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가 이제는 선교 이양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 국제단체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팀 선교의 구조
속에서 처음부터 사역 이양을 고려하여 일하지만 한국 교단이나 자생 선교단체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아직 우리 스스로의 모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한 선교사들이 남기고 간 유산 중에 이미 좋은 모델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선교역사에서 리더십 이양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도 팀 사역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었고 현지인과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간의 갈등
한석진 목사는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명중의 한명으로 나중에 평양신학교를 설립한 마펫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목사로서 선교사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취하였다. 1925년 서울 조선호텔에서 에큐메니칼 지도자인 모트(J.
R. Mott)가 주제하는 ‘한국 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한석진을 비롯한 한국 교회 대표 31명, 마펫을 비롯한
선교사 대표 31명 등이 참석해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선교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벌였다. 이날 주요 의제는 ‘한국
교회와 선교사의 관계’였다. 의식 있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 지배 의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석진 목사가 그 선봉에 섰다. “선교 사업을 성공시키고 효과적으로 하려면 선교사가 한 나라에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기초가 서게 되면 그 사업을 현지인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한 곳에
오랫동안 체류하다 보면, 자기가 세운 교회며 학교라는 생각에 우월감을 가져 영도권을 행사하려 하니 이것은 복음 정신에 위배되고
교회 발전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한석진 목사의 발언은 계속되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수고 많이 하면서 머리들이 희게
되었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 할 일은 다 하였으니 본국으로 돌아가던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가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한국을 위한 것입니다.” 그 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마펫 선교사가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한석진 목사가 말했다. “마 목사! 당신도 속히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금후에 유해무익한 존재가 됩니다. 마
목사는 처음부터 나와 함께 일한 친구요, 동지로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이덕주,
2004)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를 존중하고 희생하면서 자립구도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였다. 오늘날 한석진
목사의 말은 다소 무례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 말의 중심은 오늘날의 한국 선교사들에게 들려주어도 별로 손색이 없다. 이 땅에 온
많은 선교사들은 우리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였고 한국을 떠나고 나서도 죽어서도 다시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일부
제국주의적인 모습으로 한국인과 한국 교회를 괄시한 선교사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헌신적으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하며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였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현지인과의 갈등 자체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갈등을 돌파하여 리더십을 이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가부장주의와 전략의 부재
리더십 이양은 마치 어린 아이의 젖 때기와 같다. 아직 젖을 때는 시기가 안 되었는데 서둘러 젖을 떼면 아이가 죽거나 제대로
성장을 못한다. 반면에 젖 때는 시기를 놓치면 역시 영적인 마마보이가 될 가능성이 많다. 선교사의 리더십 이양은 그와 같은
원리이다. 한국 선교사의 리더십 이양이 어려운 것은 우리의 가부장적 문화와 관계가 깊다. 이 가부장주의(paternalism)의
문제는 한국 선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양 선교사에게도 나타나는 문제인데 유교적 가부장주의가 특히 강한 한국 교회의 분위기에서
파송된 한국 선교사에게는 그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교회 개척에 나오는 4P의 원리에 의하면 초기에는 개척자 단계와
부모의 단계(Pioneer, Parent)에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협력자와 참여자의 단계(Partner,
Participant)에 넘어가는 것이 정도인데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아직도 ‘부모의 단계’에 머무는 경향은 바로 강한
가부장주의의 문화의 소산이다.
이 뿐 아니라 우리 선교사들이 리더십 이양을 못하는 데는 전략이 없는 이유도 크다. 한국 교회가 토착화에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네비우스 원칙을 선교전략으로 채택하였다는데 이의가 없다. 네비우스는 자신이 사역한 중국에서 정작 그 원칙이 열매를 맺지
못하였는데 언더우드 선교사의 요청에 의해 한국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에게 자립, 자치, 자전의 삼자원리를 소개하고 이들 선교사들이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적응하면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교전략도 토양에 맞추어야 한다. 의존심이 강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경우 네비우스 정책이 적용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독립심이 강한 한국인의 기질에 이 원칙은 적절하게
들어맞았다. 이와 같이 선교사들이 현지 문화와 토양을 잘 연구하여 사역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나 전략이 없다.
장기적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빨리 빨리’문화에 익숙하여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 급급하다보니 선교사 주도의
사역을 하게 되어 처음에는 현지인을 모으는 것 같지만 종속 구도로 굳어져 버린다.
존 가투가 1971년 미국의 NCC에서 미션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선언하면서 ‘앞으로 5년간 선교사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선교사 때문에 선교사 안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목회자가
되고 당회장이 되어 리더가 됨으로 현지인의 자립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재정 지원 받아서 교회 건축해 주고
센터 지어주고 전도사 사례비 주고 하면서 나이가 들어 갑작스레 ‘리더십 이양’한다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늬만 이양’인
경우가 많다. 미쳐 리더를 키워놓지 못했거나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역 초기부터 선교사와 현지인이 주종관계처럼 굳어져 버리면 아무리 사역이 커져도 선교사가 손을 뗄 레야 땔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만다. 선교사는 안식년을 갈 수도 없고 사역을 쉽게 이양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을 키우기 보다는 프로젝트나 건물을 키우는데
신경을 쓰다보면 운영을 위하여 모금에 신경을 쓰게 되고 현지인은 선교사가 모금해 오는 선교비에 의존하게 되는 구도로 나갈 가능성이
많다. 이런 악순환이 선교사의 리더십 이양을 어렵게 한다.
팀 사역과 은퇴준비의 부재
팀 사역이 없는 것도 리더십 이양을 어렵게 한다. 한국 선교사들 가운데 팀사역의 포장을 갖춘 곳은 더러 있으나 진정한 팀 사역을
하는 곳은 많지 않다. 팀 사역이 되지 않으니 사역을 시작한 선교사는 사역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결국
리더십 이양도 어렵게 만든다. ‘한국 선교사들은 지휘관은 많으나 병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나를 따르라‘는 나폴레옹 리더십은 더
이상 선교지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예수님의 섬기는 리더십이야말로 선교사들이 닮아야 하는
리더십의 모델이다. 한국 교회가 장로교회가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유교적 가치관과 장로교회의 구조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는
것처럼 선교지의 토양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유교적 단일 문화권에서 살아온데다가 민주주의 경험도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가부장적 리더십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선교지에서 동료 선교사와 팀 사역이 어렵고 현지인과 팀 사역 그리고 결국에는 리더십
이양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부 선교지에서 신학생들 사이에 ’한국 선교사들은 무섭다‘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스타일은
임무가 주어지면 물불을 안 가리고 때로는 밤을 새면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익숙한데 선교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여유 만만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관계를 통한 리더십‘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리더를 키우기도 어렵고 기껏 키어온 리더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기도 한다.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빨리 문화‘에 길들어진 한국문화가 한국 선교사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은퇴준비가 없는 것도 리더십 이양을 어렵게 한다. 선교사도 인간이다 보니 은퇴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막상 리더십을 내어주고
은퇴한다고 하면 생활비와 사역비가 중단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선교사로 하여금 리더십 이양을 더디게 한다. 만약
충분한 은퇴준비가 되어 있다면 여유 있게 리더십 이양을 해도 될 것이다. 우리 GP 선교회를 포함한 많은 선교단체는 ‘65세를
은퇴기준으로 하고 건강이 허락하면 7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65세에 리더십 자리는 내려 놓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선교사가 너무 오랫동안 리더십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하여 사역이 활력을 잃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도적으로 못 박아 둔
것이다. 물론 70세가 넘어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선교지에서 얼마든지 사역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도 왕성하게 은퇴 후에도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교회나 선교 단체가 은퇴 선교사를 위해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도 있고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은퇴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자칫 먼저 은퇴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믿음 없는’ 소리를
들을까보아 얘기도 못 꺼낸 탓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공론화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되었다. 은퇴 선교사 문제는 단순히
선교사 노후 문제만 걸려 있는 사안이 아니라 선교지의 리더십 이양까지 영향을 주는 만큼 한국 교회는 서둘러 이일에 관심을 갖고
짐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는 적당한 때에 사역을 이양(Empowering)하고 떠나야 한다(Phase out). 선교지로 떠날 때에는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라는 각오로 떠나야지만 실제는 언제든지 선교 사역을 현지인에게 넘기도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는 목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사역적 측면에서 잘 죽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안락사’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선교사가 살기 위해 한곳에서 발버둥 치고 터줏대감 노릇하면 선교는 죽는다. 반면에 선교사가 죽으면 선교는 산다. 이것이 참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세계 선교는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지인 스스로 선교하겠다는 운동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자립하게 될 때에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교사는 ‘선교사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내 제자’가 아닌 ‘주님의 제자’양성이 분명한 철학으로 무장되어야 할 것이다. KMQ
첫댓글선교지로 떠날 때에는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라는 각오로 떠나야지만 실제는 언제든지 선교 사역을 현지인에게 넘기도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는 목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사역적 측면에서 잘 죽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안락사’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선교사가 살기 위해 한곳에서 발버둥 치고 터줏대감 노릇하면 선교는 죽는다. ..................참 귀한 말씀입니다.
교회 개척에 나오는 4P의 원리에 의하면 초기에는 개척자 단계와 부모의 단계(Pioneer, Parent)에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협력자와 참여자의 단계(Partner, Participant)에 넘어가는 것이 정도인데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아직도 ‘부모의 단계’에 머무는 경향은 바로 강한 가부장주의의 문화의 소산이다.......이 4P의 원리에 의하면 현재 저의 교회는 개척의 단계, 부모의 단계를 지났고 이젠 협력자의 단계로 가야 할때인 듯합니다. 협력자로 현지인의 리더를 세우고 리더쉽을 이양하고 이후 온전한 "참여자"로 가야 합니다. 비록 교회 개척을 내가하고, 수백만원의 재정이 들어간 세월이였다고 하더라도 이젠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선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데....제 말은 이곳을 정리하고 멀리 간다는 의미가 아니구요, 가까운 곳에 다른 교회 개척지가 있으면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죠. 멀리 이사가거나 멀리 간다는 의미가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선교사는 한 곳에 주구장장 거하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주인이 아니라 협력자로 이름없이 사라지는 것이 선교사의 갈 길이고 또 다른 복음이 필요한 곳, 아직 선교사가 없는 곳에 들어가야 개척자 선교사죠. 그런 의미니깐 여러분 걱정마시구요.^^ 홧팅입니다.
첫댓글 선교지로 떠날 때에는 ‘선교지에 뼈를 묻겠다’라는 각오로 떠나야지만 실제는 언제든지 선교 사역을 현지인에게 넘기도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는 목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사역적 측면에서 잘 죽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안락사’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선교사가 살기 위해 한곳에서 발버둥 치고 터줏대감 노릇하면 선교는 죽는다. ..................참 귀한 말씀입니다.
교회 개척에 나오는 4P의 원리에 의하면 초기에는 개척자 단계와 부모의 단계(Pioneer, Parent)에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협력자와 참여자의 단계(Partner, Participant)에 넘어가는 것이 정도인데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아직도 ‘부모의 단계’에 머무는 경향은 바로 강한 가부장주의의 문화의 소산이다.......이 4P의 원리에 의하면 현재 저의 교회는 개척의 단계, 부모의 단계를 지났고 이젠 협력자의 단계로 가야 할때인 듯합니다. 협력자로 현지인의 리더를 세우고 리더쉽을 이양하고 이후 온전한 "참여자"로 가야 합니다. 비록 교회 개척을 내가하고, 수백만원의 재정이 들어간 세월이였다고 하더라도 이젠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선교.
공감가는 말씀, 귀한 글 잘 봤습니다.
선교의 꿈과 하나님 주신 비전을 아름답게 이뤄가시기 진심으로 바라고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데....제 말은 이곳을 정리하고 멀리 간다는 의미가 아니구요, 가까운 곳에 다른 교회 개척지가 있으면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죠. 멀리 이사가거나 멀리 간다는 의미가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요.^^ 선교사는 한 곳에 주구장장 거하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주인이 아니라 협력자로 이름없이 사라지는 것이 선교사의 갈 길이고 또 다른 복음이 필요한 곳, 아직 선교사가 없는 곳에 들어가야 개척자 선교사죠. 그런 의미니깐 여러분 걱정마시구요.^^ 홧팅입니다.
선교에 대한 기준을 알게 해준 좋은글 이라는 느낌입니다...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