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입대(04.2.23.월)로부터 약 8개월 전에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하여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수강생으로 등록하여 이때부터 2003.7.30.수요일 도로주행시험
에 최종합격하기까지 떨리고 두려운 가슴을 안고 운전학원에 다녔습니다.
그 눈물겨운 여정을 여러분께 얘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ㄱ.일자 기록
자동차운전면허취득을 위한 교육기간- 2003.6.24.화(입학등록)~2003.7.30.수(최종합격)
ㄴ.1종보통(포터. Porter) 자동차운전면허 최종합격일은 도로주행시험합격일과 동일
++++++++++++++++++++++++++++++++++++++++++++++++++++++++++++++++++++++++++++++
2003.6.24.화(맑음) 면허증 취득을 위한 자동차운전전문학원 입학등록(학과교육1일째)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아마 깊은 꿈을 꿨던 모양이다.
일어나니까 고단했다. 그러면서도 맑은 정신이 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혼동스럽다. 혼란스럽다.
어쨌든 어머니의 깨우심에 잠이 확 달아나며 든 생각은
'오늘 자동차운전학원에 등록하러 가야하지'
'참 그랬었지' 였다.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함께 승용차를 타고 등록할 학원까지 갔다.
운전학원에 가서 등록 담당자를 만나고 바로 등록했다. 등록비용은
50여만원이 들었다.
이 돈을 운전이 아닌 다른 곳에 썼다면 무척 아까운 돈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운전면허를 따야하니 어쩔 수 없이 그에 들어간 돈이었지..
카드 인식을 위해 왼쪽 오른속 엄지 지문도 채취당했다. 주민등록증 만들 때처럼 검고 짙은
잉크에 열손가락 다 찍는게 아니라 어느 기계에다가 인식시켰다.
지문 등록을 끝으로 수강생 등록에 관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내일은 적성검사(신체검사 등)를 받는 등 시작단계가 초읽기 단계로 들어간다.
배움의 초기 단계. 5~60여만원에 이르는 큰 돈도 선금으로 낼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만에 합격해야 한다는 강하고 질긴 부담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나를 억누르고 있다. 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현재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쩜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최초(단1회) 합격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그에 따르는 부담감도 크다.
시험지로 치는 필기시험(학과시험)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직접 운전하는 시험인
기능시험엔 영 자신이 없어 큰 일이다.
아직 한번도 실제로 운전해 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그래. 그런 것 같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더 무섭고 더 두려운 것같다. 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한번만에
시도해서 자동차운전면허증을 손에 거머쥘 수 있을까?
만약 불합격하면 어떻하지? 그리되면 정말 안되는데...
아 정말 미치겠다.
이런 문제로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면 안되는데. 곤란한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지금의 두려움.
로또(복권)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로또의 차기(다음회차) 당첨번호도 과연 어떤 번호 6개가 걸릴지 그 누가 알겠나.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24일자 기록(50쪽~52쪽)
어제 운전학원에서의 입학등록에 이어 오늘 본격적인 교육이수에 들어갔다.
학원 본관에 들어서서 난 우선 직원에게 시간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부터 물었다.
뭐가 뭔지 통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기능교육예약증'을 들여다보며 08:30분에 기능교육을 받아야되는지 아니면(혹은)
09:30분에 받아야되는지 헷갈릴 뿐이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파란색 종이에 적힌 건 다 이수해야된다고 했다.
이론수업인 학과교육은 09:30분에 있었고 실제 차를 타거나 가상 시뮬레이션 기계를 타는
기능교육은 08:30분에 있어 이 기능교육을 먼저 받아야했다.
난 처음부터 승용차에 바로 오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꼭 항공기 시뮬레이션처럼 승용차 가상 교육을 먼저 거쳐야했다.
남자 직원이 그 기계에 비디오테잎을 넣어주곤 자기는 다른 곳에 가버리고 난 멍하니
기계 스크린을 응시했다.
꼭 TV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시험 치는 과목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긴장감이 잔뜩 들었다.
이 시뮬레이션 교육을 25분 정도 받고나서 학과 교육을 받아야되는지 알았는데 또 이게
아니었다.
적성검사란 걸 해야했다. 미리 준비해간 증명사진 등을 응시원서에 붙이고 주소지,자기이름
을 한자로 쓰고 하여튼 이거 다하고 총책임자 인 듯한 인상을 물씬 풍기는 할아버지한테서
시력,색맹여부 검사를 받고 '확인 인'도장을 받았다.
수수료 5,000원을 주고.
나는 그 할아버지 면전에서 "할아버지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시네요." 라고 하니
할아버지께선 "그렇지.^^" 라고 말씀하시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응시원서를 남자 직원한테 제출하니 그가 하는 말
"다음 주 월요일날에 원서 찾으러 오세요. 그때오면
정확한 학과시험(치는) 날짜를 가르쳐 줄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난 한동안 뜨끔했다. 마음속으로
"엥, 벌써 학과시험? 다음주?!'
집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란 생각 밖에 안들었다.
09:30 학과 교육 시간
이 시간에도 역시 강사의 강의는 거의 없었다.
비디오 20여분정도 틀어주는데 그거 지리하게 보고..
10분 정도 '시험문제에 관한 족집게강의'를 들었을 뿐.
어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강의인지도 모른다.
수능철만되면 족집게강사가 인기순위 0순위에 랭크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비디오내용은 당연히 교통에 관한 것이었고,
시험문제에 대한 강사의 강의는
"범칙금 등에 관한 문제는 거의 안나오니 공부하지 말고요.
도로 상황에 관해 묻는 문제가 주로 많이 나옵니다, 그걸 중점적으로 공부하세요."
이게 다였다.
어찌 들으면 핵심적인 내용 같아서 중요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강의가 예상과는 달리 무척 허무하게 끝나고..
지문인식+카드 긁고 퇴실했다.
병영행 학원버스(봉고)를 타고 집까지 갔는데 이 차에 여자1명, 남자2명(운전기사 제외)
이렇게 3명 밖에 없어 적적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기본좌석의 정반대 자리(뒤를 봐야하는)에 착석해 오랫동안 일시적 어지러움을
느껴야했다.
앞뒤로 좌석이 배치된 봉고 차량이었다.
병영농협에서 내리며 운전기사님을 향해 "고맙습니다."라고 크게 인사하였다.
귀가길에 한국영화 '재밌는 영화" 1편을 1,000에 대여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25일자 기록(52쪽~55쪽)
--------------------------교육이수 3일째(장내기능)----------------------------
2003.6.26.목(맑음) 자동차운전전문학원 교육이수 3일째- 강사의 이유있는 권력
오전 8:30분.
끊임없는 닥달에 시시콜콜 공박을 해대는 이상하리만치 집요하고 잘난척하는 강사.
(이를 군대에선 '갈굼'이란 핵심집약어로 표현한다)
나를 맡은 기능교육 강사에 대한 나의 외적인 평가다.
다시말해 배우는 입장의 내가 운전석에 앉아있으면 그 강사는 옆인 조수석에 앉는다.
(조수석엔 운전석과 동일하게 브레이크(정지페달)가 설치되어 있다. 운전자가 운전에
능하지 않은 수강생들이 단연 많기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특별히 설계된 운전연습용
차량이다)
하여튼 이 강사는 끝까지 추궁에 공박을 해온다. 놀라우리만치 대단한 갈굼이다.
"클러치 살살 떼야지"
"아냐, 아냐, 그게 아니라구!"
"브래이크 밟어! 밟으라구!!"
"여자들도 이정도 했으면 너보단 잘해(잘했어)"
"넌 뭐야"
"정지해. 정지하라구. 스톱. 스~돕해!!"
"운전대 두 바퀴 완전히 꺾어!"
"살살 돌아, 살살 돌으라고"
"왜그리 못해"
"19년간 (운전대) 한번도 안 잡아봤어??? 허허..."
"어깨선 맞춰"
"좌측 깜빡이(방향지시등) 종료때 말고 출발때 켜라고!!"
"우측 깜빡이(방향지시등) 켜. 켜라고" "꺼. 꺼라고"
"아... 정말(할말잃은 강사)"
이거 완전 생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내 얼굴은... (예상가능하므로 상상에 맡긴다...)
그런 강사한테 아니 나를 맡은 강사한테 은근히 분노성 투기심이 확 일었다.
주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 내 목적은 운전면허취득이 아니었던가.
일단 따고 보자.
따지는 듯한 수준낮은 말다툼이 아니다..
어차피 면허증 큰 돈 내고 하는 이상 한번만에 따야하고.
고등, 대학 시험과는 180도 틀린 운전면허시험이다.
이래저래 나만 손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예스맨을 표방했다.
강사의 어떠한 말에도 야유에도 비난에도 무조건
"예" "예" 대답을 크게 해댔다.
주눅들어 운전대 잡고 화가나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거나 억울해서 발을 동동굴리거나
두려워서 덜덜 떨바에야 그 편이 훨씬 편했다.
강사가 나의 어둔함에 짜증을 내면 낼수록 나는 그런 강사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하여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다독였다. 유도한 셈이다.
짜증섞인 비난을 드는 그 와중에도 나는 세상사는 얘기와 내가 사는 곳을 떠들어댔다.
물론 적절한 타이밍에 말이다. 미소도 한껏 지어보이고.
그게 효과가 있었을까. 시간이 다되어갈 무렵 강사는 어느새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건 누구도 진게 아니었다.
그도 나에게 지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운전미숙을 이유로 미안해하지 않았다. 지지 않은 것이다.
무승부였다.
부모님께선 학원 등록 전 누누이 말씀하시길
"강사 말에 무조건 다 "내"하고 듣고 반항하지 마라."
"강사의 기본언어는 대개 안좋고 위협적인 말이니 널리 이해하라."
고 하셨었다.
난 그때 다짐했다. 세상의 그 누구한테도 주눅 들지 않겠다고!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26일자 기록(56쪽~57쪽)
어제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곤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나 초심을 생각하자고 말이다. 그건 별일 아니라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더 한 일들이 비일비재할거라고..
아침 8시 30분.
학원버스를 타고(08시 승차) 학원에 도착하니 8시 17분이었다.
정확히 17분의 시간이 소요된 것.
지문인식 하는 기계 앞에서 왼손 엄지손가락 지문을 대고
오른손으로 '내 신상정보가 든' 카드를 긁었다.(입력시킨다)
기계가 외친다.
"승차하시오"
시계를 보니 08시 20분이었다. 승차예정시간이 08:30이었으니까
10분 전이었다.
대기소에 기다렸다. 어제 나를 공박하며 열의 띄고 가르친 그 강사 분도 계셨다.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 이유는,
강사분들의 직업적 노고를 절실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초보 중의 초보들한테 좋은 말로만 타이르면서 가르치면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강사들이 좌지우지않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나의 운전권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제까지만해도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또 왜 조수석에 앉아있는 강사들, 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듯 클러치를 밟고 브래이크를 밟지?. 그거 잘못행동하는 거 아니야.
나한테 소형화물차를 맡겨두고 다시말해 나 혼자 운전하며 주눅 전혀 안들고 훨씬
나을텐데...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나였다.
오늘 어제 강사와는 다른 두 명의 강사를 만나고나서 확 달라졌다.
처음엔 젊은 강사였다. 이 강사. 어제 나처럼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리 다그치지도
않았다.
내가 잘못할 때에도(운전에 미숙한 모습을 보일때) 그의 입에선 차분한 목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격앙되거나 흥분된 목소리가 결코 아니었다.
도중에 애인 혹은 여자동생 인 듯한 여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에도 그의 모습은 태연하기
그지 없었다. 다만 클러치와 브래이크 가까이 발을 두긴 했었지만 전화통화가 끝날때까지
직접적으로 밟진 않았다. (밟았다면 내 자존심이 약간 심했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행위는 강사가 나를 불신한데서 초래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두번째 강사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할아버지였다.
이 노인의 기능교육 행태 역시 처음 강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그렇게 크게 잘못한 건 없었지만=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를 낼 정도의 운전을 하지않았지만)
미숙한 운전실력을 보였을때도 노인강사 역시 별 말이 없었다.
심하게 다그치지 않고 흥분하지도 않더라 뭐 이런 말이다.
이 노인강사는 기어변속 구간에서 '진도를 넘어서는 기능교육을 가르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직 배울 단계가 아니었는데 노인강사는 기어변속 구간에서 클러치. 브래이크에서 두 발을
떼고 액셀레이터(가속 페달)에만 발을 댈 것을 지시했다.
기어도 2단->3단 넣고. 두려움 반(사고에 대한) 기대 반(스피드를 느껴서) 속에서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차에 날개를 단 듯.. 차는 순간적인 폭발력을 보였다. 기대 이상의 만족할만한 속도였다.
내 평생에 그렇게 빨리 차를 몬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운전경험이었다.
문제는 후진(흔히들 '뒤빠꾸'라 표현)이었다.
주차 할 때 정말 힘들었다. 생소한 후진 기어(R기어) 까지 넣어야했으니까..
이게 안되면 시험 시 10점이나 감점된다고 했다.
그러니 꼭 합격해야만 하는 내가 바짝 긴장 탈 수 밖에 없었다.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에 되어야 합격인데..
큰 일이었다.
큰 일이다. 큰 일. 허...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27일자 기록(59쪽~62쪽)
오전 8시 20분.
운전교육 이수 5일째를 맞는 오늘.
오늘의 장내기능교육(장내도로주행)은 지난날과 좀 달랐다.
지난날의 교육이 강사가 조수석에 항시 타는 '동승(합승)'이었다면 오늘은 그게
아니었다.
나 혼자 차에 타고, 2시간 내내 순수하게 나의 힘과 의지로 차를 몰았다.
기분이 대단히 좋았다.
그동안 그렇게도 잘 안되었던 후진기어. 후진 후 주차 문제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속으로 '시험날, 오늘만 같아라'는 말만 외쳤다.
장내기능교육 전, 사무실에서 응시원서를 받았다.
이제 이 응시원서를 들고 언양(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의 국가시험장에서 학과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금주 목요일날, 과연 두렵고도 떨린 그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인가.
무척 기대된다.
태어난 이래로 수능(2002한일월드컵이 있던 2002년 11월달에 친
2003대학수학능력시험; 들어가는 학번으로 수능명칭은 정해집니다. 참고로
저는 03학번이었습니다) 이후 두번째로 치는 국가시험이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30일자 기록(66쪽~67쪽)
오늘 운전한 차량한 있던 파란 종이가 생각난다.
---(수강생의 이름)의 배차증(장내기능용)이었는데 거기에 학과합격자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학과시험에 무난하게 합격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파란 종이..
정말 부러웠다. 부럽다는 생각만 들고 부럽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던 오늘이었다.
---. 아줌마인데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 내 입장으로썬 그녀가 부럽기 짝이 없는 존재다.
과연 나는 운전면허증을 최종 취득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특히 이 여름방학 안으로 말이다.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잘하면 군입대 시 운전병(수송병)으로도 차출이 된다고 하던데..
이점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아직 군 경험이 없거든..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1일자 기록(67쪽~68쪽)
---------------------------내일은 학과시험 치는날-----------------------------
2003.7.2.수(맑음) 자동차운전전문학원 교육이수 7일째-개망신과 보통의 사이
내일이 학과시험 당일이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떤 면에서 대학입학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때 보다 더 떨렸으니..
오늘 이러니 시험당일인 내일은 어떠할 것인다. 더 할 것이다. 걱정된다. 큰 일이다.
어떤 이가 하는 말이 개나 소나 다 따는게 운전면허증이라지만 교육생이란 당사자
입장에서니 어른들의 뼈있는 말씀이 빈 말이 아님을 오늘날에서애 실감하게 된다.
감개가 무량한 게 아니다. 그건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해야할 미래의 생각이다.
마치 생지옥으로 들어가는 정문에 선 듯 가슴이 뛰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어제 어떤 아줌마의 말씀을 상기하니 더욱 그렇다.
"아유, 학생들이야 두뇌회전이 워낙 빨라야 말이지.
장내기능,도로주행시험에서야 그렇다쳐두. 필기시험인 학과시험에서 떨어지면
그게 무슨 변고야. 창피지 뭐야."
다름아닌 개망신이란 말과 다를게 무언가.
어쨌든 내일 죽을 각오로 시험에 임하려 한다.
서양의 어느 위인의 말씀처럼
'면허(면허증)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를 속으로 외치며 이 글을 쓰고
이 글에 무난한 합격의 염원을 담는 바이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일자 기록(69쪽)
07:30분.
부모님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갔다.
운전학원에 도착 전 승용차에서 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의 태반은 이미 결과를
안다는데서 비롯한 듯한 한숨소리 다시말해 걱정이었다.
부모님의 인식엔 한없이 갸날파보이는 아들인 나의 실력을 확실히
낮게 보시고 계신 것이다.
즉 학과시험에 불합격할 거라 미루어 짐작하고 계셨건 것.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 공부를 거의 하지 않던 나의 행동을 쭉 보아온 부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시험 전 당사자인 나의 우려는 매우 컸다.
실제로 운전하는 장내기능교육시험, 도로주행시험과 달리
학과시험의 경우는 확연히 틀렸다.
해법은 오직 '운전면허 학과시험 예상문제집(교문출판사에서 펴냄)'
이거 달랑 1권이었다. 고작 1권 뿐이었다.
게다가 나의 현 신분은 대학생이 아니던가.
아줌마, 할머니분들의 두뇌회전을 능가하는 부류가 나 같은 젊은 놈들이다.
더구나 고교동창 3명과 같이 시험을 보고 또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고.
나 혼자만 떨어진다면.. 아.. 으.. 난 정말 두려웠다.
불합격 상황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부인하고싶은 생각이 날 더 움츠러들게
했다. 국가시험장이 위치해있는 언양(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까지 학원버스에
타고 갈때까지 그 차안에서 공부하면서 진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도 내가 학과시험공부를 거의 안했다는 걸 잘 알고 있던 터였기에
걱정은 더욱 컸다.
그래서 더 겁났다.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움켜쥐고 계단을 올랐다.
시험장은 건물 2층에 있었으며 좌석 수가 101개 이상 일 정도로 넓었다.
기가 질렸다.
내가 앉을 좌석은 33번 좌석이었다.
33번 좌석에 앉았다. 하늘색의 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경찰관2인과 보통 치마를 입은
여직원 1인이 입실했다.
수험생들은 그들의 입실 즉시 숙연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군대도 최고참이 들어오면 그렇다던데.. 그럴 것인가.
거의 대부분이 불합격 상항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리라 여긴다.
나도 당연히 그랬으니까.
경찰관 2인의, 그 두명이 말해주는 주의사항은 간단했다.
1.컨닝 시험 당연히 금지하며 발각 즉시 학과시험의 0점 처리(즉각 불합격자 처리)
2.시험지 겉면에 얇은 투명 비닐이 입혀져있으니 문제 볼려고 문제지 꺼낼
필요 없음. 비닐에 컴퓨터펜으로 답 쓰지 말것. 일체의 표시를 하지 말것.
3.시험시간은 50분 정도임.
4.문제 다 푼 사람은 완성된(마킹까지 끝난) OMR답안지를 시험감독관에게 제출하고
퇴실 가능
5.시험 결과는 시험 종료 후 즉시 공고함
6.신분증 각자 자신의 배정책상 위 좌편 상단에 시험감독관의 눈에 잘 띄게
놓을 것. 시험 감독관의 요청시 얼굴을 들어 '일치' 여부 검사를 받을 것
(대리시험응시자의 방지)
정확히 09:10분.
시험이 시작되었다. 한 6,7분께 시험지를 전체 수험생들에게 홀짝 방식으로
배포하였는데 난 그때 이미 문제를 보고 풀고 있었다.
1번은 타이어의 마모 정도에 관한 문제였는데 너무 애매해서 나중에 풀기로하고
(눈도장찍고) 넘어갔다.
5번 문제까지 눈으로 다 풀고. 정확한 답의 번호까지 폐부에 아로새겨놓고.
드디어 시험시작 시간으로부터 10분이 흘러가고..
2~5번의 확실한 정답을 OMR카드에 입력(마킹)하고 6번 문제 그 이후의 문제를
계속적으로 풀어나갔다. (맞다고 100% 확실시되는 정확한 답안은 OMR카드에 즉각
마킹했다. 이는 내가 2003수능 볼때에도 했던 동일한 방식이다)
우스울 정도로 쉬운 문제도 있었고 똥줄 바짝 탈 정도 그리고 열받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도 많았다.
난해하고 애매한 문제가 날 정말 괴롭게 했다. 수능때도 그러했다.
문제를 푸는 그 촉박한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제말 이번 한번만에 딱 붙어야 되는데.. 합격해야 되는데.'
제말 한번만에!
울산에서 상당히 먼 언양(읍)에 학과시험 다시 친다고.. 비싼 돈 내고..
또 오고 싶지는 않으니 제발 합격을!
마지막 45번~50번, 이 5문제는 도로상황에 철저하게 들어맞는(관련한) 문제였다.
쉽게 말해 도로상황 이해를 요구하는 참 애매한 문제였다.
고난이도의 문제였다. 장담하건데 가장 난이도가 높았을 것이다.
난해하기그지없는 마지막 5문제!
어쨌든 오늘내로 풀어야만하는 문제였기에 그 문제들까지 다 풀었다.
다 풀고 OMR답안지를 시험감독관에게 제출하고 퇴실했다.
(내 OMR카드 최상단엔 '9', '--'이란 두 개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계란형 원의 숫자 9는 홀수 문제지를 의미(홀수번호의 의미.
착석좌석번호 33번). --은 경찰청(국가기관) 번호를 의미했다.
퇴실한지 20분이 채 지나지않아 스피커를 통해 경찰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시험응시자는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아까 시험 친 사람 다 들어오고..
33번 좌석에 다시 착석했다.
이때 심정 진짜 처철하고 떨렸다. 이중 돈(응시료) 들어가지 않으려면.. 창피 안 당하려면..
반드시 반드시 진짜 정말로 반드시 합격해야만 한다.
제발 합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염원과 소원과 소망과..
등등
아무튼 죽는줄 알았다.
우린 경찰관1인이 재입실했을때 간이 쓸했다.
합격여부를 이제는 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서.
그런데 그 경찰이 다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재퇴실.
허망하면서도 웃겼다.
뒤편에선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기대를 한데서오는 웃음이었을 것이다.
난 그 때 느꼈다.
아 이런게 국가시험이구나 라는 것을.. 수능과는 차원이 다른 시험..
드디어 결정이 나왔다.
내가 받은 정부의 결정은 '학과시험 합격'이었다.
이 일기를 적고 있는 지금도 합격만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너무 기쁘다.
너무 기분이 좋아 미칠 지경이다.
우하하하하하하하!!!!! 너무 기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살아있다는 사실 조차
인식을 못할 정도다.
이 소식을 부모님과 막내이모님께 전해드리니 정말 기뻐하셨다.
나에게 축하의 인사를 말씀해주실때 나의 얼굴엔 어느새 승리자의 미소가
가득 베여있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3일자 기록(69쪽~74쪽)
오전 8시 30분.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어젠 학과시험 친다고 운전 못했었다. 내일 토요일에라도
할 마음으로 교육을 신청예약해두었다.
오늘 교육은 좀 특별했다.
기능변속구간에서 '처음엔 2단기어->3단기어->2단기어->최종1단기어'
기어 변속도 배우고
채점기계로 채점도 했다.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면 기계가 "합격했습니다"라고 크게 떠들어대는데 이날
나는 불합격 방송만 들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4일자 기록(74쪽)
오전 10시께 지정된 코스를 매시간(1시간) 마다 운행하는 학원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에 탄 교육생은 어떤 아줌마 한 사람으로 나까지 포함해 두 명이 다였다.
어쨌든 그렇게 15분간 달려 운전학원에 도착했다.
비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려 면허증 취득에 관한 뜨거운 열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긴장의 연속을 경험하는, 경험하게하는 이 곳.
지문인식 컴퓨터 기계에 출석카드로 입력. 지직.. 거리며 나오는
파란 종이를 받아들고 대기소로 향했다.
그 교육일시와 내용이 적힌 파란 종이를 강사들에게 전달하고 운전할 차를 지정받을때까지
기다렸다.
4~5분 여 뒤, 5번 소형화물차(포터)에 승차했다.
안경끼고 머리 내린 강사가 운전속에 동승(합승)했다.
강사의 '장내기능시험에 관한 주의사항'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디쯤가면 뭐가 나오는지. 어떻게 잘못하면 실격처리. 감점처리 되는지.. 돌발상황은
모든 걸 (운전) 중지하고(브래이크.정지) 비상등을 3초간 켜두고 있어라. 등
까다로운 규칙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강사가 운전한 차가 종료지점에 정차, 파란 불이 커졌다.
100점 합격이었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불합격 판정이면 붉은 등에 불이 켜진다고 하였다. 적색등 점멸.
다시 내가 운전석으로 옮겨타고.. 단독 운전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날 나는 초기 불합격 판정을 세번 연속 내리 연거푸 먹었지만 교육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땐 그 놈의 그 파란 불..
얼마나 사람 기분을 좋게하던지. 허허. 웃음이 다 나오네.
나는 지금도 그 생각한다. 행복한 지난날의 과거에 관해서..
지난 4일 목요일에 언양 국가시험장에서 본 학과시험을! 정말 그땐 운이 좋았다.
커트라인(합격선이)이 70점이었었는데.. 내가 받은 점수가 70점!
한 문제 당 2점이니 그 아찔한 상태에서 하나만 더 틀렸다면 68점. 70점 이하 점수니
바로 불합격 아니던가..
아,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간이 다 떨리면서 짜릿한 기분이 한껏 배가 된다.
시험 합격 때의 그 짜릿함이 그와 같다니. 허허.
어쨌든 학과시험 합격으로 자동차운전면허시험에 관한 곤란한 시름 하나를
덜게되어 다행스럽기 짝이 없다.
정말 그 합격소식은 내 일생일대의 쾌거아 아닐 수 없다.
쾌거다. 쾌거. 허허^^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5일자 기록(75쪽~76쪽)
견우님와 직녀님과 만나는 오늘, (예상대로) 비가 내린다.
이 비로 두 사람은 서로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행복한 축복의 비가 아닐수
없다.
오전 8시 30분.
자동차운전전문학원 내 장내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단독 운전이다.
이번 주 주말인 토요일에 장내기능시험이 있다.
필기시험(학과)과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데
한번만에(최초1회) 합격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면 망신의 주인공이
되는 건 물론 아까운 돈도 이중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아까운 돈의 실체는 검정인지료 35,000원.
도로주행시험 응시에는 1회당 200,000원이 드니.. 허..
간이 떨리고. 오장육부가 온전할리 없는 것이다.
이거야 원 심적부담감이 너무 커서 죽을 지경이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는 나.
어찌되었든간에 첫 관문이었던 학과시험 경우처럼 단 1회 응시로 합격을 받아내야한다.
이래야 만사가 편해진다. 어차피 따야할,내가 죽을 때가 되어 죽을때까지 소지해야할
국가가 인정한 운전면허자격증이다.
나는 지난 주 토요일 장내기능운전연습에사 이미 85점의 안정적인 득점으로 '합격의
짜릿한 맛'을 본 적이 있어 위안이 된다.
그걸 위안으로 삼고있는 나.
아 정말 운전면허증이 이렇게 따는데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 몰랐었다.
학과시험에다가 장내기능시험에다가 도로주행시험까지.
결코 쉽지않은 과정들이다. 어느 하나도 쉬운게 없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7일자 기록(80쪽)
오늘 오전 8시 20분.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 장내기능연습이 시작되었다.
이젠 완전 채점 체재로 바뀌었기 때문에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커트라인 스코어가 80점.
80점 이하는 괜찮지만 미만은 가차없이 탈락처리(방송으로 크게
"불합격입니다" 라고 욈) 되기 때문에 강사분들 보기에도
창피스러울뿐더러 내 자존심도 미숙한 나의 운전실력을 용인하지않으니
이래저래 나만 괴롭게 되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개나 소나 다 딴다는 자동차운전면허증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서 수차례 불합격되면서 이중삼중으로 돈 더 많이
지출해가면서 할 필요가 있나.
이런 말이다.
어차피 취득해야할 운전면허증이라면, 최초1회 응시해 1번만에 따 버리는게
편할 것이다.
그렇게 안되는게,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은게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장내기능시험을 이번 주 토요일 날에 본다.
검정인지료 35,000원내고 보는 '돈 드는 시험'이라 더 부담스럽다.
합격이면 두 번 세 번 말할 것도 없겠지만은 그 반대경우인 불합격때는
1.자존심에 큰 상처입고
2.강사분들 보기 창피하고
3.돈 이중삼중으로 들어가고
이래저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 정말 운전시험에 관한 남은 두 개 시험. 정말 1회 응시로 다 합격점 받고싶다.
내 간절한 바램이다. 제발.
참고로 오늘 장내기능연습에서 100점(감점 전혀 없는 무감점 점수)으로
합격의 맛을 봤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6.25일자 기록(82쪽~85쪽)
오전 8시 20분,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의 긴장과 재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자동차운전은 양면이 있는 것 같다.
한 면은 사고낼까봐 두려움에서 오는 긴장, 또 다른 한 면은 자신의 기술로 큰 차량을
움직인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재미.
재미만 있어서도 긴장만 있어서도 안될 것 같다.
긴장과 재미의 절묘한 조합이 자동차운전의 가치를 보다 드높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재미만 추구하면 안전사고 내지 십상이지않은가.
긴장만 있어도 두려워서 제대로 운전을 못하는 등 문제가 많다.
오늘 거의 다 80점 이상을 상회해 파란불(합격점)을 받았으나 한 가지 걱정되고 이해 안가는
부분이있다.
그 부분에서 항상 5점씩 감점되곤 했는데
두 번째 채점 지정코스인 '횡단보도 일시정지'
지켜야 할 수칙인 [횡단보도 일시정지 및 3초 시간] 다 지켜도
이 코스만 지나고 가면 00(100점) 에서 95(95점)으로 채첨 수치가 바뀌어져있으니
속앓이을 해야했던 나.
그 해결방도를 오늘 끝내 찾지 못하였다.
안타깝다.
운전학원 내에서 흥미로운 안전사고 하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안전사고를 낸 주인공은 내가 아는 할머니였다.
차량이 도로가 아닌 인도 격인 잔디를 타고 올라가는게 아닌가.
다시말해 잔디 지역에 차량의 바퀴가 타고 올라간 것이다.
이 안전사고를 목격한 강사들 놀라 헐레벌떡 뛰어와 할머니를 하차하게 하고
강사 자신이 운전석에 타고 할머니를 조수석에 앉히고 차량을 다시 도로로 돌렸다.
후진해서.
조수석에 앉으신 할머니. 척 봐도 두려움이란 감정을 가득 머금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안전사고를 낸 원인제공자가 자신이라는데서 오는 미안함과 무안함 그리고 두려움.
민망함이 아니라 대형사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
할머니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가 걱정되었으나 즉시 달려 갈 수 없었다.
당시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죄송하고 걱정되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9일자 기록(86쪽~87쪽)
어제 일기에서 두 번째 지정코스인 '횡단보도 일시정지'에서 자꾸 5점씩
지날때마다 의례처럼 감점되어 합격해도 만점인 100점(기계상엔 00으로 나타남)을 못 받고
95점, 90점, 85점, 80점 수준에서 머무르는게 다반사라고 말 한 적이 있다.
다시말해 이상하게도 거기만 가면 그렇다는 것이다. 꼭 5점은 반납한다.
거기만 문제없이 건너오면 100점 만점 받는데.. 만점 받기도 그리 어렵지않다는 말이다.
어젠 그 해결방도를 못 찾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알아내었다.
횡단보도 전방으로부터 일시정지 거리가 문제였다.
정지선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으면서 3초간 일시정지(정차)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오늘 이렇게 하니 끝까지 00점을 유지하였고 마침내 100점 만점을 받는 쾌거를 연출
할 수 있었다.
대단히 기뻤다. 실로 감격한 오늘의 영광이었다.
정지선으로부터의 차량 정차 거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처음 안 오늘.
장내기능시험은 금주 토요일인 12일에 친다.
제발 시험당일 오늘처럼만 오늘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걱정이 많다. 운전은 왜이리 한꺼번에 큰 돈이 드는 거야...
오늘 오전 8시 20분.
집에 오기까지(귀가시각 오전 11시10분) 3시간 가까이 운전학원에 있었다.
내일이 장내기능시험 당일이니 오늘의 장내기능연습이 마지막인 셈이었다.
그리 긴장되진 않았다. 그래도 기분좋은 합격의 정반대 경우인 지옥같은
불합격만 생각하면 지옥의 정문에 다다른 생각이 들어 싫다.
그런 생각 이런 생각하면 차를 몰았다.
학과시험처럼 내일 치를 장내기능시험도
단 한번만에 합격해 버려야 걱정 더 안해도 되고
속이 시원할 것인데..
아, 제발 그리만 되어 준다면,
거의 대부분 80점 이상 합격점을 받을 정도로 운전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나.
내일 막상 긴장하면 큰 일인데.. 도로아미타불이 되면 안된다.
오늘처럼만 되어라.
오늘처럼만, 그럼 볼 것도 없이 합격이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11일자 기록(92쪽~93쪽)
---------자동차운전면허시험의 두번째 관문, "장내기능시험" 합격!!!----------
2003.7.12.토(흐림) 자동차운전전문학원 교육이수 16일째
오전 9시에 일어났다(방학때 평소 기상시간).
일어남과 동시에 오늘 장내기능시험을 쳐야한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이 생각이 들면서 나의 심리는 '무의식->불안'상태로 급속도로 바뀌어갔다.
이 상태는 장내기능시험을 끝마칠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시험전 정말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구토할까봐 아침식사도 먹지 않았고, TV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이렇게 불안한 1시간 40여분을 보냈다.
오전11시에 운전학원차에 몸을 실었다.
왼팔엔 외삼촌께서 선물해주신 스위스시계를 착용하고
집 열쇠를 챙기고 신원인식카드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민등록증을 깜빡잊고 준비하지 않았는데 시험 직전에 이게 문제가 될 줄이야..
미처 생각지 못한 나의 명백한 불찰이었다.
11시 17분,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도착, 정문을 통과해서 바로 남자화장실로
직행했다. 이유는 (당연히) 생리적 현상 때문이었다.
큰 일을 앞두고 유난히 긴장을 잘 타는 내 성격상 일단 이 중대문제를 해결해야했다.
11시 59분까지 강의실이 있는 2층에 있었다.
강의실에 있는 동안 몹시 흥분되고(긴장되고) 두려웠다.
이번 장내기능시험에 불합격하면 어떻하나? 란 불길한 생각에 정말 괴로웠다.
불합격 상황,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난 이때 화장실에서 주운 신문지(Book섹션)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황석영삼국지, 지전 등의 신문에 실린 소설을 구독하면서..
오후 12시 10분 경, 난데없이 강사가 2층에 올라와서는 우리들(시험응시자)을 강의실로
불러 모았다.
'앞지르기'에 관한 비디오테잎을 들어보자면서,
가뜩이나 콩닥콩닥 불안정한 마음에 한가하게 비디오나 볼 여력이 없었다.
비디오나 보고 있지니 앞지르기 하자 말라는 비디오의 명령이 영 먹혀들지 않았다.
'걍(그냥) 빨리 시험 치지'
'빨리 시험 쳐 버렸으면'
이런 생각만 계속 들었다.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아침식사를 안 먹은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의 심리적 특성상 심각하게 걱정되는 일이 있을 경우 그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않는다.
밥 안먹은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10분간의 비디오시청이라는 무료한 시간을 어이없이 보내고..
이어서 강사의 장내기능시험 주의사항 교육이 이어졌다.
화이트보드에 도로(지정코스)를 직접 그리곤
조목조목 자세한 '주의'나 '경고'가 이어졌다.
1.곡선코스를 빠져나올때 맞은 편 차량에 주의하라.
2. 9~10군데의 돌발상황을 잘 모면하라(대처하라)
3.방향전환코스에서도 1의 경우처럼 행동하라(일시정지)
4.평행주차 코스에서 100점, 90점 이상 고득점한 차량은 반주차만 하여도 된다
(완전주차 해도 됨, 되도록이면 하지 말 것)
등의 주의사항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신분증(주민등록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때 앞이 캄캄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왜냐하면 지참을 안 했다는 걸 그때서야 비로소 느꼈기 때문이다.
시험응시자에겐 반드시 주민등록증 등의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내가 이른 따르지 않은 것이다. 준비를 안 한 것이다.
강의실에서 주의사항을 얘기하던 강사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강사가 들려주는 답;
아래(1층)에 내려가서 여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해결책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당황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즉시 1층으로 내려갔다.
어제 여직원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었는데..
그걸 따질 겨를도 없었다. 이야기 했다.
여직원은 얼굴로는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는 컴퓨터 입력창에 내 이름
석자 '엄용훈'을 입력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프린터기를 보니 A4지 한장이 나왔다.
그 종이엔 내 복사사진, 이름, 주소 등의 신상정보가 세세하게 출력되어 있었다.
이 종이가 일종의 증명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A4지를 들고 바로 '대기소'로 향했다.
대기소엔 이미 시험응시자들이 와서 앉아있었다.
속이 혼란한 와중에 인원을 세어보니 대략 2~30명 정도가 있었다.
아까 받은 그 대체신상증명서를 시험감독관한테 보이니 그녀의 사인이 떨어지는데 O.K였다.
그 순간만큼 여 시험감독관이 예뻐보였던 적도 없으리라.
나의 순번은 4번째였다. 한국인들이 무의식/의식적으로 기피하는 숫자 '4'를 주제로
긍정/부정 의미를 판단할 겨를도 없이 4번째로 차에 오른 나.
4번째로 출발하는 것이었으니 앞서 3명이 시험을 치고 있었다.
다시말해 '장내기능시험응시' 중이었다.
첫번째 시험응시자의 승차 차량이 종료지점(출발점) 진입시 방송에서 "1번 합격하셨습니다"라고
떠들어대는 것으로 봐서 1번 응시생은 합격이 확실한 것 같았다.
순간 부러운 마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출렁거렸다.
내가 탑승한 4번 차량 출발!
제1코스인 [출발 및 출발시 방향지시등 작동] 코스.
차량에 "4번 차량 출발하십시오." 란 경쾌한 방송 소리와 함께 채점기계에 파란 불이 요란하게
들어왔다.
채점 기계라 함은 채점기이고 이 채점기의 모양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상층부는 적색(붉은색), 하층부는 파란 불(남색)의 색깔을
띄고 있었다.
신호등에서 파란 불이 통행을 허가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불빛(녹색)으로 용인되 듯..
아참. 잘 못 적었다.
하층부 색깔이 녹색이었던 것 같다. 확실치 않지만.
아 정말 헷갈리네.. 오늘 시험 쳤는데 파란색인지 녹색인지 분간을 못하다니. 헐..
아무튼 그렇게 생겼다.
하층부에 종료지점 진입시 불이 들어오면 합격을 의미하여 이는 100점 만점 중 80점이상
득점해야 가능하다.
파란 불이 출발 후(2초후 정도) 꺼지면 좌측 방향지시들 켠 것을 즉시 꺼야했는데 난
그렇게 했다. 출발선을 통과한 후 좌측 방향지시등을 끄지 못하면 5점이 감점된다.
나는 이를 요령껏 피한 것이다. 사실 그건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깊이 설명하거나
자부 혹은 자랑할 게 못되는 것 같다.(^^;;)
제2코스인 [횡단보도 일시정지 및 3초간 유지] 제1 마의 코스
나에게 있어 마의 코스였다. 항상 5점을 어이없이 반납해야만했던 코스.
앞 범퍼가 정지선을 넘지않고 정지선에서 20Cm떨어진 곳에 정지하였다가 3초 후에
출발하였다.
정지선으로부터 20Cm 앞둔 전방지점에서 정지 한 것은 나의 체험에 의한 것이었다.
어제를 제외한 나머지 연습날 거의 매번 이 제2코스에서 5점씩이나 아까운 점수를
감점당하는 수모를 겪어왔었다. 이유는 정지선으로부터 비교적(2~30Cm에 비교해서)
멀리서 정지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의 코스도 무사히 지나갔다.
채점기계는 100점을 의미하는 00을 보이고 있어 나를 안심시켰다.
제3코스인 [경사로에서의 정지 및 출발] 코스.
오르막 경사선에서 3초정도 정지하였다가 출발했다.
정지할때 클러치를 서서히 먼저 밟으면서 브래이크를 거의 동시에 밟았다.
경사로니까 오르막에서 올라가야 했다.
클러치를 반 정도만 떼면서 차체가 흔들릴때 브래이크를 완전히 뗐다. 클러치고 완전히
떼고, 차량은 무난히 올라가 다시 내리막에 접어들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3코스도 무사히 지나갔다.
제4코스인 [굴절 코스 통과]
1진입시 클러치를 먼저 밟고 브래이크도 완전히 밟았다.
거의 완전히 정차한 것이다.
2로 진입하기 위해 핸들을 왼쪽으로 완전히 꺽고 노란선에
어깨선을 맞추고 난 뒤, 그 상태에서 전진했다.
전진 한 뒤 다시 오른쪽으로 두 바퀴 정도 핸들을 돌리고 계속 전진한 뒤 오른편의
노란선에 어깨를 맞춘 뒤 정지했다.
3으로 진입하기위해 오른쪽으로 핸들을 다 돌린 뒤에 X 지점에서 다시 핸들을 왼편으로
돌려 차 바퀴 바로하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무난히 통과!
제5코스인 [교차로 통과] 코스.
여기선 신호등의 지시만 잘 따르면 되었기에 다른 여러 코스 중 제일 쉬웠다.
적색 신호 시 정지하였다가 녹색 신호시 주행 시작했다.
감점 없고 무난히 통과.
제6코스인 [곡선코스 통과] 제2 마의 코스
지정시간은 '2분 내'인데 나는 50초 안에 다 돌았고 5점씩 점수 갉아먹는
검지선 접촉도 안했다. 여기를 '제2의 마의 고개'라 부르고 했던 나.
어제에 이어 오늘 정복하니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이 6코스에서 5점은 감점될지 알았는데 감점은 커녕 무난하게 통과하고 나니 왠지 이런
기분이 들었다.
'아, 이대로 가면 합격하겠는걸' 기분이 좋았다.
제7코스인 [교차로 통과]
여기도 제5코스에서와 같이 신호등의 지시에 충실하면서 직진만 하면 되는지라
누워서 떡먹기였다.
무난하게 통과.
제8코스인 [방향전환 코스 통과]
여기서 후진기어를 넣어 /////(그림 상의 붉은색 빗금친 지점) 지역안에 잘 주차했다.
경쾌한 "삐~" 소리를 들으며 감점없이 무난히 통과.
2에서 왼편 노란선에 어깨선 똑같이 맞추어 정지하였다가 오른쪽으로 핸들 반 바퀴 돌려서
파란색원의 잔디 지역 앞까지 전진하였다가 멈춘 후 왼편으로 핸들 완전히 꺽고 후진기어를
넣는다.
오른편 백미러와 앞 유리 보면서 차량이 바로 되는지 주시했다.
차량이 일직선으로 바로 되었다 싶으면 정지하여 뒤로 약간 전진해 뒷편 흰선을 넘으면
"삐~"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들려 멈추었다.
후진 기어를 다시 1단으로 넣고 아까 오른편으로 핸들 두 바퀴를 푼 핸들 상태에서 다시
오른 편으로 핸들을 돌린 후 이 코스에서 완전히 빠져 나갔다.
잘 나가는데 갑자기 돌발상황이 온 것이 아닌가.
채점기계에 빨간 불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허걱;;;;;
그 불빛이 내 안구에 미처 닿기도전에 나는 즉시 정지하여 비상등을 켰다.
예고없이 무섭게 찾아온 '돌발'이 끝난 후 비상등을 끄고 다시 주행했다.
돌발상황을 잘 넘긴 것이다.
제10코스인 [기어변속 코스]
시작지점에서 1단에서 2단으로 기어변속 한 후 3단에서 2단으로 기어 변속하여 통과했다.
어제 장내기능연습에서 중간에있던 썩은 나무 지점에서 2단에서 3단으로 긴급히 기어변속했다가
즉시 다시 2단으로 변속. 클러치에서 완전히 발을 뗐다.
이 지점에서 정지한 후 기어1단으로 변속하고 출발했다.
이 코스에서도 여전히 100점을 의미하는 00이었다.
너무 편안했다.
이대로만 가면 합격이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샘 솟듯이 쏟아져나왔다.
주체하고 싶지 않았다^^
제12코스인 [평행주차 코스]
주차공간에 전.후진으로 진입하여 전.후 확인선을 동시에 접촉 한 뒤 안쪽 연석선과
나란히 주차(3초 정도) 한 후 전진으로 검지선 접촉없이 출발했다.
여기서 유일하게 10점 감점 당했다.
이유는 안쪽 연석선에 차량의 오른쪽 앞/뒤 바퀴가 나란히, 동시에 접촉해야 되는데
그것이 되지 않은 것.
한창 오른쪽으로 완전히 핸들 틀어서 후진기어 넣어서 후진한 후 사각 지점에사 정지,
다시 왼편 2바퀴 핸들 크게 돌려 차 바퀴 원래대로하여 후진해서 확인선 접촉하면
"삐~" 소리가 울리는데 그 소리 듣고 즉시 정차(이거 안하면 5점 감점),
핸들 왼편으로 완전히 돌려 주차한 뒤,
다시 나갔다.
어쨌든 이 코스에서 10점을 순간적으로 잃고 이 코스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득점점수 90점이었다.
10점만 더 잃지 않는다면 무난히 합격하는 것이다.
제13코스이자 마지막코스인 [종료시 방향지시등 작동]
종료지점 통과하자마자 바로 우측 방향지시등(오른쪽 깜빡이) 작동했다.
내가 이 장내기능코스에서 해야할 기술은 다 한 것이다.
후회가 없었다. 내 운전에 매우 만족했다.
이 모든 코스를 통과하고 이제 결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결과는 "엄용훈 당당히 합격" 이었다.
장내기능시험 100점 만점 중 득점점수 90점.
90점 득점. 80점이 커트라인(합격선인 동시에 불합격선)이니 무난하게 합격한 것이다.
제12코스에서 정말 아깝게 10점을 감정당하며 100점 만점의 기회를 놓쳤긴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강사의 지시로 출발선을 앞둔 지점에서 정차하여 기어를 중립 위치에 놓고 안전벨트를
해제(풀고) 한 후 하차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시험감독관으로부터 응시원서를 가볍게 받아
챙기고 사무실로 직행했다. 거기서 연습면허증 발급을 위해 증명사진 1매 주고
2,000원을 내었다.
거기서 아주 밝은 얼굴로 나왔다.
너무 기뻤다.
자동차운전면허시험의 두번째 관문인 장내기능시험의 무난한 합격!!
너무 기쁘다. 너무나.
부모님, 막내이모님, 미야이모님(5번째이모님)께서도 나의 시험합격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셨다.
그분들에게 너무 감사한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12일자 기록(94쪽~103쪽)
--------------------------------------------------------------
2003.7.14.월(맑음) 자동차운전전문학원안가도 되던 날 ^^;;
모처럼 맑은 날씨를 보인 오늘.
오전 8시 정각에 병영농협 건물 앞에서 자동차운전학원 봉고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혼돈스러웠다.
지난 주 토요일날 장내기능시험을 합격하고 응시원서 들고 사무실로 올때 여직원이
"목요일날 연습면허증 받으러 오세요. 돈 200,000원 들고 오시구요."라고 한 말은
분명 기억이 나는데..
오늘 월요일부터 학원에 가봐야 되는지 는 도통 모르는 상황이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오늘 성남동(울산광역시 중구 소재)시내에 볼일 볼거도 있고 해서
운전학원에 갔는데..
나의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한 느낌이 적중했다.
오늘 갈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
목요일날 가는 게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회했다.
직접 오지말고 집에서 전화 한통 해보았더라면 하고.
학원에 도착 하기 전, 봉고 차량 안에서.
이 차량에는 운전기사님을 제외하고 총 3명이 타고 있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3명.
두 명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다.
3인의 신분은 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 인 듯 했다.
남자는 자고 있어 일치감치 나의 관심권 밖으로 떨어져 나간 반면에 여자분은 정신이
말짱한 상태여서 나의 호감을 샀다. 호감을 불러 일으킨 셈이다.
그녀의 두 손엔 '운전면어 학과시험 예상문제집'이 꼬옥 쥐여져 있었다.
아직 시험엔 응시하지 않은 듯 했다.
학과시험응시예정자임이 분명했다.
대개 수험생들이 학과시험예상문제집을 꼭 준비해다니기 때문인데, 초기엔
나도 그러하였다.
그러다 학과 시험 하루 전말 밤에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문제집에 눈과 코를 박았었다.
일종의 벼락치기 공부였던 셈인데 주위의 우려와 시기 이른 위안, 포기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전략'이 잘 먹혀서 단1회 응시 만에 합격이란 짜릿한 괘감을 느꼈었다. 음...^^
지금도 그때 생각만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흥분되고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니깐..하하.
지난주 주말에 본 장내기능시험 합격의 기분도 그랬다.
합격을 확인한 상태에서 하차할때의 그 짜릿하고 흥분된 쾌감과 심경.
아. 정말 대한민국 축구4강의 묘미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당시 나의 감격은 대단하였다.
지금도 감격의 뜨거운 여운은 아직 남아 숨쉬고 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14일자 기록(105쪽~107쪽)
----------------------------도로주행교육등록하다-----------------------------
2003.7.17.목(맑음) 자동차운전전문학원 도로주행교육 등록
아침 8시.
병영농협 정문 앞에서 운전학원 통원차량을 탔다.
타고보니 여자분 한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지난번에 본 그녀였다.
8시 17분에 운전학원 도착했다.
도착해서 배가 아파 화장실로 직행한 걸 빼면.. 오늘 해야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만원을 완납하고 영수증 받고, 도로주행교육 등록하고 다음주 수요일부터
교육한다는 직원의 설명을 다 듣고 일이 끝났다.
이십만원 낼 당시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운전학원 통원차량타고
화봉동(울산광역시 북구 소재)에 내려서 시내버스를 기다릴때
돈이 아깝단 생각이 좀 들었다.
집으로 갈땐 49번 시내버스를 탔다. 49번 시내버스.
익숙한 번호였다.
고교3년의 세월동안 46,48,49번이 아니면 울산농소고등학교(인문계열/본인은 02회졸업생)
에 갈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이젠 다 추억이 되었다.
(참고로 49번 시내버스는 현재 없으며 동일 노선으로 다니는 시내버스는 존재합니다.
번호만 변경된 것으로 이는 울산시내버스번호 변경정책에 의한 것입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17일자 기록(114쪽)
오늘 나의 최대일과는 단연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의 도로주행이었다.
지난 주 목요일인가 지지난주였었나 하여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주행교육을 오늘에 할 것이라 예약해두었었다.
아침 7시 40분께. 어머님의 깨우심으로 잠이 깬 나.
머리 뒷편이 초라하고 볼품없게 눌려있는 지도 모르고 여느때처럼
머리 안 감고 나오다가 어머니께 딱 걸렸다.
덜미를 잡혀 하기 싫은 마음 잔뜩 품고 나와 머리 감고 나온 뒤엔
어찌된 영문인지,
기분이 좋아져 젤 까지 바르고 막내이모님께 머리를 빗겨주시기까지..
아침이 참 기억에 남는다. ㅎㅎ^^
아침밥을 먹지 않아 배고픔을 이기기위해, 양치질을 하지 않아 강사들을 상대로
고약한 입냄새를 풍기지 않기위해 24시 편의점에 들러 '사과향 센스민트' 1개를
300원 주고 샀다.
통원차량오는 길목에 나가니 나보다 먼저 할머니께서 나와 계셨고 우리 둘의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할머니도 지난주에 아니 지지난주에 본 장내기능시험에 합격하신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선 나에게 오늘부터 도로주행교육 나간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말은 신선한 충격으로 들렸지만 이내 이해가 되었다.
실력있는 신세대 할머니 아니던가.
운전학원도착 시각이 아침 8시 17분.
도로주행 배차증을 끊고 운전학원 정문에 위치한 컨테이너 박스 건물로 향했다.
장내기능 교육은 말 그대로 장내에 위치한 대기소에서 이루어지더니(대기)
이젠 실제 도로에서 운전교육하는지라 밖에서 하는 모양이었다.
운전학원등록하고 필기(학과)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젠 다 추억의 산물이란 말인가.
이 도로주행교육만 빼고..
그때 밖에 주차되어있던 도로주행용 교육차량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오늘은 정말 잘 보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큼지막하게 잘 보일 수밖에.
나의 도로주행교육 담당 강사는 마--이란 30대 중반의 아저씨였다.
그 강사는 대뜸 나에게 내 이름을 부르더니 바로 '승차'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그는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는 차량을 도로에 올려놓았고.. 도로주행 강의가 시작되었다.
"U턴 하고는 여기서부터 시험코스인데 A코스이다."
"여기서부터 기어3단으로 변속해라."
"여기서부터 기어4단으로 변속해라."
"멈춰라. 클러치 먼저 밟고 브래이크 밟고."
"오르막에서 주행 시 브래이크, 클러치 꽉 밟은 상태에서 반클러치 만든 후 차체가
떨릴 즈음에 재빨리 브래이크에 놓여져있던 발을(오른발) 가속 페달(액셀레이터)
로 옮겨 출발해라."
"코너(부분)에서는 뒷차의 앞지르기(추월)을 허용해주지 마라."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의 승차감 차이(주행의 차이)를 알아둬라."
"어디어디서는 기어2단으로 하고,.. 3단으로 하고,.. 4단으로 하고..
정차 시 기어 2단 혹은 중립에 놓아두어라."
"좌측 깜빡이(왼쪽 방향지시등), 우측 깜빡이(오른쪽 방향지시등) 넣어라.
꺼라. 켜라. 비상지시등 켜라."
등등. 그의 강의는 상세하면서도 상당히 집약적이었다.
난 대번에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후 아주 편안해졌다.
그는 실수에 대해서는 조수석에 설치된 브래이크를 먼저 밟는 등 자신과 나의 안전을
추구하면서도 엄하게 행동했다.
운전미숙으로 인한 실수에 대한 감사의 경고, 그것은 시의적절한 행위였다.
나는 도중에 그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저는 로또복권에 -등에 걸린 적이 있어요, 당첨금은 ----,---원이었죠.
라고 말을 했는데..
이루 이 당첨 사실에 대한 그의 부러움은 지속되었다.
도로를 달리면서 느낀 사실은 무서운 반면, 속도감을 만끽 할 수 있어 재밌다는 거였다.
공포감과 짜릿함 그리고 우월함이 상존된 도로주행교육이란. 정말 죽여줬다.
아참. 도로주행에서 잊지 못할 일 하나 더.
중간 기지(강사들만의 휴식 공간) 인 듯한 어느 마을의 노인회관 건물 옆 주차장에 강사의
지시로 주차했다.
처음에 난 무슨 일인가 해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알고보니 자신들만의 암묵적인 휴식시간인
듯 했다.
처음엔 불만이었는데 이후 아무렇지않게 그걸 나도 즐겼다.
강사의 경지에 오른 것이던가.
도로주행교육은 두어 시간 뒤인 오전 10시께 끝이났다.
다시 차를 몰아 운전학원 주차장에 세워두고
오전 10시 20분 쯤에 사무실에 설치된 신원인식기에 지문을 대고 카드를 긁은 뒤에
통학용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3일자 기록(130쪽~134쪽)
운전학원에 도착해서 배차증을 끊었다. 그리고 정문의 컨테이너 박스로 가서 대기했다.
나를 담당한 마 강사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침부터 싱글벙글이었다.
그가 나를 보며 대뜸 하는 소리가.
"내가 로또하면 걸리겠냐?"
어제 내가 한 소리를 듣고 하는 말이구나 하고
바로 알아차린 나는 해맑은 미소로
"그럼요." 에 이어
"충분히 가능성 있지요." 라고 화답하니
그는 대만족한 듯 더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로주행교육의 서막이 올랐다.
어제와 달리 운전석에 오른 나.
자리가 신체에 적당한 지 아니한지(운전석의 좌석이 내가 앉았을 경우
편한지 불편한지 여부를 확인 후 조절)
확인해서 맞추고, 안전벨트 착용하고,
클러치, 블레이크 꽉 밟은 상태에서 시동을 걸었다.
핸드 브레이크는 물론 그 전에 내렸고..
같은 교육을 받는 차량 4대가 앞서 떠나고
그 뒤를 따라 주행을 시작했다.
U턴을 늦게한 이유로 강사의 핀잔을 들았지만 그 이후엔 무난하게 잘 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북부순환도로를 7~80Km로 달렸다.
이 도로를 계속 타고 서동(울산광역시 중구 소재)을 지나 울산동중학교(울산광역시 중구 소재)
를 지나 중구청을 지나 종점인 성안(성안은 지역명이며 울산광역시 중구 소재)에 다다랐다.
여기까지는 차를 운전하는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이 오르막
도로에서 적신호 등의 이유로 정차한 후 바뀐 신호인 녹색신호에 따라
재출발(재주행) 할때의 순간반응에 의한 민첩성 요구가 문제였다.
브래이크, 클러치 다 꽉 밟은 상태에서 브래이크는 계속 밟고 있고 클러치는
반만 뗀 상태에서(반클러치) 재빨리 브래이크에 있던 오른발을 오른쪽의 가속페달(액셀레이터)
로 옮긴다.
이러면 주행이 문제없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잘 안되어 강사의 눈치와 핀잔을
말없이 들어야했다.
도로주행교육 담당 강사의 지시로 성안에 들어가서 어제 간 그 '중간기지'로
가기위해 내리막 비포장도로길을 달렸다.
확실히 포장도로의 장점이 더 큰 것 같았다.
비포장 길은 한번 체험하고 나면 전신이 다 아프고 쑤시니 그 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마 강사도 나에게 그 점을 주의시키지 않던가.
중간기지에 들러 대단원의 막을 내림과 동시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하이얀(하얀) 진돗개 한 마리와 아웅다웅하며 놀고 있었는데(시골 마을의 개.
묶여있었다)
난데없이 강사가 끼여들어 난 자리를 내주었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4일자 기록(135쪽~139쪽)
아침부터 굵은 장대비가 내려 걱정을 많이 했다.
비오는 날은 비가 오지않은 날에 비해 길이 많이 미끄러울 것이 자명한데
운전초보인 내가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비 엄청 오는 날에 하는 자동차 운전.
나를 겁주기엔 더할 나위없이 충분한 양의 비였다.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 도착하여 사무실의 시계를 보니 08: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주행하는 나로선 다른 교육생들처럼(학과시험응시예정자와 장내기능시험응시예정자)
승차 확인이 가능한 시간대를 기다려 카드와 지문을 이용해 오늘 자동차운전교육을
받았음을 컴퓨터 시스템에 인식(확인) 시켰다.
쉽게 말해 교육생 신분지문인식 기계에 운전학원에서 받은 하얀색 카드를 긁은 것이다.
이러면 기계에선(기계의 스크린 화면에서) 운전학원등록할때
학원측에 제출했던 내 증명사진과 '엄용훈'이름이 뜨며 이내 "승차하십시오"란 성우의
음성이 들린다.
대개 여성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라 기계에서 들린 음성도 여성 성우가 내는 것이었다.
경쾌했다.
어쨌든 기계가 승차를 권고하니 차를 타야했다.
도로주행 교육생과 도로주행 당담강사가 대기하는 컨테이너 박스(도로주행 대기소)
로 갔다.
거기 가니 역시나 나와 안면이 있는 마 강사가 소파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
그 강사가 대뜸 나를 보며 하는 소리.
역시 로또복권에 관한 것이었다.
강사 왈.
"내일은 무슨 날?"
내가 주말 혹은 토요일이라고 답하자 강사는 아쉬워하며 다른 의미있는 답을 요구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로또복권 추첨일이구나'라고 대번에 직감하고
"복권 추첨일요."
이러한 나의 답에 강사는 반 만 맞다며 확실한 답을 다시 요구했다.
이에 나는
"로또복권추첨일요!" 라고 답했다.
강사는 나의 마지막 대답에 대만족한 듯 허허하고 웃으며 미소를 밝게 지어보였다.
이윽고 강사의 부가적인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그 태반이 "내일 몇번 몇번이 걸릴 것 같냐?"
등의 미래의 불확실성을 내포한데대한 해답을 구하는 질문이었다.
별 도리가 없어 긍정적인 대답만 강사에게 들려주었더니 대단히 흡족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강사가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강사는 현재 자신의 직업인 '도로주행 교육강사'에 대해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등 평생직업이 아니라 일시적 직업임을 분명히 밝혔다.
도로주행 강사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늙은 강사가 창문 밖과 문 밖을 연신보며
한탄해댔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늙은 강사..
비가와서 시원하기도한 반면 교육생들이 비에 겁을 집어 먹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우두머리가 교육 시작에 주저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니 부하들도 안절부절..
이때 구원군이 나타났으니.. 바로 마 강사였다.
마 강사의 천연덕스러운 말 한마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죠. 뭐"
"갑시다."
젊은 강사의 흡인력은 무시못할 가공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기운차리더니 다른 부하들을 독려하는게 아닌가.
난 이를 보고 중국 삼국시대 촉국 황제 유비와 그의 충직스러운 부하 상산 조자룡이
떠올랐다.
적절한 비교 소재들이었다.
어제와 같은 10호 차량에 승차하니 때가 08:37분이었다.
평소같으면 7분 빠른 08:30분에 도로주행교육을 시작했어야 했다.
비가 금같은 교육시간 7분을 앗아간 것이다.
앞의 차량이 줄줄이 도로에 올라 반대방향으로 가기위해 U턴을 시도했다. 나도 했다.
U턴 한 뒤 재빨리 도로상의 2차선에 정위치하고 기어를 3단으로 변속하여
가속페달(액셀레이터)을 힘껏 밟았다.
차가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역시 사람보다 치타보고 확실히 빠른 차였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동차를 많이 타나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거 하고 차 타고 가는 거 하고 힘과 시간에서 엄청 차이나니까.
시속 40Km가 되자 강사는 기어 4단 변속을 지시, 이에 따랐다.
소형화물차에서 최고기어가 5단인데, 1단계 모자란 4단이니 상당히 빨리 나아갔다.
마음속으로
'5단이면 비행기겠네..'
'차 아예 날라가겠네'
라 여겼다.
언젠가 한번 강사에게
"기어 5단으로 변속하여 도로주행 해봐도 되나요?" 라고 용감하게 물은 적이 있었으나
강사는 당연한 관행인 듯 절대로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돌아온 답이
"너 차 사면 네 차로 그렇게 해라."
이 소리를 들으니 맥이 탁 빠져 다시는 동일한 부탁을 반복하지 않았다.
강사는 비의 여파와 파장이 걱정되는 듯 운전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적절한 수준으로
감속할 것을 지시했다.
실례를 들면 이랬다.
"기어 4단이면 그보다 저단기어인 3단 혹은 2단으로 저단변속하고, 시속 7~60Km이면
4~30Km로 감속하여 주행하라"
또 조수석에 착석 중인 강사는 자신의 자리에도 운전석처럼 동일하게 설치되어있는
클러치, 브래이크(가속페달인 엑셀레이터는 없음)를 밟지는 앉았으나 계속 발을 살짝 들어
올려놓고 있어 안전사고 발생 우려시, 즉각 밟을 것임을 시사했다.
나는 이것을 두고, 이같은 강사의 월권 행위를 두고 운전자인 교육생의 신성한 운전권을
침해하는 강사의 부적절한 저해 행위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바뀐 면에서 생각한 건 다음과 같다.
사망사고를 두려워하는 강사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굳이 사망사고까지
가지 않더라고 안전사고 라도 말이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5일자 기록(141쪽~147쪽)
맑은 가운데 대체적으로 흐린 날씨를 보인 오늘.
예정대로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 도로주행 교육을 받았다. 1일 2시간 씩.
도로주행 시험은 내일 모레인 30날일 친다.
수요일날 예정된 마지막 시험. 이 최종시험이 자동차운전면허증 소지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학과시험, 장내기능시험에 이어 세번째이자 마지막시험인 도로주행시험.
장내기능시험때에도 35,000원 검정인지료를 내었었다.
이 돈을 도로주행시험때도 내야 한다.
시험응시료 200,000원과 함께.
무슨 자동차운전에 들어가는 돈이 그렇게까지 비싸나 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운전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동차운전면허증을 손에 거머쥐게 될때까진 약 6~70만원에 달하는 큰 돈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실이다. 장래에 도로교통 관련법이 또 어떻게 변경되어 인하될지 인상될지
모르지만 현행은 그러하니 어쩌겠나.
오늘의 도로주행교육. 시험대비 도로주행이었다.
시험 코스가 두 개인데 A, B코스.
이 시험코스의 선택권은 전적으로 수험번호에 있다고하니 그에 따를 수밖에.
홀수는 A번호라 하고 짝수는 B코스라 하였다.
두 코스 다 용이한 편이라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으나 긴장, 실수의 발생 여부가
자뭇 걱정된다.
물론 이 두개의 부정적인 것들도 잘 처리하면 되긴 하지만..
시험을 앞둔 사람의 긴장 섞인 마음. 이걸 누가 어쩌겠는가.
전지전능한 신이라 하여도 무리일 것이다.
어쨌든 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30일 수요일 시험당일 실수없이(실수도 용납안된다)
잘하여 당당히 합격해야 한다.
그 짜릿한 합격의 기쁨을 당당히 그리고 한껏 맛보아야 한다. 반드시!!
평소 배운 대로만 잘하면 문제없이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험이든지간에 다 그럴 것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건 행정고시건 외무고시건 기술고시건 간에 말이다.
노력만 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게 사람의 삶 아니던가.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8일자 기록(152쪽~153쪽)
오늘 자동차운전전문학원에서.
내일이 도로주행자체시험 당일이므로 오늘의 연습이 진짜 마지막이었다.
시험코스(A, B코스 이렇게 두개 있음) 만 주행했다. 어제와 오늘.
담당감사인 마 강사님도 아쉬운 듯.
그리 밝은 인상은 아니었다.
난 생각했다. 참 좋은 도로주행 강사였는데라고.
실로 그랬다.
나의 운전미숙으로 인한 실수에 대해 도가 지나치지 않게 적절하게 반응해 주었고
능숙하게 했을때엔 그에 상응하는 사탕(칭찬)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도가 지나치지 않게 적절한 반응이란 무턱대고 무지막지하게
비난을 퍼부어대는 등 수준낮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도로주행 교육이 거의 끝나갈 즈음 강사의 지시로 쌍용 아진 APT(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상가에 잠시 들렀다.
그는 하차 후 떡을 샀다.
아마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이 떡을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마 강사는 운전학원 진입 후 시동끄고 내가 막 내리려할때 마지막 '주의사항'을 간략히
일러주었다.
"승차시 반드시 운전석 좌석 알맞게 당기고"
"핸드브레이크 해제하고"
"기어 2단 넣고 출발하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의 마지막 주의사항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내 가슴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정말 고마운 강사님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합니다. 나의 강사님. ^^
아, 이제 내일 드디어 도로주행시험일이다.
단 1회 응시로써 딱 합격해 버려야 만사가 편한데..
그렇지 않으면 자꾸 안 써도 될 많은 돈이 들어가니 이거야 원..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편 무서워지기도 한다.
"평소 배운대로 한다면 무난하게 합격할 것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체험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던가.
사실.. 그래도 내 마음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불안하기만 하다(합격이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지만 생각 자체도 안해도 되지만)
불합격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이것이 나를 심히 곤혹스럽게 한다.
이 생각때문에 매 초마다 무서운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다.
마음을 아무리 크고 당당히 먹어도 이 불안감만은 어쩔 수 없으니, 참 이상하지?
허허...
자꾸 내가 내 마음을 위안 시킬 수 밖에.
오늘 운전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때가 오전11시였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7권 2003.7.29일자 기록(155쪽~157쪽)
---------자동차운전면허시험의 마지막 관문, "도로주행시험" 합격!!!----------
2003.7.30.수(맑음) 도로주행시험 당일
어머님의 재촉으로 잠에서 깨어나니 07:30분이었다.
일어나면서 '오늘이 바로 시험날'이란 생각이 팍 하고 스쳐지나갔다. 순간 긴장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합격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새롭게 들기 시작했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무척 컸다. 불합격해도 재시험(이수), 재재시험(삼수)에서 돈이
들어가지 않는 그런 시험이었다면 부담감은 확실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러하던가.
재시험에 들어가는 돈이 최초시험에 들어가는 돈과 같으니.. 이거야 원.
최초지출에 지출되는 돈이 시험응시료 200,000원 + 검정인지료 35,000원으로
도합 235,000원인데 이 큰 돈이 불합격해서 재시험응시료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될 것이다. 불필요한 이중 지출비인 것이다.
최초시험(단1회) 응시에 바로 합격해버리면 재시험에 응시할 필요도 없으므로
그 돈은 들어가지 않게 된다.
합격의 반대급부가 너무 크고 위험해서 부담이 더 컸다.
오직 합격만이 살 길이었다. 단 한번만에 합격해야 내가 편안해진다. 내가.
기왕에 합격해버려야 할 성질의 것이라면.
아무큰 위의 생각을 가득 지니고 세안하고 머리 감고 머리카락에 젤 바르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 막내이모님으로부터 합격기원 응원과 기까지 한껏 받았건만 형언할 수 없는 불합격에
대한 무서움은 계속 되었다.
운전학원에 가서 볼일을 시원하게 보고 도로주행검정인지료 35,000원을 사무실 직원에서
납부하고 '도로주행교육생 대기소'로 향했다. 물론 이전에 사무실 2층에서
도로주행교육시험응시자들이 강사에게서 간략히 주의사항을 듣는 교육을 받았다.
강사가 들려준 주의사항 중 핵심은,
"서행하라(천천히 주행하라)."
"시동 3번 이상 꺼트리면 자동 실격처리되니 주의하고
시동이 꺼지더라도 절대로 당황하지 맣고 재시동 걸어라."
"절대로 신호위반은 하지 마라."
"도로 상의 오르막길 정차 시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출발할때 적색등 정지신호상태에서
반클러치, 브래이크 꽉 밟은 상태에서 반클러치 만들고 브래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이 발을 재빨리 가속페달(액셀레이터)로 옮겨 밟아라."
"항상 도로 상의 신호등 지시에 따라라.(법규준수하라)"
강사는 또 설문지 조사와 도로주행시험 이외의 장래 주의사항도 실시하며 일러주었다.
설문 조사의 주요 내용은 운전학원 등록 후 장내기능,도로주행 담당강사의 친절도에
관한 것이었다.
1.쉽게말해 강사들이 교육생을 가르칠때 잘 가르치는가?
2.친절로(친절하게) 대하는가?
3.나쁘게 하지 않는가?
4.욕하며 윽박지르지 않던가?
이런 유의 질문을 운전학원 강사로부터 교육받은 교육생한테 물어보았다.
여기에 나는 솔직히 답했다.
장내기능 강사님의 친철도는 보통. 도로주행 강사님의 친절도는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고.
설문지 조사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질문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을
가르친 강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란이었다.
난 그곳에 도로주행 담당강사님의 이름을 적고 해당 강사님에 대해 당당히
이렇게 적었다.
<마 강사님의 앞날에 언제어디서나 행운,행복만이 가득하길 빕니다^^>
이 문장을 보고 마 강사님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뭇 궁금하지만..
적어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거라 확신한다.ㅎㅎ^^
강사의 장래 주의사항은 이러했다.
"여러분들께서 자동차를 마련하여 운전하고 다니실 때 신호위반하지 마시고, 사고나면
적절히 잘 대처하시고, 남이 초보운전자일때 배려해 주십시오."
도로주행교육생 대기소.
본격적인 도로주행시험이 시작되었다.
나의 수험번호는 15번이었다. 수험생이 3~40명 선이었으니까 그리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거의 중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평소 15번, 숫자 15에 대한 호감이 있던 나. 장내기능시험 당시엔 4번을 배정받았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그래도 장내기능시험때 4번 달고 무난히 합격했었다.ㅋ)
대기소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소형화물차인 포터(Poter) 차량이 오는게 보였다.
시험에 쓰일 차량이란걸 쉽게 짐작하고 부담감이 엄청 가중된 가운데 오늘의
저승사자이자 감찰관이 보였다. 바로 기능검정원!
기능검정원은 놀랍게도 여성이었다. 3,40대 여자분이란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니보다도 더 무서운 한국의 전형적인 아줌마였다.
한국에서 아줌마란 존재는 남자인 남편이나 아버지보다 갑절이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던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는 한없이 연약하지만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하다' 란 명언을.
그렇다. 자랑스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어머니와 아줌마란 거룩한 존재는 정말 위대하다.
이세상의 남자들은 다 여자로부터 태어나지 않던다.
그런 존재를 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수준낮은 남자들이 전세계에 걸쳐 많다는 사실이
대단히 안타깝고 아니꼬울 따름이다.
그런 유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수준한참 낮은 사고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수험번호 1~8번 이렇게 8명이 한꺼번에 두 차량에 승차하더니..
20여 분 뒤 운전학원으로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그녀, 그들의 손에는(교육생의 손) 수험표(응시표)가 다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시험을 마쳤다는 소리였다.
다 얼굴에 미소와 홍조를 띠고 있는 걸로 미루어보건데
모두 다 무난하게 통과(Pass, 합격)한 것 같았다.
20여 분.. 시간을 정확히 안 재어봐서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일의 도로주행연습 소요 시간에 비해 더 길게 느껴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느낌, 생각때문에 그렇던가 여긴다.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 줄 수 없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험 합격자들을 바라보며 매우 부럽게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시험차량에 승차했다.
U턴 하기 전까진 기능검정원(여성)이 운전석에, 내가 조수석에 탔지만 U턴 후 반대로 바뀌었다.
총 4인까지 승차 가능한 차량이었기에 뒤에 2인의 참관인이 더 타고 있어 승차인원은
총 4명이었다.
후방의 참관인 2인은 경찰공무원이 아니라 수험번호 16, 17번을 단 나와같은 시험 칠
교육생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처음부터 그러했다.
앞서 시험 친 수험번호 1~8번 교육생들의 수험상황 경우도 내 경우와 동일했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히.
주민등록번호, 증명사진(주민등록상에 있는)으로 신분확인을 정식으로 마치고
U턴 후(반대쪽 도로에서 시험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임)
본격시험이 시작되었다.
운전석에 착석하여 자리를 확인하고, 안전벨트 매고,
운전대 바로하여 잡고, 기어 2단으로 변속하는 동시에 차량을 출발시켰다.
평소 배운대로의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차량의 운행, 이동이 없는 후방의 도로상황을 백미러(후미경)를
를 통해 확인하고 그제서야 차량을 본 궤도인 도로에 올려놓았다.
말 그대로 도로주행 상황의 서막이었다.
기어 2단에서 시속 20Km였던 것이 10Km위인 30Km로 상승하였음을 계기판내 속도계를 통해
확인한 나는 느긋하면서도 정확하게 기어 3단으로 변속,
다시 10Km위인 40Km가 될때까지 기다리다 시속 40Km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기어4단으로
상승변속했다.
시속 40Km 기어4단 변속상황을 계속 유지하며(평소 시험코스에서 연습한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야 할 코너 부근 차선을 바라보며 기어4단보다 저단기어인 기어3단으로 변속하기위해
클러치, 브래이크를 살짝 밟았다. 그리고 통과했다.
조금 걱정했던 코너 부근의 적절한 속도와 '감'으로 무사히 통과하자 막 자신감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한대로만 이대로만 한다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겠다란
섣부른(?) 생각마저 들었다.
합격예감 느낌에 콩닥콩닥거리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정지선 부근에서 정확하게
정차했다.
신호등의 녹색 왼쪽(좌편) 주행지시등(<-)을 속졸이며 기다렸다.
물론 좌측 방향지시등(<-.왼쪽 깜빡이)도 넣고 기다렸다.
내 옆인 조수석에 착석 중인 여성 기능검정원의 모습이 분주한 것으로 봐서 한창 채점기록지에
볼펜으로 체크 중임을 잘 알 수 있었다.(역시 그 볼펜은 모나미153 볼펜이었다. 내가 애용하는
필기구 중 하나다 ㅎㅎ. 젤--펜 등 이런 유의 필기구는 비싸서 도저히 엄두가 안난다)
그걸 보면서 속으로 더 떨렸다.
역시 기능검정원의 전신은 저승사자였나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다 들었다.
그때, 기능검정원의 날카로운 지적 한마디가 내 귀에 팍 꼽혔다.
이 한마디는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성 기능검정원의 "말씀" 한마디는 이러했다.
"도로 상의 정지선 정차 시에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고 있으세요."
이 말은 브래이크에만 발을 갖다대고 있으란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마음이 불합격이겠다란 생각과 중대한 과실을 괜히 저질렀다는 부정적인 느낌에
속이 울렁울렁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정말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배울때는 그러니까 마 강사님은 기어중립 혹은 기어2단에 분명히 넣어두라고 했었는데..
라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or)이니까..
어쨌든 기어 중립이 더 그럴 듯 하잖아.
아.. 미치겠네..
다시 내 속은 실수했다는 생각에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후회막급 상황!
이 기어 중립 과실 위기와 더불어 한번의 위기상황이 또 있었다.
이러고보니 총 2회의 위기상황이 있었는 것 같다.
그 두번째 위기는조금 뒤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겟다.
신호등에 통행 허가를 의미하는 녹색등(녹색등화) <- 왼쪽 녹색등화 표시에
환히 불이 켜졌다.
다시 출발,
이젠 느긋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바짝 긴장하며 똥줄이 한없이 타들어가는 가운데
정확히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량을 바로 한 후 핸들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 쭉 주행했다.
직진 주행이었다.
시속 40Km에 기어 4단을 넣고(시속 60Km된 걸 확인했다),
모처럼 신나게 달렸다. 거추장스러울게 없이 뻥 뚫린 길이었다.
이른바 울산공항길이었다.
평소 배운대로하자만(운전학원 강사에게서 교육받은대로)
이 직진주행을 하다가 오른쪽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기어 3단, 시속 30Km이하로 감속하고,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전방에 내가 가고자 하는 '오른쪽 방향 도로'로
주행하는 차량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에 비로소 서행하여 갔어야 했다.
내가 두번째 위기를 맞은 이유엔 감속을 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는게 있었다.
쉽게말해 '기어 4단, 시속 60Km이하, 전방 진입차량 미확인'바로 이렇게 위험한 상태에서
급속도로 코너를 돌았다는 얘기다.
속도가 비이상적으로 빨랐으니 차량에 탑승한 승객들(기능검정원1,참관인2)이 한쪽으로 급하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심하게 넘어질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다행스런 점은 우측 방향지시등(->)을 켰다는 감사할만한 나의 행동이었다.
어쨌든 이 코너 부근 도로를 평소 배운대완 100% 정반대로 통과하고..
이때 기능검정원의 손이 빠르게 기록지에서 움직여댔다..
나 마음 속으로 '아, 이번엔 회생할 길 없이 진짜 끝이구나. 이건 완전 불합격감이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들었다.
이 침울한 불합격 백방(확실히) 먹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과 느낌은 시험을 끝내고
뒷좌석인 참관인의 자리로 옮겨 갈때까지 지리하게 계속되었다.
과연 시험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이제 시험코스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이었다.
아까 오른쪽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고 하였었다.
이 오른쪽에 위치한 도로로 진입하자 짧은 직진 도로 하나가 나타나면서
경사가 완만하면서도 시골길처럼 꼬불꼬불한 S자 모양의 길이 계속 이어졌다.
장내기능시험에서도 S(에스) 코스는 난관 중의 난관이었다. 마의 고개였다.
이 시골길에서는 기어3단에서 시속40Km 이하로 주행하였다.
시골길의 과속방지턱을 발견하고 브래이크를 가볍게(스무스하게) 밟으면서 기어2단으로
변속, 저단기어로 통과했다.
클러치도 물론 밟았다.
이젠 정말 끝이었다. 막바지였다.
오렌지색의 이 과속방지턱만 지나 좌편 방향지시등(<-)을 켠 뒤에 안전지대 살짝 물고
쭉 들어가는 동시에 클러치, 브래이크를 밟으면서 왼쪽으로 핸들 최대한 꺽어
온 길의 정반대 방향으로 차량 머리 돌려 정차(정차 시, 계속 클러치, 브래이크 꽉
밟고 있으면서 핸드 브레이크 작동시키고 기어중립에 놓고 시동 끄고
두 발을 클러치, 브래이크에서 완전히 뗀 후 안전벨트 해제함. 완전 주차와 동일한
의미라고 보면 됨)하면 끝이었다.
난 그렇게 다하고나서 여성 기능검정원의 차후 지시를 기다렸다. 판정 통보를 기다린 것이다.
기능검정원의 추후 지시는 간단했다.
"하차하여 참관인의 좌석으로 가서 착석하세요."
이 지시에 충실히 따르고 난 후, 뒤에서 앞좌석의 기능검정원 행동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기능검정원 드디어 결정을 하려는 듯 보라색 인주 색깔이 역력한 도장을 집어 들었다.
합/불합격 판정의 찰라였다.
판정의 결과를 본 일기장에 공개하기에 앞서 아까 주/정차시의 실제 상황을 적는다.
지금 회고해보니 나는 주/정차시에도 일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기어는 중립에 넣고 핸드브레이크로 바르게 잠궜으되 아직까지 발을 클러치에서
완전히 떼지 않았다. 이것으로 인해 기능검정원이 내뱉은 듣기싫은 강요성 한 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그녀의 간결한 외침!
"클러치에서 왼발 완전히 때세요."
시동을 완전히 끈 상태에서 클러치를 계속 밟고 있던 것이어서
별 문제될 껀 아니었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여성 기능검정원의
눈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여성 기능검정원의 엄용훈 교육생 운전적합실력 판정은
"합격 ^0^"이었다.
합격?
세 번의 위기상황을 자초했던 나였기에 합격에 대한 행운(?)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세상에 이런 행운, 행복, 감격이 다 있던가 싶었다.
너무 기뻤다. 너무나.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행운이라는 단어가 나의 당당한 합격 사실에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다. 신은 노력하지 않은 자에겐 손톱에 낀 때만큼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분이시지
않던가)
지금까지 총5장에 걸쳐 나의 자동차운전면허증 취득사실에 대한 세세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힘든 일이긴 하다.
이것이 일기를 평생 적는 자의 고단함이라면 고단함이랄까.
내가 나를 생각해도 미친 놈이다.
말로는 직업적으로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서 행동은 꼭 천직 인양 대하니.. 허허.
(아니면 취미생활인가?ㅋ)
기왕 도로주행시험에 관해 쓴 김에 타 교육생의 일도 같이 쓰겠다.
그 교육생의 수험번호는 내 바로 뒷번호인 16번이었다.
나의 수혐표가 15번이었기에 나는 참관인 자격으로(어차피 합격도했겠다. 아주 느긋하게)
그의 운전실력을 볼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해 도로주행시험에 응하는 16번 수험생의 모습을 말이다.
나는 15번 홀수여서 A코스에서 시험을 쳤었다.
어찌보면 A코스 지점이 더 쉬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A코스는 운전학원->시골길 코스인데 비해 B코스는 시골길->학원(까지 들어오면 시험이 끝남)
이어기 때문.
어? ... 그러고보니 나 보다 더 쉬운게 아닌가...
어쨌든간에 같은 도로인데 말이야.
오고가는 차량도 같고. 오고 가야되는 도로도 같은데.. 뭐 같은 거 같기도 하다.
쉬운 코스도 같이 쉽고 어려운 도로도 같이 어려울테니깐.
로또복권에서나 느끼는 상대적박탈감같은건 느끼지 않는다.
16번 수험생과 나는 거의 친구사이였다. 아니 친구였다.
군에서 '전우'라고 하듯 같은 자동차운전을 배우는 처지인지라..
도로주행시의 두려움, 달릴때의 짜릿함 등 이런 부분에서 공감의 폭이 컸다.
이건 아줌마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할머니와 내가
친해졌을 것이고.
수험번호 16번 수험생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 16번 남자 수험생은 출발부터 불안했다.
저단 기어인 상황에서 속도를 낼려고 가속페달(액셀레이터)만 세게 밟는 등
기능검정원의 시정 요구 지시가 부쩍 많아졌다.("고단기어로 변속하고
가속페달을 밟으세요." 등)
처음부터 기능검정원의 한 소리 들은 이 16번 친구.
드디어 오르막길에서 일을 내고야 말았다.
당시 오르막 도로에서 정차 상황이었는데
이 친구 클러치에서 너무 급하게 왼발을 뺀 것.
오르막 도로 정차시 재출발할때는 브래이크 밟고,
반클러치 상황에서 재빨리 브래이크에서 뺀 발을 가속페달(액셀레이터)로 옮겨
밟아야 하는데 이 경험에서 오는 불문율을 이 불쌍한 친구가 보기좋게 어기고 만 것.
분명 이 친구 시동1회 꺼트렸을때 무척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것이다.
앞서들은 강사의 주의사항에서
"시동 3회 꺼트릴시 자동 실격처리."
이 말을 그는 자꾸 상기하며 운전에 임했을 것이다.
이걸로 인해 그의 마음은 더욱 바짝 얼어 있었을 것이고.. 안보아도 비디오다.
이 16번 친구, 다행히 이 오르막 도로를 잘 벗어났다.
두번 다시 시동 꺼트리는 법이 없어 합격자 신분으로 변모한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 친구, 다시한번 일을 내는데
도로 상의 정지선에서 훨씬 앞으로 가 정차 한 것..
정지선 지나서 차량을 정차시켰다는 말이다.
신호등을 보니 마침 적색신호등이었다. 운전 잘하는 앞차들만 보고 그대로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마냥 녹색신호에 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이 친구 그걸 몰랐던 것.
정지선을 훨씬 초과하여 정차한 이 친구 입에선 한숨소리만 봇물터지듯 터져나왔으니..
보기에도 몹시 처량했다. 안타까웠다.
우리들 모두 그 불운한 그 친구의 무난한 불합격 판정을 당연시하고 잇었다.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까만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 친구도 자기 자신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실로 그랬다.
그에게 있어 아쉽기만 한 금번 시험이었다.
차량이 운전학원 내에 진입하고 기능검정원이 보라색 도장을 쿡 찍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도 자신의 무난한 불합격 판정을 예상하는 것 같았다.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울먹일 것 같았다.
나를 부러운 얼굴로 쳐다보데.. 그 친구를 보며 내가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였다.
한동안 부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자신이 건네받은 수험표(응시표)를 보는 그.
서서히 그의 눈이 커지더니 숫제 미소가 얼굴에 띄는게 아니겠는가.
놀랍게도 그는 "합격"이었다.
좋아하는 한편, 그가 내뱉은 말.
"기능검정원이 내가 불쌍해서 합격시켜주었는것 같아."
그리 큰 실수를 하지않은 나도 나의 합격 사실에 대해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그가 그렇게 말을
하니 더욱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자동차운전교육 동기로 친구 사이가 된 그와 나.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해맑은 얼굴로 사무실에 가서
별도 서류비 5,000원(이 친구한테 1,000원 빌렸다)
증명사진 1매도 내었다.
그리고 어떤 A4지에 합격 등록을 확인하는 사인(Sign)도 하고..
하하^^ 우하하하^^
너무 정말 아주 기쁜 오늘이었다. 진짜루~. ^^
오전11시, 집에 와서 이같은 도로주행시험 최종합격 사실을 부모님과 막내이모님께
알려드리니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그리고 한없이 기뻐하셨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8권 2003.7.30일자 기록(1쪽~14쪽)
첫댓글 학과시험의 경우 2종은 커트라인이 60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