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용으로 활용한 그림은 명의 종군화가가 당시의 회상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것입니다.
화공으로 수많은 일본군들이 불타 죽는 모습을 담고있죠. 당시 명나라의 시각으로 바라본
임진왜란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산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문 내용은 제 편의상 음슴 or 했다체로 작성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1. 실제로 거북선은 노량해전에 참전했는가?
임진왜란 당시 운용된 거북선은 본영귀선(本營龜船), 방답귀선(防踏龜船), 순천귀선(順天龜船) 3척 이었고
이 거북선 3척은 모두 칠천량해전에서 전소되었다. 물론 노량해전은 칠천량해전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이라
이를 재건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 후 『조선왕조실록』 이나 『난중일기』 에서는
'거북선을 다시 건조했다.' 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즉 노량해전 전투 당시에는 거북선이 참전하지 않았다.
2. 일본장수 아리마와 데라자와는 정말로 전투 중 사망하였나?
고니시의 심복으로 나오는 아리마 하루노부는 극중에서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거짓정보를 흘렸단 의심을 사서
혀가 잘리고 중형 전선 돛대에 묶여 조선수군의 포격을 전면으로 받다가 이에 휘말려 사망한 것으로 묘사됐다.
데라자와 마사시게(히로타카)는 전투 초반, 선봉에 선 휘하 부대가 이순신이 계획한 화공작전에 말려들게 되자
전열상 후미를 따라오는 본진에게도 큰 피해를 끼칠까봐 염려한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비정하게 버려지면서
조선수군과 일본군 양측이 감행한 '포격 + 화공' 으로 사망하는 희생양이 되는 것으로 극에서 묘사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둘 다 전투 이후로도 살아남았다. 아리마 하루노부는 고니시와 함께 전투 도중에 몰래 도망갔으며
데라자와 마사시게는 시마즈 요시히로와 함께 순천 예교성에 갇혀버린 고니시를 구원하는 함대 일원이긴 하였으나
실제로는 전열상 최후미에 있었고 휘하 전력도 미미하여 전면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을 때
전투를 관망만 하다 함대 행렬에서 몰래 벗어나 남해도의 뱃길로 도망쳤다.
그 이후 아리마 하루노부는 1612년까지, 데라자와 마사시게는 1633년까지 산다.
3. 명 수군 부총관 등자룡의 최후?
극중에서는 해전 당시에도 초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명 수군의 전열을 벗어나 조선수군과 함께하며
단독으로 용맹히 싸우다가 중과부적 끝에 일본군의 포위를 받아 참수되며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 당시 용맹히 싸우긴 했다. 그러나 그 사망 과정중에는 아군의 과실도 있었다.
倭將渡海遁,璘遣子龍偕朝鮮統制使李舜臣督水軍千人,駕三巨艦為前鋒,邀之釜山南海。子龍素慷慨,年踰七十,意氣彌厲。欲得首功,急攜壯士二百人躍上朝鮮舟,直前奮擊,賊死傷無算。他舟誤擲火器入子龍舟。舟中火,賊乘之,子龍戰死。舜臣赴救,亦死。事聞,贈都督僉事,世廕一子,廟祀朝鮮。
왜가 장차 바다를 건너 피하려 하자 진린이 등자룡과 함께 조선의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이 감독하는 수군 1,000명을 보내 3개의 거함(巨艦, 판옥선)을 이끌게 하면서 선봉으로 삼아 부산(釜山) 남해에서 (적을) 맞이하였다. [ 실제로는 노량(露梁)해협에서 교전, 당시 조선 지명에 대한 명 사관의 이해도 부족으로 인한 기술 ] 등자룡은 평소에도 강개(慷慨)하여 나이가 70이 넘었지만 의기는 더욱 사나웠다. 수공(首功)을 세우고자 하여 급히 장사 200명을 이끌고 조선의 배 위로 뛰어 올라 곧바로 앞에서 분격(奮擊)하니 죽거나 다친 적들이 셀 수 없었다. 다른 배에서 화기를 잘못 던져 등자룡의 배에 들어갔다. 배 안에서 불이 나고 적이 올라타니 등자룡이 전사했다. 이순신이 구하러 달려왔으나 역시 죽었다. 일을 듣고 도독첨사(都督僉事)로 추증하였고 세음(관작을 세습)한 한 아들이 조선에서 묘사(廟祀,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하였다.
『명사(明史)』 「열전(列傳)」 '등자룡(鄧子龍)'
즉 영화에서는 전투 중 단독 행동을 보인 등자룡의 배만 집중공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투 당시 같은 명군의 오인사격으로 등자룡의 배에 불이 붙었고, 그게 주변 군선들에게 주위를 끄는 바람에
등자룡의 배는 일본군의 집중공격 대상이 된 것...
P.S : 여담으로 '삼국지' 에서 유비가 세운 촉을 멸망시킨 위의 명장, 등애(鄧艾)가 그의 조상이고
'흑묘백묘론' 으로 유명한 80년대 중국의 최고정치가 덩 샤오핑(鄧小平, 등소평)이 그의 후손이다.
4. 노량해전 무용론?
일설에서는 '전투 의지를 잃은 적을 무리하게 추격하다 총대장이 전사' 한 해전이라며 그 의미를 폄하하려고 하지만
이는 당시 배경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평가다. 애초부터 '정명가도(征明假道)' 를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건 누구였나?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입장에서는 수년간의 전쟁으로 고국에 굉장히 큰 피해를 끼친 외적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섬멸하는 것이 당연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일본이 전쟁을 포기한 건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당시 조선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전쟁을 포기한다는 보장을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근거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명과 강화협상을 약속하며 남해안 일대로 물러가 놓고서는 2차 진주성 전투를 일으켜
5만 - 6만에 이르는 무수한 진주성 백성들을 학살했다. 심지어 그 당시엔 철군을 약속한다는 국가간의 공약도 없다.
오히려 정유재란 말기, 조선과 명이 세운 공통 입장은 어디까지나 '조선을 침범한 일본군을 모조리 섬멸한다.' 였다.
또 정유재란도 무리한 강화조건만 내세우고 뻗대며 철군했다가 지들이 다시 쳐들어 온 전쟁이 아니었던가?
이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언제고 다시 침략군이 될지도 모르는 전력을 얌전히 살려보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조명연합군은 이순신과 등자룡이 전사하는 등 지휘부 피해가 커서 실질적으로는 일본이 이겼다고?
그런 논리대로라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이 전사했으니, 트라팔가르 해전은 프랑스가 승리한 것인가?
5. '이순신 장군의 전사' 외 노량해전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
[ 16세기 세계사 최대의 해전 ]
조명연합수군과 일본군 양측을 도합한 인원 수만명에 도합 천여 척에 가까운 전선들이 격돌한 '임진왜란 최대의 해전'
프레베자 해전(1538), 레판토 해전(1571), 칼레해전(1588)과 더불어 노량해전은 16세기에 있었던 최대의 해전이었다.
[ 동아시아 3국 최강의 전력이 동원된 당대의 올스타전 ]
설명이 필요없는 불멸의 '성웅'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 대왜구 전문 전투부대로 육성시킨 명의 '절강보병'
'규슈의 패자' 시마즈 요시히로가 지휘하는 최강 전투력의 사츠마군, '서국무쌍' 타치바나 무네시게의 북규슈군
[ 군사학적인 고급 전술들이 총망라 ]
이순신 장군께서 기획한 '기습전 + 야간전 + 포격전 + 포위 섬멸전 + 화공전' 의 모든 전술 요소들이 발휘
[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에 걸친 7년 국제전쟁의 실질적 종결 ]
전쟁은 이후 남해안 왜성에 잔존해 있던 병력들을 소탕하며 마무리되었으나, 실질적인 일본군 중심전력을 궤멸시키며
완전한 전쟁 승리를 선언함과 동시에 남해안 전반의 안정을 불러움, 이후 수백년간 남해안에는 무장 해적 출몰 기록 X
첫댓글 그 대단한 시마즈조차도 아무것도 못하고 탈탈 털린 전투. 충무공을 비롯하여 다수의 조선 지휘관이 전사했지만 걍 일방적으로 왜군이 털린 전투였음
4번이 영화에서 잘 설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더라구요.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영화만 보는 중에는 진린 입장이 좀 더 설득력 있게 와닿던..
근데 현실적인 명 입장에서야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건 맞죠... 영화 대사로 말하자면 그들은 돌아갈 본국이 있으니까요.
@서초패왕 항우 그쳐, 근데 어쨌든 영화를 보는건 우리 국민들이니까 관객들에게 노량해전의 당위성을 좀 더 납득시킬 수 있는 연출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었어용ㅎㅎ
고니시의 졸렬함에 다시 한번 가슴이 옹졸해지네요 도와달라해놓고 지들은 관망하다가 몰래 도망이나 가고 ㅋㅋ
근데 세키가하라 결과 생각하면 걍 노량에서 수장되는 게 나았던...
@서초패왕 항우 나중에 시마즈는 본국에서 고니시 만나 서군으로 싸우기 전 왜 도망갔냐고 지랄하지 않았을까요? ㅎㅎ
@안신애 사실 전투 이전부터 미츠나리와의 언쟁들이 잦아 서군측 인원들 팀워크가 안좋기도 했습니다. 뭐 2년 지난 시점이지만 시마즈는 가문 피해가 막심했으니 논쟁거리였을수도 있겠네요. ㅎㅎ
@서초패왕 항우 고니시와 시마즈가 고스란히 철수할 수 있었다면 세키가하라 전투양상 또할 달랐을 수 있겠네요? ㅎㅎ
재미써영ㅋㅋㅋㅋ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행장이가 쫓아왔어도 그냥 같이 탈탈 털렸을거 같은.. 진짜 소서행장 대가리는 우리가 갖고 왔었어야 됐음..
나중에 볼 것
영화보고보니 더 재밌네용 ㅎㅎ
헐 오인사격땜에...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