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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은반위의 슬픈 요정 김나영
피겨스케이터를 가리켜 사람들은 말한다. ‘은반의 요정’이라고. 김연아(17,군포 수리고)가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을 때 세계는 극찬했다. ‘새로운 빙판의 요정이 탄생했다’고. 그러나 눈으로 보는 화려함과 우아함 이면에는 가슴으로만 볼 수 있는 아픔과 고통이 숨어 있다. 주니어 시절 김연아의 라이벌이던 김나영(17,인천 연수여고)은 부상과 사고에 시달리며 화려함보다는 고통에 절망해야 했다. 그러나 제61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김나영은 소금보다 정결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 뒤에서 어머니는 소금보다 진한 눈물을 흘렸다.
2006년 12월 5일 오후 5시 올림픽대로. 어머니 신금숙 씨(43)가 운전하는 로디우스 승용차에 타고 있던 김나영이 잠을 청하다 깼다. 그 전 같으면 잠이 쏟아졌을 텐데 이날은 눈이 감기지 않았다. 앞좌석에 앉은 신혜숙 코치(49)와 옆에 앉아 있는 김민석(13,둔산중)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무심코 차창을 향해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입에서 토해낸 열기로 차창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의 에나멜처럼 창백한 손끝이 입김을 닦아내자 차창 밖으로 겨울 한강이 보였다. 순간 그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노을빛에 단풍처럼 붉게 물든 한강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여섯 살 때 피겨선수가 된 이후 수없이 지나다닌 올림픽대로였지만 제대로 한강을 바라본 기억이 없었다.
한참 강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일 수 있는 피겨선수가 될 수 있을까’ 한강을 빙판 삼아 우아하게 원을 그리며 활주하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을 즈음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때 상상 속에서 ‘펑’하고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그를 향해 터지기 시작했다. 흥분한 팬들이 그를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윽고 그를 에워싼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붉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의 입가에 탄성만큼이나 작은 미소가 흘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있는 곳은 차가 아닌 병원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팬이 아닌 의료진이었다.
사고
올림픽대로를 거쳐 잠실대교에 서 있던 김나영 일행의 차를 덮친 건 대형고속버스였다. 앞 차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김나영 일행의 차도 섰지만 거침없이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속력을 내던 버스는 이를 보지 못했다. 그가 카메라 플래시라고 생각했던 ‘펑’ 소리는 바로 버스가 뒤를 받으며 냈던 굉음이었다.
이 사고로 로디우스 차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손됐다. 차에 타고 있던 네 명 모두 다쳤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전치 3주’. 그나마 다행이었다. 3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을 수도 있는 큰 사고였다.
신금숙 씨도 허리와 목을 다쳤지만 온통 신경은 옆에 누워있는 큰딸 김나영에게 쏠렸다. ‘아직 부상에서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신금숙 씨의 눈은 충혈됐다.
김나영은 지난해 연습 도중 골반이 틀어져 줄곧 병원에 다녀야 했다. 그 정도 부상이면 일반인들은 제대로 걷지 못한다. 특히 점프할 때마다 골반에 전해지는 충격은 나무망치로 뼈를 때리는 충격과 같다. 그러나 16살 소녀 김나영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자마자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 그것이 피겨선수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피겨선수의 본분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피겨선수가 치료받아야 할 곳은 은반이지 병원이 아니라고 믿는 터였다.
신금숙 씨가 초조한 마음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딸의 부상이 어느 정도냐고. 의사는 “무리하지 않는다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신금숙 씨에게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위로였다. 오히려 피겨를 그만둘 정도의 부상이라면 모를까. 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딸은 병원 밖에 나서자마자 빙상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신금숙 씨는 그렇게 예상했고 딸은 실제로 그랬다.
딸의 간청으로 보름 만에 퇴원 절차를 밟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스케이트 날이 긁고 지나간 것처럼 시리고 아팠다. 그때 딸이 해맑은 햇살을 두 손 가득 담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긴 너무 더워.”
불운
김나영은 아이스링크에 도착하자 마음이 놓였다. 얼음 위가 편안한 이유도 있었지만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은 ‘일주일을 쉬면 한 달이 뒤처진다’는 말이 통하는 운동이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일주일 사이에 몸이 불어나고 감각을 잃게 마련이다. 김나영 같은 유망주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쉬는 기간만큼 또래 선수들에 비해 기술연마가 늦어지게 된다. 밀린 방학숙제는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지만 밀린 기술은 방학마저 잃는 지름길이다.
스케이트화를 갈아 신고 링크로 들어섰다. 조금 몸을 푸는가 싶더니 급한 마음에 실전처럼 기술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텝(활주 중에 발을 바꾸면서 원을 그리거나 진행 방향을 바꾸는 등의 동작)과 스핀(몸의 중심선을 축으로 해 제자리에서 몸 전체를 돌리는 기술)이 예전 같지 않았다.
김나영은 자신을 시험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빙판을 크게 돌다 점프를 시도했다.
“앗” 그의 착지를 도운 건 스케이트화의 날이 아니었다. 그는 온몸을 빙판에 부딪치며 쓰러졌다. 골반 때문인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골반뿐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이후 다친 목과 허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가장 크게 아픈 곳은 다름 아닌 무릎이었다.
“늘 무릎 때문에 고생했어요.” 그의 고백대로 무릎부상은 가장 큰 적이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건 2003년 인천 연화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무릎이 삐끗한 기분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커졌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무릎에 혹이 났다”며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신금숙 씨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다른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최종 진단은 중년 이후 성인에게나 찾아오는 ‘퇴행성 관절염’이었다.
13살 소녀에게는 너무 일찍 찾아온 불행이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었다. 무릎을 많이 사용하는 피겨선수들이 곧잘 걸리는 병이었다.
1월 10일 대회 이틀째 김나영이 프리 프로그램에 출전하기 앞서 외사촌 오빠 최광훈 씨의 지도를 받으며 몸을 풀고 있다.(사진 이휘영) |
마지막으로 찾아간 유명 대학병원에서 의사는 “오늘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따르지 않았어요.” 김나영은 수술하지 않았다. 이유는 있었다. 수술을 하면 6개월 이상 운동을 접어야 했다. 피겨 스케이터에게 6개월간의 운동금지는 영원히 스케이트화를 벗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신금숙 씨와 남편 김종길 씨(46)는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거듭했다. 절뚝거리며 계단도 오르지 못하는 딸을 지켜보기 어려웠다.
“그만 둡시다.” 아버지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신금숙 씨는 한편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의 꿈을 접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딸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었다. 부부가 딸에게 다가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이는 거실 창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 언제 빙상장 가?”
라이벌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6개월간 주말마다 전주로 내려가 척추교정을 하며 상태를 지켜봤어요. 아예 운동은 쉬게 했고요.”
이때가 엄마에겐 가장 편안한 시기였다. 딸은 공부에 열중했고 성적도 좋아졌다. 그런데 엄마의 노력이 성공한 것일까. 거짓말처럼 딸의 무릎부상이 호전됐다. 엄마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운동을 다시 하겠다는 딸의 의지를 받아줘야 하나.
처음부터 실력이 없는 아이였다면 모르겠지만 엄마는 딸의 재능이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딸이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던 건 여섯 살 때 어린이날이었다. 잠실 롯데월드에 갔다가 아이스링크까지 가게 됐다. “다른 아이들처럼 신나게 즐기라고 링크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4시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았어요.” 엄마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가 다리 힘이 좋으니까 피겨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권유했다. 이때만 해도 유치원 취미반에서 받는 레슨에 지나지 않았다. 딸이 취미로 시작한 피겨스케이팅이 인생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98년 인천 연성초등학교 2학년 때 출전한 제41회 전국 남녀스케이팅종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초등부 1위를 차지했다. 다음해에 열린 같은 대회에서도 역시 1위를 했다. 이때 딸과 동갑내기인 한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딸에게 밀려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점프력을 비롯해 재능이 뛰어나 보였다.
“그 아이가 김연아였어요.” 엄마의 기억이다.
딸과 김연아의 경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는 딸이 이겼지만 같은 해 열린 제80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해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는 다시 딸이 이기며 가장 높은 단상에 올랐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딸과 김연아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무릎을 다친 이후 기량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엄마는 TV에서 김연아를 볼 때면 딸이 생각난다.
딸이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때 엄마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가 원한다면,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서든 돕겠다고 다짐한다. 딸이 다시 스케이트화의 끈을 질끈 묶었을 때 엄마는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학원문을 열었다.
고단
연수여고 1학년인 김나영의 일상은 인공위성처럼 늘 일정한 시간에 같은 장소만을 맴돈다. 집과 훈련장소 외에는 가는 곳이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시험기간을 빼고는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그의 기상은 아침 8시.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면 곧바로 태릉선수촌 내 실내 빙상장으로 간다. 그가 사는 인천 연수구에서 서울 노원구에 있는 태릉선수촌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국가대표 피겨선수들의 오전 연습은 낮 12시까지 진행된다. 연습을 마치면 간단히 식사를 하고 태릉 근처에 있는 요가 교실로 이동한다. 피겨선수는 예술성과 표현력 증진을 위해 반드시 요가나 발레를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요가를 배우고 나면 차를 돌려 다시 태릉선수촌 실내 빙상장으로 돌아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열리는 대표팀 훈련을 한다.
“처음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4시부터 6시까지 2차례 연습시간을 내달라고 빙상장 측에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지도하고 있는 신혜숙 코치의 아쉬움이다. 그러나 하루 2차례의 연습도 지난해 12월 초부터 허락된 것이다. 이전에는 2시간 연습 한차례뿐이었다.
오후 6시에 연습을 마쳤다고 끝이 아니다. 다음 연습장으로 차를 몰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오후 10시부터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를 대관해 2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곳은 실내 온도가 따뜻해 피겨선수들에게 가장 환영받는 연습 장소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송파구에 있는 한체대 실내빙상장이나 경기도 과천 시민회관 링크까지 가야 한다. 인천에 있던 2곳의 빙상장 가운데 한 곳은 문을 닫았다. 나머지 한 곳은 얼음판을 고르는 ‘잠보니’가 운행을 자주 하지 않아 빙질이 대패로 대충 깎은 나뭇결처럼 거칠다.
밤 12시까지 연습을 마치면 일과가 끝난다. 피겨선수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곯아 떨어지게 마련이다.
김나영은 새벽 2시에나 집에 도착한다. 세수를 마치고 가벼운 간식을 먹고 나면 새벽 3시에 침대에 누울 수 있다. 그보다 한 살 위인 주니어 대표선수 김수진(18,과천고)은 그래서 자신들의 일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밥 먹고 스케이트 타고 다시 밥 먹고 스케이트 또 밥 먹고 스케이트 타고.”
김나영이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 생활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들어가거나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요일이다. 친구들과 만나 극장에라도 갈 것 같지만 그에게는 화성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일요일에 영화를 보러 가도 엄마랑 가요.” 그는 친구들과 극장에 함께 가본 기억이 없다.
늘 같은 일상은 스트레스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김나영은 집에 있을 때 피겨와 의도적으로 담을 쌓는다. 웬만한 국제대회 소식이 아니면 애써 인터넷을 찾지도 않는다. 좋은 일은 아주 조금 내비치고 나쁜 일은 마음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지만 엄마에게 사소한 반항을 하기도 한다. 엄마의 조언이 잔소리로, 지적이 질책으로 들릴 때도 많다. 그는 피겨 국가대표 이전에 평범한 고교 2년생이다. 가끔 그는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17세 소녀 김나영은 부상과 사고를 딛고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에서 주니어부 1위를 차지해 내년 4대륙 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사진 이휘영) |
“엄마, 한 번이라도 웃으면서 집에 갔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우울
딸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엄마의 가슴에는 균열이 생긴다. 딸의 미소가 몹시도 사랑스러운 엄마다. 자신 때문에 딸이 웃지 못한다면 지금의 뒷바라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딸이 서운하기도 하다.
딸이 피겨를 시작한 이후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렸다. 아침에 딸과 함께 눈을 뜨면 새벽에 눈을 감을 때도 딸과 함께 감아야 한다.
“아이도 피곤하겠지만 저도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에요.” 엄마의 하소연이다. 어쩌면 엄마의 피로도는 딸을 몇 배나 앞지를지 모른다. 엄마는 그림자처럼 딸을 따라다니면서도 인천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딸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학원을 열었다. 남편은 전북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찰대 1기로 총경이다. 3년째 기러기 아빠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고 있다.
김연아가 일으킨 피겨 열풍 때문에 아이를 피겨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부쩍 늘었다. 기자에게 피겨선수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도 많다.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단호히 손을 흔든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엄마가 한 달에 순수하게 딸만을 위해 쓰는 돈은 3백만 원 정도다. 그러나 해외 전지훈련, 국제대회 출전비용과 지방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친다면 5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나영이 엄마보다 열성적인 부모들은 한해 아이 앞으로 1억 원가량을 쏟아 붓기도 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김연아를 제외하고 기업이 선수 후원을 맡는 경우는 없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도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다만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 선수 개인의 경비를 연맹에서 부담한다. 사실 이 돈도 빙상경기연맹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지원금을 받아 지출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코치 비용이다.
피겨는 개인 코치제다. 과거처럼 국가대표 코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일종의 레슨제도이다. 올해 들어 김연아가 박분선 코치와 결별했을 때 일부에서 ‘계약해지’라고 말하며 심지어는 “스승을 배반했다”고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애초부터 계약은 성립조차 되지 않은 관계다. 피겨에서는 상황에 따라 코치도 자주 바뀐다. 해외전지훈련이나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 선수가 코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어느 학부모는 “해외에서 한 달 정도만 훈련해도 코치비용까지 포함해 1천만 원은 우습게 나간다”고 말했다.
빙상장 대관비용과 차량 유지비, 밥값 등도 엄청나다. 여기다 피겨 물품 가격이 만만찮다. 웬만한 스케이트화는 1백만 원을 넘는다. 연습량이 많은 선수들의 경우 3개월에 한 번씩 스케이트화를 갈아 신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구하기도 힘들다. 국내 브랜드 가운데 피겨 스케이트화를 살 만한 게 없다. 외국제품을 사야 하는데 주문을 해도 3~6개월을 기다리기 일쑤다.
그나마 딸은 다른 학부모와 선수들에게서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다. 지난해 12월 교통사고 이후 엄마는 허리와 목을 다쳐 딸을 따라다니기 어려웠다. 방학이라 학원에 수강생들이 몰린 이유도 있다. 이때 엄마를 대신해 외삼촌 신휴승 씨(40) 친척오빠 최광훈 씨(28)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현재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딸을 따라다닌다. 특히 외삼촌은 피트니스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전문 트레이너이고 친척오빠는 테니스 선수 출신이라 딸에게는 훌륭한 트레이너다.
만약 두 사람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고용했다면 부담은 부담대로 걱정은 걱정대로 쌓였을 일이다.
“나영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줄은 몰랐어요. 시댁 아버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셔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는데 아이가 고학년이 될수록 감당하기 어려워요.”
엄마는 한때 뒷바라지를 포기하려고도 했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자꾸 아이나 저나 폐인이 돼 버리는 것만 같았어요.” 엄마의 한숨이 깊어졌다. 선수 보호자는 중환자 보호자와 같은 신세다. 자기 시간은 없고 생활도 없다. 오직 아이만 있다. 하루 종일 아이 뒤에서 숨을 죽인 채 따라다녀야 하고 아이의 짜증과 화를 다 받아줘야 한다. 같은 처지의 학부모들만 만나다 보니 자연히 화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시야도 좁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포츠판처럼 소문이 잘 퍼지는 곳도 없다”고들 한다.
게다가 엄마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 특히 피겨가 심하다. 엄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아이도 한눈을 팔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피겨가 아닌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되고 힘들게 피겨를 하려 하지 않는다. 몸이 불어나 피겨를 그만두는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피겨선수들은 투자에 비해 미래가 밝지 않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이 아이에게 운동을 권하는 경우 대표적인 이유가 대학진학이다. 실제로 운동만 잘하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 피겨로 명문여대에 입학하는 일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연세대, 이화여대, 경희대, 세종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등이 동계종목 체육특기생을 주로 뽑는데 정원은 늘 한 명이다. 이 한 명도 늘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차지한다. 2007년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국가대표인 최지은(19,세화여고), 신예지(19,광문고)는 각각 성신여대와 서울여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피겨계에서는 “김연아 정도면 모를까. 대부분 여대나 지방대에 입학한다”고 말한다.
이 대학들이 쇼트트랙 선수들만 편애해서일까. 답은 아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화여대에서도 피겨선수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받은 적이 있고 다른 대학에서도 입학을 허락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막상 대학 입학만 하면 선수들이 모두 운동을 그만 뒀다. 고작 한 달 정도 연습해서 불어난 몸으로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대학 진학 후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오히려 피겨계에 책임을 물었다.
어느 날 남편은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쏟은 돈과 노력이라면 아이를 해외 명문대학에 기부입학 시켜도 됐을 것”이라고. 그러나 부부는 잘 알고 있었다. 딸의 꿈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부부가 바라는 딸의 최종 목적지는 명문대학이 아니라 빙판이라는 것을.
김나영이 1위가 확정된 후 아버지 김종길 씨로부터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어머니는 딸의 스케이트화 끈을 세심히 풀어줬다.(사진 이휘영) |
무능
지난해 12월 말 기자는 태릉선수촌 안에 있는 실내 빙상장을 찾았다. 바깥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터라 서둘러 빙상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은 거대한 냉장고나 다름없었다. 빙판은 더 추웠다.
그 추운 곳에서 김나영과 김수진, 김민석, 최지은은 점퍼를 입은 채 훈련하고 있었다. 이 선수들은 모두 신애숙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국가대표들. ‘김연아 신드롬’에 가려진 한국 동계 스포츠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선수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빙상장 안의 난방 스위치를 켜면 어느새 관계자가 찾아 와 호통을 치며 제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은 5분만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연습을 지속할 수 없었다. 몸이 굳은 상태에서 연습을 강행하면 반드시 부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날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연습을 예정보다 일찍 끝내야 했다.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에는 피겨 전용링크가 있다. 피겨 전용링크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실내 링크는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김연아가 처음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또래 친구들에게 말했던 첫 소감도 “외국 링크에서는 반팔을 입고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17)는 몸을 5분도 풀지 않은 상태에서 트리플 점프를 연습한다. 한국에서 그랬다가는 5분 만에 병원에 실려갈 일이다.
선수들이 떠날 즈음 어느 학부모가 “이렇게 추운데 난방 스위치를 끄면 어떻게 하느냐”며 빙상장 관리자에게 따졌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온도가 높으면 빙판이 녹는다”는 것. 과연 그럴까. 결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실내빙상장을 관리하는 안경찬(고양시시설관리공단) 씨는 목동아이스링크장에서 10년간 근무했다. 그는 “돈이 많이 들어 난방을 켤 수 없다면 이해하겠지만 빙판이 녹기 때문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태릉 실내 빙상장 정도의 작은 규모라면 적은 난방비로도 충분히 좋은 훈련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그곳은 애초에 설계부터 잘못된 곳”이라고 말했다.
태릉선수촌 내 실내 빙상장은 국민의 세금 120억 원을 들여 2005년 11월에 준공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신축 빙상장이다. 준공 당시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공사를 맡은 D건설 관계자들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그러나 설계와 시공은 무지했고 관리는 엉망이었다.
설계 때부터 빙판과 빙판 주변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빙판은 영하 2도 정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 주위는 영상 20도 이상을 유지하는 게 기본이다. 이것을 조절하는 노즐식 난방장치를 생각지도 못한 것은 당연하다. 소음을 줄이는 흡입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전광판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음향시설은 노래방 수준이다. 이보다 기막힌 건 준공식 다음 달인 12월부터 빙상장 안에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한 것이다.
피겨선수들은 빙판 위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목을 감싼 채 고통을 호소했다. 이럴 때마다 태릉선수촌과 연맹 관계자들은 “원래 새집으로 이사오면 다 그런 법”이라며 건성으로 받아들였다. 지도자들과 학부모들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해도 태릉선수촌과 연맹은 묵묵부답이었다. 심지어는 비강암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성 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의 20배 가까이 되는 2,379마이크로그램이나 검출됐음에도 대관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은반의 요정’들을 ‘빙판 위의 부상자’로 내몰았던 것이다.
1월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실내빙상에서 벌어진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종합선수권대회는 연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대회 첫날 음악을 두 번이나 잘못 틀어 경기의 맥을 끊었으며 찾아온 관중들에게 어떤 경기 관련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경기 진행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경기에 출전한 신예지가 3회전 점프를 하고 착지하다가 넘어져 빙판 위에 쓰러져 있을 때는 누구 하나 링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김풍열 심판위원장이 구두를 신은 채 뛰어들어갔지만 끝까지 의료진은 없었다. 신예지가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어린 선수들은 충격을 받고 황급히 링크 밖으로 나갔다. 관중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맹은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며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어 치료를 잘 마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맹이 말한 간호사는 덕양어울림누리에 상주하는 간호사였다. 사전에 연맹은 빙상장 측에 의료진 대기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부상은 고양이의 발걸음과 같아서 예측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대회 운영이었다면 위급 상황에 대비해 의료진을 대기해 놓고 부상자가 발생하면 빠른 조치를 취해 선수의 안전을 확보했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 관중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연맹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채 경기 속개에만 매달렸다.
연맹은 해마다 적은 예산 타령을 하며 피겨선수들 지원에는 인색하면서도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의 30%를 가져간다. 게다가 현재 연맹에서 피겨 부문에 지출하는 내역은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연맹의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도 예산편성과 집행을 제대로 모를 정도다. 이 관계자는 “연맹의 예산은 30억 원가량으로 알고 있으나 피겨 부문에 집행되는 예산은 많아야 3억 원 정도”라며 “이마저도 두리뭉술하게 처리돼 실체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연맹의 무능이 빚은 촌극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2월에 열린 제87회 전국동계체육대회였다. 미처 대회 준비를 하지 못한 연맹이 피겨 스케이팅 경기 장소로 춘천실내빙상장을 선택했으나 난방이 되지 않아 대회 내내 관계자들은 지독한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덩달아 선수들도 감기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화해
1월 9일 제61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가 막을 올린 덕양어울림누리 실내빙상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김연아의 출전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 대회 우승자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얻을 수 있기에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김연아도 부상을 무릅쓰고 나올 것으로 판단됐다.
대회 첫날 쇼트 프로그램 도중 스파이럴을 연기하는 김나영.(사진 이휘영) |
그러나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김연아의 불참이 통보됐다. 연맹 측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연맹 피겨경기심판위원회(위원장 신건조 피겨부회장)는 대회를 나흘 앞둔 1월 5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회의실에서 “김연아는 현재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일 뿐만 아니라 세계랭킹도 가장 높은 선수”라며 “김연아에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주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연맹은 김연아에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주는 대신 이 대회 상위 1-3위 선수에게 4대륙 선수권대회에 나서도록 했다. 연맹이 유일하게 유능했던 순간이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피겨경기위원회의 순발력이 돋보였다.
김연아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부여는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 김연아가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의 출전권을 3장으로 늘려 놓기도 했지만 아직 김연아에 견줄만한 국내 선수가 없는 까닭도 있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김나영의 어머니 신금숙 씨도 “(김)연아가 그동안 아픈데도 한국 피겨계를 이끌어왔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0위 안에 들면 출전권이 한 장 더 늘고 만약 3위안에 들면 두 장의 출전권이 더 늘어난다”며 오히려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김연아의 불참이 알려진 까닭인지 쇼트 프로그램이 진행된 대회 첫날 빙상장 안은 50여 명의 관중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프리 프로그램이 진행된 대회 둘째 날은 상황이 다소 달랐다. 관중수는 크게 늘지 않았지만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의 표정이 달랐다.
그들은 김연아가 없는 맥 빠진 잔치에 참여한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연처럼 경기에 집중했다. 그 가운데 대회 첫날 주니어부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던 김나영이 가장 돋보였다. 긴장한 탓인지 숨을 고르며 앞선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표정만은 결연했다. 오히려 긴장은 신금숙 씨의 몫이었다.
“한 번도 나영이가 경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요.” 그렇게 말을 맺은 신금숙 씨는 슬쩍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 어디 심장뿐이겠는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딸의 경기를 눈 뜨고 지켜볼 수 있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드디어 주니어부 여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 출전한 6명 가운데 마지막 선수로 김나영이 등장했다. 붉은색 드레스에 검정 무늬가 들어간 드레스를 입은 김나영은 침착하게 빙판 위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정지된 자세에서 잠시 차가운 손에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의 입김이 손끝을 따라 대기로 퍼질 즈음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단다. ‘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일 수 있는 피겨 스케이터가 될 수 있을까’
거듭된 부상과 사고 그리고 불운이 이어졌던 17살의 피겨 스케이터에게 행운이 따를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때 빙상장 좌우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김나영이 선택한 '탱고'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김나영은 링크 안을 힘차게 돌다 스파이럴(한쪽 다리를 들고 날의 이용 면을 바꾸어 활주)을 시도했다. 그의 스파이럴은 푸딩처럼 달콤했지만 이어 시도한 공중 2회전 반의 더블 악셀 점프는 다이너마이트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김나영의 경기에 앞서 만났던 김풍열 심판위원장은 그의 강점으로 역동적인 점프를 들었다. 부상과 사고 탓에 부드러운 표현력은 뒤지지만 고난이도의 점프만 성공한다면 김연아의 뒤를 이를 선수라고 평가했다. 다른 피겨 전문가들도 같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느 전문가는 이번 대회의 향방은 김나영의 ‘트리플 러츠 점프’가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리플 러츠 점프’는 뒤로 돌아 시계 반대방향으로 공중에서 3회전을 하는 점프로 국내에선 김연아와 김나영만이 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술이다.
4분 30초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고 김나영은 차례대로 기술을 선보이지만 ‘트리플 러츠 점프’는 구사하지 않았다.
관중석에서는 “이대로 진행해도 우승할 수 있다” “무리하지 마”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김나영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라 뒤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트리플 러츠 점프’를 시도한 것이다.
관중 사이에서 “억”하는 놀라움과 “짝”하는 박수소리가 함께 울렸다. 기자도 갑자기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점프를 시도한 곳은 우연하게도 빙상장 입구 쪽. 그곳에는 벽에 비친 그림자처럼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김나영의 어머니였다. 만약 그가 착지를 잘못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가슴에 금이 갈 일이었다.
‘하나, 둘, 셋’ 고개를 숙인 채 마음속에서 숫자를 셌다. 잠시 후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것처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가늘게 눈을 떴을 때 빙판 위에는 선인장이 물을 빨아들이듯 관중들의 열광을 한몸에 받은 채 환한 얼굴로 활주하고 있는 김나영과 조용히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출생 1990년 11월 18일
신체조건 158cm 43kg
약력 인천 연성초 - 연화중 - 연수여고 1학년
주요경력
1998년 제41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초등부 1위
2000년 제81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초등부 1위
2006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만 대회 3위
2006년 제49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고등부 1위
2007년 제61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주니어부 1
첫댓글 아...읽고싶은데
222
444444
빨라지는스크롤
222 그렇지만 안봐도 알 것 같긔.. 김나영 선수! 힘내요!
333 김연아말고또다른한국선수그분이긔? 힘내시긔
44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55...그래도 힘내세용..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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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88
10앞에는다읽었어요 ㅠㅠ...
11
12
어느새 13131313131313131313
14141414141414앞에는 읽고 사진만....
15
1616161616
ㅠㅠㅠㅠ으헣얺ㄴ멓허ㅠㅠㅠㅠㅠㅠ중간중간읽엇뜸죄송해ㅇㅠㅠㅠㅠㅠㅠ
너무빡빡해서ㅠㅠㅠ
진짜로읽고싶었어요......
언니 힘내 ㅠㅠㅠ
ㅜㅜㅜㅜ 힘내영
ㅠㅠㅠㅠㅠㅠㅠㅠ언니도 피겨의 희망이긔 화이팅!!
미안....... 드르륵
너무 길....ㅏ
언니 힘내요 ㅠㅠㅠㅠㅠㅠ 인천 연수여고 우리 친척언니 다니는 학굔데...
우리집 바로앞 학교긔~~~
난언제나김연아를보며이분불쌍하다고생각햇긔ㅠ
222나두긔.........ㅠㅠ
사진만보면서내용파악~
대한민국 피겨선수들 모두 힘내시길...........!!!
난또.. 개그우먼 김나영인줄알았어
김연아에 가려진 또하나의 요정 ㅠㅠㅠㅠ
불쌍하시긔ㅠㅠㅠㅠㅠ힘내시긔
ㅠㅠㅠㅠㅠ 힘내긔 ㅠㅠ
읽고싶은데..너무길어ㅠㅠ
읽고잇엇는데.....너무길다....................ㅠㅠ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언 니 도 대단해요!!! 걱정마요 ㅠㅠ 언니도 요정!
김나영언니도좋긔><
요약좀 해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