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어린이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일까요
정 순 희
▣ 방과 후 어린이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먼저, ‘영모가 사라졌다’와 ‘수일이 수일이’를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약자가 되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들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들도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지 알아보고자 독서 지도를 받고 있는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어린이를 상대로 몇 가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평범한 초등학생이며, 학교에서는 중간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고, 특히 6학년의 경우는 자기 장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민을 하는 어린이었습니다.
* 대상 : 대구시 대명동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3~6학년 어린이
* 인원 : 50명 (3학년: 8명, 4학년: 14명, 5학년: 15명, 6학년: 13명)
【설문 내용】
1. 방과 후 과외 활동은 어느 정도 하는가?
1~2과목 | 3~4과목 | 5~6과목 | 7~10과목 |
7명(14%) | 14명(28%) | 23명(46%) | 6명(12%) |
■ 참고
방과 후 과외 과목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영어, 수학, 논술은 방과 후 학교에서 수업 받는 것을 합하면 100% 하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컴퓨터, 전 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술, 피아노, 바이올린, 오카리나, 하모니카, 첼로 등 예능 계통은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줄어들었고 태권도, 합기도, 검도, 수영은 어릴 때부터 배운 어린이들이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수 과목은 학원도 다니면서 학습지를 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한자,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학원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영․수 과목을 배우러 반 이상의 어린이들이 상인동이나 수성구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지하철을 이용해 가기도 하고 부모들이 태워서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수성구까지 가는 어린이들은 지하철을 두 번씩 갈아타고 당연한 듯이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떨 땐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버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2. 방과 후 과외 수업을 누가 결정하는가?
* 부모가 권하면 서로 의논해서 결정한다 : 25명(50%)
* 부모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따른다 : 18명(36%)
* 하기 싫은 것이 있어도 억지로 한다 : 5명(10%)
* 학원에 가서 한 번 수업에 참여한 뒤 어린이가 결정하게 한다 : 2명(4%)
3. 방과 후 과외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생기면 누구와 의 논하는가?
* 제일 먼저 부모와 의논한다 : 46명(92%)
* 의논해도 똑같기 때문에 의논하지 않는다 : 2명(4%)
* 친구 혹은 형제, 선생님과 의논한다 : 1명(2%)
* 그냥 참고 다닌다 : 1명(2%)
■ 참고
부모와 의논한다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장보다 부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편이며 힘든 경우는 그 과목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영모와 수일이의 자유를 누가 빼앗는 것일까요?
1.『영모가 사라졌다』를 읽고
1) 외부로부터의 압박
학교에 다녀온 영모는 여러 학원을 차례차례 옮겨 다니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나마 즐거울 때가 있다면 조각을 할 때입니다. 그러나 영모에게 조각을 마음껏 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할 일을 끝내고 조각칼을 들고 있으면 아버지는 영모가 누리는 잠깐의 여유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늘 간섭합니다. 조각하는 것이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아예 손에 들고 있지도 못하게 하고 결국 깎고 있던 조각품과 조각도구까지 빼앗아 불 속에 던지고 맙니다. 영모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마지막 자유까지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모가 따라오지 않으면가차 없이 폭행을 일삼는 독재자였습니다. 누구도 아버지의 높은 벽에 맞설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영모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아무런 능력이 없었으며 영모와 똑같은 피해자였습니다.
2) 내부로부터의 압박
영모는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 도달하지 못하자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늘 슬프고 어두운 얼굴이었으며 안으로만 기어들어가는 아이입니다. 주인공 병구의 눈으로 보면 뭐든지 잘하는 우등생이었지만 정작 영모 스스로는 형편없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누르고 압박하느라 자유스러워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품은 채 절망합니다.
2.『수일이 수일이』를 읽고
1) 외부로부터의 압박
수일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제 마음껏 놀고 싶은 어린이입니다. 축구도 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어울려 노는 것만 기대합니다. 그러나 수일이를 기다리는 것은 학원입니다. 늘 그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일이 부모는 영모 아버지와는 대조적입니다. 오히려 학원은 다녀왔느냐는 확인 정도이며 성적과 태도, 습관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영모 아버지와는 달리 수일이에게 맡겨 두는 면이 강합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과 간섭이 영모의 자유를 빼앗았다면 수일이는 단순하게 학원 가야 하는 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내부로부터의 압박
수일이는 밝으며 낙천적인 어린이입니다. 스스로를 억누르며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쥐에게 자신의 손톱을 먹여 가짜 수일이를 한 명 만듭니다. 가짜 수일이 때문에 일이 꼬이게 되자 이제는 스스로 들고양이를 데리고 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한 숨기려고만 하지 않고 문제를 부모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어린이입니다. 단지 부모가 수일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수일이는 자신의 내부로부터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모와 수일이 비교하기
구 분 | 영 모 | 수 일 이 |
성격 | * 분노심으로 늘 어둡다. * 내성적이며 여리다. * 대들지 못하고 순하다 | * 낙천적이며 적극적이다. * 긍정적이고 엉뚱한 면이 있으며 모험심이 강하다. |
어려움 해결 방법 | *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고 외면 하며 회피한다. (아버지 앞에 대항하지 못하고 아 파트 지하실로 들어가 자신을 안 내하는 고양이 담이를 따라 라온 제나로 숨어버린다) | *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필요할 땐 가짜 수일이를 만들고 가짜를 쫓아야 할 땐 들고양이를 데리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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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이야기는 어려운 현실 앞에서 씩씩하게 이겨나가는 수일이와 어려움 앞에서 분노와 원망을 가득 품은 채 라온제나(환상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영모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제가 설문 조사한 어린이들은 수일이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가 부럽긴 하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실천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힘들어하는 영모의 모습이 자신들과 닮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모처럼 라온제나로 숨어버리기보다는 부모에게 잘 말하면 자신의 생각을 존중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자유, 무엇이 그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일까요? 어른들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지나친 기대가 어린이를 압박하고 스스로 좌절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런 어른들에게 길들여진 까닭인지, 아니면 책 속의 부모와는 달라서 그런 건지 제가 만난 어린이들은 부모의 간섭이 자신들을 사랑하는 관심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의젓함도 보였습니다. 스스로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자유를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도와주는 분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제가 만난 어린이들은 많은 어린이들 가운데 아주 적은 숫자이지만 이들은 우리가 염려했던 것보다 건강하며 부모를 대화의 상대로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어른인 제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동화를 읽고 난 뒤 가장 중요한 일은 어린이를 마음으로 깊이깊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어린이들의 눈에 들어오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참고 도서
-『영모가 사라졌다』 (공지희/비룡소)
-『수일이 수일이』 (김우경/우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