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꽃잔디가 철모르고 꽃을 피웠다가 서리를 맞았습니다. 당진시 합덕읍 합덕제. 2016. 11. 26.
1. 세상 이해 못하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오늘(26일) 오전에는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합덕제에 들렀습니다. 이 방죽에는 연꽃이 하도 많아 연호제(蓮湖堤)라고도 했답니다. 말라버린 연 줄기 사이로 살짝 얼어버린 방죽물이 보입니다. 기온이 영하라는 얘기입니다. 으스스합니다. 철모르고 꽃을 피운 꽃잔디 꽃과 잎에 서리가 내려앉았습니다. 날아갈 채비를 끝낸 서양민들레 씨앗 갓털에도 역시 서리 장식이 보입니다. 점심 후부터 겨울비가 내려 대지는 다시 촉촉해졌지만 말입니다.
위에 열거한 현상들 중에 ‘철모르고 꽃을 피운 꽃잔디’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산과 들을 쏘다니면서 철모르고 핀 진달래, 개나리, 매화를 보았습니다. 흔히 이런 현상의 원인을 대부분을 기후변화 여겼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른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식물이 일관된 방식으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식물신경생리학자들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은 식물의 개화는 일조시간, 빛의 색상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콩과와 같이 낮이 짧아져야 꽃을 피우는 것이 단일식물(短日植物)입니다. 콩이 대표적이라고 하네요. 콩과식물인 칡, 자귀나무도 그렇습니다. 6월 22일쯤이 낮이 제일 긴 하지입니다. 자귀나무와 칡의 꽃 촬영날짜를 보니 7월 중순입니다. 그러나 콩과인 아까시나무는 개화시기가 하지이전입니다. 예외는 있게 마련입니다. 장일식물(長日植物)은 낮의 길이가 길어져야 꽃을 피운답니다. 보리와 붓꽃이 장일식물입니다.
식물신경생리학자들은 애기장대는 적어도 11개의 광수용체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니까 애기장대는 “어떤 광수용체는 싹트는 시기를, 어떤 것은 빛을 향해 구부러지는 시점을, 어떤 것은 개화할 때를, 어떤 것은 밤 시간임을 애기장대에게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초겨울에도 어쨌든 꽃이 피었으니 개화를 담당하는 광수용체가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광수용체가 자극을 받았어도 반응하려면 적당한 온도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계절에 그 광수용체가 왜 여전히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기야 세상에 알 수 없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나 현상이 어디 한둘입니까?
2. 손기정이 고수한 마라토너의 수분섭취 방법
지난 20일 서울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손기정평화마라톤이 열렸습니다. 당진의 몇몇 지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쾌거를 보고 심훈 선생이 울부짖었습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1936년 8월 12일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낭보가 실린 조선중앙일보 호외(號外) 뒷면에 실린 심훈 선생의 즉흥시이자 생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날 같이 간 분들중에는 심훈 선생의 소설 <상록수>의 남자 주인공 박동혁의 모델이었던 심재영 선생의 아들 심천보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심 선생님은 심훈가의 장남 자격으로 마라톤이 시작되기 전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낭독했습니다.
여자 10km 입상자 수상을 마치고 서울시 중구 만리동에 있는 손기정기념관에 들렀습니다. 흥미를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당시 손기정 선수는 40km 지점에서 적십자사 간호사 루이제 네프 여사가 건넨 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손기정 선수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는 왜 물을 마시지 않았을까요? 몇 발짝 더 가면 답이 Tip으로 나옵니다.
“손기정은 레이스 내내 25km지점에서 딱 한번만 물을 마셨다. 40km지점에서 독일 간호사가 물을 컵에 담아 줬지만 입을 한번 행군 뒤 뱉었고 나머진 머리에 쏟아 부었다. 그것은 당시 물을 마시면 배가 출렁거리거나 배가 아파 달리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다른 선수들도 거의 물을 마시지 않고 달렸다.”
손기정이 따라한 방식이 당시의 마라토너들의 수분섭취방식이었지만 지금의 운동생리학에서 밝혀낸 사실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손기정이 고수한 방식은 비극을 낳습니다. Tlp 마지막에도 “매 5km마다 물을 마시며 달리는 요즘 선수들과 좋은 비교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1948년 8월 7일 런던올림픽 마라톤에서 35km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던 최윤칠은 허벅지 근육통증을 호소한다. 탈수 증세였다. (중략) 최윤칠은 175cm신장에 70kg의 체격으로, 마라토너로써는 큰 신장과 다부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남승룡 감독은 본인의 주법대로, 최윤칠에게 경기 중 물을 마시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근육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뿐만 아니라 그 날 런던의 기온은 40도를 웃돌았다. 105년 만의 최고기온으로 역사에 기록된 폭염이었다. 그렇게 21일을 걸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스무 살 마라톤 천재는, 죽음의 폭염 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42.195km의 레이스를 해야만 했다. (중략) 탈수에 의한 근육 경련으로 다리가 뒤틀렸다. 골인을 단 4마일, 약 6km를 남겨두고 최윤칠은 경기를 포기해야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skse&logNo=220555280805)
70년대 중반 중학교 2학년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거리뛰기대회가 열렸습니다. 학년별로 출발시간을 달리했습니다. 2학년 부분에서 1등으로 들어온 후배가 나름의 비법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후배의 설명은 물을 먹으면 뱃속에서 물이 출렁거려 제대로 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손기정이 고수한 (바람직하지 않은) 비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쳤던 것입니다. 물론 최윤칠의 근육경련은 생리학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순전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치부됐을 것입니다.
3. 서리 맞은 꽃잔디 가엾고 서럽다
서리 맞은 꽃잔디 사진을 지인에게 보냈습니다. 가엾고 서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 지인과는 전날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안주삼아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습니다. 지인은 시인이며 수필가입니다. 남이야기 하듯 “누구는 시인이레나 수필가레나 ‘둘’ 다레나” 음률을 넣어 떠들었습니다. 문득 ‘둘’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향찰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싶어 둘=두(斗)+을(乙)이라는데 이르렀고, 斗乙을 그 지인의 호로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방식을 음차표기(音借表記)라고 합니다. 지인은 별로였는지 다른 호를 다시 지어보라고 하데요.
斗乙 선생님은 가엾고 서럽다고 했습니다. 가여운 것은 딱하고 불쌍한 것이지요. 여린 꽃잎에 서리가 앉았으니 얼마나 가엾겠습니까? 식물에도 부자와 가난뱅이가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식물은 광합성하기에 충분한 햇빛을 받으니 부자요, 어찌어찌하여 그늘진 곳에 떨어진 씨앗이 키운 식물은 아주 조금, 아니면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니 가난뱅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서리 맞은 꽃잔디는 비교적 양지바른 곳에 있습니다. 식물로서 부자인 조건을 갖췄는데도 이제야 꽃을 피우니 또 다른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연은 무엇일까요? 합덕제 안에는 十자로 산책로를 냈습니다. 물가이니 풀이 잘 자랐겠지요. 인근에 사는 어떤 이가 아침에 합덕제로 산책을 나와 걸으니 웃자란 풀잎에 맺힌 이슬이 차였겠지요. 이를 즐기는 이에게는 낭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뽀송뽀송한 신발에 이슬이 맺혀 젖으면 싫어하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풀 깎으라고 민원을 넣습니다. 그래서 ‘잡초’가 예초기의 예리한 칼날을 받습니다. 그 칼날에 꽃잔디의 줄기가 잘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꽃잔디는 꽃을 피워야합니다. 줄기를 다시 키우고 에너지를 모아 꽃을 피웠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니 아뿔싸! 서리가 내렸습니다. 斗乙 선생님은 그것이 서럽다고 했을까요?
부들은 무수하게 많은 씨앗을 만들어 날려 보냅니다. 그러나 몇몇 녀석은 버드나무에 가지에 걸렸습니다. 잠시 쉬었다 갈 것인지 영영 이곳을 떠나지 못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당진시 합덕읍 합덕제. 2016. 11. 26
4.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 선택이 옳다”
가엾고 서럽고 불쌍하고, 세상사 그렇게 보면 한없이 그렇습니다. 즐겁고 아름답고 시원하게 보면 또한 비교할 수 없이 그렇게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보아야한다는 절대기준도 없습니다. 11월말 초겨울에 철모르고 꽃을 피운 꽃을 피운 꽃잔디는 언뜻 보기에 당진말로 ‘시절’입니다. 그러나 꽃잔디도 ‘시절피운’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할 수도 있고, 철부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도 생각되는군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 꽃잔디가 존재하는 이유 말이지요. 인간의 파악하기에 식물의 최대의 목표는 씨앗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 경제적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꽃잔디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아마 꽃잔디는 알 것입니다. 지금 꽃피우면 씨앗을 맺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이유를 깨닫는 순간, 본능이 발동한 것입니다. 참기 어렵죠.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서리를 이겨내는 모습을 봐서 장하다고 생각키로 했습니다. 꽃잔디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에 빨갛게 타오르듯 군락으로 피어나야 제격입니다. 그러나 그런 호조건에서 보는 꽃잔디는 그저 그렇습니다. 그때쯤이면 꽃 피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쯤 개화한 꽃잔디는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만 이겨내고 마침내 개화에 성공했습니다. 참으로 장합니다. 그런데 서리가 내려앉았습니다. 견딥니다. 더욱 장해 보입니다.
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을 시시콜콜하게 따져보면 더러는 철모르고 꽃을 피운 꽃잔디같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늦게 깨닫고 부랴부랴 서둔 일도 있을 테고, 제때를 기다리다 지쳐 살짝 내민 손을 찬바람이 세차게 때릴 때도 있겠지요. 이랬거나 저랬거나 내일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손기정 선수가 고수했던 방법은 어쨌거나 당시에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내 선택도 그렇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은 그 선택이 객관적으로 옳지 않다면 ‘수정’이란 선택을 해야겠지요.
첫댓글 어쩌면 꽃잔디는 서리가 올것을 알았지만 책임완수를 다 하기위하여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모든 생물들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순응하며 묵묵히 제할일을 다 하며 생존본능을 제외한 어떻한 경우라도 결코 다른 생명들을 해하는 일은 하지않는것이 보통이라고 하지요.
우리 인간을 제외 하고는 말 입니다.
멋진 오선생님의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