마당에 주차 공간도 넓고 유리창도 큼직하여 근사해 뵈는 저 3층,
흑돼지구이 돈델리, 저 집이 우리가 가야할 곳이었는데... 아뿔사!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이 집 가건물 에어컨도 없는 식당에서는 고기를 태우는 연기가
뿌옇게 피올라 사방 문을 열어 젖혀 놓았건만... 넓은 앞마당에 달랑 차 한 대 밖에
주차돼 있지 않은 저 집은 연기는커녕 문도 꼭 닫혀져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하도 견디다 못하여, 가위와 집게만 들고 이 화덕 저 화덕을
순회하면서 고기를 썰고 있는 도우미 아지매한테 물었습니다.
저~ 길건너 돈델리 저집은 속이 터지겄소 잉? 길 하나 사이가 왜 이렇게 다른가요?
참 마침맞게 물었다는 듯, 망설임 없이 그 아지매가 속 터지는 대답을 해줬습니다.
'저 집은 숫불구이라 안에서 구워 먹고, 우리는 연탄구이라 문 열고 구워 먹으니...
서로 다르지요.'
연탄가스 맡으며 가위집게 들고 순회하며 눈 맵게 연기 쐬면서 고기를 썰어 수당을
받고 있을망정, 저 집 속 터지는 이유를 내가 왜 모르겠냐? 그녀가 그리 말하는 듯
했습니다. 이깟 맛집 상호 내걸은 허름한 가건물에서 꾸역꾸역 먹고 있는,
네 놈들이.. 허어! 바보, 병신, 머저리이지... 뭘.
야! 이눔들아? 네 눈에는 이거이 흑돼지인지 백돼지인지 뭘 보고 아냐?
고기는 그렇다 치고, 주방을 건너오면서 보았듯, 주방 같지도 않은 곳에서 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싶었던 생각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입맛 좀 다시겠다고 찾아간 곳에서 되레 싸다귀 맞은 꼴이였으니..
맛집을 과신한 착시에 대한 경종이다. 한편으론 그러한 얄팍한 상술로 사람들을
꾀어서 주머니를 터는 줄도 모르고 당한 꼬락서니에 대한 돈맛의 분풀이였으니...
맞아도 싸다 싸!
그대 제주도에 가거들랑 위와 같은 터무니없는 정보에 당최 속지 마시오.
아무리 고기가 맛이 있기로 소니, 북적북적 시끌벅적 대는 가건물 바닥에 둥근
의자에 엉덩이 받치고 앉아서, 연탄가스 맡으며 느끼한 고깃기름 질질 흘러 연기
풀풀 날리며, 꾸역꾸역 고기 입에 물고 아그작 어그적 씹어 삼키는 일은,
허허! 당최 하지 마시오 잉.
그게 어디 비단 제주도뿐이겠냐 만은, 온통 우리 같은 핫바지들을 상대로 닳도록
장사를 해온 터여서 제주도에서는 더욱 이겨 낼 재간이 없으니...
그대여! 먼 길을 돌아가야 합니다.
2015. 7. 25.
장맛비 사이 후텁지근한 더위가 기세등등한 정오,
쌍용동에서 그산에 Dream
Bgm ♬♪ The Swing - John Adorney
첫댓글 형님 멋진 가족여행 축하드리고요 사진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제주도의 자연풍광은 늘 사람을 부릅니다.
돌아오면 또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언제함께하시지요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