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우․이영도 시인의 시조문학사적 위상 -10월 25일(금) 오후 3시 청도 이호우 ․ 이영도 시조문학제 특강 자료- 1. 열며 오늘의 시조문단이 어떻게 이렇듯 융성하게 되었을까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호우․이영도 두 분을 앞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문장』지를 통해 가람 이병기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이호우는 흔히 김상옥, 정완영과 더불어 三家詩人으로 일컫는다. 그만큼 범접 못할 독보적인 시조 세계를 구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이영도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시조 세계를 창출했고, 그 역시 이호우 못지않은 節操로 당대의 역사를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시조로 육화하는 데 힘썼습니다. 선생의 시조는 전통적인 서정을 바탕으로 하되 불의를 방관하지 않았고 현실비판에 앞장서면서도 절제를 잃지 않았다. 언제나 조국과 민족의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에 주목하였고 존재와 우주 질서의 근원적 탐구에 골몰한 시조 사랑은 독자적인 개성미를 획득하였다.(민병도) 두 분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시조문단의 초석은 든든하게 깔렸고, 그 기틀 위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특히 전범이 될만한 주옥편들을 통해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터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이호우 선생의 <달밤>, <개화>(우주적 창조 질서와 생명의 신비), <살구꽃 핀 마을>. <바위 앞에서>(인고의 자세), <초원>, <산길에서> 등을 만나면서 시조의 매력을 느꼈고, 이영도 선생의 단시조 <단란>을 읽으면서 가족간의 화목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월, 목월, 미당만 알고 있던 제게 두 분의 명작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아려) 눈을 감네 -「개화」전문 차라리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섰습니다. 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바위 앞에서」전문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살구꽃 핀 마을> 첫수 여기 한 사람이 이제야 잠들었도다 뼈에 저리도록 인생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 -이호우,「묘비명」 몹시 추운 밤이었다 나는 커피만 거듭하고 너는 말없이 자꾸 성냥개비를 꺾기만 했다 그것이 서로의 인생의 갈림길이었구나 -이호우,「회상」 어떻게 살면 어떠며 어떻게 죽으면 어떠랴 나고 살고 죽음이 또한 무엇인들 무엇하랴 대하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 대로 흐르네 -이호우,「河」 기(旗)빨! 너는 힘이었다 일체(一切)를 밀고 앞장을 섰다 오직 승리(勝利)의 믿음에 항시 넌 높이만 날렸다 이날도 너 싸우는 자랑앞에 지구(地球)는 떨고 있다 온 몸에 햇볕을 받고 기(旗)빨은 부르짖고 있다 보라 얼마나 눈부신 절대(絶對)의 표백(表白)인가 우러러 감은 눈에도 불꽃인양 뜨거워라 어느 새벽이드뇨 밝혀든 횃불위에 때묻지 않은 목숨들이 비로소 받들은 기(旗)빨은 성상(星霜)도 범(犯)하지 못한 아아 다함없는 젊음이여 -『이호우 시조집』(1955)에서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청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처마 끝에 머문다, -이영도,「석류」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 고이신 눈매 얼굴을 묻고 아, 우주이던 가슴 그 자락 학 같이 여시고, 이 밤 너울너울 아지랑이 -이영도,「달무리」 못 여는 것입니까? 안 열리는 문입니까? 당신 숨결은 내 핏줄에 느끼는데 흔들고 두드려도 한결 돌아앉은 뜻입니까? -이영도,「절벽」 단란 / 이영도 아이는 책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간 듯이 둘렸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말이다. 단란, 그 말에서는 정갈한 속옷이나 따뜻한 밥상 혹은 풀 잘 먹인 옥양목 호청 같은 게 떠오른다. 그런 온기의 '단란'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갈수록 적어지는 탓일까. 아니면 시끄러운 소음 불빛 속에서 전자기기를 늘 장착한 채 '심지 돋우'는 시간도 없이 사는 분주한 일상 때문일까. 어머니와 딸만으로 충분한 듯, 시 속의 저녁 한때가 퍽이나 오붓하다. 이 다사로운 모녀가정을 두고 누가 결손 운운할 수 있으랴. 이제는 가정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으니, '결손'이란 낙인도 폐기했으면 싶다. 누군가의 부재보다 중요한 것은 같이 살고 싶은 사람끼리 가정을 이루는 것. 그래야 진정한 단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책 읽는 아이와 이마 맞댄 저녁이 잘 묵은 묵화(墨畵) 같은 단란한 정경이다. 고요한 어둠 속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정수자) 양 여긴 내 신앙의 둥주리 낙동강 흥건한 유역 노을 타는 갈밭을 철새 떼 하얗게 날고 이 수천 헹구는 가슴엔 ‘ 세례 요한을 듣는다 석간을 펼쳐 들면 손주놈 ‘고바우’를 묻는다 혀끝에 진득이는 이 풍자 감칠맛을 전할 길 없는 내 어휘 모국어도 가난타네 네 살짜리 손주 놈은 생선뼈를 창살이라 한다 장지엔 여릿한 햇살 접시엔 앙상한 창살 내 눈은 남해 검붉은 녹물 먼 미나마다에 겹친다 눈 오시는 날에 절두산 기슭을 거닌다 푸르디푸른 강 앞에 목숨의 길을 듣는다 뜨거워 오히려 찬 이마 그 사랑을 듣는다 이영도「흐름 속에서」중 (예순을 넘기고 얼마 있잖아 세상을 뜬 이영도가 말년에 쓴 작품입니다. 세상살이의 애환이 그 특유의 호흡과 어법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강 이미지는 결국 생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며, 그 흐름 속에서 강의 종착점인 바다가 나타납니다. 수질공해로 인체 질병이 극심한 일본의 항만인 미나마다가 등장하는 점도 그 시사하는 의미와 함께 이채롭습니다. 또한 마지막까지 꼿꼿하고 단아한 자태를 견지하고 있는 점이 아름답습니다. 한 사람의 생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흐름 속에서’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유종지미의 참뜻이 헤아려질 듯합니다.) -시조와 함께(34) 2005년 6월 28일 화요일 매일신문 7면 조선일보 정수자의 가슴으로 읽는 시조 2. 시조문학사적 위상 이제 이호우․이영도 시인의 시조문학사적 위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점은 시조에 대한 두 분의 열정과 천착이 일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작품을 통해 개성적으로 반영된 점입니다. 시인으로서의 철저한 자기 관리, 완결의 미학에 대한 강도 높은 담금질의 결실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두 시인의 작품 세계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높은 미적 성취를 거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시조 세계를 보입니다. 그런 대비로 말미암아 오히려 두 분의 작품들은 그 가치가 더 크지요. 먼저 이호우 선생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해 전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호우의 시조 세계를 요약해서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살구꽃 서정과 깃발의 힘’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주정과 주지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실 서로 빛깔이 다른 두 세계를 원활하게 넘나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능력의 문제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호우의 특장은 이질적인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시조 3장에 녹여내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의 시조문학사적 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의 표본이 될만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영도와 비슷합니다. 단시조라고는 하지만 스케일이 큰 작품들1)이 있습니다. 이호우는 시조가 일정한 양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민족의 문화예술로 상승시키고자 하는 생각으로 단시조에 주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형식에 매여서 시와 멀어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제를 창의적으로 형상화하는 일 즉 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율격에 탄력을 준 것입니다. 다소의 파격과 더불어 천의무봉의 변용과 변주로 다채로운 시조를 생산하는 일에 힘쓴 것이지요. 셋째, 깊은 사유와 감각, 서정과 인식, 전통과 근대의 심미적 결절2)을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과 도저한 정신세계를 구현한 점입니다. 3장 구조 내에서 다양한 형식 실험을 하였고, 여러 가지 전개 유형을 보이면서 단조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표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하고도 너른 서정의 편폭3)이라는 단정은 적절합니다. 넷째, 스승인 가람 이병기의 세계와는 판이한 내적 탐색의 세계를 추구한 점입니다. 즉 인생 담론의 심화가 곧 그것이다. 같은『문장』지 출신인 김상옥의 시조와도 추구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다섯째, 현실 개입과 준열한 역사의식4)을 가지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조미학의 구현에 힘쓴 점입니다. 이것은 그가 ‘의지의 가열성’을 내장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여섯째, 완벽을 추구하면서 이미 발표된 작품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로 퇴고를 거듭한 점입니다. 결벽증에 가까운 이 엄정함은 냉혹할 정도이지요. 언어는 살아있는 것, 생명이 있는 존재로 여기고 연금술사와 같은 자세로 완결의 미학을 추구한 것입니다.「개화」의 종장 후구 ‘나도 가만 눈을 감네’에서 ‘가만’을 말년에 ‘아려’로 고친 것이 그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일곱째, 다수 작품5)이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일선 교육 현장에 지속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 온 점입니다. 다음으로 이영도의 시조 세계를 보겠습니다. 이영도는 개인 서정과 공적 감정을 넘나든 시인6)으로서 개인적인 정한의 세계와 당대의 역사에 대한 직시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시조로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음풍농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그 당시 서정일변도의 시조문단에 새로운 물길을 연 것이지요. 이영도의 시조문학사적 위상을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첫째, 단시조의 전범7)을 보인 점이다. 앞서 거론한 이호우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서정의 결이 곱고, 다양한 단시조의 유형을 보이고 있어 시조 지망생이 습작을 할 때 요긴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장을 ‘2/ 2/ 3’행으로 배치한 기사양식8)은 눈여겨 볼 점입니다. 물론 이 점은 이호우도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실은 이것을 일찍이 효과적으로 잘 구현해 보인 시조시인은 조운입니다. 둘째, 서정의 본질에 가까운 시조 세계를 구현한 점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 구사로 주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점과 자연스러운 가락으로 완결의 미학을 축조함으로써 훈향 높은 예술적 성취에 이른 것이지요. 셋째, 앞서 잠간 언급한 것처럼 현실과 역사를 직시한 점입니다. 이것은 이호우와 유사합니다.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불의에 대한 준열한 비판9)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넷째, 후기에 와서 신앙에 귀의하면서 기독교 주제의 형상화에 힘쓴 점이입니다. 그런 눈으로 볼 때 10수나 되는「흐름 속에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지요. 낙동강이 배경으로 나오고, 현실 풍자에 관한 소회와 수질 공해에 대한 시각, 무한한 용서와 큰 손길을 향한 기도, 북악의 품으로부터 고독을 씻고자 하는 강열한 열망, 빈 하늘 겨울나무를 적연히 바라보는 모습, 절두산 기슭을 거닐며 푸른 강으로부터 목숨의 길을 듣고, 주를 외쳐 부르면서 예순 해의 생애를 반추하는 장면 등이 흡사 파노라마와 같이 펼쳐집니다. 이영도 시조시학의 절정을 보는 듯 하지요. 자신의 종언을 예감한 시편입니다. 이 점은 시조가 얼마든지 새로운 소재와 상상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10)을 열어 보인 표본이 될 것입니다. 도저한 정신의 깊이에 닿은「흐름 속에서」는 생활시, 환경시, 직설적이지 않은 기독교시의 방향을 제시한 셈이지요. 다섯째, 후학을 양성한 점입니다. 이 일은 오늘의 시조문단으로 보아서는 아주 큰 업적이 됩니다. 1970년대 초․중반에 그가 신춘문예나 전봉건 시인이 주재하던 월간 시전문지《현대시학》지 등을 통해 배출한 시인들11)이 그 후 시조문단의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이 그 좋은 예가 되지요. 오랜 기간 동안 엄격한 스파르타식 수련과정을 거쳐 시조에 입문케 함으로써 탄탄한 기량을 갖춘 시조시인으로 성장하게 한 것이지요. 모름지기 시인은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으로 가르치고 깨우치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만, 능력 있는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도 중요하지요. 오늘날에도 능히 우리의 정신적 樣式과 糧食이 되고도 남을 시조를 위해 후학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일이요, 면면한 계승과 발전을 위한 근간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지요. 그 점에서 이영도는 훌륭한 스승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3. 맺으며 이호우와 이영도는 시조문학사 뿐만 아니라 근대문학사에서도 각별한 역사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 시인입니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작품으로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정형 미학의 우수성을 거양했고, 투철한 역사의식의 구현을 통해 눈부신 문학적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두 분 모두 감각적이고 활달한 세계를 펼쳐 시조라는 양식이 고루한 중세의 산물이 아님을 확연하게 보여주었고, 시조가 민족적 정체성과 문학적 위의를 동시에 지켜갈 수 있는 양식12)임을 우리에게 경험케 한 것은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호우․이영도의 시조로 말미암아 시조가 현대문학 속에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음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시조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조시인들은 두 분의 시조 세계를 통해 자신의 창작 방향을 가늠해야 하고, 아울러 두 분의 예술적 성취를 뛰어넘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시조 세계 창출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바위 앞에서」,「적일」,「개화」,「午」,「휴화산」,「삼불야」,「가을」,「河 」,「묘비명」등. 2) 유성호, 민병도 엮음 이호우 시조전집『삼불야』, 목언예원, 2012, 342쪽. 3) 유성호, 위의 책, 318쪽. 4)「삼불야」,「기빨」, 「바람벌」,「촉석루」,「춘한2」,「바위 앞에서」,「불멸의 빛」등이 그러하다. 5)「바위 앞에서」,「개화」,「살구꽃 핀 마을」,「초원」,「산길에서」등이다. 이영도도 여러 편 실렸다. 6) 조남현, 이영도 시조선집『너는 저만치 가고』, 태학사, 2001, 103쪽. 7)「아지랑이」,「석류」,「바위」,「보리고개」,「단란」,「비」,「탑3」,「절벽」,「달무리」,「어머님」「모란」등. 8) 연행갈이. 9)「진달래」,「애가」,「천계」,「광화문 네 거리에서」등. 10) 조남현, 앞의 책, 114쪽. 11) 박시교, 이우걸, 임종찬, 정표년, 김영재, 박영교, 권도중, 민병도 등이다. 12) 유성호, 앞의 책, 34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