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수학자인 내 친구
시와 수학은 친자매라고 종종 말해왔다. 그것들은 피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지만, 그것들의 공통된 어머니는 상상력이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이 말은 곧 겉보기에 역설의 찬란한 반짝임을 잃을 것이다. 다만 진실성으로서 더욱 뚜렷하게 인식될 뿐이다. 예술이 감각이면, 과학은 사고다. 둘 다 공상의 영역에서 탄생한다.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예리해야 하고,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것에서 비롯되든, 이것은 예술처럼 과학도 진정으로 상상력에 의존한다. 비판력은 사고와 관련이 있고, 감각은 창조와 관련이 있다. 두 가지 모두 겉보기에는 인간 자신이 없는 데서 창조적인 생각이 나온다. 그것은 심지가 아직 따뜻한 초에 다시 불을 붙일 때의 불꽃처럼 갑자기 그에게 다가온다. 초위의 공기로부터 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심지는 따뜻해야 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안 그러면 절대 불꽃이 일지 않는다.
모든 예술 중에서 아마도 수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음악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더 완전한 창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분석적이다. 이제, 이 소리는 죽은 것처럼 보였던 감정을 잠들 때처럼 빠르게 불러일으킨다. 다시금, 음악의 연구는 가장 흥미로운 몇 가지의 물리적인 문제들을 시사한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감각과 연관시켜도, 한 쪽의 척도를 다른 쪽의 척도로 도출해 내기는 힘들다. 우리는 산수에서 봄의 멜로디를 만들 수 없고, 여전히 멜로디에서 산수를 만들 수 없다. 이미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법으로 묶는 것은 극동의 가장 아름다운 자부심 중 하나다. 그 두 가지의 진짜 유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목가 시절 목동의 노래로부터 관습적으로 가장 신기하게 전해 내려와, 유대감의 상징으로 되었다. 모든 과학의 으뜸음은 사실 음, 즉 음악의 음이다.
모든 척도의 기준은 특정 피리의 크기를 기반으로 한다. 정확성에 대해 피리 스스로 결정한 기준은 그것이 내는 소리다. 인간의 키를 재기 위해 큐빗, 풋, 엘을, 지구의 크기에 자오선을, 심지어 현대과학은 측정을 위해 독립적인 절대단위를 사용하지만, 목소리는 궁극적 매력의 측정단위다. 사실, 그 속에는 목가적 이상향의 무언가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관습의 쳇바퀴가 오늘 날 우리에게 보여 주는 괴로움보다 미의 본능에 더 충실했던 그 시대에 운 좋게 잘 맞는 무엇 말이다.
극동 수학논문의 첫 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길이, 부피, 무게의 척도는 모두 특정 종류의 피리의 길이에서 유래되었다. 이 피리는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길고 짧음에 따라 간결하게 특정 음을 낸다."
"평균크기의 기장을 일정 수 더하면 피리와 같은 길이다. 이 기장 알곡은 길이의 단위가 된다.“
"피리에는 기장 1200알곡이 들어간다. 이것은부피의 단위다.”
"1200 알곡의 무게는 무게의 단위다.”
사실상, 중국의 고대 정의는 수천 년 된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수학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 사항일 그 주제 자체를 추구하기 전에,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놀랄만한 성격을 가진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그는 조선의 수학자이며, 조선에서 흔치 않게 독창적인 사람이다. 그는 어느 날 약속을 하고 나를 방문하게 되었고, 나는 그의 첫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지능이 높은 사람임을 보여주었고, 보라색 비단 토시는 그의 취향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열정적이게도, 서로 인사를 하자마자 그의 주제에 바로 빠져들었고, 나에게 문제를 주기 시작했다. 그 문제들은 생각하기에 간단하지만 흥미로웠다. 변형된 기하학적 문제들이다. 하지만, 그가 차려 입은 복장에 눈이 더 가서 미미한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의 밝은 눈이 반짝이는 해결책을 받았을 때, 그는 의자를 더 가까이 옮겼고, 내 팔에 다정하게 손을 얹었다.
그의 질문 중 일부는 중국의 옛 거장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고, 일부는 그의 지성의 산물이었다. 더 잘 쓰기 위해, 그는 토시를 벗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질문을 써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토시는 색채와 솜씨로 내 눈을 즐겁게 할 기회를 주었다. 무늬 비단은 두 겹으로 정교했고, 아래 장미 빛깔은 파르스름한 듯하다가 변화무쌍한 보라색이 되었다.
그는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물결무늬 단풍나무의 얼룩점이 새의 눈 같아 보이는 새눈무늬 단풍나무에 종이를 발라 만든 부채를 주었다. 모든 것이 섬세했다. 동양의 모든 것에 들어있는 섬세함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쓴 수학책을 그의 소매에서 끄집어내어 나에게 더 많은 문제를 내 주었다. 그가 나를 시험하는 것에 무척 놀라서, 나는 그에게 그 책 한 부를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나를 위해 그것을 복사해 주겠다고 대답했었다. 내 보기에 책이 두 권 있었는데, 며칠 후에 그가 가져와서 내게 주었다.
갓 그린 그림이었다. 그렸다니! 그 단어는 두 번째 뮤즈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그녀의 예술과 아마도 우리가 너무 엄격하고 무미건조한 추리로 분류하기 쉬운 것을 엮어 놓았다. 극동에서는 글과 그림 이 하나다. 둘 다 붓을 사용하여 동등하게 수행되며, 타타르 취향에 맞는 동등한 기술을 요구하며, 따라서 둘 다 동등하게 존중된다.
글을 잘 쓰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큼 어렵고 가치 있는 예술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같은 예술로 이루어진 가지이며, 한 단어가 두 가지를 모두 묘사하고 있다. 책이나 편지를 쓰거나 그리거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달인이 그러하듯이, 손길을 감지하는 것조차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한 글자만 보아도 어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자가 알다시피, 모든 한자는 여러 획으로 되어 있다. 서양의 초보자는 처음에 그 가획의 종류와 위치를 터득했을 때, 그의 일이 끝날 것이라고 상상한다. 망각적 추리! 이 주제는 알맞게, 더 높은 수준의 수학을 상기시킨다. 순서는 질만큼 필수적이다. 한자의 매 획은 공간에서의 위치뿐만 아니라 시간적 위치도 가진다.
여러 획은 일정한 순서로 서로 이어져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획의 형태도 바뀌어, 붓이 불가피하게 종이에 자국을 남기게 된다. 숙련된 눈에는 획순의 오차가 한눈에 확연히 드러난다. 이것은 배워야 할 첫 번째 단계다. 그 후에는 타고난 적성의 기술과 몇 년의 연습을 해야 촉각을 얻게 된다. 그렇게 이 수학 책이 그려지게 되었다.
세 번째 뮤즈는 글, 즉 시를 담당한다. 시의 여신은 그녀의 자매인 음악의 신에게 상석을 양보했고, 그림의 신에게 눈에 보이는 표현 방식을 양보했지만, 그녀는 전체를 아우르는 금언(金言)에 손을 대어 노래로 바꾸었다. 우리는 수학의 정 리를 시로 설명할 수 있다. 규칙 대신 운율로 대신할 수 있다. 해골처럼 수척하고 맨몸인 공식은 영혼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도 뮤즈는 마른 기억의 뼈에 감정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주어진 숫자의 세제곱근에서 첫 숫자를 찾는 노래”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어보자.
나는 시적 형식을 유지하려 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적겠다. 그럴 경우, 그 아이디어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 개념은 너무 참신해서 아름다운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천의 세제곱근은 십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주어 진 숫자가 3만일 때 세제곱근은 30보다 조금 크다.
99만의 세제곱근에서 첫 번째 숫자는 단지 몇 십에 불과하다.
그리고 100 만의 세제곱근은 100에 불과하다.”
아마도 처음에는 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학공식을 시로 바꾸면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특정 낱말을 사용하는 의도를 읽어봄으로써, 그것이 극동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서 시의 동기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시적인 숫자에서 보이는 입방근의 무변화다. 우리는 세세히 비교함으로써 혹은 그에 수반되는 작은 단서에서 반대 정리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감지한다.
수는 서로 이어지는데, 마치 꽃처럼 하루 동안만 피는데, 뿌리는 더 깊은 곳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과 같다. 혹은 여행자에게 보이는 풍경처럼, 가까이 있고 잘 보이는 모습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반면에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들은 변하지 않고 그와 함께 머무는 것과 같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그 감정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우리 마음에 흡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이 영감적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자연과 추상적인 생각마저도 지나치게 티가 안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 그러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에서만 배우는 사람의 지성의 관점으로서는, 우리가 일시적인 비유라고 여겨야 할 것이 달리 생각할 것이 없는 평생 배움의 길을 걷는 극동인 들에게는 시가 된다.
원래, 시의 한줄 한 줄에는 억양, 운율, 운이 있다. 히브리 시편들처럼, 한 구절이 다른 구절의 균형을 잡는다. 더 많은 현대 시처럼, 각각의 끝 단어들은 이전 줄의 단어와 소리에서 일치한다.
이 시들은 매우 오래되었다. 그들은 중국 문명의 오랜 과거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학과의 연관성도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모든 공식적인 과두정치는 운문의 숙련도에 기초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세월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들은 다시 아리아 사상의 고향으로부터 받은 그늘진 영향을 지적한다. 인도의 기하학과 대수학의 책들은 철학과 노래를 섞으려는 동일한 열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 옛 알타이고원으로 건너가지 않은 채, 조선 수학자의 이 책은 그 안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증거를 담고 있다. 그것은 현대 유럽 사상을 접촉하기 이전의 수학적 지식이라는 징후가 틀림없이 담겨 있다. 이 지식은 도발적이고 경험적인 것이며, 분명히 이후의 것과 나란히 발견되지만,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꽤 가능하다. 이번 발견에 대한 흥미를 높이 평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역사가 필요하다.
약 150년 전에 예수회 신자들이 중국에 들어왔고, 가장 특이한 방식으로 국가의 통치력이 되었다. 그들은 신학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설교할 만큼 현명했고, 그 결과 그들은 황제에 의해 일종의 자문 위원회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실제 물리학이 아주 적절한 시기에 들어왔다. 당시 연간 달력의 조정은 중국 성현들의 지속적인 짜증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태양과 달을 조화로운 회전으로 조화시킬 수 있을지는 당혹스러움이 수반되는 문제였다. 달력 제작자들은 단위의 과잉에 시달렸다. 그들은 시간이라는 이중 잣대의 어려움에 말려들었고, 이는 시간이 돈인 우리와 복본위제도에 비유할 수 있다.
음력으로 13개월이 한 해지만, 정확히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여분이 있어야했다. 그리고 다시 13번째 달이 어디로 들어 가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항상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낯선 자들이라고 부르는 서양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것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이 해결책은 서양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쉽게 열어주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서양수학의 효용을 인식하고 그 도입으로 인해 어떠한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면서, 그들 자신의 조잡한 체계에 서양수학을 접목시켰다. 새로운 과학원리가 중국으로부터 조선과 일본에 전파되었다.
이러한 채택의 결과로 옛 성현들을 찾는 일이나, 혹은 책방에서 고서적을 발견하는 일은 보통 실망으로 끝난다. 운 좋게 발견한다 해도 알고 보면 해외에서 들여온 중고 지식에 불과하다. 가끔 재미있는 일도 생기는데, 책 양장과 책방 주인이 있는 옷이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진 경우다. 이는 책방 주인이 손수 만든 것이고, 따라서 조잡하다. 사람들이 너무 자주 실망한 나머지, 결국 독창적인 것은 없다고 믿게 된다. 나보다 앞서, 사람들이 일본에서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조선에서 행운으로 이 책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그 탐색을 절망적으로 포기한 후였다.
수학자가 아닌 독자를 지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역사적 인 증거를 대지 않을 것이다. 내가보기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몇 가지 사실만을 언급하겠다.
”목수의 자”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목수들이 건물의 일부분을 직각으로 조정하기 위한 기계적인 장치이며, 소위 말하는 사각형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것은 기이한 수학적 비율의 발견에 달려 있다. 나무나 금속으로 세 변의 길이 비가 3, 4, 5인 삼각형을 만든다면, 3과 4인 변이 만드는 각은 직각이 된다. 대부분의 목수들에게 불가사의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인 이 장치는 책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고대의 인장에도 등장한다. 공자의 "예기” - 이런 것이 들어 있기에는 이상한 곳이다 - 에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있다. "밑변, 대변, 빗변의 비율을 3, 4, 5로 하여 직각자를 만들 수 있다.” 단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일본 번역자가 덧붙인다. "그런 자는 일본 목수들이 사용한다.” 비율과 직각자 둘 다 최소 24세기 전에 중국에 알려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계의 지적 친족관계에서 어느 하나를 놀랍도록 앞서게 하는 것 같다.
그들은 또한 원 지름과 원 둘레의 중요한 비율, 즉 흔히 원제곱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고형분 함량에 대한 많은 문제에서 큰 가치를 지닌 비율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모든 계산은 오직 고대 수학자 조 리츠켄 등이 사용한 원주율 3과 직경 1의 공식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수학자들은 이 비율이 정확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에 더 정확한 공식 몇 가지를 열거한다.
지름 100피트, 둘레 314피트.
지름 7피트, 둘레 22피트.
지름 10피트, 둘레 32피트.”
조 리츠켄은 21세기 전에 살았다. 그가 어떻게 비율을 얻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수학자들이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이 보증하는 모든 것은 이것이다. "원둘레의 값은 원의 면적을 나누어 구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그것이 처음 우리와 같이 다각형을 새겨서 얻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구와 같은 부피의 문제에 대한 그것의 적용에 대해 무엇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랬고, 그들은 우리에게 "구(球)의 노래”에 구체화된 공식을 남겼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경로로 해결책에 도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런 점에서 그 책은 벙어리다. 그 책은 일련의 공식을 제공했고,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험적 공식들은 오늘날 그 과정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우리는 생각의 결실이 돼야하는 것 대신에 배움의 폐해를 다시 보게 된다. 스승의 연구에서는, 그가 말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실,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우리와 함께 해온 것처럼 극동에서도 수학은 비현실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책으로부터 한 가지 더 새로운 내용을 인용하겠다. 곱셈 체계다. 우리는 연습할 때, 한 숫자 밑에 다른 숫자를 쓰고, 그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곱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큰 숫자를 연속해서 숫자로 표현하는 생각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 위치만 보아도 크기를 알수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312를 쓰고, 그것은 ”312”를 의미한다. ’3백, 1십, 2막고 써야만 삼백십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해 나는 '백'을 복수형으로 써야만 했다. 사실, 모든 한자가 그렇듯이, '백’은 복수로 표기할 수 없는 기호다. 복수는 앞에 오는 3 때문이다.
한마디로 312자 다섯 글자를 써야하는데, 번역에서 '십‘, '백’, ’천' 등의 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가 아니라 말, 소, 들판 같은 것의 숫자와 표현 사이의 중간 개념이다.
그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극동의 많은 미묘한 개념들 중 하나이지만, 단지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미묘하다고만 말해두자. 극동 언어에 대한 연구가 그러한 개념과 잘 맞아떨어지는데, 이것이 그러한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다.
곱셈을 표현하기 위해, 이것이 그들이 고안한 것이다. 그들이 27에 56을 곱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하자. 그들은 그것을 첨부된 컷과 같이 쓸 것이다. 7에 6을 곱한 다음,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각형의 구석에 4를, 첫 번째 아래쪽 사각형의 구석에 2를 배치한다. 다른 단순 곱셈에서도 적절한 위치에서 동일한 작업이 수행된다. 그러면 아래쪽 행의 각 사각형에 있는 모든 작은 숫자가 합산되어 각사각형의 중심에 큰 숫자가 된다. 이 큰 숫자들 각각을 오른쪽의 대각선 위에 있는 사각형의 구석에 있는 작은 숫자에 더하고, 합의 단위 자릿수를 앞으로 가져가서 같은 방향으로 큰 숫자들을 합산한 다음, 왼쪽 맨 위에서 시작하여 돌아가며 읽는다. 예를 들어, 이 경우 답은 1512다.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머릿속에 있는 과정을 많이 표현한다.
일본처럼 조선에서 숫자 기호는 중국어다. 이 타타르인들은 중국 사상의 영향을 받은 당시에 어떠한 숫자의 글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어 기호들은 그 자체가 원산지가 아니다. 중국인들의 차례가 되자, 그 기호들은 인도에서 차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연관성도 알지 못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우리 조상들의 기호를 변형시킨 것이다.
가치의 척도이자 일종의 양적 교환 수단인 이 화폐의 종류는 고대 아리아 종족에 의해 발명되었고, 그 후 전 세계로 유통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중국,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랍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이상하게 보이지만, 태평양을 가로질러 똑같은 기호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많이 써서 닳고 변했지만 말이다. 고대 인도의 기호에 대한 연구는 이것을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의 거주자들이 인도로 여행했다가, 오늘 날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기호를 빌려 중국으로 돌아왔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동안 인도의 기호들은 계속 바뀌었고, 아랍인들이 와서 차용할 때까지, 기호들은 우리가 이제 친숙한 형태에 거의 도달해 있었다. 원산지에서는 기호가 계속 바뀌었고, 여행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간 것을 다소 바꾸었다. 아랍인들은 정복자뿐만 아니라 수학자가 되었다. 유럽을 심하게 겁준 후에, 그들은 유럽의 수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서, 이들은 아랍인들로부터 가르침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 기호도 취했다. 그 기호들은 너무 편리해서 일반대중에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것들을 상품 묶음에 숫자를 적고, 그것이 표시하는 지구상의 어느 곳으로 그것들을 배송한다. 그래서 내 친구 수학자가 그 기호들을 처음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말하길, 그는 자신의 발견을 설명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망설임과 욕망의 혼합으로 우리 숫자를 쓸 수 있다고 했고, 그러고 나서 그는 그들의 올바른 순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이미 서울로 온 몇 개의 외국 물품 상자를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숫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종종 나를 보러 왔고, 나는 가끔 거리에서 그를 만나곤 했다. 나는 서두르는 걸음걸이로 그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걸음걸이로 걷다가, 혹은 그가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아차린 경우 등 전혀 예기치 않게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 멀리 깊은 숲속에 사는 사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의 생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통하게 말할 지도 모른다. 숲은 서울을 의미하고, 도시는 외부세계의 사상을 상징하며, 그의 책의 제목이 적힌 쪽에는 "월성의 김낙집에 의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