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사극 <연개소문>이 안시성 전투에서 시작하더니, 지난 주말 방영을 시작한 KBS의 <대조영> 역시 안시성 전투부터 방영을 시작하였다. 두 드라마가 같은 시대를 다루지만 주인공이 다르다보니 <연개소문>은 역사왝고이라는 비판을 들어가며 연개소문이 안시성 전투를 주도한 것으로 그렸고, <대조영>에선느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안시성주의 부하로 활약한느 것으로 나왔다. 이 두 드라마 모두 안시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주몽,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과 함께 양만춘이라고 답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럼 양만춘이 뭐하던 사람이죠? 라 묻는다면 안시성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한 명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유명세 탓에 한국 해군은 광개토대왕, 을지문덕과 함께 양만춘의 이름을 KD-1급 구축함의 함명으로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었는지는 불분명 하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당나라 태종은 뛰어나고 총명하여 세상에 드문 임금이다. 난을 다스린 것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에 견줄 만하고, 다스림을 이룬 것은 성왕(成王)·강왕(康王)과 비슷하다. 군사를 쓰는 데 이르러서는 기이한 책략을 내는 것에 끝이 없고 향하는 곳에 적수가 없었는데, 동방을 정벌하는 일에 안시성에서 패하였으니 그 성주는 호걸이요 비상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기에서 그 성명을 전하지 않으니, 양자(楊子)가 말한 바 제나라와 노나라의 대신이 사기에 그 이름을 전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다름없다. 매우 애석한 일이다.' 와 말한 바와 같이 안시성주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서는 물론 <구당서>, <신당서> 같은 중국 사서에도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그럼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걸까?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안시성 전투로부터 약 천년 가량이 흐른 후인 서기 1669년, 송준길(1606~1672, 서인 출신으로 1차 예송논쟁때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간 입는 기년제를 관철: 옮긴이 주)의 문집 <동춘당선생별집>의 <경연일기>의 기록이다.
"현종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누구냐고 묻자, 송준길이 답하기를 양만춘(梁萬春)이며, 이세민의 군대를 맞이해 능히 막아냈으며, 성을 잘 방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현종은 그것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고 답하기를 옛날 부원군 윤근수(1537~1616, 윤두수의 아우로 임진왜란 후 호종2등공신으로 책봉: 옮긴이 주) 가 중국에서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안시성주 양만춘(楊萬春)이 이세민의 눈을 쏘아 맞히자 이세민이 성 아래에 군사를 집합시켜 시위하고 양만춘에게 비단 100필을 주어 그가 제 임금을 위해 성을 굳게 지키는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
두 기록 모두 안시성 전투로부터 천년이나 지난 후의 기록이고, 그나마 자신이 직접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확인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는 내용이다. 그런 탓인지 이름의 한자도 들보 양(梁)과 버들양(楊)로 각기 다르다. 윤근수가 본 중국 기록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김부식이 참고했던 중국 사서들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양만춘이라는 이름에 대한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하여, 안시성주의 이름이 정말 양만춘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반대로 양만춘이 안시성주가 아니라고 단언할수도 없다. 특히 드라마라면 등장인물의 이름은 필요하니 안시성주를 양만춘으로 부르는 게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이런 실정은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은 연개소문을 잊혀진 영웅이라고 홍보하지만, 이름이 양만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안시성주야말로 잊혀진 영웅인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양만춘이건 아니건 중국에서 손 꼽히는 명군이자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단 당태종 이세민을 격파한 명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정확한 사망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구려 멸망 후 서기 671년까지 안시성에 당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일에도 안시성주의 힘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뛰어난 명장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첫댓글 을파소님이 쓰신글을 읽으니까 이해가 되네요~!!! 안시성주가 양만춘이건 아니건 진짜 역사에선 전하진 않는다는 건 아쉽네요~!! 그분이 진짜 잊혀진 인물이네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안시성이 무너져 평양성 결전으로 이어졌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