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한전에 입사하여 1975년에 대만전력에 한달간 초고압(345kv) 관련 연수를 다녀왔다. 이듬해인 1976년에 과장으로 승격하였으며 1978년부터 북부산전력소에 변전과장으로 근무중 1979년과 1987년 각 2개월간 두차례의 일본연수를 다녀왔다.
1988년에 부장으로 승격하여 이리(현 익산) 전력소장 부산진전력소장 부산과 창원의 전력관리본부 공무부장 신김해전력소장 등을 역임 했다. 1993년 부산진전력소장 재직시에는 구주전럭 (한전과 자매사)에 부장급 이상 10명이 열흘간 교류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으며 1998년말 신김해전력소장을 끝으로 32년간의 정들었던 한전을 떠난지도 어언 22년이되어 아래와 같이 퇴직 이후를 되돌아 본다.
IMF사태로 모두가 힘들어 하던 1998년 말에 32년간 몸담았던 한전을 퇴직한 지도 어언 22년이 되었다. 퇴직 후의 하루하루가 무료하던 차에 문화유산해설사(후에 문화관광해설사로 명칭변경) 모집에 합격하여 2001년부터 20년 째 해설활동을 하고있다.
이어 2002년의 한일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서 자원봉사 차원의 한국관광공사 굿윌가이드 (명예통역안내원)에 참여하여 활동한 지도 18년이 넘었다. 한전 재직 중에 여러 차례 일본연수에서 터득한 일본어 실력이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관광공사를 통한 외국인(일본어권)을 안내한 횟수가 300회를 넘었으며 지금도 지난 날 안내해 드렸던 일본 각지의 지인들로부터 재방문 시의 안내 요청을 받고있다. 활동실적이 우수하다고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2005년 2월 4일 부산학생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ᆞ일 가교 이수현"(일본에 유학중이던 2001년 1월26일 도쿄 신오쿠보 전철역 선로에 몸을 날려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4주기 추모행사 때 추모시를 낭송한 일본 시인 스즈키히사오씨의 부산 안내 때 들린 부산민주공원 방문 소감의 시가 저의 번역으로 월간민주공원지(제75호 2005년 11월호)에 실리기도 하였다.
아울러 2005년부터 지역주민들에게 일본어강좌를 개설하여 시행 중 한국전력공사 월간한전의 "그 선배가 궁금하다"(제414호 2007년 12월호 22p~24p)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또한 일본어 강좌 수강생들과 굿윌가이드 활동으로 알게된 일본분들과의 상호 초청으로 여러 차례 홈스테이 교류를 하며 견식을 넓히고 친목을 돈독히 하고있다.
퇴직 후부터 시작한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의 글로벌일본어봉사단활동(회장역임)도 22년 째 계속하고 있으며 활동실적 우수자에게 수여하는 금뱃지도 받은 바 있다.
한편 글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아 오륙도문학의 신인상(2005년 수필부문)을 수상한 바 있으며 '詩와 수필'이란 계간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도 하였다. 전우회보에도 수 차례 글이 실리기도 하였고 거주지인 부산 수영구의 구신문인 새수영지의 명예기자 활동도 한 바 있다.
퇴직 후 짧지 않은 22년을 되돌아보면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러한 활동을 계속하려 한다.
박재준 선생님 저의 글에 고마운 답글을 주셨네요. 입사년도가 같아 더욱 반갑습니다. 지난 전우회보188호(2020 03 15) "부디 잘 가거라 월성1호기야" 등 박선생님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저는 1943년생으로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군제대 후 한전에 입사하였습니다. 제 전번은 010 3596 2442 입니다. 이 번호로 전화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저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데 번호를 몰라서...)
첫댓글 멋진 글 잘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전 입사년도가 같으니 대단히 반갑구려...
나는 원자력쟁이로 제대했습니다.
가끔 통성명이나 나눕시다.
건승을
박재준 드림
박재준 선생님 저의 글에 고마운 답글을 주셨네요. 입사년도가 같아 더욱 반갑습니다. 지난 전우회보188호(2020 03 15) "부디 잘 가거라 월성1호기야" 등 박선생님의 글 잘보고 있습니다. 저는 1943년생으로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군제대 후 한전에 입사하였습니다. 제 전번은 010 3596 2442 입니다. 이 번호로 전화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저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데 번호를 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