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당을 위해서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전문■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언론에서는 이대로 총선을 치르면 최악의 경우 2석, 아무리 잘 해도 50석을 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차떼기 부패당이라는 오명에 탄핵의 역풍까지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침몰 위기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해 임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당을 걱정하는 많은 의원이 나에게 대표 경선 출마를 권유했다. 그러나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는 주변의 반대 목소리가 훨씬 컸다.
“의원님, 그 자리가 어떤 자립니까? 4.15 총선을 이끌 총대를 메야 하는데, 질 게 뻔하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의원님의 정치생명도 끝납니다.”
“지금 경선에 출마하신다면 대표는 되실지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끝입니다.”
난파 위기의 한나라호 선장이 될 것인가, 훗날을 기약하며 몸을 낮출것인가? 하지만 제 한 몸 사리자고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제가 희생해야 한다면, 해보겠습니다.”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이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느냐, 국민에게 영원히 버림받느냐 둘 중 하나였다.
홍사덕, 김문수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뒤 대표 경선이 불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권오을, 박진 의원이 가세하면서 대표 경선은 5파전 구도로 짜여졌다. 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지만, 경선 당일의 현장 분위기가 많이 좌우하는 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열렸다.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은 후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홍사덕 의원은 특유의 여유와 달변으로, 김문수 의원은 정열적인 연설로 큰 호응을 받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그다지 웅변에 능한 편은 못 된다. 감정적인 웅변보다 내 논리와 의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익숙해 웅변조로 하는 연설이 어색하기만 했다.
“저는 오늘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한 충무공의 비장한 각오를 되새기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부모님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당을 위해서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연설을 마쳤다. 전당대회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여기저기서 나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침몰 위기의 한나라당호 선장이 되었다. 박순천 여사 이후 최초의 ‘여성 당수’라는 타이틀에 의미를 두며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건네 왔지만, 나에게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내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내 생각은 온통 그것뿐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FC0495F35B2860C)
첫댓글 한나라당의 선장이 되어 가시밭길을
꽃길로 만드신 대통령님.
다시 닥친 가시밭길을 잘 걸어시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되어 주시어 순항 할 수 있게 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하늘님
수고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말씀처럼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