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골 편지... 입동, 겨울의 시작

[북평산방]

예년과 달라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서 11월에 들었는데도 날은 푸근하여

오히려 서리가 내리던 시월보다 더 따뜻한 날이 지속된다.

그래도 산골의 겨울은 빨리 오니 집집마다 김장을 하느라 분주하고

며칠 만에 만나는 인사는 으례 김장했느냐가 된다.

어릴 적의 김장이란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바알간 양념을 버무리고

남정네들은 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아낙들의 수고를 대신하였는데,

이제는 산골이라 하여도 김치냉장고는 모두 있어 땅을 파는 수고는 덜었지만

그리운 그 때의 그 모습은 추억 속에서나 아련하다.

푸근한 11월 장날의 장마당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가당할 듯

전국 각지에서 모인 길손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이제 정선의 장날은 정선 뿐만 아닌 나라의 축제일이 되어

청량리에서는 따로이 기차가 뜨고 관광버스는 방방곡곡에서 모여들고,

운집한 청중만큼이나 야외공연장에서 열창되는 정선아라리도 덩달아 흥겹다.

정선을 오가는 길도 아름다워 진부에서 오대천 맑은 물과 함께 하는 단풍은 황홀하고

강릉을 떠나 삽당령을 넘는 길의 낙엽송도 미끈하다.

또한 평창 미탄지나 가리왕산을 바라보며 넘는 솔치재의 소나무숲은 언제나 싱그럽다.

이런저런 단체관광의 명찰을 앞에 두른 길손들로 북적이는 장마당엔

굵은 더덕이 산같이 쌓이고 가을냉이 고들빼기가 선보이고 뚱단지도 자리한다.

식당가 골목엔 메밀전병과 수수부꾸미굽는 고소한 냄새는 오늘도 푸짐하고

콧등치기 올챙이국수를 맛보는 길손들로 왁자하다.

끝물인 듯 애호박 몇 개 붉은 수수 몇 되 말린 곤드레, 황기 앞에 두고 앉은 할머님은

해넘어가니 옹송그리 몸을 움츠리고 더덕껍질벗기느라 손은 바쁘다.

간혹 발길멈춘 길손을 맞아 더덕냄새풍기는 손을 들어 흥정하느라 얼굴은 상기되는데

한 때는 고왔을 얼굴에는 아우라지강물같은 세월이 겹겹이 앉았다. 

아우라지가는 버스에는 저마다 보따리를 앞에 두고 집으로 가는 어르신들과

가을 아우라지를 찾는 길손들로 그득하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아침안개가 자욱하여 산책을 나선 들녘엔 이슬이 촉촉하고

아카시아 높은 가지엔 때까치 예닐곱 마리 자리를 다툼인지 부산하다.

하루 두 번 꼬마기차가 오가는 외줄기 철길을 따라 역원없는 나전역에 들어서면

그 옛날 탄광 시절의 저탄장 검은 흙 속에서 유달리 하얀 억새가 하늘거리고,

아우라지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도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이른 봄 화사한 꽃을 잠시 피우고는 어느 날의 바람에 꽃잎을 흩날리던 벚나무는

이른 가을이면 벌써 잎이 붉어지고 채 추워지기도 전에 가지만 앙상하다.

벚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은 수북하여 부러 밟아보는 가랑잎은 바스락 소리내니

오래 전 읊었던 구르몽의 시가 떠오른다.

시몬, 너는 좋으냐?

이 가을 낙엽밟는 소리가...

배추와 무우마저 뽑은 밭은 텅 비어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하고

이제 눈이나 풍성하게 쌓이기를 기다린다.

해는 중천에 떴어도 첩첩산중의 안개와 산마루의 구름은 걷히지 않아

가까운 산의 선명과 먼 산의 희미한 실루엣은 절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여름의 초록물결 속에서 보이지 않던 낙엽송 무리는

임꺽정의 산채처럼 노란 단풍이 드니 나타난다.

오늘이 입동이라는 달력을 보고 다시한번 겨울준비는 어쩐가 살피니

지난 여름 배추를 심기 전에 감자는 캐어 광에 두었고,

더덕도 고추장에 버무려 장아찌로, 풋고추는 들깻닢과 함께 간장에 박아 두었겠다.

장작 또한 넉넉하게 쌓았으니 벽난로 따뜻하게 피워

긴 겨울밤을 보내면 될 일이고,

다음 주에는 이 동네로서는 늦은 김장을 하여 갈무리하고 시래기묶어 매달면

소나무에 쌓이는 눈이나 바라보는 동안거에 드니,

긴긴 밤 정선의 전설은 알알이 익어가겠다.

이러구러 보내는 세월 속에서 젊은 날의 치기로 노상 이야기하던

짧고 굵게 살리라는 마음은 어느새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저 가늘게라도 좋으니 길게 살고 싶다 한다.

[꽃집아가씨]

김장 김치 익어가면 부엉이 울음 타고 흰눈이 내리는 정선 산골을 생각해봅니다

[북평산방]

겨울의 경치도 좋은 곳입니다.

[백설영]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위도 차이로 약간 다른 기후를 느끼고 있는것같습니다 김장이 한창인가 보네요?
남녁은 마음의 준비 뿐입니다

[북평산방]

언제 한파가 올지 몰라 모두들 서둘러 김장을 합니다.

[새로미제이]

'아우라지 강물같은 세월의 흔적 있는 얼굴' 재밋는 표현 감사합니다.
겨울나기에 분주한 정선에 가보고 싶은 마음 한 가득입니다.

[북평산방]

어찌 된 일인지 따뜻한 날이 지속됩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기를...

[렌즈세상]

어릴 때 김장을 하는 것을 보면 쌈 한나 얻어먹으려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북평산방]

그 때는 참으로 맛있었지요...

[늘기쁘미]

아 벌써 겨우살이 준비를 거의 다 하셨군요 ㅎ
제가 지난주에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그곳 아주머니 말씀이 올해는 유난히 따뜻해서 김장도 다른해에 비해 늦게 해도 된다고 하시면서
무우를 뽑아 손질하며 무우청을 줄에 걸어놓곤 하시더군요 참 아름답고 따사로운 농촌의 모습을 바라보며 북평산방님을 떠올리게 되대요 ㅎㅎ
좋은글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북평산방]

네, 내일은 마당의 수도를 얼지 않게 묶어야 합니다.

[귀요미]

장선은 겨울도 좋을듯 싶네요. 온 밭이 눈으로 덮여 있을때 그야말로 하얀 나라로 변하니요.
그럼 아무도 손길이 안 간 눈 위로 혼자 걸어보기도 하며 눈 위에 그림도 그려보고 눈사람도 만들고 ~~
얼마나 낭만이겠어요 ! 멋진 겨울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북평산방]

그렇습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좋은 동네...