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속의 음악 (46) 최영석 클래식마니아 |
며칠 전에 신문의 문화면을 읽다가 프랑스 발레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출신의 박세은 씨를 소개한 기사를 읽으면서 참으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31세가 된 그녀는 현재 프랑스의 파리발레단에서 제1 무용수로 빛나는 활약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프랑스 무용계 최고 권위인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받았으며 올해부터는 가장 인기 있는 <백조의 호수>의 주역인 오데트의 안무를 맡는 행운을 잡았으니 쾌거가 아닐 수 없지요.
필자는 수년 전에 독일의 슈트가르트발레단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인 강수진 씨의 흉하게 변형된 발가락 모습이 공개되었을 때 매우 놀랐는데, 토슈즈 속에서 엄청나게 가해지는 체중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처절한 모습으로 변형되기까지 그 고통이 오죽했으랴 생각하니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특히 발레라는 예술은 클래식 음악과
무용의 절묘한 조화이며 무용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분야로 알려졌는데 아무나 쉽게 도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노력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분야로서 천부적인 재능과 신체적인 조건을 타고난 소수 정예의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올해로 30세를 갓 넘은 박세은이 파리에서, 전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이었던 정명훈 씨 다음으로 유명한 한국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큰 위업을 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파리 오페라단에서 동양계 최초로 오데트 역에 오른 그녀가 지금의 여세를 몰아서 발레단 최고의 무용수(에뚜알)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해봅니다.
필자가 처음으로 발레를 관람했던 때가 1985년 가을이 아니었나 기억되는데, 지금도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해 보면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발레가 그렇게 멋진 예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당시엔 국립 발레단이 한국을 대표해서 발레의 맥을 이어오다가 민간단체인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립되어 국내 발레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예술계의 관심 또한 대단했으며 객석의 호응도 뜨거웠던 때로 기억됩니다.
발레 공연을 보기 위해서 어린이 대공원후문쪽에 위치한 <리틀엔젤스 회관 >을 찾았을 때 필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정문을 들어서자 로비는 물론 화장실까지 바닥과 벽이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되어있었으며 천장의 석고 몰드에 조각된 각종 문양이 고풍스러웠고 최고급의 샹들리에 조명과 공연장의 호화로 움은 당시 우리나라 예술계의 수준으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최고의 시설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관람한 백조의 호수는 너무나 환상적이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지요.
화려한 무대 세트와 조명과 수준 높은 안무 그리고 음향, 모든 것이 너무나 훌륭한 공연이었으니 말입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그 화려함이 돋보이는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발레곡이지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음악으로서 너무나 유명한 곡이며 음악이 지니는 서정성과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수가 묻어나는 선율은 객석에 감동과 황홀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며 그중에서도 백조의 호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발레 작품입니다.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 Op.20)는 차이콥스키가 1875년 봄에 볼쇼이극장의 지배인 블라디미르 베기체프(Vladimir P. Begichev)로부터 발레 음악을 위촉받아 쓰기시작해서 1876년 5월 2일에 완성한 발레곡으로, 1877년 2월 20일에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라보프>의 지휘, <칼바코바> 주역으로 초연되었으나 완전한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차이콥스키의 유명 작품들,<바이올린 협주곡><교향곡 6번(비창)>이 그랬듯이 <백조의 호수>도 실패의 쓴 맛을 보았지만, 초연 된 지 17년 후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 에야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는 러시아인으로서는 최초의 세계적 안무가였던 이바노프가 안무를 고치고 다듬어서 1895년 1월 27일에 성 페테르브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그의 음악이 시대에 너무 앞섰기 때문에 비평가나 객석의 대중들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초연에 실패한 차이콥스키는 그 충격으로 다시는 발레 작품을 작곡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지만 발레 음악에 대한 매력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는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잠자는 숲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같은 걸출한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의 3대 발레 음악 중 첫 번째 작품 백조의 호수의 대본을 쓴 사람은 블라디미르베기체프(Vladimir Bgichev)와 댄서 바실리 겔처(Vassily Geltser)이며, 요한 칼아우구스트 무제우스의 소설 <잃어버린 베일>에서 모티브를 받았으며,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오데트 공주> 이야기는 러시아의 옛 민화 <백색오리>를 바탕으로 해서 쓴 단순한 줄거리로 동화책 속의 이야기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전개되어 갑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오데트> <지그프리트> <오딜> <로트바르트>인데, 스토리는 버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성년식 전야 축하 파티를 마친 후 왕자 지그프리트는 친구들과 함께 백조 사냥을 나갔다가 악마의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가 되었다가 밤이면 사람으로 돌아오는 공주를 만나게 되고 영원한 사랑만이 마법을 풀 수 있으며 사랑이 깨지게 되면 영원히 백조로 남아야 한다는 슬픈 사연을 듣고 난 후 지그프리트 왕자의 연민은 사랑으로 바뀌게 되며 오데트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 고 그녀를 자신의 성년 축하 연회에 초대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 챈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는 자신의 딸 오딜을 오데트로 둔갑시켜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성년식 무도회에 데려오고 깜빡 속은 왕자는 오딜과의 약혼을 선언하고 둘이서 춤을 추는데 이모든 것을 창밖에서 지켜본 오데트는 영원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음을 슬퍼하며 돌아갑니다. 뒤늦게 로트바르트의 간계에 속은 것을 알게 된 지그프리트는 즉시 오데트를 찾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데 로트바르트가 나타나서 방해하자 지그프리트는 검을 빼어들고 그와 힘겹게 싸워서 물리치지만 이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두 사람이 호수에 투신하는 순간 사랑의 힘에 마법이 풀리니 백조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해피엔딩의 스토리입니다.
원래 발레 음악은 단순히 무용을 위한 반주 정도로 사용 되였는데 차이콥스키는 뛰어난 관현악 기법으로 발레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지요.
<백조의 호수>는 전체 4막 29장 36곡의 대작이며, 전곡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을 발췌해서 여섯 곡으로 구성한 모음곡--제1곡 정경, 제2곡 왈츠, 제3곡 어린(4마리) 백조의 춤, 제4곡 정경, 제5곡 차르다슈(헝가리 무곡), 제6곡 정경--이 연주회 무대에 자주 올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특히 2막에 나오는 정경(Andante)은 오데트가 지그프리트에게 자신의 슬픈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인데 대사가 없는 것이 발레인지라 하프가 받쳐주는 바이올린 독주 선율을 타고 펼쳐지는 오데트 공주의 춤은 애절함 그 자체이며, 전곡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슬픈 감성으로 이끌어가지요.
이 바이올린 독주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게 보아서 작품의 초연 때에는 당대 바이올린의 지존으로 통했던 레오폴드 아우어가 연주했으며 런던 초연 때에는 아우어의 수제자 미샤 엘만이 연주를 맡게 되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필자는 에르네스 앙세르메 지휘로 스위스로망드 오케스트라 가 연주한 CD와 카라얀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모음곡을 LP 음반으로 듣고 있는데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가능하면 DVD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임장감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며 또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화사한 봄날의 정경을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즐길 수 있다면 참 멋진 하루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