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章 밤의 제왕(帝王), 흑야마부(黑夜魔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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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洛陽).
수륙양로(水陸兩路)에 걸쳐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軍事的)으로 천하제일의 요새로 불리었던 낙양의 문물은 대단히 발전해 있다.
<천하대표방(天下大 房)>
낙양성에 위치한 가장 거대한 상점이다.
이곳에서 천하의 모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음은 물론이고, 천하 어디까지든 운임만 준다면 친절하게 운반해 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천지간에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흑야마부(黑夜魔府)의 본거지가 바로 천하대표방이었다.
그 같은 사실은 천환신투가 바로 천하대표방으로 잠입함으로써 밝혀졌다.
그들 밤의 주인들은 훔쳐낸 물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천하대표방을 차렸다.
뿐만 아니라 표물을 날라 준다는 구실로 천하각지의 명소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훔칠 물건들을 찾는다.
그들의 표물 탁송소에 대한 신용은 가장 확실했다. 아무리 값진 물건이라 해도 결코 중간에 빼돌리는 법이 없다.
물건이 있는 곳만 확실히 안다면 언제든 그들의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의 정보망은 천하제일의 정보를 자랑하는 개방( )을 능가하고 있다.
그들의 특기는 남의 것은 철저히 알고, 자신의 것은 철저히 숨긴다. 그랬기에 신비혈문도 흑야마부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을 공격하려 해도 총단의 위치를 모르기에 공세를 펼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천환신투가 상점 안으로 사라지자 사마강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천하대표방이란 도둑 소굴의 현판을 응시하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후후… 고기 떼를 잡으려면 그물이 커야 하겠지?"
그는 천하대표방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낙양성 내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낙양도호부(洛陽都戶府)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천하대표방 앞으로 한 명의 미공자가 찾아 들었다.
사마강의 모습은 정녕 화려했다.
눈처럼 새하얀 백의에 취옥빛 감도는 섭선을 들었다.
하얀 가죽 신발엔 먼지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일견해도 거부의 자제나 고관대작의 귀공자로 보였다.
'봉이다!'
천하대표방 인물들은 큰 손님이 나타났다 싶어 급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마강은 섭선을 점잖게 흔들면서 천하대표방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정원과 산책로는 의외로 정갈했다.
'흠, 이러니 누가 도둑들의 소굴이라 하겠는가?'
사마강은 내심 실소를 지으며 하얀 자갈이 깔린 길을 걸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지라 별로 객은 많지 않았다.
사마강은 아름답게 꾸며진 화원(花園)을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화원 속에 상당한 고수들이 은신해 있군. 도둑들도 남한테 도둑맞을 것을 걱정해야 하다니…….'
그는 섭선을 탁, 접으며 낭랑하게 웃었다.
"하하하… 나의 장원이 정말 훌륭하도다."
지나가던 몇몇 점원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사마강은 그들을 마치 하인 대하듯 했다.
"수고가 많구나. 그래, 어젯밤에도 많은 것을 훔쳤느냐?"
"뭐… 뭣이라고?"
몇 사람이 눈을 부라렸다.
그들은 남의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을 간파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자들이었다.
스스스슷-!
이십여 개의 인영이 유령처럼 퇴로를 막으며 사마강의 등 뒤쪽으로 내려섰다.
"정문을 봉쇄하라!"
"침입자다! 어서 부주께 알려라!"
여기저기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 왔지만 사마강은 계속해서 웃으며 점점 천하대표방 깊숙이 들어섰다.
강적을 의식한 듯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효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사마강은 병장기를 빼든 채 독기를 뿜는 그들을 둘러보며 즐거워했다. 어찌 보면 미친 사람의 수작이었다.
"하하하… 나의 종(從)들아! 아침 문안을 드리려고 이토록 몰려드느냐? 정녕 기특한 놈들이야."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가는 그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래, 어제 훔친 물건들은 모두 다 팔았느냐?"
"닥쳐라! 모두 놈을 쳐라!"
그들 중 누군가가 호통치자, 일백에 달하는 인영들이 기이한 신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마강을 중심으로 미풍이 일었다. 그 미풍의 기세는 점차 강맹해져 태풍의 눈같이 회전했다.
흑야마라검진(黑夜魔羅劍陣)!
흑야마부가 자랑하는 합격술이었다.
그들은 개방처럼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기에, 다수에 의해 펼치는 합벽진에 능했다.
콰아아아-!
사마강의 시선에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운무처럼 변해 버린 백여 고수는 낙양성을 날려 버릴 것 같은 거대한 선풍(旋風)이었다.
사마강은 섭선을 바로잡고 우뚝 섰다.
그가 서 있는 백석판에 깊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이때의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산악과도 같았다. 제아무리 엄청난 선풍이라 할지라도 그를 어쩌지 못할 기세였다.
"차아아압-!"
벽옥선이 하나의 선을 그었다고 느꼈다.
무수한 검의 압력 속에서 흑무의 광란을 일으키던 천하대표방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심한 충격에 퉁겨 나갔다.
차차차창-!
작렬하는 섬광 속에서 무수한 금속성이 고막을 때렸다. 그리고는 선풍이 멎었다. 사마강은 이미 진 밖에 서 있었다.
백여 고수는 모두가 검이 부러진 상태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들은 공포와 경악에 젖어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이토록 엄청난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사마강의 존재는 무신(武神)이었다.
"나의 종들이여! 아침 연무(練武)는 살살 하도록 하라. 이러다간 다치기 쉽겠다."
조금 전 그가 사용한 수법은 접인수(接引手)라는 평범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사마강의 손에 의해 펼쳐지는 순간, 그것은 광세기학으로 변모한 것이다.
"모두 멈추어라!"
음침한 음성이 동서남북 방향을 감지할 수 없는 곳에서 들려 왔다. 참으로 신비한 목소리였다.
흑야마부의 인물들은 주르르 뒤쪽으로 물러섰다.
삘리리릭……!
아름다운 피리의 선율이 긴장감에 젖은 장내로 흘러 들어왔다.
딸랑- 딸랑-!
멀리서 아득히 들려 오는 풍경(風磬) 소리가 뒤를 이었다.
피리 소리와 풍경 소리는 한데 어울려 세상의 모든 사악(邪惡)함과 요기(妖氣)를 쫓아 버릴 것 같은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사마강은 자신도 모르게 감상 속에 빠져들었다.
띵- 땅- 태댕-!
이번에는 지극히 맑은 현음 소리가 피리 소리에 섞였다. 그야말로 음률로 가득 찬 세계였다.
이어 정숙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이십칠 인의 미희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춤을 추는 것처럼 음률에 맞추어 움직였다.
국화(菊花)와 같은 감각들이 그녀들에게서 느껴진다.
'내게도 누나가 있었다면 낭자들처럼 생겼을 것이오.'
사마강은 취한 듯이 미희들을 바라보았다.
피리와 칠현금, 그리고 간간이 들려 오는 풍경 소리는 조금씩 빨라졌다. 음률의 속도에 따라 미희들은 수줍게 웃으며 몸놀림을 빨리했다.
사마강은 자신도 모르게 흥이 일었다. 그녀들을 따라서 그도 춤이 추고 싶어졌다.
그녀들은 목에 감은 부드러운 천을 무지개처럼 흔들었다.
머리엔 붉은 수실 꽃을 꽂고 있다. 발은 앙증스런 맨발이었는데, 엄지발가락과 집게발가락 사이에 분홍 수실의 꽃을 꽂았다.
그녀들의 귀여운 발이 드러났다가 감추어지곤 하는 모습은 사뭇 자극적이었다.
선율이 더욱 빨라졌다.
미희들은 나삼을 풀어젖혔다. 학보다 고운 목덜미들이 수줍게 드러났다.
그녀들은 고운 피부를 드러내며 혼백을 빨아들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사마강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들을 따라 웃고 있었다.
미희들은 허리를 흔들었다. 치맛자락이 허벅지를 타고 사르르 흘러 내려갔다.
새하얀 백색 속치마 속에 가려진 그녀들의 종아리와 간간이 들여다보이는 허벅지의 속살에선 분가루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호호호……!"
은방울이 구르는 듯한 교소와 함께 미희들은 상의를 벗어 던졌다.
"아……!"
사마강의 눈빛은 이 순간 제 빛을 잃었다.
그녀들의 풍만한 앞가슴이 출렁였다. 작은 젖가리개는 풀어 놓지 않았다.
사마강은 달려들어 그것마저 풀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선율처럼 심혼을 빼앗는 음악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이 순간 미희들은 온몸을 틀어 밀지를 가리고 있는 마지막 천들을 풀어 던졌다.
아, 대륙은 그대로 도취하여 숨을 멈추었다.
이십칠 명의 미희들이 모두 나신이 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하나하나 빛을 발한다.
미희의 감미로운 손이 춤을 춘다. 미희의 허리가 흔들리고 다리가 교차한다.
정녕 숨을 막혀 버리게 하는 것은, 미희들이 발끝과 머리에 묶고 있던 꽃들을 두 손으로 잡았을 때였다.
허리가 굽혀지며 그녀들의 비림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으음……!'
화사마강은 전신의 피가 확 솟구쳤다.
미희들은 수줍은 듯 얼굴를 붉히며 분홍과 붉은 수술 꽃으로 비림을 감추었다.
세류요의 허리 아래 익어 벌어진 둔부가 경련한다.
그녀들의 움직임을 따라 보일 듯 말 듯한 흑비림이 율동한다.
한순간 미희들의 손이 좌우로 벌어지며 오른다리를 들어올렸다.
'후우욱……!'
사마강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숨을 들이켰다. 맑은 진기가 전해지자, 흐트러진 미혼(迷魂) 속에서 겨우 제정신이 돌아왔다.
환마장안소혼나찰진(幻魔藏眼素魂羅刹陣)!
전문적으로 상대의 내공을 마비시키고 기습을 하기 위한 춤이었다. 한 번 펼쳐지면 어떠한 절세고수도 삼혼칠백이 말살돼 탈진되어 버리는 무서운 진법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마강은 아름답게만 느꼈던 미희들이 요망한 탕부들로 보였다.
"멈추어라, 이 요망한 계집들!"
그의 호통은 웅후했고, 호기(豪氣)로 가득 찼다.
영웅의 기개가 넘치는 폭갈과 함께 그는 찰나지간 지풍을 날려 그녀들을 한순간에 점혈해 버렸다. 의제의 절기였다.
매끄러운 여체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그토록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미희들의 몸뚱아리가 볼썽사납게만 보였다.
"으음, 정말 무서운 놈이군."
"어떻게 환마장안소호나찰진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놈의 배를 갈라 철석간담인지 확인해 봐야겠군."
열 명의 노인이 장내에 나타났다.
그들은 흑야마부의 장로들로서 하나하나가 특이한 기질과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절세적인 고수들이다. 오랜 세월 숨어서만 활동을 했기에 명성을 날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마강은 이들 열 사람이 나타나자 주춤 반보를 물러섰다.
츠츠츳-!
그들은 빛살처럼 십방으로 공세를 펼쳐 왔다. 얼마나 빠른 공세인지 그들의 신형은 보이지도 않았다.
사마강은 유연하게 신형을 움직이며 섭선을 휘둘렀다.
'대단한 고수들이군. 흑야마부를 복속시키려면 절대로 이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는 무한한 강기( 氣)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입곱 번이나 번개처럼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섭선은 만폭결(萬瀑訣)을 응용한 수법으로 춤추었다.
콰르르릉-!
고막이 찢겨질 듯한 폭음과 함께 광풍이 휘몰아쳤다.
마치 수천만 근의 폭포가 역류하듯 막강한 잠력이 십방으로 뻗어 나갔다. 만일 사마강이 살기를 품었다면 그들 모두는 천참만륙이 되었을 것이다.
무한한 잠력이 십 인의 공세를 해소하는 순간, 소리 없는 섬광이 발출되었다.
흑야마부의 십대장로는 발밑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기분에 모두 발을 내려다보았다. 신법(身法)만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는 그들은 질겁하고 말았다.
하나같이 신발의 밑 부분이 매끄럽게 잘려져 지면을 맨발로 밟고 있는 것이다. 발이 잘리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크으… 무서운 놈!"
"세상에 이런 귀신 같은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그들이 살기를 뿌리며 다시 덮치려 했다.
"물러서라! 너희들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우렁찬 호통 속에 한 명의 왜소한 노인이 나타났다.
추악한 면모에 쥐눈을 번득이는 흑의노인이 땅에서 솟아나듯 사마강 앞에 등장했다.
흑야마군(黑夜魔君)!
바로 흑야마부의 주인이자 밤의 제황인 그가 출현한 것이다.
"귀하는 뉘시기에 감히 여기까지 와서 나의 수하들에게 행패를 부리시오?"
흑야마군이 누구에게 이토록 정중하게 물었던 적은 없었다. 그는 거대문파의 종주답게 상대방을 확실하게 알아본 것이다.
"후후… 나는 대금(代金)을 받으러 왔을 뿐이다."
사마강은 가볍게 소매를 저었다.
땡그렁-!
흑야마군 앞에 황금빛 귀걸이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냉향령(冷香令)이었다.
'으음, 일이 더럽게 됐군.'
강호에서 늙은 흑야마군은 이것만 보고도 상대방이 천환신투의 뒤를 쫓아 여기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또한 자신들이 독구렁이를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대협, 죄송하기 이를 데 없소. 냉향세가에 귀하 같은 대협이 계신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 같은 결례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오."
그는 정중하게 사과하며 천환신투를 찾았다.
"천환신투란 놈을 대령하라!"
수하들의 복명에 이어 잠시 후 천환신투가 나타나 흑야마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흑야마군은 사납게 그를 몰아세웠다.
"네놈은 네 죄를 알겠느냐?"
흑야마부의 규율은 너무나도 엄했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면 두 손을 잘라야 했다. 도주하다 발각되면 두 다리를 자른다. 그들에게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부주, 속하는… 그저 목숨만……."
천환신투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두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흑야마군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스스로 양쪽 귀를 자르라!"
"오… 감사합니다, 부주!"
천환신투는 급히 배례한 후 서슴없이 두 귀를 잘랐다.
시뻘건 선혈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천환신투는 신음성 한 번 흘려 내지 않았다. 다만 생명을 구하게 됨을 감사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게냐? 냉큼 냉향천령기를 가져오지 못할까?"
흑야마군은 서둘러 호통쳤다.
그는 너무도 엄청난 상대와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냉향천령기 하나 때문에 흑야마부가 희생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깐!"
사마강은 손을 내저었다.
"대협, 또 어떤 분부가 있소?"
흑야마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하… 나는 절대 본전치기 장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품이오. 귀부에 흑천마홀(黑天魔笏)이라는 물건이 있다는데, 그것을 이자로 주지 않으면 나는 돌아갈 수가 없소."
"무… 무엇이?"
흑야마군은 급기야 진노하고 말았다.
흑천마홀(黑天魔笏)!
그것은 흑야마부의 장문영부이다. 사마강의 의도는 흑야마군의 세력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말이었다.
흑야마군은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을 했다. 이해의 득실을 따지는 주판알이 머릿속에서 수백 번이나 퉁겨졌다.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흑야마부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손을 쳐들었다.
"모두 놈을 죽여!"
"잠깐!"
사마강이 그의 명을 끊었다.
"또 무엇이냐?"
"하하하… 내 그대들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그대들 모두가 힘을 합해도 결코 나의 일(一) 수(手)를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기에, 먼저 저 장원을 향해 일 수를 펼치겠다. 그래도 이길 자신이 있다면 공격해도 좋다."
그들은 상대의 의도를 몰랐기에 주춤거렸다.
흑야마군은 추살령을 잠시 보류했다. 상대의 실력을 보다 확실히 아는 것은 더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사마강의 손에 한 자루 찬란한 연검이 들려졌다.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의형제천검이었다.
검기는 점차 허공을 위협하는 듯 빛났다. 한순간 모든 생명이 호흡을 중단했다.
사마강은 검 끝으로 거대한 장원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폭포수로 여겼다.
만폭도의 거대한 폭포도 그의 일 검에 역류되었다. 천하의 그 어떤 것도 만폭결(萬瀑訣)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고금제일검이었던 것이다.
흑야마군은 부르르 떨었다.
'으으, 저자는 사람이 아니다. 무신(武神), 아니 하늘이다!'
그뿐만 아니라 십대장로를 비롯한 일백 고수들 모두는 산악을 짓이겨 버릴 듯한 사마강의 기도에 피가 거꾸로 도는 고통에 휩싸였다.
"치아압-!"
허공에 치솟는 창룡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굉음이 천지의 흐름조차 멈추게 했다.
꽈르르릉-!
뇌성 속에 전개되는 무수한 섬광에 태양도 빛을 잃고 말았다.
흑야마부의 고수들은 눈알이 시려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대로 직시했다가는 눈알이 타 버릴 것만 같았다.
예상되는 거대한 폭음성도 들려 오지 않았다.
팍삭-!
정녕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주하고 있었던 장원이 사라졌다. 벽돌과 돌기둥과 굳건한 통나무로 이루어진 장원이 통째로 가루로 변하여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번쩍-!
은빛 무지개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더니, 그것은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사마강의 손으로 이어졌다.
의형제천검이 되돌아온 것이다.
보는 이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주하고 싶다. 이 자리에 남아 있다간 시신조차 찾아볼 수 없는 가루로 변해 버릴 것이다.
저런 인물이 과연 강호상에 존재했더란 말이던가?
그것도 하필 냉향세가에 있었단 말인가?
왜 냉향세가를 건드렸을까? 왜 호랑이 수염을 뽑았을까?
마음은 모두 한결같았다.
오금이 저린다. 만약 그의 검이 뻗어 온다면 제아무리 빠른 신법(身法)이라 할지라도, 피떡의 잿빛 이슬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때였다.
"강호 도배 흑야마군은 오라를 받으라! 숱한 도적질을 해 온 너의 장원은 십만(十萬) 황군(皇軍)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밤의 제황으로 불리어졌던 흑야마군은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렸다. 그의 안색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졌다.
'아, 천화신투 저놈 때문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십팔대 할아버지, 관제성군이시여! 놈이 흑야마부를 망쳤구나!'
사마강은 그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았다.
"어떤가, 흑야마군? 흑천마홀을 바치고 나의 수하가 되겠다면 나는 그대를 중용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대는 물론이고, 그대의 모든 수하들의 삼족(三族)을 멸하게 할 것이다. 그대들이 그 동안 훔쳐 온 황궁의 물건들을 볼진대, 능히 그 같은 죄값에 해당될 것이다!"
흑야마군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꿈꿔 온 집념이 깨졌기 때문이다. 신투술로 천하를 훔치겠다는 야심이 스러진 좌절감 때문이었다.
흑야마군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흑야마부의 장로들과 수하들 역시 눈물을 뿌리며 부복했다.
사마강은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위엄 있는 표정으로 낙양부사에게 명했다.
"그대들은 조용히 물러가시오!"
황군을 몰고온 사람은 낙양성의 부사였다.
그는 황제폐하를 대하듯 주룡칙령의 주인으로부터 명을 받았던 것이다.
- 천하대표방 안에서 검기(劍氣)가 하늘 높이 떠오르면 관병을 동원하라!
- 단 그들에게 십만 관병에 포위되었다고 소리치도록 하라!
주룡칙령의 주인의 명에 낙양부사는 물러났다.
한바탕 소동이 일 것을 감안해 애써 군사를 동원했지만 그저 위협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어쨌거나 피를 흘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령칙령의 주인이 오라고 해서 왔을 뿐이며, 가라고 해서 갈 뿐이다. 그 같은 일이 있었음을 황궁에 보고만 하면 그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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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강은 흑천마홀을 들고 태사의에 높이 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 그대들의 주인이 되었소. 기왕 하나의 문파를 맡았으니, 천하제일의 방파로 만들고 싶소. 또한 세상에 보람된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오."
"주인의 높은 뜻을 받들겠사오이다!"
흑야마군과 십대장로가 부복한 채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에게 명령을 내리겠소."
사마강은 새로 내외대총관이 된 흑야마군을 위시한 열 명의 장로에게 하나씩의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 이것은……?"
그것을 받아 든 열한 명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받아 든 종이에는 한 구절씩의 명령밖에 없었다.
<소림파(少林派) 녹옥불장(綠玉佛杖)을 훔칠 것!>
<무당파(巫當派) 상청옥부(上靑玉符)를 훔칠 것!>
<화산파(華山派) 매화검령(梅花劍令)을 훔칠 것!>
<곤륜파(昆崙派) 청학령(靑鶴令)을…….>
…….
그것은 구파일방의 장문영부와 함께 사천당가주령을 훔치라는 지시였다.
물론 그들이 모든 수단을 다한다면 그 같은 일은 가능했다. 하지만 후환이 두려웠다.
백도가 비록 쇠약해 있다 해도 구파일방이 합공을 펼친다면, 흑야마부는 주춧돌 하나 남지 않고 괴멸될 것이다.
"그대들의 뒤에는 내가 있소. 나를 믿지 못하오?"
그의 음성은 잔잔했지만 무한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정녕 그러했다. 그의 가공할 무공과 황군마저 동원할 권력, 그리고 냉향세가를 움직일 수 있는 배경 등은 그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주인이시여! 우리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로 복종할 따름이외다. 부디 부디 본부를 빛내 주소서."
흑야마군를 위시한 십대장로는 무릎을 꿇었다.
"좋소. 그대들은 임무를 수행하시오. 실패는 용납치 않을 것이오."
"존명!"
그들은 고개를 숙이는가 싶자 환각처럼 사라져 갔다.
홀로 남은 사마강은 조금 전부터 호기심을 느낀 흑천마홀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안력은 천하제일이었다.
홀의 표면에는 상고문자로 쓰여진 몇 줄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흐음, 괴이한 환술(幻術)이로군."
사마강은 간단히 상고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변체환용마공(變體幻容魔功)>
환술은 아주 특이했다. 근육과 뼈를 이완시켜 어떤 형태로든 변용할 수 있는 요술과도 같은 좌도의 무공이었다.
"진정 뛰어난 변용술이군. 아마도 신투문(神偸門)의 사조(師祖)가 연구했음 직한 비법이야."
그는 무학이라면 숱한 호기심을 갖는다. 더욱이 특이한 상고비법이기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내공을 이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개세의 비법에 취한 그는 침식도 잊었다.
이틀이 흑야마부에서 지나갔다.
"부주께 아뢰옵니다. 손님이 찾아와 계신데, 모실까요?"
문 밖에서 시비의 음성이 들렸다.
'누가……?'
사마강은 방문을 열었다.
"주인님!"
파로수가 반갑게 그를 부르며 아력(阿力)을 함께 데리고 오고 있었다.
사마강은 놀라웁고도 반가웠다.
"아니, 그대들이 여길 어떻게 알았소?"
"하하… 주룡칙령이 내려졌다기에 주인님이신 줄 알고 찾아왔습니다."
파로수의 대답에 사마강은 비로소 이해가 갔다. 그가 황제에게 주룡칙령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사마강은 그런 물건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아력은 등에 무거운 상자를 메고 있었다.
"아력, 그 동안 잘 지냈느냐?"
"예, 주인님."
아력도 이제 한어를 제법 할 줄 알았다.
"그것은 무슨 물건이더냐?"
"이것은 저희들이 그 동안 황궁에서 제조한 화탄(火彈)이옵니다."
아마도 그와 떨어져 있는 사이에 둘은 황제의 충신이 된 듯 관복을 입고 있었다.
3
강호무림(江湖武林)에 무서운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죽음(死)의 소문이었다.
- 혈천사자가 무림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잔인무도하게 무림의 달인들을 죽인다!
이것은 소문의 일부에 불과했다.
백도무림계의 하늘과 같았던 정문칠기(正門七技) 중 여섯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몰살을 당한 것이다.
- 정문칠기는 혈천사자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다!
무림인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 숨을 죽였다.
무림은 정문칠기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다.
복수를 외치는 절규도 없었다. 혈천사자를 공적으로 몰아 협살하자는 숙의도 없었다.
이제 세상의 정의는 말살된 것인가?
4
북천산(北天山).
칼날인 양 날카롭게 솟은 수천, 수만의 검봉(劍峰)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휘이이이잉-!
바람은 검봉을 휘돌며 거칠게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바람에 실려 미친 듯이 백설(白雪)이 나부꼈다.
북천산은 항시 만년빙설에 덮여 있어 오를 수 없는 절지(絶地)였다. 하늘을 비상하는 새조차도 감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다.
북천제일봉(北天第一峰)!
북천산의 정봉은 그야말로 빙설 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한데 생명체의 존재를 허락치 않는 이 절대오지에 검붉은 연기가 감돌고 있다.
북천제일봉의 중앙에 향로가 놓여 있는데, 그곳에서 혈무(血霧)가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로를 사이에 두고 일남일녀(一男一女)가 마주 앉아 있었다.
진정 경이적인 일이었다.
초절정의 통천가공할 경공을 지닌 고수라 할지라도 오를 수 없는 천연의 금역에 어떻게 두 사람이나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은 두 다리가 싹뚝 절단된 금포노인(金布老人)이었다.
그의 전신(全身)에선 정녕 무시무시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스쳐 가는 바람조차 그의 마기를 두려워했다.
노인의 전면에는 얼굴에 기이한 형체의 은색 면구를 쓴 자포노파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돌연 어디서 나타났는지 소리도 없이 한 혈의인(血衣人)이 내려섰다.
혈의인의 경공술은 일반 강호인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떻게 보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설상의 능공허도(凌空虛度)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능공허도는 진기 소모가 너무도 극심했기에, 이토록 쉽고 오래도록 펼칠 수 없는 것이었다.
혈의인은 일남일녀의 앞으로 다가가 멈추었다.
혈의인의 전신에선 가공할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그의 얼굴은 얼음덩이처럼 차고 싸늘했다. 기도만으로도 살인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직시할 수 없을 것이다.
"……!"
혈의인은 일남일녀를 대하는 순간, 공포로 경직되었다.
두 다리가 잘린 금포노인의 무표정한 안면에 희미하게 혈소가 피어올랐다.
혈의인은 황급히 일남일녀의 앞에 오체를 던졌다.
"궁주(宮主), 그리고 이궁주(二宮主)! 속하,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일은 잘 되었겠지?"
귀신의 음성인가? 은색 면구를 쓴 자포노파의 음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쭈뼛쭈뼛 서게 만들 만큼 냉랭했다.
혈의인은 재빨리 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중원에 파견된 첩자 일백 명에게 온 정보를 모두 모아 책자 하나를 꾸몄습니다."
혈의인은 품안에서 금빛 책자 한 권을 꺼내서 공손히 금포노인에게 바쳤다.
<천하혈서(天下血書)>
금빛 표지에 그런 책명이 섬뜩한 혈서로 쓰여 있었다.
"크훗… 천하혈서라?"
무표정하던 금포노인의 입가에 비로소 득의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가 이런 미소를 짓는 것은 십 수년 만의 일이었다. 동시에 노인의 전신에서는 더욱 진저리쳐지는 마기가 뿜어졌다.
혈의인은 두려움에 젖어 말을 이었다.
"그 책에는 무림의 각대문파의 동정이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혈천사자에 대한 소문과 신비혈문이 암암리에 강호의 대소문파를 침식해 들어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기술했습니다."
금포노인의 신형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것은 전설상의 무상신공인 부공삼매(浮空三昧)의 경지가 아닌가?
한 줌의 진기로 수백 장까지 치솟을 수 있는 불가사의한 무학이었다.
금포노인은 허공에 둥둥 뜬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드디어 중원천하는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음성이 갑자기 커지며 북천산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푸핫핫… 이 틈을 이용하여 천하를 장악하겠노라! 본 천사마궁(天邪魔宮)이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이제야 도래했도다!"
"크크크……!"
자포노파의 은색 면구를 비집고 갈가마귀의 울음을 방불케 하는 기이한 음성이 울렸다.
"결국 영감의 뜻을 이루게 되었구려. 오호호……!"
북천제일봉조차 일남일녀의 광소성에 숨을 죽였다.
아아, 그렇다면 이들이 바로 천사마궁의 절대자들이란 말인가?
천사마궁의 제일인자인 천사지존(天邪至尊)!
지옥나찰보다 심성이 악독하다는 천독성모(天毒聖母)!
또다시 혈겁의 수레바퀴가 굴러오고 있다.
몸과 화탄을 던져 겨우 혈겁을 막아 낸 의혈(義血)은 가고 없는데, 또다시 중원에 피보라가 몰아치는가?
휘- 위이이잉-!
칼 끝처럼 매서운 냉풍이 휘몰아친다.
섬전지간 북천제일봉은 한 치 앞도 구별할 수 없는 폭설에 뒤덮였다. 그리고 북천제일봉은 죽음 같은 침묵의 세계로 함몰되었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