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상황 바꾼다
사도행전 12:1-12 / 이규현 목사
사도행전 12장에서부터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개인적 박해가 아니라 정치적 압박을 했습니다. 핍박이 다시 시작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정치적 기반이 약합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정치적인 제스처로 교회를 탄압했습니다. 결국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를 당합니다. 야고보의 순교에 이어 베드로까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철저히 감시합니다. 4명의 병사가 한 조가 되어 4개 분대가 3시간씩 교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양쪽에 두 명의 병사가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서 베드로를 꼼짝 못 하게 했습니다. 이중 삼중 장치로 베드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처형을 당하게 될 매우 위급한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장면을 하나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투옥 소식을 들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5절,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교회가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입니다.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물리적인 힘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가지고 있어도 무기를 쓰면 안 됩니다. 교회는 언제나 십자가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힘과 힘의 대결이 될 수 없습니다. 헤롯과의 힘 대결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 당시 권력을 갖고 있는 헤롯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를 보면 그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위급함을 느끼고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시 감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에게로 장면을 옮깁니다. 6절,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습니다. 경비병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양쪽에는 군인들과 함께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본 베드로는 매우 예민하고, 겁쟁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7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베드로는 완전히 수동태입니다. 그냥 천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파수꾼을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도착하니 옥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병사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고 굳게 닫혔던 세 개의 문이 자동문처럼 열렸습니다.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비상 개입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인간의 방어막은 쉽게 뚫립니다.
10절,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니 인간의 모든 방어벽이 한순간에 허물어졌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개입하십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1~2절, “1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야고보가 헤롯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왜 야고보를 살려주지 않으셨을까요? 똑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일어난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천국에 가봐야 압니다. 성경을 통해서 유추하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믿음이 좋은데 고난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겉으로 보면 대충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사업도 잘되고 어려움 없이 잘 삽니다.
기도하지 말라거나, 믿음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 기도대로, 우리 믿음대로 다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믿음으로 사는 것과 별개로 돌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기도는 만능은 아닙니다. 만능이 되어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그분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가 사랑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일치합니다. 지금 나의 문제가 해결되느냐 아니냐가 핵심 주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으면 빨리 그것이 해결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절실한 기도 제목이 얼마나 많습니까? 베드로의 입장에서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출옥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16장에서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옥문이 열립니다. 그들은 옥문이 열려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도리어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는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감옥에서 나가는 기적이 그들의 주제가 아닙니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가 주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기적을 너무 좋아합니다. 물론 기적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도, 탈옥 사건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갈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고통이 일평생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육체의 가시를 위하여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응답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악이 번성하고 악한 자들이 득세합니다. 헤롯 왕이 펼치는 세상에서 백성들은 고통하며 절망하고 있습니다. 11장 뒷부분을 보면 기근이 일어납니다. 기근이 일어나면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확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절실한 것은 구원의 복음입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합니다. 그 나라가 임할 때까지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의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너무 현미경으로만 들여다보면 답을 얻지 못해 시험에 듭니다. 작은 퍼즐 조각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답이 없습니다. 구약의 요셉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 팔려 가 노예가 되어 감옥에 들어갑니다. 악재가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는 큰 그림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불운한 가족사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자기 하나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나는 감옥에 들어가 노예 생활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섭리를 알고 난 다음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난이 해석되면 고난의 피해자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고통만 들여다보면 답이 없습니다. 시험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기적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밀려오는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난이라는 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기다리고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의 인생에도 기적이 없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현실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 인생 자체만 보면 부러워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인생이 주목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상에 하나님은 늘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다윗의 삶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현실은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면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환난은 그냥 하나의 조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고 기도 생활을 하다 보면 눈이 조금씩 열립니다. 이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대로 보아야 고난이 재해석됩니다. 우리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살면 낙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의 좌절을 맛봅니다. 사람들을 보십시오. 자세히 보면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감금했습니다. 망상을 깨워 줄 사람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6-17). 성령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를 살려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헤롯의 손에 베드로의 생명을 맡기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리기로 하시면 죽을 일에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면 죽게도 하십니다. 또 죽을 일이 있어도 복음을 전할 일이 있으면 살리십니다. 120여 년 전,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소속의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폐렴과 천연두에 걸려 선교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죽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34세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운한 인생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일이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의 소식이 호주 장로 교단에 전해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도전받았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죽음을 통해 선교 단체가 세워졌습니다. 해방 이전에만 해도 78명의 선교사가 지원을 하고 해방 이후까지 합하면 120명의 선교사들이 조선 땅으로 오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계획은 무엇인가? 나 중심적인 질문을 던지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은 나 중심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 돌아갑니다. 우리의 기도가 자라야 합니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기도가 자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가 성숙해 지면서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시야가 점점 넓어져야 합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을 위해 기도가 동원되는 것은 성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적인 일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기적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을 전하다가 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악한 자들의 손에 죽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없애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시는 은혜를 베풀기도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진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돌아가고 있고, 역사의 끝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마무리되는 일입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돌리고 계십니다. 만사가 우리의 뜻대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맡겨져 있다면 얼마나 아찔한 일이겠습니까? 악인들의 손에만 맡겨져 있다면 이 세상이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해석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입니다. 정치적 소용돌이와 남북의 대치 상황들, 한반도에 벌어지고 있는 위기의 상황들, 정치적 분열과 대립,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 등의 문제를 보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1991년도에는 한국이 구제를 받던 나라에서 구제하는 나라로 전환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한국교회를 통해 세계 선교에 헌신하는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1980년에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1989년에는 1,000명이 되고, 2002년에는 10,000명을 돌파하고, 2013년에는 20,000명을 넘어섰습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174개국에 21,917명의 한국인 장기 선교사와 451명의 단기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지금도 계속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일을 막고자 하는 인간의 도모는 허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항상 물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뜻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미래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즉시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12절,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베드로가 바깥에서 노크를 했습니다. 비밀경찰들이 닥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14절,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로데라는 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너무 기뻐 문을 열어주지 않고 달려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다고 알립니다. 15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로데가 베드로가 왔다고 알린 것은 교회가 함께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을 알린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당사자들은 전혀 믿지 않습니다. 기도했지만 응답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믿지 않아도 응답 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와 상관없이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16절,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우리가 감사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하심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살다가 사라지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펼쳐놓으신 무대에 우리를 등장시키셔서 다양한 역할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출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한 아래 벌어집니다.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3~34). 33절과 34절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믿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만듭니다. 악인에 의해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사십시오. 기적이 있든, 있지 않든 믿음으로 묵묵히 살아가십시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현재 나의 삶에 펼쳐지는 상황으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실패가 없으신 분입니다.
23절,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이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죽이려고 했던 자가 죽고 죽임을 당하려 했던 베드로는 살아납니다. 24절,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절,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어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귀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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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