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54년이 되었다. 1970년 2월에 479명이 졸업하여 세월이 흘러 공식적으로 파악된 세상떠난 친구가 66명이다. 무려 13.8%다.
매년 반별로 1년씩 동창회장을 반에서 뽑아 일년간 봉사를 한다. 기획.재정.홍보. 홈페이지담당. 지원총무등을 두고 일을 하는데 다른 총무는 죄다 바뀌는데 홍보총무를 맡은 권총무만 20년째 계속 일을 하고 있다. 동기들의 경조사를 알리고 경조사를 잘치룬 동기들은 감사표시로 특별회비를 낸다. 안내고 싶어도 권총무의 조용조용하면서 끈질지게 압력을 넣은 덕에 재정상태가 좋아져 매년 이런저런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모임에 총무라는 자리가 궂은일이고 특히 매년 회비 내라는 역할은 악역중에 악역인데 권총무는 안타깝게도 파킨슨병이 걸린지 5년이 지나 거동이 상당히 불편하여 양손에 스틱을 잡고 겨우 움직인다. 다른 사람같으면 벌써 그만두었을텐데 권총무는 동창회일 마져도 손을 놓으면 본인더러 죽으라고 하는거나 다름없다고 차분히 맡은 일을 한다. 그친구는 더이상 병이 악화되지 말라고 약을 먹으면서 매일 오후면 꼭 수영을 하러 힘들게 외출을 한다. 재작년에는 잠실롯데에서 몇친구가 점심을 하러 지하보도를 걸어 가다가 넘어져 있는 아저씨를 봤는데 바로 권총무였다. 같이 점심약속하러 먼저오다 넘어져 모르는 젊은 청년셋이서 힘들게 일으켜 세우고 있는걸 우리는 지켜봐야 했다.
요새 여행기를 한권 읽었는데 저자는 교육학박사이고 초등학교 교장을 한분으로 파킨슨병을 7년째 앓고 있는 교사출신 부인을 데리고 작년 9월에 20일동안 프랑스 남부지방인 르쀠 순례길을 다녀온 책을 읽었다. 이 부부는 부인이 파킨슨병이 걸리기 1년전에는 36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일부인 이번에 다녀온 같은 코스인 르쀠길 733km를 다녀온바가 있다. 주 프랑스 한국어교육원장으로 파견근무도 해서 불어를 할줄 아는 책지은이. 파킨슨병에 걸리면 걸음걸이가 어적어적 하기 시작해서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라 다리를 다친다. 길을 걸으며 남편이 수시로 느끼는 아내의 힘들어하는 애처로움. 그래도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많이 훔치는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도 여행을 다녀온후 생기를 되찾은 아내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친구들을 불러 원단을 사다가 재봉틀을 돌리며 커텐만들기며 헝겊조각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들을 꾸준히 한다. 그리고 여행길서 마주친 벼룩시장에서 골동품을 엄청나게 사와 집안장식을 하고 아픔을 이겨내며 즐거운 일을 만들며 지낸다.
낯설은 시골길을 걷다가 잘못길을 들어서 되돌아오기도 하고 힘들면 손을 들어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의 유로화를 차태워다 준분 손에 줘도 받지 않은 서양사람의 온정에 감사하는 장면들도 좋았고 가을 들판길에 있는 각종 과실나무에서 익어 떨어진 과일을 먹으며 피곤한 다리를 풀면서 쉬는 장면도 정겨웠다.
하여튼 부인은 걷고 나서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앞서말한 권총무도 그렇고 책속의 부인도 그렇고 어쩔수없이 맞이한 숙명의 난치병이다. 그러니 사는날까지 이제 우리 나이는 하고 싶은일을 하면서 즐기는게 평범하지만 진리인 듯하다. 내일이면 늦으리가 정답이다.
첫댓글
글 세 차례나 거듭 읽었습니다.
고교 졸업 54년 뒤인 지금...고교시절의 동기동창생이 많이도 세상을 떠났군요.
그래도 남아 있는 동창생이 훨씬 더 많겠지요.
몸이 불편한데도 동창회 총무 직위를 20년째 수행하는 분을 존경합니다.
꼼지락거리면서 무엇이라도 해야만 덜 아플 겁니다.
친구분처럼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더욱 고맙지요.
나이 들어서, 몸이 불편하고 아파도 위 사례처럼 무엇인가 더 하려고 애를 써야겠지요.
저도 해마다 달마다 허리가 굽혀지는 세월에 와 있는데도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140개 이상을 올려놓고는
'화분농사'를 짓습니다. 화분에 고추씨앗, 호박씨앗 등을 뿌려서 싹을 틔우면서 이들을 세밀히 관찰하지요.
겸해서 사물을 찬찬히... 생각의 깊이를 더 하고 있지요.
위 내용이 고마워서 엄지 척! 합니다.
글 또 기다립니다.
최윤환선생님. 감사합니다. 석촌호수근처에 사시나본데 저는 잠실4동 파크리오.올림픽공원 평화의문 근처에 삽니다. 담주점심에 공원오시면 월남쌀국수 대접하겠습니다. 010.3080.4428
글 잘읽고 갑니다.
나이들어가면 어딘가 불편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래도 무언가 역할을 하고
또 옆에서 격려하거나 고마움을 표하면 힘이 나게되는것 같데요.
아프면 자기만 손해죠.. 그리고 이겨내는건 자기의 몫입니다.. 주변사람도 자기살기바빠 위로로 격려도 그때뿐입니다.
짧은인생 험난한 여정 같습니다.
파킨슨으로 잘 넘어지면서도
친구분들과의 점심 약속장소로 향하던
그 발걸음.
부디 더 악화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전에는 생소했던 질병들이
의학의 발전으로 많이 밝혀졌지만
치료는 더딘가 봅니다.
부디 건강한 노년을 보내야 할텐데요.
우리나이는 건강이 최고인데도 내뜻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우연히 우발적으로 다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프신데도
모임 총무를 열심히 하시는 권총무님
화이팅~
언덕저편님도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누구나 건강염려증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되는게 아니니 더욱 어렵습니다.
건강하게 늙는다면,
복중에 복일텐데요.
아무리 좋은 일생을 보냈다고 해도
노년에 건강해야 well-dying 도 할 수 있습니다.
총무를 20년을 맡아서 하신 권총무님은
솔선적이고 능동적인 분 같습니다.
나이들어서, 친구로써 단체를 이루는 곳은
동창회만한 곳이 또 있을까요.
언덕저편님, 댓글 쓰느라 들락날락을
너댓 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동창회 권총무는 서울대를 나왔죠.. 공부잘한 모범생이였죠.. 항상 친구들을 섬기는 자세로 일해서 동창회기금 1억을 만들어 놨죠..
그찬구 집사람은 그런 남편을 싫어 합니다. 그일에만 몰두한다고..
역경은 누구에게나 닥쳐오지만
그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은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감동이 있는 역경 극복 이야기...
닥치면 나도... 하며 의지를 다져 봅니다.
누구나 한번은 이런저런 어려운 순간이 옵니다. 그걸 이겨내는데는 강한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언덕저편1님,
그리고 권총무님의
섬기는 자세
응원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총무하면 사람들 생각이 달라 별소리를 다 듣습니다. 저도 기획총무를 2012년 2022년에 두번 했지요.. 연간 2500만원정도 들여 각종행사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숙명의 난치병.
고난의 시간이 오기 전에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내일이면 늦는데
오늘 이 시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전했어도 치매나 파킨슨병을 낫게하는 치료약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약이 나오겠지만 우리세대에서는 요원한 현실입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 이해인 / 4월의 詩 중에서 -
이해인수녀의 시는 맑은물이 졸졸이 흐르는 옹달샘같군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내가 스스로 가는 세월을 잡아야 하는데 너무나 전속럭으로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