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의 전통찻집 2
2005. 11. 9. 수요일.
대구 3일째 체류하는 저녁에도 다시 팔공산(八空山) 쪽으로 갔지만 산에 오를 엄두를 못 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살았다던 산촌 쪽으로 나갔다.
길가에 서 있는 고목으로 보아 마을이 오래된 듯싶었으나 또한 가난해 보였다.
할머니 몇 명이 길가에서 말라비틀어진 모과 몇 알, 뜯은 지 오래된 나승게(냉이), 산수유 몇 그릇을 겨우 팔고 있었다.
일행 중 추 중령이 장식용 꽈리 두 덩어리를 샀다.
동화사(桐華寺) 방향을 따라 차를 몰면서 관광도로에 줄지어 선 단풍나무를 스치듯이 쳐다보았다.
작은 계곡이 보이는 좁은 주차장에서 멈췄다.
굴다리 아래 석축으로 높게 쌓아 올린 터에 민간 펜션이 들어서고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는 길 옆 민가 음식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쓰디쓴 김치쪼가리로 안주했다.
다시 시내 쪽으로 되돌아오면서 상호 간판이 '매골식당'에 다시 들르겠다며 핸드폰으로 꿩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까투리 두 마리의 날개쭉지를 찢어내면서 털을 뽑는 늙은 여주인.
주인집 예쁜 딸은 꿩고기를 그릇에 담고.
"어제 난로 위에 고구마 굽는 거 보았습니다. 오늘은 고구마 구워 먹으려고 왔으니 몇 개 구워 주세요."
생고구마를 장작불 잿더미 속에 파묻었다.
'꿩고기 샤부샤부'로 저녁을 먹는 동안에 고구마도 익어갔다.
씨앗 하려고 계곡 아래 길에서 거둔, 설익은 콩깍지 다섯 개도 잿불 속에 묻어 두었다. 자줏빛 나는 콩인데도 이름을 몰랐다.
매골식당
토종닭, 방목 염소
대구 동구 중대동 053-543X, 011-51X, 715X, 011-509-622X
여주인 이름은 이선X.
전통찻집에는 또 손님이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또 들렀다."
입담 좋은 C중령이 구운 고구마 한 개를 여주인에게 내밀었다.
"매골에서 꿩고기 드셨어요? 가는 길에 저도 데리고 가셨더라면......."
서운해하는 음다소 여주인.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여주인은 불교에도 조예가 깊은 듯했다.
스님과 절친한 것 같았다.
물욕이 없는 듯했다.
"밤 몇 알 구워 먹을까요?"
작업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밤 한 됫박을 본 내가 말했다.
난로 위에 밤이 그득히 올려졌다.
밤껍질이 검게 타는 냄새, 밤 익는 냄새.
"객지에 나온 사람은 돈이 떨어져 찻값도 부담스러워하므로 차값만큼은 싸게 받는다."
는 것이 자기의 영업방침이라고 했다.
메밀로 끓인 차맛이 달짝지근했다.
다도(茶道)를 배웠다며 우리 일행에게 차 마시는 방법을 간단하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같은 차라도 여러 번 끓일 때마다 차맛도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차를 많이 마시면 피부가 고아지고 위장병도 낫는다고 했다.
우리 일행 다섯 사람이 마신 하룻밤의 찻값은 고작 만 원이거나 만여 원을 살짝 넘었다.
찻값을 더 주려고 해도 여주인은 마다했다.
그 덕분에 우리 일행 다섯 명이 사흘간 여러 가지의 풀잎차를 몇 잔씩 여러 차례 더 마실 수 있었다.
음다소(飮茶所) 전통찻집
대구광역시 동부 지표동 625
010-4670-789X
다기, 생활다기 도매·산매
여주인 이름은 황금X. 본명이란다.
여러 종류의 차도 우편택배해 준단다.
대구 파계교 교차로에서 파계사(把溪寺) 방면으로 2.6km 전진.
금산주요소, 고향식당을 막 지난 뒤 오른쪽 길목에 위치.
날마다 출장 일과가 끝난 뒤 저녁경에 팔공산 부근으로 사흘째 밤나들이 나갔다.
허름한 전통찻집에서 여담을 즐기고 난 뒤 군숙소로 돌아왔다.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요."
飮茶所 여주인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겠다.
2005. 11. 12.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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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3. 19. 화요일.
어떤 문학지에 낼 글을 고르려고 오래 전에 쓴 일기장을 검색하다가 위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2005. 11. 7 ~ 9.까지 일기 가운데 마지막 날의 일기만을 퍼서 여기에 올린다.
전화번호와 이름은 보안상 감췄다.
일기를 쓴 지도 만18년이 더 지나갔다.
부하 직원들과 함께 대구 군부대로 출장갔던 옛일을 회상한다. 이런 일기라도 남았기에 옛기억이 조금이나마 난다.
문학지에 올릴 글은 더 찾아야 할 터.
첫댓글 2005년이군요.
제 고향의 유명한 산이지만
그때의 팔공산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의 팔공산은 종점이 팔공산 입구의 불광동인 20번 버스가 연장 노선으로 동화사와 파계사로 더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때도 동화사는 방문객이 많아서
저와 친구들은 그쪽으로 가면 인적 드물고 산길 아름다운 파계사쪽으로 주로 가곤했습니다.
팔공산 관공도로가 난 후로는
가본 적이 없었는데, 덕분에 그
뒷날의 분위기 약간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어쩜 버스노선까지 기억하시는지요.ㅎ
눈내리는 동화사에 같이 갔던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글입니다.
@이베리아 중동에서 시내 나갈 때 자주
타던 버스라 기억을 합니다. ㅎ
이베리아님도 파계사쪽을 더 좋아하셨군요.
제가 가진 고교 흑백 사진에 그 산길,
그 계곡에 어깨동무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부하직원과 함께 출장 갔던 때의 일기이지요.
빠르게 자판기를 눌러서 저장했던 일기가 제 고등학교 여자친구의 카페에 있기에 퍼서 여기에 올렸지요.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록과 사진, 물품들은 남아서 훗날에도 기억을 더듬게 하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팔공산 좋대요.
제 큰아들의 처가댁도 대구이지요.
이런 일기라도 남아 있기에 만18년이 더 지난 옛일을 기억할 수 있지요.
친구들이랑 동화사에 자주
갔었던 추억이 있어서 팔공산의
전통찻집 이야기가 반갑게 와닿네요.
마음자리 님처럼 사람들이 북적이는
동화사보다는 파계사쪽이 한적하고
좋아서 그쪽을 찾곤 했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동화사 ....
전통찻집....
그 당시에도 대구 인심이 좋다는 것을 느꼈지요.
제 큰아들의 처가가 대구이고, 장인은 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셨고...
다시 들르고 싶은 대구 팔공산.
올해는 꼭 팔공산을 가고 싶습니다. 수년전 대구사는 친구가 부인과 팔공산에 올랐다가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헬기타고 병원가서 수술을 받고 몇년잘살다가 재작년 별세했지요.
겸사겸사 대구분들하고 올봄에는 가고자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팔공산 등산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면 큰일날 뻔한 이야기이군요.
그 친구분의 부인은 지금은 저너머 세상으로 떠나셨군요.
올봄 대구 팔공산에 오르시고서
여행기를 남겨서 이 카페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