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광인도장(狂人道場) -5-6
광인도장(狂人道場) 안이다.
광무군과 일잔월은 한 쌍의 연인(戀人)처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광인도장은 하나의 부락(部落)이다. 거리를 따라가면 크고 작은
전각(殿閣)을 볼 수 있다.
모여 앉아 검패(劍牌)나 표구(票九)를 즐기는 사람들, 서로 따귀
를 때리며 싸우는 사람들…….
"으헤헤……!"
광소를 터뜨리며 진흙탕을 구르는 사람들. 미친 사람들이 모두 모
여 있었다.
그러나 광무군의 눈에는 미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광기(狂氣)가 하나의 도(道)를 이루었고, 그것이 모여 거대한 조
직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난(亂)을 일으켜 일거에 천하 일성(一
省)을 장악할 만하지 않은가?'
광무군은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대장간도 있고, 마구간도 있었다. 주루(酒樓)도 있고, 도박장도
보였다. 심지어 사찰(寺刹)과 관제묘(關帝廟)도 있었다.
광인도장에는 일전(一殿) 구각(九閣)이 있었다.
일전은 바로 광노야의 거처이다. 구각은 광노야가 높이 평가하는
광인도장의 아홉 기둥, 구노의 거처를 말한다.
구각은 일전을 구궁방위(九宮方位)로 감싸고 있었다.
광타자는 광무군을 바로 그 곳으로 안내했다.
광인전(狂人殿).
그 안, 홀랑 벗은 노인 하나가 있었다.
그는 큰 솥 하나를 두 팔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머리카락의 반은
희고 반은 검은 노인인데, 그의 두 눈에서는 더러운 진물이 주루
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광노야였다.
"헤헤… 귀하가 군(君)이란 분이신가?"
광노야는 손에 광무군이 만든 배첩을 쥐고 있었다.
광무군과 일잔월은 대청 아래 서 있었다.
"그렇소이다!"
광무군은 팔짱을 꼈다.
'내가 꺾어야 할 마의 세력이다. 절대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자들을 혁파하는 것은 나의 운명(運命)이다. 서천마궁이 뿌
린 씨앗에서 자란 중원의 독버섯들!'
광무군은 기도를 애써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보는 사람은
하나의 산(山)을 보는 듯한 기분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광무군은 강호에 나와 활동하는 가운데, 사절의 내공을 모두 융화
시켰다.
그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광노야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묻는다.
"헤헤… 도장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오?"
"배첩에 쓴 대로 옷 한 벌을 구하기 위함이오."
"옷이라? 천지에 흔한 것이 옷인데… 그리고 옷이 없다면 본노야
처럼 벌거벗고 살면 그만인데?"
"핫핫… 필요하면 걸치는 것이 옷이 아니겠소? 핫핫……!"
광무군은 호쾌히 웃었다.
순간, 광노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두 가지 기운을 한꺼번에 갖고 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멍청한 얼굴을 한 광무군, 그의 몸에서는 신기(神氣)와 동시에 마
기(魔氣)가 일어나고 있었다.
'모를 자다. 백도(白道) 같기도 하고, 서천마궁(西天魔宮)이 정탐
하러 보낸 첩자 같기도 하고!'
광노야는 광무군을 지그시 살피다가, 솥을 툭 쳤다.
"헤헤… 하여간 식(式)대로 해야지!"
핑-!
솥 안에서 종이 두 장이 튀어 올랐다.
두 장의 종이는 일 장 허공에서 딱 정지되었다가 아주 천천히 광
무군 앞으로 날아갔다.
'내공이 대단하다.'
광무군은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다.
그의 눈앞으로 날아드는 두 장의 종이,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제 12장 광인도장(狂人道場) -6
<광인지약(狂人之約)을 지킴을 맹세한다.>
그런 글이 있고 서명하는 공란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거기 손도장을 찍으면 그 종이는 이곳의 입주증이 될 것이고,
손도장 찍기를 거절하면… 이곳의 빈(賓)이 되지!"
"핫핫… 그럼, 찍지 않으리다! 도로 갖고 가시오!"
광무군은 소매를 가볍게 내저었다.
핑-!
철수진기(鐵袖眞氣)가 일어나 종이 두 장을 말아 올렸다.
순간, 광노야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쌍장에서 진기를 발휘했다.
"흥!"
'종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칠 성 공력을 다해 종이를 되돌리려 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종이 두 장이 갑자기 방향을 틀며 마치 비누가 손아귀를 빠져 나
가듯이 그의 진기를 돌파하는 것이 아닌가?
팍- 팍-!
둔탁한 소리가 나며 광인정(狂人鼎)이라 불리는 솥이 깨졌다.
"으으, 대나선강(大螺旋 )을 알다니… 오백 년간 아무도 터득하
지 못한 정파의 절기인데……!"
광노야는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 때 광무군은 부서진 솥 조각을 보고 있었다.
"또 하나로군!"
부서진 솥 안에서 튀어 나온 옥편(玉片) 하나가 있었다.
아비타석(阿非陀石).
바로 묵강마문옥편(墨 魔紋玉片)이 그것이었다.
광인령(狂人令).
그것은 서천마궁의 주인되는 자가 이십 년 전 중원에다 뿌린 여섯
개의 영부(令符) 중 하나였다.
서천지존(西天至尊).
그는 중원에 와 명숙들을 제거한 후, 그냥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하 여섯 군데에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다.
대단(大壇) 한 곳, 그리고 오대령주(五大令主)가 이끄는 다섯 세
력이 그것이었다.
소야(少爺), 그녀가 중원 나들이를 나온 이유는 지존이 뿌린 씨앗
의 결실을 따기 위함이었다.
<따르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그녀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중원에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가까이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광인령(狂人令)은 광무군에게 살기(煞氣)를 일으키게 했다.
'이 곳은 짐작한 대로 나의 원수 서천마궁의 분타(分舵)이다. 훗
훗, 오늘 나의 손이 얼마나 매운지 알아 보리라.'
광무군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친다.
비웃는 듯 그냥 흘러 버리는 듯한 웃음, 거기에는 남이 알지 못할
큰 뜻이 숨어 있었다.
하여간 광노야의 눈에서 강렬한 자망(紫芒)이 폭사되었다.
"뿌드득- 결국 빈(賓)이 되었군. 사빈(死賓)! 훗훗, 너희들은 이
안에서 뼈를 묻게 되리라!"
"자살진기(紫煞眞氣)를 십이 성(成) 익히셨군? 그것은 개방절기로
알고 있는데… 훗훗, 개방과는 어떤 관계요?"
"눈, 눈매가 보통이 아니군. 흐흐, 노야는 한때 개방도( 徒)였다.
그 곳의 장노(長老)였다가 파계(破戒)했지. 훗훗, 그 때의 개은…
현재의 개방이 아니었다. 훗훗, 그 때에는 진짜 개방이었기에
파계당했다 해도 긍지는 있었었지. 훗훗……!"
광노야의 중얼거리는 말은 그라도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것이었
다.
그는 광무군의 무례함을 죽음으로 보답해 준다고 약속한 다음, 일
어나 뒷짐을 졌다.
놀라운 것은 그가 고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개에게 양
물(陽物)을 먹혔다. 그래서 성질이 괴팍해졌고, 그 끝이 지금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훗훗… 긴 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광노야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우르르- 릉-!
그의 목소리로 인해 근처가 뒤흔들렸다.
'역시 개방의 뇌명공후(雷鳴功吼)다. 그럼, 이 안에 있는 자들은
진짜 파계자(破戒者)들이구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겉보기의 파문
제자들이 아닌, 선대(先代)의 진짜 파계자들!'
광무군은 하나를 보면 열은 아는 사람이다. 그는 광인도장의 정체
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파계자들의 집단!
정파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한데 모여 사는 곳이 바로 광인도장이
었다.
'어리석은 자들……!'
광무군은 주먹을 거머쥐었다.
'백도에서 파문당한 것도 죄악이거늘, 이제는 감히 서천마궁의 주
구가 되어 날뛰고 있다니……!'
그는 입술을 오므렸다.
일잔월은 벌써 귀를 쫑긋 세웠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
는 듯.
바로 그 때였다.
"노야(老爺), 잠깐! 노야의 적은 아니오. 너무 강하오!"
큰소리가 나며 아홉 사람이 다가섰다.
휘휙- 휙-!
나는 듯 다가서는 아홉 사람은 각양각색이었다. 관(棺)을 타고 둥
둥 떠 오는 자, 큰 호로에 들어앉아 진기로 호로를 움직이며 다가
서는 자…….
팔보간선(八步 蟬), 축지성촌(縮地成寸), 팔보등공(八步登空)의
경공이 아홉에 의해 자유롭게 시전되어 있었다.
휘휙- 휙-!
아홉 사람은 순간적으로 구궁진(九宮陣)을 이루었다.
바로 광인구 장로(狂人九長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