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는 ‘러닝머신’이 있습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방에 있는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합니다. 그냥 운동을 하면 지루하지만 앞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면서 운동을 하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운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프로가 있지만 집중을 잘 할 수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운동을 하는 것은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삶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기억나는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아씨, 여로, 임금님의 첫사랑, 사랑과 야망, 여명의 눈동자, 사랑이 머길래, 모래시계, 용의 눈물, 다모, 대장금, 빛과 그림자, 골든타임, 굿 닥터, 오로라 공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드라마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한국 사람은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하고, 잘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배우가 있고, 그 배우들을 연출하는 감독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가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시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무대입니다. 태양, 구름, 바람, 꽃, 새와 나비, 바다와 물고기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신 소품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울, 다윗, 솔로몬, 에스텔, 롯, 요셉, 마리아, 빌라도, 베드로, 바오로 이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만드시는 ‘구원의 역사’라는 드라마의 출연진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주어진 사명과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좋은 배우는 어떤 사람일까요? 젊고 매력 있는 외모의 배우도 있습니다. 뚱뚱하고 나이든 배우도 있습니다. 악역을 맡는 배우고 있고, 선한 역을 맡는 배우도 있습니다. 좋은 배우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배우입니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표현하는 배우입니다. 외모, 체력, 나이, 성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 동안 출연하는 것도, 짧은 시간 출연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닙니다. 얼마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 존재라고 합니다.
첫째, 인간은 욕망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욕망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모순된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도 인간이고,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도 인간이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을 죽이는 것도 인간입니다.
셋째, 인간은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선과 악 사이에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넷째,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영원을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명상과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다섯째, 그래서 인간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그네가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듯이, 인간은 삶의 여정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문을 넘어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전달기계가 아니고, 인간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시편 8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사보다는 못하게 만들어졌어도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고, 선과 악 사이에 있으며 중간자입니다. 또한 인간은 천성을 따르는 존재입니다. 천성을 따르는 사람은 인성을 갖는 것이고, 이 인성을 잘 닦는 것이 道입니다. 이 도를 알아 과는 과정은 敎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를 전달하는 유기체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따라서 도를 공부하는 성품을 지닌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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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루카 21,29-33
미래를 볼 수 있는 눈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새로운 싹이 트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 세상의 여러 혼돈과 징표를 보거든 그것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나의 혼돈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데 꼭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하나의 풍파가 몰아치면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혼돈과 어둠 속에서 움터 오르는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와 광명을 내다보는 눈”(이현주목사), 혜안을 가진 이는 행복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혼돈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나라가 우뚝 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또한 구원 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마음 설레게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마음 한구석엔 두려움이 있습니다.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각자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직자나 수도자를 떠 바쳐 위하고 거룩하게 보지만 그들 또한 부끄러움이 있고 자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신분을 떠나서 모두가 맑고 깨끗한 주님을 닮은 마음의 소유자로 부끄러움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들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그에 걸 맞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가슴에 남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 것은 사라지지만 주님의 말씀을 차지한 사람은 영원합니다. 은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19,26).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뻔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걸려 넘어지고 나서야 후회를 하고 새로운 다짐과 시작을 합니다. 마지막 날이 언제 올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 날이 오늘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에 바로 지금 주님을 떳떳이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건강을 자신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사고로 주님 앞에 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삶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당당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말씀 안에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내 마음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슴이 벅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에 빛”(시편 119,105)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사랑합니다.
2013년 다해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 복음: 루카 21,29-33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
< 그분께서 더 가까이 오실 때 >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에 실린 ‘아내의 겨울’이란 이야기입니다.
정호는 인력시장에서 그날그날 돈을 벌어가며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입니다. 그러나 요즘 경기침체로 공사장 일을 못한 지 벌써 넉 달이 되어갑니다. 집세도 널 달 동안 내지 못해 밀려있습니다. 정호의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에서 일을 다니며 정호 대신 힘겹게 가장을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정호는 그날 저녁도 친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오후가 되어 나갔습니다. 친구는 일자리 대신 삼겹살과 소주를 샀습니다. 술에 취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들어설 무렵 귀여운 딸아이가 그에게 달려와 안겼습니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해먹는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아빠 기다렸어.”
일을 나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 저녁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 주라고 고기를 싸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영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반찬 해달라고 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집세도 못 내면서 고개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에야 저녁 준비한 거예요. 열한 시 넘었으니까 다들 주무시겠죠, 뭐.”
아이들은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그것을 보는 아내의 얼굴도 행복해보였습니다. 아내는 정호 쪽으로 고기 몇 점을 옮겨놓으며 말했습니다.
“당신도 어서 드세요.”
“나는 아까 친구 만나서 저녁 먹었어. 당신이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정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기 몇 점을 입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정호는 달빛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가엾은 아내...,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주인이 준 게 아니었습니다. 숫기 없는 아내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입니다. 아내가 구워준 고기 속에는 누군가 씹던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 채 섞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볼까 봐, 정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서 삼켜버렸습니다. 아픈 마음을 꼭꼭 감추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마음이 찢어질까봐...
정호는 늦은 밤, 아내의 구두를 닦습니다. 별빛보다 총총히 아내의 낡은 구두를 닦으며 내일의 발걸음은 오늘보다 가벼울 거라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박해도 당하고 고난도 당하고 무서운 일들도 일어날 것인데 그 때 절망하지 말고 고개를 들라고 하십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바닥을 치면 이제는 오르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건강할 때보다도 신경이 더 쓰이게 마련입니다. 정호는 아내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를 잘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극도로 증가하였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며 더 신경을 쓰십니다.
일본의 가톨릭 작가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포르투갈, 로마, 일본의 사료를 정밀히 조사한 실화 역사소설입니다.
페레라(Christopher Ferreira) 신부는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던 국제적 인물이었는데, 그가 고문에 못 이겨 배교했다는 보고가 포르투갈에 전해졌습니다. 격분한 그의 제자 세 명이 소식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생명을 걸고 일본으로 잠적해 들어갑니다.
그 중 한 명인 로드리고(Sebastian Rodrigues)가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그도 결국은 체포되어 ‘후미에’ 앞으로 끌려갑니다. ‘후미에’는 예수 상이 새겨진 동판을 나무판에 붙인 것인데,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예수를 버린 것으로 간주하여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로드리고 신부가 후미에 앞에 섰을 때, 그것은 너무나 많이 밟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그러진 얼굴이 로드리고 신부에게는 울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 몹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 같이 보였습니다. 그가 유럽에서 보던 왕관을 쓴 예수, 백인들이 편안하게 믿는 승리자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울고 함께 괴로워하는 예수였습니다. 주저하는 로드리고 신부에게 후미에의 예수가 말합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본래 밟히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냐? 나를 밟을 때 네 마음이 아플 것이다. 마음으로 아파해 주는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다.”
“주여, 저는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것을 원망했습니다.”
“나는 침묵한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리고가 예수 상을 밟는 순간 새벽닭이 웁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때 베드로의 괴로움을 예수께서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함께 괴로워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을 밟아야만 하는 어려운 때에도 그 사람을 이해하시며 그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침묵하실지라도 시선을 떼지 않으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절망하지 말고 고개를 드십시오. 내가 땅만 바라보아야 할 때 하느님께서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