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나는 계속해서 한 타입의 여자들을 사랑해 왔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는,
아름다우면서도 '보이쉬하고' 당당하고 샤프하고 독립적이며 .등등 적당한 말이 안 떠오르는데,
흔히 말하는 팜므 파탈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팜므 파탈에 끌리는 남자는, 자기의 남성 정체성에 불안을 느끼는 남자들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결과가 원인으로 전도된 해석인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다른 맥락에서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자들은 겉보기에는 오히려 험프리 보카트 같은 마초들이지만
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여성성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 내면에 묻혀 있는 여성이
팜므 파탈형의 여자에게서 보이는 남성성에 대각적으로 끌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랑에서 남녀 이분법은
실은 삼분법, 사분법으로 , 아니 그 이상의 n분법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녀가 네 가지 경우의 수로 사랑하는 것에 더해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 또 거기에 더해....
아이와 어른의 사랑 혹은 종을 달리 한 사랑까지 ....
실로 인간은 남녀 자웅 단일한 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복합적인 군체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가운데서 개체가 유난히 한 타입의 상대에게 끌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반복강박>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여자가 한 타입의 남자에게 계속 안 좋게 당하면서도
그녀가 구하는 새로운 상대는 언제나 같은 타입의 남자라는 식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언제까지나 그와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그녀의 무의식이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해,
치유를 위해 과거와 비슷한 타입의 상대에게 끌리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상처를 낸 창으로 상처를 봉합하려는 시도라고 할까.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같은 경험을 반복하기를 그치지 못한다고 한다.
마치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자가당착이랄까.
그럴 것이다.
그러나 반복 강박의 깊은 의미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복적인 경험을 택하는 인간은 그 경험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그 경험을 원한다.
지난 번에는 택함을 당했지만 이번에는 기꺼이 자초함으로써
지난 번의 경험조차 스스로 원한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그녀에게는 상처가 훈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같은 경험을 이번에는 ㅡ바꾸거나 고치는 것이 아니라 ㅡ능동적 적극적 긍정적으로 대응하고 감당해내는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결코 그 경험을 회피하게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경로와 자세 전환, 가치 전도를 통해서만이 진정하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의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똑같은 삶을 털끝 하나라도 바꾸지 않고 영원히 반복하여 살고, 반복 그 자체의 차이로 긍정하는 것이다.
어마무시한 초인의 철학자, 광기의 철학자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니체는 ,
실은 극도로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가 사랑한 루 살로메란 여자는
당대의 걸크러쉬라고 할 만한 걸출한 여인이었다.
니체는 일찌감치 그것을 알아보고 그녀와 맺어지기를 원했지만
그에게는 파울 레란 절친한 친구이자 연적이 있었다.
니체와 그의 친구 파울 레, 그리고 루 살로메는 한때 공동생활을 꿈꾸기도 했다.
루 살로메를 가운데 놓고
마차 앞에서 그녀의 채찍에 복종하는 둘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유명하다.
그러나 결과는 니체의 실연이었다.
니체는 '루와 함께라면 통 속에 갇혀 사는 삶도 좋다!'라고 절규했지만
파울 레와 루는 니체를 버렸다.
하지만 나는 니체는 죽을 때까지 루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비록 '여자에게 다가갈 때는 채찍을 들어야 한다'라는 여성비하적인 잠언으로 유명하지만
그 채찍이 어느 쪽 손에 들려야 할지는 누가 알랴.
내게는 니체가 여성에게 그 채찍을 들렸을 것 같다.
니체에게 루는 반복 강박이자 영원회귀였던 것이다.
첫댓글 니체는 시인이지요. 시를 모르는 사람이 니체를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단언컨대, 다시 1970년대 나온 니체 저작물은 니체가 시인이라는 걸 모르고 번역한 겁니다. 얼마 전 니체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려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샀습니다.
살아보니 여자는 거의 자기 희생적이고 천사 같은데 10%가량은 진짜 악마 같은 여자가 있고요, 남자는 사기꾼이나 교황이나 비슷비슷 하데요.고만고만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위선을 감추는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누구는 사기꾼이 되고 누구는 교황이 되는 거지요.
내가 보기에 지솔님은 순수한 분입니다.
남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괴해버리는 행위는 사랑이 아닙니다.
니체는 루 살로메를 만나 영원회귀 개념을 처음 떠올릴 만큼 루에게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루에게 실연당해 큰 상처를 받았고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정신 건강은 더 나빠졌다니...천재도 사랑앞에는 별수 없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