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격
'인간의 품격'을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히틀러의 만행이 기승을 부릴 때 안전한 곳에 머물지 않고 거친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나와 의연하게 그리스도의 길을 간 사람, 신학자이면서 '종교적 인간'이길 거부했던 사람,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다. 그가 남긴 <옥중서신>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고통이 무엇인지를 궁구하게 하는 숱한 화두로 넘쳐난다. 이 책은 1943년4월5일부터 1944년10월8일까지 베를린-테겔 군 교도소에서 보낸 수감생활의 경험과 사유로 가득하다. 끝내 육체의 자유를 맞지 못하고 종전을 코앞에 둔 1945년4월9일, 39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이로써 끝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처럼 본회퍼의 생명력은 그가 본 앞선 시대상과 함께 더욱 성성해지고 있다.
"도대체 기독교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누구이냐는 물음이 내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네. ... 종교 일반의 시대는 지나갔네. 우리는 완전히 종교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네.... 어찌해야 그리스도는 비종교인의 주님도 되실까? 비종교적 그리스도인의 존재이기는 할까? '하나님'에 대해 '세상적으로' 말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비종교적-세상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어떻게 우리는 자신을 종교적 특권을 지닌 자로 여기지 않고, 완전히 세상에 속한 자로 여기면서, 에클레시아, 곧 부름받은 자가 되는가? 여기에 답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는 더는 종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전혀 다른 무엇이 되시고, 실제로 세상의 주님이 되실것이네."
20세기 초반에 던진 본회퍼의 자성적 질문은 여전히 종교시장에서 썩은 고기에 탐닉하고 있는 현대인들, 유사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의 대답은 무엇인가? 본회퍼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등장시키거나, 아니면 인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짠!"하고 나타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서의 신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나 희생없이 헐값에 팔리는 '값싼 은혜'일 수 없으며 오히려 세상과 타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자유롭게 진실을 추구하는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세계관이 이끄는 세상, 즉 '성년이 된 세상'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 한복판에서 피안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살고자 했다.
본회퍼의 삶을 쫓다보면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5:48) 스스로 온전한 것을 행하기 위해 '세상으로 들어간' 본회퍼의 삶이 죽음을 초월해 이어질 수 있는 저력은 끝없는 물음과 물음에 실천으로 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용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혼자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만 그리될 수 있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의 나라가 임할 세상은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온전한 세상'을 이루는 벗들은 서로 기르고 양육해 주는 또 다른 내가 된다. 그런 나와 나를 돕는 이들의 울타리인 공동체에는 신성함이 있다. 나와 타자, 개인과 공동체, 나와 세상 등 다양한 주제를 나눈 본회퍼의 옥중서신은 '테겔 신학'이라는 신학 사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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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간의 품격'을 묵상하다.
품격있는 인간의 모습을 여실없이 보여준 본회퍼는 '품격'을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의 차원으로 고민했다.
그의 말이다. "사회적 관점으로 말하면, 품격은 지위 추구를 포기하는 것, 온갖 인기 스타 숭배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고, 특히 좀 더 친밀한 교우 관계를 선택하고, 은밀한 삶을 기뻐하고, 공적인 삶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말하면, 서두름을 뒤로하고 책과 여유로움,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 산만함을 뒤로하고 집중으로 돌아가는 것, 세간의 인기를 뒤로하고 사색으로 돌아가는 것, 거장의 이상을 뒤로하고 예술로 돌아가는 것, 속물근성을 뒤로하고 겸손으로 돌아가는 것, 무절제를 뒤로하고 절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양(量)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공간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지만, 품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서로 보완한다."고.
아주 오랫동안
매우 차분하게
깊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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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과 욕설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 '본회퍼'가 절실하다. 이래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